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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노동자정치신문 48호 목차 / 전대미문의 계급투쟁 전야에서 2009년을 맞이하며! 왜 노동자계급은 사회 전체의 해방자가 되어야 하는가?
노정협   2008-12-30 22:04:47, 조회:2,488, 추천: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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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정치신문48호(통합 60호)입니다.

  
  
전대미문의 계급투쟁 전야에서 2009년을 맞이하며!

왜 노동자계급은 사회 전체의 해방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제 2008년이 서서히 저물고 2009년을 맞이하고 있다. 2009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전대미문의 공황의 한 가운데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대공황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이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충돌하는 격렬한 계급투쟁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목전에 이러한 역사적 대격돌을 앞두고 있다. 자본과 자본가 국가는 다가올 계급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른바 mb법안으로 법적인 정비를 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청년 실업자들의 아우성과 절규가 들리고 있는데 정권과 자본은 취업되어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개시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임금동결과 함께 1만9천명의 정리해고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이미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공격이 시작되고 있다. 휴폐업, 잔업특근 중단, 생산감소와 조업단축,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우선 정리해고와 부품사, 협력사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에 이어 비상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정규직에 대한 양보교섭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아직 침묵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통과 비애를 안고 말없이 떠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떠나고 잊혀질 뿐이다.

자본의 대대적인 공격은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은 아직 전면적인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고립 속에서 끈질기게 투쟁했던 비정규투쟁 사업장들은 자본에 굴욕적일 정도로 패배했다. 그리고 여전히 장기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업장들과 비정규직에 대한 자본의 우선적 위기전가에 맞서 대공장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노조의 외면 속에서 부분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지금의 현실은 답답하고 암울하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 그람시가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의 감옥 속에서 병마로 죽음과 싸우면서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지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떠올려야 한다.

자본의 위기가 자본에게 기회가 된다는 것은 자본의 위기전가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들의 위기를 노동자계급한테 뒤집어 씌워서 위기를 탈출하려는 자본의 공격에 맞서 자본의 지배 자체에 대한 투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통해 지금껏 밀려오고 수세적이었던 힘의 열세를 일거에 뒤집어버려야 한다. 출구가 없는 자본의 위기를 보고 의지로 낙관할 수 있는 이유는, 부르주아 계급 지배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노예들에게 노예 상태에서의 생존조차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노예들에 의해 부르주아지가 부양되는 대신에 부르주아지가 노예를 부양해야 하는 그런 처지에 노예를 빠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지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사회는 더 이상 부르주아지 밑에서 살아갈 수 없다. 즉 부르주아지의 생활은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착취와 억압을 당하면서도 임금노예가 임금노예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은 노동자가 자본의 발밑으로 들어가더라도 일자리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발버둥 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기존의 일자리에서도 대대적으로 밀려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이러한 실업은 더욱 더 대규모로,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잘리지 않는 노동자는 임금을 삭감당하고 기존의 노동조건이 후퇴당해도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찍소리도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농민들은 소값 폭락과 생존권 말살로 자살하기도 하고, 소상인들의 파산도 속출하고 있다. 전 사회적으로 고통스런 절규와 힘겨운 한숨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런데 모든 실업과 빈곤 등 자본주의의 재앙들이 상품의 부족이 아니라 지천에 넘칠 정도로 너무 많이 생산된 과잉생산 공황으로 인해 생겨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과잉생산은 절대적인 과잉생산이 아니라, 생산은 넘쳐나는데 대중의 빈곤으로 인해 소비할 능력이 없는 가운데서 오는 상대적 과잉이다.  

2009년은 이명박 스스로도 마이너스 성장을 우려할 정도로 세계 대공황은 더욱 더 깊어질 것이고, 공황의 여파는 몇 년, 몇 십 년을 더 갈지 모른다. 자본주의 파국은 곧바로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삶으로 파고들고 있다. 전 세계적 공황국면에서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에게 임금노예로서의 삶조차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지배계급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

자본가 국가는 자본의 위기 앞에서 중립자로서의 인두겁을 벗어던지고 수탈자의 보호자로서 폭력과 야만의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국가가 동의와 설득으로 지배 헤게모니를 유지하지 못하고 폭력과 억압이라는 자본가 국가로서의 실체를 전면에 내보이는 것은 부르주아 지배체제가 허약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개별적인 저항조차도 바로 자본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으로 휘발성 있게 타오르도록 하기 때문이다. 소련의 몰락 이후에 자본가 계급이 가졌던 희망과 자신감은 온데간데없다.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본주의 지배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투쟁에 나설까봐 전전긍긍하며 공포에 떨고 있다. 가장 반동적 부르주아 매체인 조선일보는 반동적인 만큼이나 체제의 위협에 민감하고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다.

“가족이 당장 먹고사는 문제, 자식을 가르치고 취업시키는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다르다. 고용대란이 심각해질 경우,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가 어디까지 폭발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거기다가 정부의 경제회생 방침의 우선순위가 실효적이지 못하고 야당과 좌파세력 등이 시위를 부추기거나 가세할 경우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 급격한 실업이 가져올 수 있는 폭발적 성격을 감안할 때 사회안전망과 경제안전망의 우선순위를 효율적으로 저울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조선일보, 2008.12.14, [김대중칼럼] 실업(失業)과 그리스 사태)

“우리의 고민은 경제를 살려야 하지만 경제 문제에만 붙들려 있다가 체제의 근본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 빚어져서도 안 된다는 데 있다. … 이번 국제금융위기의 폭풍이 잦아진 다음 또 얼마나 많은 국민이 하류층으로 떠밀려 갔을지 모른다.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쌓여간다. 우리 사회가 터지기 직전의 풍선을 닮아가는 것이다. 풍선이 터지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두 기둥이 단번에 날아간다. 그날을 꿈꾸고 준비하는 세력이 없다고 할 수 없는 게 이 나라의 현재 실정이다. … 우리가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대할 때, 그들의 피맺힌 목소리를 그냥 흘려 들을 때, 초라하게 세상을 떠났던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은 '경제의 해'이자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조선일보, 2008.12.25 [강천석칼럼] 대한민국 운명(運命) 결정짓는 2009년을 향해)


이미 그리스 노동자들과 민중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거침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거대한 투쟁을 일구고 있다. 자본주의 심장부인 유럽에서 약한 고리에 파열구를 내며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은 유럽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집트, 아이티,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식량위기로 인한 주변부 국가에서의 폭동이 이제는 그리스 같은 유럽의 주변부로 향하고 이 투쟁이 스페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전역과 중심부로 향하며 전 세계 부르주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2009년은 부르주아 신문의 말대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전투가 벌어질 해이다. 부르주아 신문은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편에서는 단호하고 일관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부추기면서도 그것이 실업의 분노와 고통으로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체제의 근본에 금이 가게 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폭발시킬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부르주아는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떼지어 서울 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촛불시위에 혼쭐이 났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았다는 무리들이 서울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면 그것은 혁명적 상황이 될 것이다.

촛불시위는 자본주의 공황의 직전에 벌어졌고,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가 아닌 이명박정권의 소통의 문제, 민주주의의 부재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제 실업의 문제는 곧바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투쟁으로 불타오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과 결합해서 타오를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촛불투쟁은 다가오는 거대한 격돌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우리는 촛불투쟁의 한계를 단박에 넘어서야 한다. 소부르주아 평화주의에 사로잡힌 무정형의 대중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는 소박한 대중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은’ 맑스주의의 혁명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이 합세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마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르주아의 공포가 현실이 되도록 해야 한다. 부르주아의 지배체제의 위기는 바로 노동자계급과 인민에게는 의지로 낙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무엇이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해방을 가로막는가?

자본가계급은 국가경제 살리기, 회사 살리기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노동자계급과 인민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전가한다. 공황기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더 극성을 부린다.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경제를 파멸시키고 한 사회를 파멸로 몰아가는 반사회적 일탈행위라고 매도를 한다. 부르주아의 막강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인한 노동자들은 졸지에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내몰리게 된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악선동에 주춤한다.

부르주아는 경제공황 앞에서 무능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부르주아의 이런 악선동이 먹히는 것은, 1차적으로 자본주의 외에는 다른 정치적 대안이 대중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의 지배 헤게모니는 대중들의 적극적인 동의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기 보다는 수동적, 체념적 상태에서의 동의이다. 현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대해 개별적 불만과 분노는 누적돼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로 향하기보다는 부르주아계급의 통치권자한테로 향한다. 부르주아는 지배계급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지배계급의 다른 분파, 보다 적극적으로는 노동자계급의 대변자로 자처하는 사이비 노동자 정당인 사민주의 정당이나 그 반대편에서 가장 노골적인 폭력형태인 파시즘을 내세워 체제를 구출하기도 한다. 실제 독일의 혁명적 위기 앞에서 부르주아는 노동자계급을 배신한 독일사회민주당과 파시즘을 번갈아 내세우면서 혁명적 위기에서 탈출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다른 이유는 노동자계급 내부에도 있다.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계급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전체 사회 해방의 지렛대임을 인식시킴으로써 인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맑스는 특수한 계급의 해방이 보편적 자기해방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민족의 혁명과 시민 사회의 어떤 특수한 계급의 해방이 동시 발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한 신분이 사회 전체의 신분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거꾸로 그 사회의 모든 결점이 다른 한 계급에 집중되어야만 하고, 어떤 특정 신분이 보편적 장해의 신분, 보편적 제약의 화신이어야 하며, 한 특수한 사회적 영역이 세간 전체의 악명 높은 침해라고 여겨져서 이 영역으로부터의 해방이 보편적 자기 해방으로 나타나도록 되어야만 한다. 한 신분이 단연코 해방의 신분이기 위해서는 거꾸로 다른 한 신분이 공공연한 압제의 신분이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 귀족과 프랑스 승려 계급의 부정적. 보편적 의의는 우선 인접하여 대립하는 부르주아지라는 계급의 긍정적. 보편적 의의의 조건이 되었다”(맑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한 계급의 요구가 사회 전체의 요구와 맞아 떨어질 때 그 계급은 전체 사회의 진정한 지배계급이 될 수 있다. 부르주아는 봉건 귀족과 영주, 왕의 압제에 맞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보편적 인간해방의 구호를 내걸고 보편적 계급으로 행세하며 프랑스 혁명의 주도권을 발휘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의 해방은 모든 계급의 해방이 아니었다. 부르주아는 봉건적, 신분적 속박과 예속을 깨뜨렸으나 사적소유, 상업과 공업의 자유, 신분 대신에 금전과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를 열었다.

“봉건사회의 몰락으로부터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대립을 폐기하지 못하였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들과 바꿔 놓았을 뿐이다.”(맑스.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부르주아는 신분제를 폐지했으나 노자간의 계급대립을 첨예하게 낳았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고통 받으면서 자본주의 지배에 맞서서 투쟁했다.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들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해방될 수 없는 한 영역,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완전한 상실이고 따라서 인간의 완전한 되찾음에 의해서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한 영역의 형성에 [있다]. 하나의 특수한 신분으로서의 사회의 이와 같은 해체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다.”(맑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오늘날의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지배와 압제 아래서 가장 고통 받는 계급이다. 물론 농민을 비롯한 인민들도 자본주의 하에서 고통 받는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계급에 못지않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숫자로 보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보나 가장 중심적인 계급이다. 또한 다른 계급이 몰락하지 않기 위해, 나은 계급으로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친다면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의 계급지배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해방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혁명적인 계급이다. 노동자계급은 사회의 다른 모든 영역들을 해방시킬 때만이 자신도 인간의 완전한 상실과 소외로부터 자신을 되찾을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존재조건만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 지배 아래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혁명적 계급이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자본의 양보, 자본의 분할 지배구도에 의해 현실의 노동자계급 내부에는 계급분할이 생겨버렸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물질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물질적 상태나 사회적 위치는 상대적, 조건적 안정이고, 자본의 지배 하에서 예속된 처지이다. 자본은 이를 두고 노동귀족이라는 악선동을 통해 정규직의 투쟁을 가로막고 양보를 요구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는 상대적, 조건적 안정과 지위는 잔업과 특근 등 장시간 노동, 강화된 노동, 산재를 당하고 직업병에 시달리며 야간노동을 밥 먹듯이 한 결과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과 실업자의 존재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 조건에 취했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 조건은 언제 고용불안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을 앞두고 불안정 속의 일시적 안정에 불과했다.

이러한 일시적, 조건적, 상대적 안정을 지키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방패막이로 생각했다. 정규직 노동자 내부에서도 물량경쟁으로 인한 갈등이 벌어졌다. 노동조합이 고용안정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과거의 경험과 노조와 활동가들의 조합주의는 조합원들의 분열심리를 더욱 부추겼다. 정규직 노조 일부에서는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를 방관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더 나아가 직접적으로 합의해주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나 자본의 극심한 위기는 정규직 노동자들한테 부메랑이 되어 누구도 안정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로 일거에 내몰리게 만들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계급 내에서도 비정규직의 우선 정리해고를 방관하거나 동의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과연 계급적 동질의식을 가지게 될 것인가? 이들이 가지게 될 상처는 자신의 직접적인 적인 자본을 향하기보다 같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감으로 향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같은 계급 내부에서도 분열의식을 가진 현실의 노동자계급이 전체 인민의 해방자로 나설 가능성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촛불집회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촛불시민들은 과거와 달리 노동자투쟁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계급이 이명박정권에 맞서서 자신들을 대변하여 힘차게 싸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촛불투쟁을 지도하려 하기 보다는 촛불시민 속으로 해체되어 묻혀 버렸다. 더욱이 촛불국면을 활용해서 자신들의 요구만을 부각시키고 투쟁을 끝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노조의 투쟁=반사회적 행위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조합주의 때문에 더더욱 먹혀 들어가고 있다.  


억압받는 전체 인민의 전위로 떨쳐 일어서자!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상태 속에 집약되어 있는 현 사회의 모든 비인간적 생활 조건들을 지양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생활 조건들을 지양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이라는 준엄한 단련의 학교를 헛되이 다니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 이러저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또는 심지어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을 자기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 또 그들은 자기의 이러한 존재에 걸맞도록 역사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가이다.”(맑스, 「신성가족」)

지금 현재 우리의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존재에 걸맞도록 역사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자기의 목적으로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만으로는 전위가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이 자신만을 위해 투쟁할 때는 전체 사회의 해방자가 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탄압에 즉자적으로 맞서는 즉자적 계급이 아니라 자신이 해방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계급적 위치를 자각하는 대자적 계급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이 전체 억압받는 인류와 민족을 해방시키는 역사의 기관차임을 각성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과 각성을 바탕으로 계급적 행동으로 떨쳐 일어서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억압받고 소외된 전체 인민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전망의 획득과 전위정당의 건설이 노동자계급이 전체 인민의 전위가 되는 첫걸음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 획득과 전위정당 건설은 선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전망 없이 전위정당이 건설될 수 없는 것이고, 정치적 전망은 전위정당에 의해 대중적으로 선전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독일에서는 모든 종류의 노예 상태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어떤 종류의 노예 상태도 타파할 수 없다. 독일인의 해방은 인간의 해방이다. 이 해방의 머리는 철학이요, 그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양 없이 철학은 자기를 실현할 수 없으며, 철학의 실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지양할 수 없다. 모든 내적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독일 부활의 갈리아의 수탉의 울음소리에 의해 고지될 것이다.”(맑스,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맑스는 독일을 염두에 두고 독일노동자들의 해방의 조건을 말했지만 이것은 바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에서 공포에 휩싸여 우려하고 있듯이, 어느 한 분파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계시를 받은 무리’, 노동자계급의 다수가 맑스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의 머리는 맑스주의 사상이다. 맑스주의 사상, 맑스주의 철학과 해방의 심장인 노동자계급의 결합이 강력하게 이루어질 때만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해방의 내적 조건들이 충족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 계급의 선진적 대오가 맑스주의로 무장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당건설을 기치로 내건 정치세력들은 맑스주의는 긍정하지만 레닌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으로 여기고 있다. 레닌주의를 교조주의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레닌주의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흐름에서부터, 레닌주의는 실천은 있지만 이데올로기는 없다든지, 레닌주의를 트로츠키주의와 동일한 반열에 둔다든지 하는 흐름들이 그것이다. 레닌주의는 러시아라는 토양을 먹고 자라났지만 단순히 러시아만의 특수한 산물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의 혁명적 맑스주의이다. 레닌의 혁명적 사상과 실천은 자본주의의 최고의 그러나 최후의 단계인 제국주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지양할 맑스주의와 혁명적 계승자인 레닌주의 즉, 맑스레닌주의를 기치로 사상적으로 무장하고, 정치적 전망을 가질 때만이 진정한 전위정당이 건설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요구가 전체 사회의 발전적 요구와 맞아떨어질 때, 노동자계급이 자신만의 요구가 아닌 전체 사회의 요구를 내걸고 싸울 때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지배적 헤게모니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전 사회를 절망과 고통으로 빠뜨려서 지배를 유지하는 공공의 적인 부르주아 계급을 대신하여 보편적 사회 해방의 전위가 되어 민중의 지지를 받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한테 닥친 미증유의 공황은, 자본주의의 반동과 폭력성을 딛고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 진보적 계급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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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보기   노동자정치신문 48호 목차 / 전대미문의 계급투쟁 전야에서 2009년을 맞이하며! 왜 노동자계급은 사회 전체의 해방자가 되어야 하는가?    노정협 2008/12/30 130 2488
611 정세   [48호] MB법안의 계급적, 정세적 성격    노정협 2009/02/04 98 1932
610 경제   [48호] 케인즈의 부활은 자본주의를 구원할 수 없다!    노정협 2009/02/04 205 2398
609 기타   [48호] 불행한 강화조약에 관한 문제의 역사에 대하여    노정협 2009/02/04 118 1835
608 노동   [48호] 언론노동자들이 총파업의 포문을 열었다!    노정협 2009/02/04 96 1935
607 정세   [48호] 공황기 노동자계급의 전략과 전술    노정협 2009/02/04 122 1589
606 현장기고   [48호] 총고용 보장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지회장 김운산    노정협 2009/02/04 149 1719
605 기고   [48호] 학습지 노동자 하루 동행기    노정협 2009/02/04 19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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