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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3호] 맑스주의 방법론과 원리를 포기한 사노련의 국가자본주의 비판
노정협   2008-09-02 13:15:29, 조회:3,269, 추천:324
  
맑스주의 방법론과 원리를 포기한사노련의 국가자본주의 비판  
-소련사회에 대한 전면 분석에 앞서
  

이 글은 소련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이 아니다. 우리는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사노련과 국가가본주의론의 방법과 몰과학성, 종파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고, 우리가 소련 사회에 접근하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역사를 관념적으로, 종파주의적으로 단순화 하지 않고 실사구시하는, 변증법적 지양의 관점으로 소련 사회의 성과와 오류, 한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사노련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우리의 입장>을 논쟁적으로 해설한다!(4) 소련, 북한 등의 스탈린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태도”를 통해 주로 노정협의 입장을 비판했다. 그런데 사노련은 직접 인용부호를 가지고 우리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자의적으로 문장을 구성했다. 사노련의 인용이 우리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왜곡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식의 자의적 구성은 우리 내용을 단순화 시킬 수 있다.

1. 변증법적 방법론을 통한 소련 사회 분석
  

우리는 소련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철학의 방법을 취하려고 한다. 레닌은 변증법적 부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변증법은 부정의 요소를 그것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포함하고 있지만, 변증법에서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노골적인 부정, 무익한 부정, 회의적인 부정, 동요, 의혹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을 보존하는, 즉 어떠한 동요도 없는, 어떠한 절충주의도 없는, 연관의 계기로서의, 발전의 계기로서의 부정인 것이다.(레닌, 철학노트)

레닌은 변증법적 부정은 핵심을 보존하면서 발전의 계기로서의 부정이라고 했다. 그것은 변증법적 지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실 사회주의 분석에 있어서 전면 부정하는 태도는 자칫하면 청산주의를 낳을 수 있다. 국가자본주의론처럼 소련이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들에게 새겨져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를 있는 그대로 분석하면서 우리가 맞닥뜨릴 수 있는 혁명의 현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때로 큰 퇴보를 겪지 않는, 항상 순조롭고 규칙적으로 전진해 가는 세계사를 생각하는 것은 비변증법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이론적으로도 옳지 않다.(레닌, 유니우스 팜플렛에 대하여)

역사는 발전한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역사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지그재그로 발전한다. 소련 사회주의의 패배는 역사에서 큰 퇴보지만 자본주의 모순이 해결되지 못하는 역사의 새로운 전진은 계속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회주의의 선구자들의 경험이나 시행착오를 통해 더욱 더 확실한 사회주의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순수’한 사회주의 혁명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결코 혁명을 만나지 못할 것(레닌, 자결권에 관한 토론의 총괄)

‘순수’한 현상이라는 것은 자연계에도 사회에서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름아닌 바로 맑스의 변증법이 가르치고 있다. 이 변증법은 순수한 개념 자체가 대상을 그 총체에서 구석구석까지 파악하지 않는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협소하고 일면적인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레닌,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가상으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혁명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순수한 혁명의 잣대를 가지고 현실이 이 잣대에 들어맞지 않으면 국가자본주의라고 한다. 지극히 관념적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은 진공 속에서 건설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후진성, 낮은 교육수준, 내전과 생산력의 파괴, 제국주의의 포위 공격이라는 극단적인 조건 속에서 건설됐다. 러시아 혁명은 이러한 현실의 모순 속에서 건설되고 발전해 나갔다.


“러시아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 권력이 수립되어 사회주의로 전진한 경우는 없다! 노동자 권력의 외피를 둘렀던 사회 체제는 스탈린주의 체제의 소부르주아 판에 불과했다. 동양의 소부르주아 혁명정부는 국가자본주의 관료 체제로 전화해나갔다! (사노련,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우리의 입장>을 논쟁적으로 해설한다!(4) 소련, 북한 등의 스탈린주의 국가 체제에 대한 태도)

모택동, 김일성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정권의 운명은 소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운명을 반영했다. 급진적으로 반(反)봉건 농업 혁명과 민족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즉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이들 소부르주아 세력은 역사적 진보를 반영했다. 이들의 역사적 역할은 대단히 독특한 것이었다.(사노련, 같은 글)
  

국가자본주의 사노련에게는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은 순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다. 사노련은 농촌을 중심으로 해서 도시로 진출하여 혁명을 한 중국이나 식민지 국가인 북한은  ‘순수’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쿠바나 베트남도 소부르주아 국가자본주의 정권의 수립에 불과한 것이다.

각 나라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할 때 어느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레닌, 각국 공산당. 노동자당 대표자회의 문서집)  

레닌의 말처럼 이들 나라의 혁명이 ‘순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던 것은, 저발전과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의 혁명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중국 혁명 과정에서 혁명노선을 둘러싸고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과 신민주주의 혁명을 거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노선들이 치열하게 대립했다. 혁명의 주축 세력도 처음에는 도시 노동자계급에서 출발해서 잇따른 봉기의 실패로 농촌으로 거점이 옮겼다가 혁명 직전에는 다시 도시로 거점이 옮겨지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각 나라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한 혁명을 ‘순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부르주아 혁명에서 국가자본주의로 전화해갔다는 사노련의 주장은 역사를 단순화, 도식화하여 구체적 조건 속에서 구체적 분석을 회피하는 것이다.
사노련은 이들 국가들이 단지 소부르주아 정권이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를 반영했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면서 부르주아의 계급의 지위를 떠맡기 시작했다고 하고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지위를 떠맡기 시작했다. 다만 이 사회 체제는 통상적인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창출된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노동자 국가를 내부에서부터 타도하고 등장한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창출한 체제가 그랬듯이 말이다.(사노련, 같은 글)

이것은 봉건 잔재를 철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노동해방 사회 건설의 첫걸음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였다.(사노련, 같은 글)
  

그런데 과연 역사상 부르주아 혁명의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부르주아 계급이 중국, 북한, 쿠바, 베트남에서 이루어진 혁명적 조치를 취한 적이 있는가? 이들 국가들은 봉건적 소유관계를 철폐했을 뿐만 아니라 지주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 소작세의 폐지로부터 시작해서 집산화와 국유화로 나아갔다. 뿐만 아니라 무상의료, 무상주택, 무상교육 조치를 실시했다. 다만 역사적으로 제한된 생산력 발전의 낮은 수준 때문에 그 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을 뿐이다.

역사에서 부르주아에 의한 부르주아 혁명은 봉건적 소유관계를 철폐했으나 이는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부르주아 혁명에서 가장 급진적이었던 쟈꼬뱅 정부조차도도 사적 소유권은 철저하게 보호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토지를 소농에게 무상분배 하기는커녕 공유지의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농민들의 노동력을 공장에서 착취했다.

레닌 당시의 볼셰비키의 농민에 대한 정책도 바로 지주, 귀족, 교회 재산을 무상몰수해서 무상분배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농민은 곧바로 집산화해야 한다는 로자의 주장에 대해 레닌은 농민과의 동맹을 파괴하는 모험주의라고 비판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1930년대 이후 옛 소련, 동유럽, 북한,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사회체제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반(反)노동자계급적 사회체제로, 노동자계급이 타도해야 할 반동체제로 규정한다.(사노련, 같은 글)

1930년대 이후 중국, 북한, 쿠바 등이 타도해야할 반동적 국가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체제가 된다. 먼저 사노련의 이 주장은 이 사회가 노동자 국가는 아니지만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를 담당할 때는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자신의 주장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체제를 반동으로 규정하고 타도하겠다는 세력이야말로 역사의 진보를 반대하는 반동세력인 것이다.

사노련은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체제 또는 국가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반동체제로 전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부분이 어떠한 모순을 겪으면서 긍정성을 탈각해갔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항상 긍정적이고 항상 부정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모순 속에 변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발전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후퇴와 퇴보라는 부정적인 부분이 더욱 드러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사발전의 변증법적 과정을 보지 못하고 이들 국가들을 일면적으로 반동체제로 규정해버리면 이 주장은 반공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현실 사회주의를 포위해오던 제국주의의 입장과 같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IS(국제사회주의자)는 제국주의 미국이나 베트남이나 다 반동체제이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사노련의 입장대로라면 한국내전에서 사노련은 제국주의 반동과 북한 반동체제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킬 수밖에 없다. 지극히 우익적인 입장이다.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북이 자위권으로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노련의 입장도 여기서 나왔다.

2. 경제적 토대 분석을 바탕으로 상부구조 분석하는 유물론적 방법론  

맑스주의는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상부구조는 상대적 자립성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적 규정력은 경제적 토대에 있다.

소련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소련사회 내에서 내부의 정치투쟁을 낳았던 사실들에 대해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경제분석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 전시경제 체제에서 네프로의 이행, 농업과 중공업 발전을 둘러싼 논쟁, 농촌의 생산물과 도시 생산물의 가격격차로 문제를 낳은 협상가격차 위기 등의 정책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중심으로 이러한 제한적 조건을 만든 내전과 제국주의의 포위 공격 등의 정치적 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전시경제 체제는 혁명 이후에 내전과 제국주의의 포위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강요되었다. 전시경제 체제는 말 그대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전 사회의 생산과 분배가 이뤄지는 체제를 의미한다. 노동자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생산, 분배, 유통에 대한 극도의 국가통제가 진행된다. 당시 전시경제 체제는 농민으로부터 농업생산물을 공급받아서 군수품과 식량을 공급하는 전쟁을 수행하였고, 노동자에 대한 토요 무상노동이 고무되었다.

이러한 전시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이행의 고유한 법칙도 아니었고 오로지 내전에서의 승리를 위한 목표로 집중됐다. 내전으로 인해 산업시설은 파괴되고, 군대로의 집중으로 산업은 파행적으로 되었다. 기아와 궁핍이 전 사회에 만연했다.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내전에서의 승리 이후 러시아는 신경제정책(네프)으로 전환했다. 신경제 정책은 은행, 대공업 및 해외무역은 국유화를 유지하면서 나머지 분야에서 개인 기업의 허용, 이윤추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붕괴직전인 농업과 공업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지주와 생산 관료에 대한 일정 정도의 양보책이 취해졌다. 신경제정책은 붕괴된 러시아 산업을 부흥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공업에 있어서 자본주의 소유관계가 부활되기 시작하고, 투기꾼, 브로커 같은 기생적인 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농업에서는 자유시장의 부활로 부농층이(쿨락)이 생겨났다. 노동자계급 내부에서도 성과급제의 부활로 노동자 내부가 분열됐다. 특히 농업 생산물과 공업생산물 사이에 심각한 가격격차가 발생해서 협상가격차 위기가 만들어 졌다.

이러한 전시공산주의 경제정책의 향방을 둘러싸고 볼셰비키 내부는 노동조합의 군사화 문제로 레닌과 부하린, 트로츠키가 격심한 논쟁을 벌였다. 신경제 정책을 둘러싸고도 레닌과 트로츠키는 논란을 벌였다. 레닌 사후에는 생산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수단을 만들어내기 위한 중공업에 집중할 것인가? 농민과의 동맹을 염두에 두고 농업발전에 집중하느냐를 둘러싸고 격렬한 권력내부의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볼셰비키 내부는 개인의 권력욕 보다는 이러한 경제정책을 둘러싼 격렬한 내부 투쟁이 진행됐다.

트로츠키와 트로츠키 파인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우선적으로 중공업에 집중을 해서 생산기반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통해 농촌에 공업제품을 제대로 공급하고 농촌으로부터 도시 노동자들은 식량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부하린은 농촌의 우선 발전과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이 산업발전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농민과의 동맹을 통해 신경제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농민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외쳤다. 이러한 논란에서 스탈린은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권력투쟁에서 밀어낸 뒤 트로츠키와 트로츠키 파인 프레오브라젠스키가 주장하는 초공업화 정책, 농민 집산화 정책을 취하게 된다.

스탈린은 초공업화 정책과 농촌의 집산화에서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몰아갔다. 수치상으로 농촌에서의 집산화 정책은 성공을 거두는 듯 싶었다. 하지만 농민 내부에서의 강압적인 형태의 집산화에 대한 반발이 극심했다. 스탈린은 농민이 이제는 집산화를 원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집산화를 밀어붙였는데 이제 스스로도 ‘성공에 취하여’라는 글을 발표하여 이러한 정책의 모순을 인정하고 집산화 정책을 완화하고 자율적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58%대에 이렀던 집산화 비율이 23%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후 계속적으로 집산화 정책을 강화하여 1937년에는 93.5%나 집산화 되었다.

지금까지의 대략적으로 서술한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볼셰비키 내부의 투쟁의 전 과정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후르시초프는 스탈린 사후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했다. 그런데 이 비판은 스탈린 시대에 대한 온전한 비판과 평가가 아니라 개인의 권력욕 때문에 모든 일이 빚어진 것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단순화 한다. 이는 소련사회 구성체에 대한 진지하고 올바른 접근을 막고 개인의 문제, 개인 간의 권력다툼이 독재의 원인이라는 부르주아 역사관이다.

그들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은 10월 혁명이 수립된 노동자 국가와 스탈린주의 반혁명이 만들어낸 ‘관료 체제’ 사이에는 ‘노동자계급의 피의 강물’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이 ‘피의 강물’ - 노동자 권력을 국가관료들의 권력으로 바꿔냈던 반혁명 - 을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이것들은 노동자 국가를 파괴하고 국가 관료층의 지배를 수립했던 “명백한 반혁명”이다.


사노련은 1928년을 소련에서 반혁명이 이뤄져서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분석은 비약일뿐더러 과학적이지 못하다. 중공업의 집중적 발전과 농촌에서의 대대적인 집산화처럼 사회주의 형식이 훨씬 강화됐는데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사노련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국유화 조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국유화 자체가 사회주의 정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물론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형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요한 사회주의 형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국유화는 자본주의 초기에 독점자본이 형성되지 않은 가운데 국가가 주된 자본축적의 주체로 나설 때나, 공황으로 파산한 사기업을 국가가 매입해서 국유화하거나, 파시즘처럼 전시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사민주의 정부에 의해서 일부 산업에 대한 국유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파시즘 하에서 국유화 비율이 높지만 자본주의에서 모든 국유화는 사적소유 체제를 인정하면서 사적 독점자본을 위해서 존재한다. 국가는 사적자본이 성장하거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사유화 조치를 취한다.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국유화와 사회주의에서 국유화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사회주의에서는 국유화 형식만 아니라 그 국가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위치, 노동자 참여(소비에트 같은 국가기구, 산업생산 계획과 분배기구 등에서의 노동자 대표성)와 민주주의의 보장정도, 관료주의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제한 정도(관료의 노동자평균임금, 직선제나 소환제 등 통제장치가 중요하다.)가 실질적으로 중요하다.

중공업 발전 정책과 농업 집산화는 혁명 이후 볼셰비키 내에서 끊임없이 그 방식을 둘러싸고 첨예한 논란을 벌이던 경제정책이었다. 물론 그러한 정책의 추구 과정에서의 조급성, 관료주의의 문제를 가지고 비판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러시아 사회구성체가 국가자본주의로 변했다는 주장이라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러한 정책을 취하는데 노동자농민의 희생이 있었다면 누가 정책을 취하더라도 불가피한 조건이었는지, 아니면 관료들을 위해 노동자농민이 희생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살펴야 한다. 후자라면 심각하게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사노련은 북한의 천리마 운동 같은 생산장려운동을 노동자에 대한 착취증대의 근거로 사용하는데 레닌도 내전 당시에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테일러주의와 공산주의적 토요노동, 성과급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의 생산장려운동도 그것의 추진방식이 어떠했든 당시 경제적 조건 속에서 강요받은 측면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이 있다고 그것을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축적을 위한 착취라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에서 착취는 자본 간 경쟁에서 승리하고 자본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결국 사노련이 말하는 ‘노동자 계급의 피의 강물’이라는 문학적 수사, 분노가 소련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대체하지 못한다.

3. 자본론을 통해 인식하는 국가자본주의론  

사노련은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는 선험 하에 구체적이고 풍부한 현실을 꿰어 맞추려 한다. 사노련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노련은 소련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맑스주의의 방법론과 개념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맑스는 추상에서 구체로 상향하는 방법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제적 작동법칙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들어간다. 이를 위해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적인 세포인 상품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치, 교환가치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해서 구체적인 자본주의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들어간다. 그런데 맑스주의 철학에서 추상은 과학적, 이론적 연구를 위해서 사물의 한 특성을 분리, 추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상은 현실과 무관한 순전히 가상의 분석이 아니라 실제적인 대상에 대한 사실의 분석이다. 따라서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원리적 분석인 동시에 구체적인 분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노련은 소련이 국가자본주의라고 하면서 자본주의 분석에 필수적인 노동력, 상품, 시장, 자본 간 경쟁과 독점, 잉여가치, 특별잉여가치 등의 개념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노정협을 비롯한 혁명적 진영의 일부는 “맑스의 ‘자본론’에 이에 해당하는 규정이 어디에 있느냐?”라고 항의한다. 100% 엄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하다. 맑스의 “자본론”은 통상적인 자본주의 체제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던 특정한 역사적 시기를 분석했다. 우리가 “자본론”으로부터 취해야 할 것은 “혁명적이고도 과학적인 방법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이다. 이것은 맑스가 연구할 수도, 분석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의 역사적이고도 구체적인 임무이다. 노정협이 보지 못하는 것은 이 점이다.

맑스주의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맑스주의는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그 자리에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을 대체시킨다. “자본론”을 쓰던 당시 맑스는 “관료집단의 반혁명과 그것을 통해 수립되는 국가 관료들의 지배 체제” 및 “소부르주아 혁명 정부와 이 정부의 부르주아 관료 체제로의 진화”를 경험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맑스의 책임이 아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이론가도 주어진 역사적 시기를 뛰어넘을 수 없음을, 그리고 이론이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임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사노련)
  

사노련은 자본론을 쓰던 당시 맑스는 관료지배체제의 성격을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법칙에 대한 저술이다. 만약 사노련의 주장대로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라면 자본론의 이론에 따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소련사회가 맑스가 “연구할 수도, 분석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라면 소련사회는 국가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괴물 같은 제3의 사회구성체가 될 것이다.  

사노련은 국가자본주의라는 교조와 분파주의에 사로잡혀 맑스의 자본론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 사노련은 맑스의 자본론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 외에는 분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초기 영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자본론을 작성한 맑스는 ‘역사적 시기를 뛰어넘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 이론은 국가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단 말인가? 또한 독점이 존재하는 현대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해서 맑스의 자본론을 가지고는 분석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식의 사노련 주장대로라면 자본론은 영국의 초기 자본주의의 ‘역사적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불과한 것이 되고 맑스는 경험주의자로 전락하고 만다. 사노련의 의도와 상관없이 맑스주의에 대한 적대자들이 맑스를 산업혁명 초기의 극단적인 착취가 존재했던 시기에만 들어맞는 주장이라고 경험주의적으로 왜곡하는 것과 같게 된다.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자본의 본질도 분석할 수 있도록 한다. 사노련의 주장대로라면 자본주의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증명될 수 없는 단지 추상의 수준에서 ‘일반적인 규정’일 뿐이게 된다.

사노련의 이 주장은 맑스의 자본론 1권과 3권을 비교하면서 상품의 가치와 가격이 일치하지 않는다, 총가치와 가격이 일치한다는 실증적 증명을 대라면서 노동가치론 또는 가치법칙을 전면 부정했던 부르주아 경제학자인 뵘 바베르크의 주장과 유사해진다. 베른슈타인 또한 맑스의 노동가치론이 ‘순전히 추상적인 개념’이라며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실제적인 착취를 거부하고 수정주의 이론을 전개했다. 사노련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 규정’과 베른슈타인의 ‘순전히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규정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

사노련의 자본론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소련사회에 대해서 맑스의 관점대로 가치법칙이 과연 작동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회피하려는 부정직한 태도에서 비롯됐다. 물론 소련사회에서 가치법칙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상품관계를 폐절했다고 해도, 농민이나 자영업자 등 소소유자가 생산하고 교환하는 상품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치법칙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자본주의처럼 가치법칙이 한 사회를 규정하는 지배적 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소련에서의 상품의 생산은 전사회적 생산의 일부로 사전에 계획돼서 생산이 됐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의 상품생산은 한 기업에서는 계획이 이루어지지만 전체사회에서는 무정부적 생산이 이뤄지면서 가치법칙에 의해 생산이 조정된다. 가령 가치보다 가격이 높을 때는 다른 생산부분에서 더 자본투자를 해서 생산이 늘어나고 반대일 때는 생산이 줄어든다. 그런데 가치 보다 가격이 높아서 생산이 더 늘어나게 되면 수요 보다 생산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본은 또 다시 다른 생산분야로 옮겨가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이 가치법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의 보이지 않는 힘인 가치법칙에 의한 생산의 조정은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가치법칙의 작동 과정에서 무정부적 과잉생산과 과잉축적 자본주의 모순과 공황을 낳는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격렬한 모순을 통해 새로운 생산을 개시한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사회만을 놓고 본다면 가치법칙이 작동하지 않지만 제국주의 국가와의 무기경쟁에 의해 가치법칙이 작동한다고 한다.(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전면적 비판은 여기서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주장은 상품은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교환가치를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맑스주의 상품법칙에 의해 간단히 부정된다. 소련에서 무기생산은 일부 판매되기도 하지만 주로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공격을 막기 위한 비생산적 소비였다.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잉여가치를 위한 생산이다. 이를 위해 자본가는 노동자를 극심하게 착취하려 한다. 또한 자본가 간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과 자동화, 기계화된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한다. 왜냐하면 자본은 다른 자본가에 비해 혁신적인 생산방법과 생산력을 도입해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산물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로 생산물을 판매한다. 여기서 자본가는 특별 잉여가치를 누린다. 자본가 간의 격렬한 경쟁을 추동하는 힘도 이러한 특별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법칙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련에서 무기생산을 가지고 가치법칙이 작동했다고 할 수 있는가?와 과연 소련에서 관료가 잉여가치와 특별 잉여가치를 추구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만일 관료가 자본가라면 관료간의 경쟁을 통해서 경쟁력을 상실한 관료의 파산이 이뤄지고 독점적 관료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자본주의론의 주장대로 소련 사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었다면 관료간의 경쟁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또한 그리고 관료적 위치와 지배가 상속을 통해 자식에게 넘어 갔는가?

이처럼 국가자본주의론은 맑스의 자본론의 관점에서 어느 것 하나 들어맞는 게 없다.

사노련은 이렇게 소련 사회주의가 맑스의 자본론의 분석에 의해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간단하게 증명되자 파산한 국가자본주의론을 지켜내기 위해 맑스의 자본론을 가지고 소련 사회가 자본주의인지 아닌지를 분석할 수 없다고 한다. 더 나아가 맑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이기 때문에 자본론을 가지고는 자본주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하여 맑스를 왜곡한다. 우리는 맑스주의를 자처하는 사노련이 종파주의적인 국가자본주의론에 사로잡혀 맑스를 부정하게 된 현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결국 사노련과 국가자본주의론자들은 맑스의 자본론인가 국가자본주의론인가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원리적 이해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과학이다. 이것이 과연 교조주의인가? 이것을 교조주의라고 주장한다면 사노련은 이미 수정주의자가 된 것이다.

4. 소련사회 분석에 있어서의 좌편향적 무정부주의  


유럽 프롤레타리아의 직접적이고 국가적인 지지가 없다면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은 획득한 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일시적인 지배권을 영속적인 사회주의적 독재로 전환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일순간도 의심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서구의 사회주의 혁명이 우리들로 하여금 노동자 계급의 일시적인 지배권을 직접 사회주의적 독재로 전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트로츠키, 평가와 전망)
  

유럽에서의 혁명의 전망은 구체적으로 독일이었다. 독일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지만 1920년대 당시에는 유럽에서 자본주의 산업이 가장 발전한 국가였다. 이러한 생산력이 가장 발전한 독일에서의 혁명은 유럽 각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프롤레타리아를 격발시켜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전역으로 혁명의 불길을 전파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의 혁명의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혁명권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독일혁명은 1919년 제3인터내셔널 1차 대회 개최 후 3개월이 지나지 않아 패배한 뒤 21년 이후에는 완전히 혁명의 가능성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가능성 없는 세계혁명에 기대면서 일국의 사회주의를 자본가들한테 넘겨줘야 하는가? 레닌이나 심지어 스탈린조차도 처음에는 유럽에서의 혁명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탈린도 1924년 4월에는 후진 농업국인 러시아가 유럽에서의 혁명의 성공 없이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최후의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0월에는 대규모적인 공업화와 농민과의 동맹을 통해 농업을 협동조합화 하는 것으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1925년 12월 제14차 당대회에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이로써 당내에서 스탈린의 입지는 확고해지고 트로츠키는 급속히 영향력을 상실하고 카메네프, 지노비에프와 3각동맹을 맺게 된다. 세계혁명의 가능성이 물 건너 간 상황에서의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당시 대중들의 정서는 전쟁과 내전으로 피로도가 겹쳐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능성 없는 세계혁명에 기대어 러시아혁명은 산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를 일궈가야 했는가? 하는 갈림길에서 사노련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결정적인 패배는 바로 러시아 볼셰비키 노동자 당이 스탈린 관료집단에게 장악당해 버린 것이다. 만일 비록 혁명은 좌초했을지라도, 이 당이 관료집단을 숙청해내고 노동계급 혁명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면, 그래서 러시아 혁명의 교훈들이 이 당에 의해 전수되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단지 세계 혁명의 패배에 따른 역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러시아 혁명 또한 패배를 면하지 못했을 뿐, 혁명의 전통, 사회주의 혁명당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남았을 것이다.


사노련의 이 주장은 볼셰비키가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일국사회주의가 아닌 국제주의 정신을 사수했다면 세계 혁명의 패배에 따른 역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러시아 혁명이 패배할지라도 혁명의 전통, 사회주의 혁명당의 전통은 그대로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 주장은 세계혁명이 실패하면 러시아 혁명의 패배는 필연적이라는 숙명주의, 패배주의를 안고 있다. 러시아 혁명의 패배는 혁명전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혁명에 대한 패배주의,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부활, 전 세계 자본주의의 기고만장한 승리를 낳는다.

소련이 일국에서 생존하고 뒤이어 중국혁명이 승리하면서 많은 식민지 국가가 해방되었다. 소련은 이후 엄청난 인민들이 희생되면서 독일 파시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혁명의 공포에 떨면서 소련을 무너뜨리기 위해 엄청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선전을 하고 반소비에트 십자군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마셜플랜을 통해 유럽지원도 유럽에서의 공산주의의 전파를 막고,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한편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국 내에서의 혁명을 막기 위해서 복지국가 정책을 취했다. 반면 제국주의 국가들의 위협 앞에서 소련의 사회주의 건설은 심각하게 왜곡됐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스탈린이 대러시아 민족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혁명의 패배로 인해 강요된 것이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강요된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일국사회주의는 일국사회주의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처음에는 승리할 수는 있지만 국제혁명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스탈린은 레닌도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를 말했다고 하지만 레닌은 최종적인 승리를 말하지 않았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더 나아가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피한 조건을 하나의 원칙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각국에서의 사회주의자들은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존립과 강화를 위해 싸워야 하지만 일국 사회주의는 세계혁명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투쟁해야 한다. 또한 자칫 일국으로의 고립조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민족주의 사상에 맞서 국제주의 사상과 국제적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위해 부단하게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혁명의 가능성이 당분간 없는 상황에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패배주의이자 청산주의다. 이 말을 강조하는 것은 유행처럼 번지는 스탈린주의 비판이 물질적 조건을 중심으로 한 분석이 아니라 스탈린이 이러 저러한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분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적 유물론을 거꾸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소련 사회주의의 승리와 패배의 경험으로부터 과학적 교훈을 얻지 못한다.  <노/정/협>  

보스코프스키
2011-01-02 | 22:18:55 댓글 지우기
제 3 사회구성체론자들도 몇 있긴 했죠... 이 진영이 제일 먼저 항복해버린 잉간덜이기도 하9Yo... 그 유명한 색트먼(샤흐트만), 버넘 등등이 이 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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