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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9호]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 찬 유럽
노정협   2009-03-13 16:18:32, 조회:2,018, 추천:171

  
  

분노와 불만으로 가득 찬 유럽


미국에서 최근 아버지가 일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자녀 5명과 부인에게 권총을 쏘고 자살한 남성은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팩스를 방송국으로 보냈다.

“우리 부부가 LA 서부의 의료기관인 카이저 퍼머넌트에서 동시에 실직했다. 우리의 마지막 탈출구는 죽음 뿐"

얼마 전 한국에서도 어머니가 두 자녀를 데리고 지하철로 뛰어든 사건이 있었다. 이는 ‘싸이코패스’의 짓이 아니다. ‘마지막 탈출구는 죽음 뿐’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갑작스런 실직과 가난, 절망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용산에서 강제철거로 인한 철거민들의 죽음과 이들의 자살은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불러온 처참한 타살이다. 공황이 다가올수록 야만성은 극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에서의 주가 폭락과 은행의 파산,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경제공황 속에 전 세계 민중의 삶은 파탄 나 실업과 가난, 죽음으로 내 몰리고 있다.

대중들의 분노 또한 높아지고 있다. 경찰 총격에 의한 한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된 그리스의 대중 투쟁은 한 달이 넘도록 대학과 기관을 점거하고 가두시위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스의 투쟁은 한 소년의 죽음으로 촉발되었지만 그것이 한 달이 넘게 지속되고 정권을 위기에까지 갈 수 있게 한 것은 실업율과 세금인상 등 정부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그리스 15세~24세 청년 실업률은 21%를 넘어섰다. 또한 최근 그리스에서는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농민들이 2주 동안 전국의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대치하고 있으며 연금과 의료개악에 맞선 공공노조의 파업 또한 진행되고 있다. EU국가 중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리트비아의 노동자 민중은 세금인상과 공공부문 축소에 대한 반발로 대대적인 반정부집회와 의회 투척 등 격렬한 저항을 벌였다. 국가부도를 맞은 아이슬랜드는 몇 개월간의 대중 시위로 정권퇴진에 이르렀다.


분노의 프랑스


지난 1월 29일 프랑스에서는 운수, 우체국, 보건, 교육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과 언론과 사법에 대한 정부개입 강화 등 개악안에 대한 반발로 공공, 은행, 병원 등 2백만여 명이 참가하고 200여 곳에서 집회를 벌이는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졌다. 전국의 떼제베와 버스, 통근 기차가 마비되었고 학교와 은행, 우체국이 멈추었다. 이 투쟁은 파업과 학생들의 대대적인 투쟁으로 최초고용계약법을 철회시킨 06년 이상의 투쟁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69%가 파업을 지지한다고 했다.

“요즘에는 파업이 벌어지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07년에서 당선된 직후 7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 직후 파업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던 사르코지는 최근 자신이 연설을 위해 방문한 지방에서 집회신고를 내주었다고 지방관리를 해임시킬 정도로 파업에 ‘관심’을 보여주었다. 파업에 맞서 프랑스 정권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기부양책을 제시하였지만 신규투자 확대나 영업세 감세안 등 대부분이 자본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대한 내용으로 더욱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프랑스 이주노동자들의 방화 소요, 06년 최초고용계약법을 철회시킨 대대적인 대중 투쟁, 07년 11월의 공공부분 총파업 등 프랑스에서는 높아지는 실업율과 공공부분 구조조정 등에 의한 불만이 계속 쌓여왔고 계기가 될 때마다 폭발했다.

올해 프랑스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예상하고 있고, 실업률 또한 9.8%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실질적인 실업률은 그 이상이며 이주노동자들, 청년 실업자들의 불만 또한 높아지고 있다. 경제공황은 그리스,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어느 ‘복지국가’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미 5000억 파운드 이상의 1차 금융구제를 진행한 영국에서는 계속되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추가 2000억 파운드의 금융구제조치를 발표하였지만 파운드화는 곤두박질치고 있고, 재정적자는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철강회사 코러스가 3500명 감원하는데 이어 거대제약회사 GSK가 6000명 감원발표를 하는 등 런던에서만 18개월 내에 12명 중 한명은 실업자가 될 것이라는 통계가 나오는 상황이다.


분노는 어디로?


파업에 관심이 없다던 사르코지는 바로 그 해 ‘최소서비스법안’이라는, 파업 시에도 최소한의 업무는 유지해야한다는 파업무력화 개악안을 강행했다. 07년 10월에 프랑스 노동자들은 특별연금제도 개악에 맞선 프랑스 공공부분 총파업에 들어갔으나 노사정테이블을 받아들이면서 실패했다. 최소서비스법안 또한 막아내지 못했다. 현재 프랑스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언론, 사법 개악안에 맞서는 총파업은 철도, 병원, 학교 등 공공부문 대부분의 참여는 물론 은행, 언론 등이 함께하는 대대적인 양상이지만 최초서비스법안을 넘어서지 못한 채 공공부문에서의 최소한의 업무는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프랑스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부는 총파업을 우려하지는 않지만,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라는 기만적인 자신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전히 사르코지 대통령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이자 의무”라면서 “프랑스가 위기로 빠져들지 않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라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실업과 구조조정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프랑스 노조 또한 “일자리 안정을 최우선 순위로 잡아야 한다.”는 태도로 일자리 문제에 한정짓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소서비스법과 같은 법테두리에 갇히거나 07년 공공투쟁에서와 같이 노사정테이블에 갇혀 파업이 무력화되는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최소서비스 법과 같은 법테두리를 넘고, 경제위기의 원인과 책임이 자본가 정권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정권퇴진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공황과 실업문제에 대한 책임을 자본가 정권에 올바르게 겨누지 못하고 노조가 단지 일자리 문제에만 갇혀 있다면 자본과 국가의 ‘경제위기 논리’를 극복할 수 없고 결국 일자리 대타협과 같은 양보로 위기의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가 안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린제이 영국정유공장 내 이탈리아 기업이 새 단지를 건설하는 계약을 따내자 고용불안을 느낀 정유 영국노동자 3천여 명이 이탈리아 등 이주노동자들의 고용에 반대해 자발적인 파업을 벌였다. 이미 런던 올림픽 경기장 건설일을 하던 200여명의 루마니아 노동자가 조용히 해고를 당했으며 영국일반노조(GMB) 등 영국의 노동단체들은 “기업이 (자국민에 비해) 더 값싼 임금으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만든 2007년 유럽재판소의 결정을 번복하는 새로운 유럽연합 지침이 수립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상황이다.<2월 2일 인디팬던트 보도>

자본주의 중심부인 영국에서의 파업은 고용불안 같은 노동자의 생존권적 요구를 담고 있지만 경험주의, 부문주의, 조합주의적 전통 속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가주의적 반대를 담고 있다. 이러한 투쟁양상은 대중의 분노와 위기의식이 영국자본주의를 공격하기 보다는 오히려 노동자 간 분열과 마멸을 초래하고 자본주의 위기가 더 격화되면 파시즘의 토대로 왜곡될 수도 있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5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결과도 있다. 실업과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으로 세계는 언제, 어떤 계기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할지 모른다. 공황이 전 세계적 양상을 띠고 있는 것처럼 현재 각국의 투쟁들은 대량실업과 임금삭감, 복지의 후퇴, 공권력에 의한 살인, 또는 정권의 노동법 개악에 의한 대중들의 분노로 촉발되고 있다. 공황은 대중들의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경제위기의 결과가 가장 가혹하게 노동자민중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주변부에서의 대중투쟁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중심부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대중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을 어떤 정치적, 조직적 전망을 가지고 조직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결국 당의 문제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혁명적공산주의연맹(LCR)이 해체하고 신반자본주의당(NPA)이 확대 창당한다. 07년 대선에서 LCR후보로 각광받았고 NPA 창당을 주도하는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우리의 정치 논리는 노동계급 운동의 다양한 전통 중에서 최선의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이며, 그것이 트로츠키주의이든, 사회주의, 공산주의, 게바라주의, 급진적 환경주의 등 상관없다”(한겨레 2월 4일자 재인용)고 이야기 하고 있다.

신반자본주의당 후보의 대중적인 인기는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반자본주의적 기대와 열망을 담고 있다. NPA는 급진적 요소를 담고 있지만 신좌파적 요소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 이외의 수많은 대안이 있다’는 여러 가지 입장을 하나의 정당으로 녹여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외의 수많은 대안이 있다’는 주장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아무런 정치적 전망을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NPA는 ‘노동계급 운동의 다양한 전통 중에서 최선의 것을 취사선택’ 한다는 명목으로 잡다하고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중도주의 정당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의 전역으로 번져가는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은 경제적 불만을 넘어 전 사회적 불만과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정치적 전망을 갖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자본주의는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여 투쟁으로 쌓아올린 유럽노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성과들을 일거에 무너뜨릴 것이다. 유럽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본주의 정치권력을 타파하고 노동자민중의 대중권력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전진하게 해야 한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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