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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2호] 노동자와 노동자 (박종철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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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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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0:10:41, 조회:2,142, 추천: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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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노동자
우연히 모단체에서 일하는 동지로부터 ‘노동자와 노동자’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박종철 출판사에서 발행된 그 책은 캐리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생생히 묘사해 놓은 그들의 투쟁일지였다.
처음에는 그저 캐리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정리해 놓은 일반적인 보고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 한 구석에 있는 묵직한 무엇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을 가져다 주었고, 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많은 고민을 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에어컨을 생산하는 캐리어라는 회사에서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투쟁하는 과정과 그 투쟁 속에서 철석같이 동지라고 믿었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신,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투쟁의 전선으로 나서는 그들의 생생한 투쟁의 모습은 ‘삶이 곧 투쟁이요, 투쟁이 곧 삶’이라는 노동자들의 존재 조건과 관성화 되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충분히 되돌아보게끔 만들었다.
손석춘이라는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은 이 책을 추천하면서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들이어야 하고, 특히 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적’으로 규정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 읽어보면 왜 그런 추천의 이유를 들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본인 또한 정규직 노조 간부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함께 해야 한다고 현장에서 선전, 선동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정규직 노조 간부를 하고 있다는 나의 처지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해야 한다”라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구호가 나무토막마냥 그저 죽어있는 언어로써 그들에게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정신적 혼란을 가져다 주었고, 이후 정규직 노조 간부로써 어떠한 실천을 하는 것이 말만의 연대가 아닌, 실천적인 연대를 추구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3년여 동안 진행된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국 2004년 1월 비정규직 일부의 노동자를 정규직화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어정쩡한 절반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절반의 승리라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마무리되기까지 자본과의 투쟁,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노조 간부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관료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반노동자적인 작태와의 치열한 내부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을 봤을 때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절반의 승리는 커다란 성과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캐리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가 전국에 울려 퍼진 지 5년이 흘렀지만 현재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는 한 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 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의 공동파업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각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는 당시 캐리어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임단투 중이었던 기아에서는 예정에도 없던 정규직 파업을 배치하여(지지, 연대의 공동파업의 성격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내하청노조 공동 파업을 무력화시키려고 하였다. 현대차도 적극적인 공동투쟁에 나서지 않았다.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국전선을 주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6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현 시기 박일수, 류기혁 비정규 열사들의 외침으로 재현되고 있듯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이 장기간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당시 투쟁의 주체인 비정규직 동지들은 책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자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동자인 정규직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 우리에게 그치지 않고 후대에도 계속될 것이란 걸 알아버린 지금, 다시 한 번 우리는 투쟁을 선포합니다.
서러운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조차 없는 하청노동자, 정규직의 고용안정판이며 일회용품인 용역노동자, 그것이 우리의 이름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골백번 죽어도, 누가 뭐라고 해도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인간이기 때문에 먹고 결혼하고 자식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과도 단호하게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를 막는 것이 설사 정규직 노동자라 해도, 그것이 신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단호하게 싸울 것입니다. 기필코 승리하여 공장으로 돌아갑시다.”
그렇다.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의 고용안정판이 아니며, 일회용품이 아니다.
자본의 공격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정규직의 반동적인 모습이 투쟁을 탄압하고 교란시키지만, 이들은 이 사회의 당당한 주역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별화, 분산화 되어있는 상태를 뛰어넘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투쟁을 조직하며 연대를 추구하는 모습은 현 시기 세속에 찌든 비굴한 노동자가 아닌 참된 진짜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노동자와 노동자’ 이 책의 제목은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고 있다.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는 노동자’이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이 땅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많은 배신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들이 명확하게 답변해야 한다. ‘노동자는 역시 노동자다’라고 말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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