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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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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4 12:20:44, 조회:2,123, 추천: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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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섹슈얼리티 강의를 읽고 -여성으로서의 나
-현장 활동가
섹슈얼리티(sexuality) 는 성적인 욕망, 감정, 표현, 성적인 행동 및 관계 등 성적인 정체성과 실천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처음에는 이 말이 낯설었다. 흔히들 여성, 남성으로 얘기하는데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성 만으로는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적 소수자, 양성애를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성애’를 다룰 수 있는 개념으로 섹슈얼리티를 쓰는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 생활과 ‘성’은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인데도 그 속에서 고민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나부터 그랬고, 현장에서 ‘도우미’ 찾는 뒤풀이 문화나 운동권 내 성폭력 사건에 분노했지만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겪는 왜곡된 ‘성’ 문제에 대해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동지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또한 자신의 ‘성’과 ‘성인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에게는 ‘섹슈얼리티 ’라는 단어가 뜻을 알고 나서도 참 낯설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이유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 속에서 숱한 차별과 무시, 억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우리 집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평화롭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를 가정부 부리 듯 하고 폭력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나는 아버지에 대해 상처와 분노를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노동자로서 삶이 버거워서 그랬다고 이해는 하지만, 당시로서는 분노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여성으로서 연대의식을 가졌다. 어머니의 눈물과 아픔은 나의 눈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힘들어도 사회에 나가서 일을 계속하고, 그 돈으로 생활하고,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고 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억압은 나로 하여금 여성으로서 나 자신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남들이 무심하게 넘기는 성차별이나 억압에 대해서도 반항심을 갖게 된 것이다. 자세히 보면 어떠한 문학이나 대중매체 속에서도 ‘여성’이 본받고 싶은 ‘여성인물’은 없었다. ‘일본군 성노예’같은 사회적인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지금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한 어려움이 있다. 똑같이 일하고도 ‘여성’이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을 모두들 당연시 여기고, 비정규직이 많고, 성희롱도 많고.
내가 이 땅에서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둘러싼 환경-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 억압-에 대해 계속 투쟁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여성으로서 나의 정체성이고 가장 밑바탕에 깔린 ‘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고민해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 중심적 성 문화에 대해 반대하면서도 나 자신은 ‘성’에 대해 무지했고 태연한 척 했다.
많은 여성들처럼 성을 주체적으로 여기기보다 피해 입을지도 모르는 무엇으로 여기고, 터부시했던 것이다. 사실 무의식적으로라도 여성들에게 ‘성’은 ‘성폭력’과 동일시되고 있는 면이 있다. TV에서 나오는 성폭력 사건들은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려는 여성들에게 “여성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다간 큰 일 난다” 며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성폭력’이란 개념이 생긴 것도 운동의 역사이다. 1980년대 후반 성폭력 사건들, 1986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 1988년 변월수 씨 사건 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싸우고 여성단체들이 함께하면서 ‘성폭력’이란 이름 없던 것에 이름을 만들어주고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강제적이고 착취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데 중점을 두다보니, 여성의 ‘성적 쾌락’이나 ‘성적 주체성’을 주장하지 못했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나 역시도 나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에 대해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피해의식에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성’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억압당해왔는지 보았고 아직도 노예적인 성매매가 판치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것이 내 생활에 있어 ‘성’을 건강하고 주체적으로 인식하기보다 피해의식을 갖게 했다. 하지만 ‘성’에 대해 내 중심은 있다. 바로 ‘성’은 ‘사랑’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 사랑과 결합하지 않는 성은 단지 본능에 불과하다. ‘성’이 본능적인 욕망으로만 존재할 때는 인간이 미개사회를 살 때가 아닐까.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동지들과 깊이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발전역사에서도 여성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성 해방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성 해방론이 여성의 ‘성적 쾌락’과 ‘성적 주체성’을 강조한다면서 결국 남성들을 위한 여성들의 ‘성적 서비스’를 강조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왜냐고? 성을 사랑과 결합시키지 않고 단지 자유로운 ‘성’만을 강조한 결과이고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착취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기도 하다.
푸코 역시 ‘성’이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푸코는 말한다. 섹슈얼리티는 역사적으로 사회통제의 중요한 방법이었다고. 그리고 사회에 따라 그 방식은 바뀌어왔다.
여성들이 섹시하고 날씬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도 그것을 통제가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아실현’으로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권력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이다.
이것이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여성의 ‘성적 쾌락’이나 ‘성적 주체성’ 찾는데 한계 지점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이 뿌리 깊은 이 사회에서 여성의 ‘성’만이 자유롭고 주체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성’이 우리 생활 속에 있는 것처럼 ‘여성’도 우리 사회에 살고 있기에,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여성주의자’들의 노력이 소수의 부르주아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찾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당장에 생활비를 벌고 가사노동과 육아에 매일 정신없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섹슈얼리티’는 너무 머나먼 당신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생활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성’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너무 뻔한 말은 하지 말자. 우리가 원하는 ‘성해방’에 대해서도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치열하게 얘기하자. 우리 안에 있는 차별적인 성인식, 왜곡된 성 인식이 하루아침에 깨지지는 않겠지만 우리 노동자 문화 속에서 바꿔보자.
이 책을 읽으며 다른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 여성의 차별과 억압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이제 남성 동지들의 ‘성’ 에 대해 듣고 싶다. <노/정/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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