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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0호]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본 여성해방과 계급해방
노정협   2009-04-21 14:30:27, 조회:1,708, 추천:187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본 여성해방과 계급해방



얼마 전 착취 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중심에서 투쟁한다는 노동자계급의 대표인 민주노총에서 경악할만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성폭력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그 과정을 해결하는데 있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는 등 민주노총의 관료적인 태도는 더 큰 충격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치유는커녕 더 큰 상처를 주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사태 해결을 지켜봐달라는 요청에 피해자 대리인은 민주노총의 진상조사 과정에 협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피해자에 관한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긴 진상보고서를 아무런 여과 없이 민주노총 임원회의에 제출하는 등의 2차 가해를 저질러 성폭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피해자의 바람을 짓밟아버렸다.

우리는 민주노총이 이번 사건의 발생과정과 이번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20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 바탕한 조직으로서의 최소한의 무엇도 갖추지 않고 있고, 선의의 협조자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대해 한낱 술자리 안주감으로 전락시켜버리고,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2차, 3차 피해를 강요한 점에 대해 분노한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 대한 피해자와 대리인 입장 글 중)

민주노총의 이러한 행태는 성폭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처리하는 조직적 해결의 원칙을 사라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최선의 방법은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인정하고 사과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피해자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각성하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는 조직적 책임의 일환으로 총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마땅하되 지도부 총사퇴는 중요한 시기에 투쟁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하는데, 이런 사건이 알려지면, 조중동에 의해 대서특필되면 조직이 심각한 상처를 받는다.”던 민주노총 고위 간부들의 조직보전주의는 조직보전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부르주아 신문으로부터 난도질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폭력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인 동시에 운동진영 내부도 자유롭지 않고 별반 다르지 않은 문제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진영이라 자처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문제를 대상화시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번 민주노총 간부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운동진영 전반에 있어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변화와 여성을 위한 투쟁에 더 복무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과 비교하며 민주노총은 그래도 가해자를 제명조치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진보진영이 한나라당과 비교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여성운동은 이론의 문제만이 아닌 실천의 문제이다. 어떻게 여성문제를 인식하느냐의 문제와 그 인식을 가지고 일상에서 제대로 실천하는가의 문제가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저열한 성인식과 관료주의적 태도로 이번 성폭력 사건을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성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가사노동과 육아까지 책임을 져야하며 더 열악한 노동환경과 성적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속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그 뿐인가? 온갖 흉흉한 범죄 속에서 밤길을 자유롭게 다닐 권리, 혼자 택시를 탈 권리, 사람 많은 지하철을 편하게 탈 권리 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거나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많은 여성들은 충격을 받고, 두려움에 떤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겠다는 민주노총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그 해결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함께 투쟁하고자 했던 여성노동자들을 더 이상 성폭력, 성차별로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없애고자 했던 것을 함께 믿고 투쟁했던 동지에게 당했을 때의 고통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 여성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굉장히 심각하다. 실제 지난해 줄어든 취업자 가운데 80%가 여성이었고 청년층 상용직에서 남성은 2만5천명 늘어났지만 여성은 4만8천명 줄어들었다. 최저임금 대상 가운데 65%가 여성이고 여성노동자 가운데 70%가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전체 노조 조직률이 10%이지만 여성 노조 조직률은 5%를 밑돌고 있다(3월 8일 한겨레기사 재인용). 처한 현실은 더 열악하지만 함께 싸울 수 있는 조직률은 더 낮다.

이것은 여성노동자가 경제활동에 있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우리는 왜 노동조합에 조직되어 있는 여성노동자의 숫자가 적은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 고민에 대한 결과로 여성노동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조직화해야 한다. 함께 떨쳐 일어나 싸울 여성노동자들을 더 많이 조직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노총 성폭력 문제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무엇이 문제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되짚어 보아야 한다.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에 대한 문제

민주노총 지도부의 성폭력과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문제를 가지고 운동진영에서는 성폭력의 근본적 원인과 해결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 분석과 대안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분적인 문제만으로 해결하려는 편향에 빠져 있다.

먼저 성폭력의 원인이 관료주의와 조합주의에 있다는 주장이 한 편에 있다. 이러한 관점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조합주의가 아닌 남녀 노동자계급의 단결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만으로 돌려버리는 인식상의 편향을 범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그 동안 피해자 중심주의, 성폭력 개념의 확장 - 언어 성폭력이나 데이트 성폭력, 2차 가해 등 - 성평등을 위한 인식의 확장과 실천 같은 특수한 문제들을 관료주의와 조합주의 일반의 문제로 돌려서 사실상 회피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이처럼 특수한 문제를 일반의 문제로 돌려버리면 여성의 문제를 특수하게 해결하기 위한 여성위원회나 여성할당제를 계급일반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부정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수히 존재하는 차별 즉,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별, 이주노동자와 국내노동자와의 차별, 남녀 차별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과연 같은가? 계급적인 문제라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남녀 차별의 문제, 여성의 문제에는 그 외에 특수성이 존재한다. 성폭력은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를 갈라놓고 단결을 근본적으로 저해시키며 서로의 신뢰를 상실하게 만든다. 만약 성폭력 사건이 관료주의, 조합주의 등 계급성만의 문제라면 그 조직의 정치적 입장이 급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운동진영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특수성이 없다면 노동해방이 되면 여성해방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해방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오로지 계급해방만 이루면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실제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도 그리고 혁명을 준비하면서도 볼셰비키는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클라라 체트킨이 여성대중에 대한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당내에 특별한 기관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많은 당원들이 ‘남녀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남녀의 구별 없이 하나의 총체로서 노동자계급속에서 활동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이에 클라라 체트킨은 레닌에게 생각을 물었다. 레닌은 이에 대해 ‘그런 당치도 않은 소리는 낡아빠진 것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다.’고 했다.

다른 한 편으로 운동진영 내부의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성폭력의 원인이기 때문에 양성평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위의 입장과 달리 이 입장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인식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자체에서의 여성억압과 착취, 탄압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부분적인 것으로 보는 문제점이 있다.

가부장적 문화의 문제라면 문화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고, 우리의 문화, 인식은 자본주의 내부의 영향을 받는 문화이고 인식이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 내에서도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문화와 인식을 갖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는 투쟁과 철폐를 통해서만 진정한 계급적 문화와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반성폭력 내규 전문에서 ‘계급해방이 자본주의 내에서 이뤄질 수 없듯이 진정한 성 평등 역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근본적으로 이뤄질 수 없’고 ‘계급적 모순을 철폐해가는 과정 속에서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낮은 사회적, 인간적 지위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 이렇게 함으로써 여성문제를 사회문제, 노동문제의 한 부분으로서 생각하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으며, 여성운동을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및 프롤레타리아혁명에 굳건히 결합시킬 수 있습니다(여성문제에 대한 레닌과의 대화 - 여성을 위한 활동지침, 클라라 체트킨).

가부장적 문화와 양성평등은 부르주아들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대중 특히 여성 대중들에게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심지어 부르주아 신문인 조중동조차 성폭력 문제 그 자체에 있어서는 여성을 옹호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는 여성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 등은 없다. 오히려 여성노동자에게 더욱 착취와 탄압이 집중되는 최저임금법, 비정규법 개악 등을 옹호하는 글들만 넘쳐난다. 여기서 여성차별의 문제가 단순히 성별의 문제만이 아닌 계급적인 문제라는 것이 드러난다. 계급적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올 때 그들의 위선이 드러난다.

우리는 부르주아의 여성에 대한 위선이라는 가면을 그들이 스스로 벗든지, 우리가 벗기든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의 노동권, 생존권 등을 전면에 내걸고 여성의 낮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 등 만연한 차별적인 문제가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음을 선전, 선동하며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제대로 된 대응과 실천으로 위선으로 가득 찬 저들의 가면을 벗겨내려 할 때,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실질적인 평등을 위해 투쟁할 때, 저들은 어김없이 여성노동자에게 칼날을 겨눌 것이고 위선의 가면을 스스로 벗어 던질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실천과 선전, 선동을 통해 부르주아지들의 여성관과 무엇이 다른지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여성대중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이중의 굴레, 이중의 억압을 당하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여성 노동자로서의 억압과 차별, 착취 그리고 가부장적 굴레 속에서의 억압. 결국 성폭력 문제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여성억압,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일반적인 문제와 더불어 가장 구체적으로 주로 여성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성적 자기 결정권의 침해의 문제이다.

성폭력의 문제는 폭력이라는 일반성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성폭력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성폭력, 여성문제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인식과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른 단체에서 제안한 바 있지만 그 동안 민주노총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잘못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부터 가사노동의 분담, 욕설의 자제 등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동지로, 인격체로 보려는 지속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성억압, 착취에 맞서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노동자들과 굳건하게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적 소수자 등의 억압과 착취, 차별에 맞서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여성을 위한 완전한 자유를 획득하지 않는 한,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의 완전한 자유 또한 획득할 수 없습니다. (레닌, 「여성 및 여성노동자에게」, 1920년 2월 21일, 레닌)

여성들을 끌어들이지 않고서 대중들을 정치로 끌어들일 수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이중으로 억압받고 있기 때문이다(레닌전집 32권, 「국제노동여성의날」).


여성이 억압받고 있고, 고통 받고 있는데 프롤레타리아가 완전한 자유를 획득할 수는 없다. 여성해방의 정도는 한 사회의 진보적 발전의 척도가 된다. 계급해방 없이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없다. 그러나 여성해방 없는 계급해방은 절반의 해방, 허울뿐인 해방에 불과하다. 투쟁의 주체들이 자본주의에서 가해지는 여성문제 및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맞서 투쟁하면서 각성하고 거듭나지 않고서는 완전한 계급해방을 이룰 수 없다. 여성해방과 계급해방을 통일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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