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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노동자정치신문 50호 목차 / 용산철거민 투쟁과 계급동맹의 문제
노정협   2009-03-14 00:04:06, 조회:2,475, 추천: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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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신문50호(통합 62호)입니다.

  
  
용산철거민 투쟁과 계급동맹의 문제
  


용산 철거민 학살에 맞서는 투쟁이 50여 일 동안 전국적인 계급투쟁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범국민대회에 다수 참여하고 노동자대회를 통해 철거민 투쟁을 엄호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자본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면적인 반격에 나서지 못하면서 용산철거민 투쟁은 고립된 채 장기투쟁으로 되어가고 있다. 지금 용산철거민들은 힘겹게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철거민 학살문제는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정권과 부르주아 신문은 강호순사건으로 용산철거민 투쟁을 물타기 하다가 이 투쟁이 확산되지 못하자 철거민들과 범대위 활동가들에 대한 구속과 체포영장 발부 등 대대적인 탄압을 하고 있다.

용산철거민 투쟁이 고립되자 정치세력들은 노동자투쟁과 용산철거민 투쟁이 하나로 결합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노동자대회에 수만의 노동자들이 참가해서 분노를 터뜨린 것을 봤듯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망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촉즉발에 있는 노동자투쟁이 터져 나온다면 여기에 대응하느라 정권의 힘이 분산될 것이기 때문에 용산철거민 투쟁은 일시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을 강화한다는 것은, 의식적인 계급동맹의 수준이 아니라 용산투쟁과 무관하게 각자가 알아서 자신의 싸움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으로 될 수 있다.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문제와 노동자들이 계급동맹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중의 이해를 받아 안고 전면에 나서 투쟁해야 한다는 문제는 질이 다른 문제다. 노동자계급과 철거민 등 민중들과의 계급동맹 문제는 이번 철거민투쟁을 전술적으로 엄호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과학적인 계급분석, 즉 계급론의 문제로 혁명전략, 혁명 이후 권력의 상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부르주아는 현대자본주의에서 중간계급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유로 맑스의 계급론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매도하고 있다. 이른바 중산층논리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중산층 이데올로기는 자본가들 스스로 양극화를 말하듯이 현실에서 파산당하고 있다. 부르주아는 이 양극화조차도 자본주의 계급모순과 적대감이 강화된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저들은 다만 중산층을 복원해서 양극화를 없애야 한다고 계급모순을 한사코 피해가려 하고 있다.

그런데 맑스주의 계급론의 문제와 계급동맹의 문제는 운동진영 내에서도 그것이 80년대의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구성체 논쟁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학술진영에서 비실천적으로, 혁명적 원칙이 빠진 채로 간간히 계급분석의 문제를 제기할 뿐이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사회주의 당건설의 문제에 있어서도 계급론과 계급동맹의 문제는 별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운동진영이 과학성을 상실한 문제와 더불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운동의 원칙을 상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심지어 해산한 노힘과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에서는 여성과 소수자 등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맑스주의 계급론을 계급환원주의라고 매도하는 신좌파적 사고에 빠져 있다. 이것은 노동자중심주의에 대한 철저한 왜곡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맑스-엥겔스의 유물론적 계급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계급론을 농민 특히 빈농과의 계급동맹이라는 구체적인 혁명전략으로 발전시킨 레닌주의의 계급론을 한국사회의 계급분석과 혁명전략의 문제에 적용시켜야 한다. 농민의 비중이 혁명 당시와 혁명 이후의 러시아보다 줄어들었다고 해서 계급동맹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독점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도성을 가지고 독점자본을 포위하기 위해서는 계급동맹이 필수적이다. 농민의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300만에 달하는 농민은 계급동맹의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노점상, 소상인 등 자본주의에서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파산하고 있는 도시 소부르주아와의 동맹 역시 중요하다. 재개발 과정에서 철거당하고 심지어 학살당하고 있는 소상인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노동자투쟁과 계급동맹의 문제를 구체적인 현실로 고민해야 한다.


소부르주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맑스는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공산주의당 선언을 시작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대립을 단순화 시켰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봉건시대의 몰락으로부터 출현했지만 사적소유 자체를 없애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봉건시대 농노제라는 사적소유 형태를 부르주아의 사적소유로 단지 소유의 형태만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혁명만이 사적소유 자체를 철폐하고 사회적 소유형태로 바꿀 수 있다. 여기에 과거의 모든 혁명과 대비하여 노동자계급혁명이 가지는 혁명성이 있는 것이다.

봉건사회의 몰락으로부터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기하지 못하였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들과 바꿔 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커다란 계급들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다 :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맑스/엥겔스,「공산주의당 선언」, 『맑스엥겔스 선집1권 』, 박종철출판사, p.401).

맑스는 소공업가나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 소부르주아는 대부분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기계화 등 생산력의 발전으로 그들이 가진 숙련이 무가치하게 변하기 때문에 파산하여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독점자본은 소자본을 무너뜨리고 점점 더 소수의 독점자본이 되는 반면에 소부르주아와 부르주아의 일부 등 파산한 모든 계급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점점 더 압도적인 계급이 되는 것이다. 물론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정리해고당한 프롤레타리아가 소부르주아로 편입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이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계급들 중에서 압도적인 계급으로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지금까지의 소중간 신분들, 즉 소공업가들, 소상인들과 소금리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 등의 이 모든 계급들은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는데, 이는 일부는 그들의 소자본이 대공업의 경영에 충분하지 않고, 더 큰 자본가들과의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일부는 그들의 숙련이 새로운 생산양식들에 의해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라아트는 주민의 모든 계급들로부터 충원된다.(같은 책, p.407,408).

맑스는 프롤레타리아만이 모든 계급들 중에서 진정으로 혁명적 계급이라고 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지켜야할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현재를 유지하거나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적 소유 체제를 파괴하고 노동자가 해방되는 미래의 발전을 위해 투쟁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는 압도적 다수의 운동이다. 반면 소부르주아는 고립분산적이고,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쇠퇴, 몰락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맞서 싸우려 하기 보다는 자본주의를 정상화시켜 몰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때로는 반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맑스는 소부르주아가 보수적이고 반동적이지만 때로는 혁명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맑스는 중간신분들이 노동자계급에 대하여 반동적 대중을 이룰 뿐이라는 고타강령 초안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덧붙여 있다 : “중간 신분들은..자신들에게 임박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행을 목도하여..혁명적으로(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간신분들이 ‘부르주아지와 함께’ 더구나 봉건 영주들과 함께, 노동자 계급에 대하여 ‘하나의 반동적 대중을 이룰 뿐’이라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맑스,「고타강령 초안 비판」,『맑스엥겔스 선집 4권』,「박종철 출판사, p.379).

맑스의 계급분석 중에서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고타강령 초안처럼, 노동자계급을 제외한 모든 계급이 반동적이라면 노동자계급은 자신만으로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은 농민과 소상인 등 소부르주아를 적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을 보더라도 멘셰비키가 자유주의 부르주아와의 동맹을 사고하고 임시정부에서 이를 실천에 옮길 때 볼셰비키는 이와 단절하고 농민과의 동맹을 전략적으로 실천에 옮겼다. 농민과의 동맹은 단순히 혁명을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혁명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농민은 단일한 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이후 농민과의 동맹은 지주와 부농을 배제하고 중농을 설득하고 빈농을 굳건한 동맹군으로 하는 것으로 세밀하게 분화되었다.

이처럼 소부르주아는 단일한 계급이 아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자본가의 측면이, 직접 노동을 한다는 점에서는 그 자신의 노동자이기도 한 소부르주아는 모순적 위치에 처해 있다.

“부분적으로나 전체로서 소부르주아 계급은 ‘민중’으로서 임금노동자들과 연합하거나, 부르주아 계급과 연합하여 ‘시민층이 되고자 한다.”(미하엘 마우케, 「계급론」 p.78-79).

소부르주아 내부에는 계급분화의 요소를 안고 있다. 소부르주아의 이중적인 계급적 조건은 소부르주아를 자기모순에 빠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소부르주아 내부를 상층과 하층으로 분화시킨다. 소부르주아 상층은 자본가적 세계관과 물질적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대기업의 중간관리자, 행정직 관리직 종사자, 전문기술직, 교수,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 집단, 스타급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 특수집단, 대체로 가족 노동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 형태로 대략 5명 이하의 노동력을 고용해서 직접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관리기능만을 수행하는 중소상인들이 소부르주아 상층에 해당된다.

레닌은 소부르주아의 계급적 특성으로 계급화해주의를 특성으로 한다고 말했다.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간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전개되는 사회에서, 특히 이러한 계급투쟁이 좀더 첨예하게 전개될 때, 중도노선이란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쁘띠 부르조아지의 계급적 위치와 열망의 본질 때문에 그들은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불가능한 것 즉 중도노선을 소망하였기 때문이다.(레닌,「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혁명사 3부작』, 소나무 p.70. 주66에서 재인용).

레닌이 말한 소부르주아의 계급적 특성은 특히 이들 소부르주아 상층에게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소부르주아 상층의 계급의식은 철저하게 위선적이고 부르주아적이다. 이들은 부르주아를 동경하고, 일부는 실제 계급상승을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들조차도 독점자본의 지배 하에서, 공황의 심화에 따라 상대적 안정성의 기반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부르주아적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드물지만 이들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동참하는 것은 이들이 파산할 때나 정리해고 당할 때이다. 물론 의사들 일부는 삼성이나 현대처럼 대자본병원 아래서 노동자로 일하기도 하고, 대자본의 병원진출이 늘어나면 소부르주아 상층인 개인의들의 파산이 늘어날 수도 있다. 특히 전공의는 열악한 조건 내에서 하루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당하지만 의사라는 전문적 직업인이 될 수 있다는 미래의 희망 때문에 노동자의식이 희박하다. 교수들 중에서도 일부는 노조로 조직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급으로서의 이들 소부르주아 상층은 파산과 정리해고를 당할지라도 노동자계급이나 소부르주아 하층이 감당해야 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들 중 전문가 집단들은 경제위기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고 있으나 대기업, 국기기구 준고위 공무원 관리적 형태가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러나 이들은 소부르주아 하층과 다르게 주식, 저축 등 상당한 금융자산과 주택, 토지 등 부동산 소유로 금리생활자로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소부르주아의 독립성의 파괴와 불안정성 증대는 계급동맹의 토대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해서 나온 잉여가치를 전유하여 생산 규모를 끊임없이 확대시키는 것에 비해 소생산자들은 사업의 규모를 어느 정도 확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수입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생계비로 소비한다. 이 중 사업의 규모를 확대하는 소자본가는 소부르주아 상층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이들 중 극히 일부가 자본가로 계급상승을 할 수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소부르주아 상층과 하층의 물질적 조건 및 계급의식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부르주아는 취약한 처지에 있고, 독점자본주의의 자본집중에 따라 소부르주아로서의 자립성을 잃어가고 있고 심지어는 생존 자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소부르주아의 생산수단의 독립성은 허울에 불과하고 소부르주아는 사실 독점자본에 종속된 처지에 있다.

소상인은 겉으로는 사적소유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상인이 가지고 있는 생산수단인 상점은 건물주나 지주의 소유이다. 또한 남한 자본주의에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소상인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소상인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때문에 소상인들은 건물주에게 임대료 말고도 높은 권리금을 주고 건물에 입주하게 된다. 보통 1억에서 수억에 달하는 권리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 같은 금리생활자나 은행에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온다. 독립적인 생산수단의 소유자로서 소상인은 지주, 건물주, 금리생활자, 은행 등에게 이중삼중으로 수탈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는 농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토지 소유 농민은 겉으로는 사적소유자지만 대부분은 국가부채가 있거나 토지를 담보로 농협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빚에 허덕이고 있다. 농업에서의 부분적인 기계화 등으로 인해 토지를 담보로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등 생산수단을 구입하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빚을 조달한다. 농민은 상업자본에게 비싼 농약, 사료 값 등으로 수탈당하고, 국가에 의한 저곡가 정책과 이중삼중의 중간상인들로 인해 농산물 값이 최저한도로 낮아지고 있다. 심지어 대자본이 농업을 지배하는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씨앗조차도 거대농업 자본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자영농인 농민조차도 대자본과 은행의 ‘소작농’으로 전락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부르주아 하층은 부르주아로의 계급상승 기회가 철저하게 차단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부르주아로서의 안정성 자체도 무너지고 있다. 자본주의 공황은 소부르주아의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계급분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한국사회는 농민의 계속되는 몰락에도 불구하고 소상인 등 소부르주아의 비중이 서구는 대략 10% 정도인 것에 비해 30% 이상으로 훨씬 높다.

IMF 경제위기 이전 1997년 6월 자영업자 총수는 429만5,000명이었으나, 1년 후인 1998년 6월에는 442만7,000명으로 13만2,000명이 늘었다. 자영업 수는 계절적인 변화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늘어서 1999년 6월에는 456만5,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서 13만8,000명이 더 늘어났다. 이것은 고용주의 일부와 노동자 가운데 실업이 된 사람들이 다양한 자영업으로 진출하여 일어난 변화이다.(신광영,「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P.226).

소부르주아 하층은 생존의 위협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도시빈민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있다.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계급이 소부르주아가 되는 등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노동자의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으로 인해 구매력이 저하되면서 더욱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거대 상업자본의 유통진출과 지배로 인한 대대적 파산으로 소부르주아 하층의 빈민으로의 전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독점적 건설자본의 재개발로 인해 미래의 개발이익을 노리고 투기꾼이 몰려들면서 토지가격이 상승하게 되면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당하기도 한다.

건물주, 지주 등 금리생활자들은 조합을 구성하게 되면 세입자는 물론이고 영세 가옥주마저도 토지가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이 살던 거주지에서 쫓겨나고 있다. 재개발 지역에서 구성된 조합은 영세가옥주가 토지가격의 상승과 주택가격의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조합에게 소유권을 양도하면 개발 전에 주택 수십 채를 소유해서 수십, 수백억의 이익을 남기고 있다. 또한 지하상가의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데 건설자본은 이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챙기게 될 것이다. 지자체 등은 재개발로 인해 상가가격이 급등하게 되면 지하상가를 상업자본에게 위탁경영하도록 하여 기존 지하상가 소상인들에게 임대를 주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하상가 소상인들은 엄청나게 오른 상가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쫓겨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또 다른 용산의 비극이 지하상가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실상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 하층인 소상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계급이 정리해고 당한 뒤 소상인으로 편입되기도 하고, 소상인들 중 파산한 이들이 다시 노동자계급의 가장 불안정한 일원으로 편입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파산한 소부르주아는 퇴직금, 고용보험 등 최소한의 사회적 완충장치도 없이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쫓겨나게 된다.

오늘날 소상인들은 전 사회의 화폐자본을 집중시키고 이자를 받아 먹고사는 합법적인 고리대금업자인 은행과 금리생활자들에게 종속되어 독자성을 상실하고 있다. 특히 은행자본은 산업자본과 결합해서 금융자본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은행자본의 이자는 오로지 산업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해서 나온 잉여가치의 일부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자를 받아먹고 사는 금리생활자가 증대하는 현대자본주의의 기생적인 특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초 위에서 자본은 생산자본으로서 기능하지 않아도[즉 이자가 다만 그 일부부에 불과한 잉여가치를 창조하지 않아도] 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 생산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매우 많은 수의 자본가들이 자기의 자본을 화폐자본으로 전환시키려 한다면, 그 결과는 화폐자본의 막대한 가치감소, 즉 이자율의 대규모 하락일 것이며, 이에 따라 많은 자본가들은 이자에 의해 생활할 수 없음을 곧 발견하고 다시 산업자본가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맑스,「이윤이 이자와 기업가 이득으로 분할」, 『자본론 3권 제5편, p462).라며 부르주아 사회의 기생성을 비판했다.

소부르주아는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기생성으로 인해 노동자계급 못지않게 고통당하고 있다. 여기에 독점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의 계급동맹의 단일한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계급동맹으로 독점자본의 사회지배를 끝장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그리하여 노동자계급과 함께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할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 하층과 굳건한 계급적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숫자, 자본주의에서의 산업에서 차지하는 힘(특히 파업)에 비해 소부르주아는 분산성, 고립성을 특성으로 한다. 게다가 여전히 계급관계 속에 잔존해 있는 소부르주아 의식의 잔재 등의 이유로 노동자계급의 철저한 주도권이 발휘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소부르주아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공황기에 소부르주아의 몰락은 더 극심해지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의 이해의 단일한 측면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의 동맹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양보함으로써가 아닌 자신의 계급적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원칙에 충실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맞서 정치투쟁을 강화하는 것 자체가 동시에 소부르주아의 이해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하에서 자본은 집적을 통하여 자본의 규모를 확대시킨다. 이러한 자본의 집중은 대자본이 소자본을 수탈하고 소자본을 대자본의 발밑으로 굴복시킴으로써 더욱 가속화된다. 자본의 집중은 소자본이 자기의 생산수단과 분리되는 것을 촉진시키며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박탈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독점자본으로의 집중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 자본의 집중경향을 상쇄하여 집중을 배제하는 경향이 다른 한편으로 생겨난다. 기존 자본의 분열, 새로운 자본의 탄생, 여기에 자본가 계급의 일부와 노동자계급 일부가 실업으로 인해 소자본으로 충원되는 것을 통해 소부르주아는 몰락하면서도 새롭게 강화되기도 한다.

독점자본은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이 결합하여 금융과두제를 형성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금전적 매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의 확보 등을 통해 전체 사회를 지배한다. 그러나 독점자본은 한 사회에서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계급을 분열시켜서 헤게모니를 유지, 강화하고 통치한다. 부르주아는 소부르주아를 자신의 헤게모니 하로 편입시키려 한다.

독점자본은 국가권력과의 유착을 강화하여 국가독점자본주의를 형성한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은 거짓이다. 국가는 신자유주의든 케인즈주의 하에서든 자신의 역할을 강화해오고 있다. 다만 국가의 개입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고 자본주의 국가는 언제나 지배계급의 이해에 봉사해왔다. 물론 국가는 총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개별자본과는 이해관계가 다를 수도 있다. 또한 노동자계급과 민중들로부터의 압박에 의해 끊임없이 중립자임을 자처하며 자신의 본질을 숨기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국가의 본성인 폭력적 지배는 위기 시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용산철거민 학살에서 보여준 국가의 폭력성은 공황이 깊어지고 자본의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앞으로 더욱 더 야만적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부르주아가 더 이상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한 사회를 지배, 통치하기 어려운 자본주의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가 격화되는 공황 시기에 부르주아는 소부르주아와 노동자계급의 후진적 부위를 끌어들여 파시즘을 강화하기도 한다. 부르주아가 기존의 방식대로 더 이상 계급지배가 불가능해지고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위기의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서지 못하면 소부르주아는 급격하게 동요한다. 이 때 부르주아는 소부르주아를 동원해서 자신의 계급지배를 폭력적으로 강화한다.

6월 사건 동안 재산의 구출과 신용의 회복을 위해 빠리의 쁘띠부르조아지-카페와 레스또랑의 주인들, 포도주 상인, 소상인, 소상점주, 수공업자-보다 더 열광적으로 투쟁했던 사람들은 없었다. 소상점주들은 거리에서 상점에 이르는 통로를 뚫기 위해 궐기하여 바리케이드를 향해 행진하였다. 그러나 바리케이드 뒤에는 고객과 채무자들이 있었고, 그 앞에는 상점의 채권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리케이드가 파괴되고 노동자들이 진압된 후 소상점주들이 승리에 취해 자신들의 상점으로 되돌아갔을 때, 재산 구출자와 신용의 공식 관리인이 상점 입구를 막고 서서 상점주에게 위협적인 경고장을 제시하였다. 어음의 지불 기한이 지났다! 집세가 밀려 있다! 약속 어음의 지불 기한이 지났다! 상점은 파산했다! 상점주는 몰락했다!
재산의 구출!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집은 그들의 재산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켰던 가게도 그들의 재산이 아니었다. 그들이 차용한 상점이나 그들이 음식을 담아 먹는 접시 그리고 그들이 누워 자는 침대도 더 이상 그들의 재산이 아니었다. 재산을 구출한다는 것은 바로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즉 그들에게 집을 세준 집주인이나 어음을 할인해 준 은행가, 현금을 빌려 준 자본가나 이들 소상인에게나 상품 판매를 위탁한 공장주, 원료를 수공업자들에게 선대해 주었던 도매 상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신용의 회복! 그러나 다시 힘을 회복한 신용은 탐욕적이고 시기심 많은 신이 되어 지불 능력이 없는 채무자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몰아내고, 얼마 안되는 그의 재산을 자본의 손에 넘겨 주었으며, 채무자들을 6월 반란자들의 시체 위에 또 다시 위협적으로 우뚝 솟아있던 채무자 감옥으로 보냈다.(맑스,「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소나무, p.73-74).


소부르주아는 1848년 파리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에 맞서는 6월 봉기 때에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봉기가 분쇄되고 나자 소부르주아는 자신들의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확인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소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이 아닌 파시즘에서 자신의 이해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파시즘이 결국 금융자본의 이해에 근본적으로 복무하고 노동자계급 대오를 파괴시킨 뒤에는 자신들을 수탈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점자본의 지배 하에서 철저하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현실이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의 계급동맹의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다. 노동자계급은 소부르주아 상층과 하층을 구분해서 상층을 중립화 시키고 중하층을 적극적인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용산철거민 학살 과정에서 보듯,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는 “낡은 사회의 최하층의 이 수동적 부패물은 때때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 운동에 끌려 들어오는 일도 있으나, 그들의 생활 처지 전체로 말미암아 반동적 음모에 매수되는 것을 더 마음 내켜 하게 된다.”

반독점 계급동맹에서 노동자계급의 주도성, 독립성과 자주성은 철저하게 발휘돼야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같은 개량주의 정당은 노동자계급적 요소와 소부르주아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이들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받아 안고 투쟁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철저하고, 한편으로 소부르주아적 요소로 인해 계급타협주의, 화해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소부르주아의 계급적 특성이 소부르주아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특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반독점 동맹이라는 명목 하에 소부르주아 요소를 가지고 있는 개량주의 정치세력들은 중소자본과의 동맹으로까지 왜곡하고 있다. 이는 재벌해체 요구로 나타나면서 금산분리 완화, 상호지급보증 금지 등 시민단체적 요구를 하고, 하청단가 인하 같은 중소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소자본의 이해는 주로 하청기업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점자본은 이중삼중의 하청계열화로 중소자본을 종속시키고 있다. 그런데 중소자본은 독점자본이 하청단가를 높이는 것으로 인해 분노하지만 근본적으로 대자본에 적극적으로 편입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대자본에 종속된 자체 때문이 아니라 종속의 조건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다. 중소자본가들은 대자본의 불합리한 수탈의 조건에 맞서 노동자들을 한층 더 초과착취 하는 것으로 하청단가 상승으로 인한 이윤하락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당이라고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적대적인 하청사장 같은 중소자본의 요구를 동시에 내걸고 있는 것은 이들 개량주의 정당의 소부르주아적 요소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민주노동당이 민생민주국민회의 등을 통해 상층 소부르주아의 지지를 받으면서 독점자본의 당인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것도 反한나라당 국민연합이라는 형태로 반독점 동맹을 철저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가진 혁명성은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은 혁명적인 계급으로서의 계급조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노동자계급은 왜 그렇지 못한 것인가? 여기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으로서의 계급적 조건과 현실의 노동자계급의 간극을 무엇으로 메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혁명적 조건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무기는 맑스-레닌주의 사상과 여기에 맞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을 가로막는 노동자계급 내의 관료주의, 조합주의, 개량주의와의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계급배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계급이 혁명적이라는 계급분석의 문제가 노동자계급이 저절로 혁명적 의식을 가질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 그 자체가 노동자계급을 혁명적인 계급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말을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의 사회, 경제적 조건과 처지는 말 그대로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계급으로 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의식, 계급의식이 형성돼야 한다. 이것은 혁명적 정치세력과 당의 몫이다.

노동자계급은 계급동맹을 위해 내부의 계급적 단결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자계급 내부의 조합주의를 철저하게 척결해야 한다. 조합주의는 노동자와 민중의 계급동맹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계급 내부의 단결도 이루지 못하는데 어찌 민중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계급이 민중의 전위로 나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을 이유로 노동자계급 내부의 문제에만 초점을 둔다거나, 노동자계급 내부의 통일과 단결을 선취하고 나서 하자는 등으로 계급동맹의 문제를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마치 비정규직 투쟁의 집중이 정규직 운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규직 내부의 편협한 조합주의와 반연대성을 혁신할 수 있듯이 계급동맹의 문제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편협함, 조합주의, 편견 등을 떨쳐버리고 노동자계급 내부의 통일단결을 이끌고 노동자계급을 민중의 전위로 성장하게 할 수 있다. 단순히 노동자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민중들에게 지도를 따르라고 할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이 민중들의 투쟁에 대해 사심 없이 연대하고 앞장서서 싸울 때만이 민중은 노동자계급의 강령과 정책을 정략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신뢰를 보낼 수 있다.

소부르주아를 비롯한 근로인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다면 노동자계급은 철저하게 고립될 수밖에 없다. 소부르주아 상층의 중립화, 중하층과의 굳건한 계급동맹으로 독점자본과 그 주변에 모인 자본의 무리를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포위해야 한다. 독점자본의 지배적 헤게모니를 분쇄해야 한다.

용산철거민투쟁에 노동자계급이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용산철거민 투쟁이 패배하면 노동자계급의 투쟁마저도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이유와 더불어 이 투쟁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계급동맹을 실천하는 시험대라는 미래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립무원의 용산철거민 투쟁은 공황시기에 국가권력의 반동적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용산철거민 투쟁이 패배한다면 자본을 살리기 위한 이명박정권의 거침없는 반동적인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민중과 함께하는 노동자계급이 이 반동적인 질주를 막아야 한다. <노/정/협>


보스코프스키
2011-10-20 | 21:52:36 댓글 지우기
<<프랑스 혁명사 3부작>>도 현재는 절판이네요... http://blog.naver.com/ghost0221/60129476697 에 서평이 있으니 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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