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Category |
 |
![]() |
 |
![]() |
제목 : [19호] 현 시기 산별전환, 관료적 중앙집중인가? 민주적 중앙집중인가? |
![]() |
 |
![]() |
 |
|
노정협
|
2006-08-28 20:39:18, 조회:2,144, 추천:398
|
![]() |
|
|
![]() |
현 시기 산별전환, 관료적 중앙집중인가? 민주적 중앙집중인가?
산별전환의 화려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등 금속 대공장들이 산별전환에 성공했다. 이로써 4만 명 조합원을 보유하던 금속노조는 13만의 조합원을 가진 거대 산별노조의 외형을 가지게 되었다. 금속노조는 10월까지 산별완성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금속산별노조의 규약과 조직 형식 갖추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금속 대공장의 산별전환에 자극을 받아 공공연맹이나 화학섬유연맹의 경우에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산별노조 조직전환 투표를 하려고 하고 있다.
노동조합 운동 진영만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시민단체 등도 이러한 산별전환에 대해 ‘역사적 사건’, ‘20년만의 쾌거’라며 자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대대적인 환영행사의 물결에 동참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분파주의자, 냉소주의자라서 그런가?
노동조합의 조직형식 변화 특히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숙련공 중심의 직업별 노조에서 미숙련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계급적 단결의 틀로써 만들어 졌다. 초기 산별노조는 자본과 맞서 싸우는 전투대형으로써 거대한 대중투쟁이라는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남한에서 현 시기 산별노조는 상승하는 운동의 기운과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운동의 퇴행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자본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인정이라는 노동법 개악에 맞서 싸우기 보다는 피해가기 위한 소극적 수단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있다. 계급투쟁의 내용을 담아내는 효과적인 조직형식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계급타협적으로, 조직형식만의 전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온갖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듯, 계급적 단결을 외치는 산별전환의 무대 뒤편에서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외면하고 더 나아가 투쟁을 파괴하는 온갖 반동적인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가 산별전환을 하던 6월 30일 날 3공장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런데 이 계약해지는 지난 6월 13일 자본과 3공장 사업부 대표가 합의한 합의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3공장 사업부 대표의 합의를 방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비정규직 노조가 정리해고에 맞서 힘겹게 투쟁하고 있을 때 계급적 단결을 외면하고 휴가 전 타결에 목을 매고 있다.
대우자동차노조는 GM대우창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복직협상에서 기만적인 합의안을 만들어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굴뚝농성을 전개할 때 닉 라일리 사장과 노사상생을 외치며 마라톤 행사에 참여했다. “공장을 볼모로 한 싸움이 아니라 이성적,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매도하고 방관한 이성재 집행부는 GM자본과는 해 마다 노사화합 행사를 가지며 철저히 유착하고 있다. 이성재는 이번 임단협에서도 지난 21일 확대간부회의가 아닌 독단적인 잠정합의로 기만적으로 임단협을 휴가 전에 마무리 하려 하고 있다.
하청의 진성도급화에 찬성한 쌍용자동차노조는 전현직 위원장과 간부들이 비리로 구속된 상황에서 산별전환 투표를 하였다. 비리 집행부는 즉각적인 사퇴를 거부하면서 정리해고의 또 다른 형태인 희망퇴직 접수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노조는 지난 해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이라는 3원칙을 들어서 “공동으로 결정하지 않은 비정규직 사업에 대해 노조는 책임지지 않을 방침”이라면서 사사건건 비정규직 투쟁을 가로막았다.
대공장뿐만 아니라 금속노조의 경우에도 하이스코 동지들의 크레인 점거투쟁에 대해서 실효성 없는 기만적인 중재안을 만들어냈고, 하이스코 동지들은 이 기만적인 합의안조차도 지켜지지 않자 재차 크레인점거 투쟁에 돌입하기도 했다. 하이닉스 투쟁에 대해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한 동안 시민단체와 충북범도민대책위의 중재와 협상에 기대는 몰계급적인 투쟁기조에 기댐으로써 하이닉스 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쟁점에서 오히려 고립시켰다. GM창원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도 금속노조 창원지부는 대우자동차 창원지부의 눈치를 보면서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않고 실질적인 총파업이 아니라 총파업 일정을 멀찌감치 잡아서 생색내기 식 총파업 시늉만 했다.
이것은 산별전환의 역사적 성과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공장 노조와 금속노조의 자화상이다. 산별전환의 역사적 성과라는 빈말만 무성할 뿐 현실에서 계급적 단결은 공허한 외침이 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립과 외면 속에서 힘겹게 투쟁에 나서고 있다. 산별전환, 계급적 단결은 말짱 공수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집만 큰 산별노조의 공수레에 깔려 신음하는 격이 되고 있다. 공공연맹의 산별전환 계획표 역시 7월 총파업 계획이 있지만 투쟁은 사라진 채 산별전환 일정만 형식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2000년 금속노조로 1차 산별전환을 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 산별전환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관료적 산별건설 추진에 대해서 반대하면 “사측도 산별건설에 반대한다. 산별건설에 반대하면 어용이다”라는 단순논리를 들이댔다. 2000년 금속산별노조 전환 당시에는 일각에서 부결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올 해에는 대세와 흑백단순 논리에 갇혀 관료적 산별노조 전환에 대한 분명한 반대투쟁이 전개되지 못했다. 산별전환에 대해 비판적인 현장조직의 경우에도 분위기에 눌려서 산별건설을 찬성하는 전제 하에서 산별전환이 가지는 우려점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문제제기 하는데 그쳤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막판에 한 대의원에 의해서 현 시기 산별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겨우 나올 뿐이었다. 반면 현장조직은 공동기명으로 압도적인 산별노조 가결을 위해 한 목소리를 냈다. 현장 외각에서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개량주의 학자, 시민단체 등에서는 입을 모아서 산별전환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운동은 다수대중을 운동의 대의와 실천 속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다수파 운동이다. 그러나 다수파 운동이라는 것이 대세를 쫓아다니는, 대세의 흐름에 위축되어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니다. 산별노조가 운동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산별물신주의와 산별전환 뒤에 규약, 교섭체계, 재정 등 모든 것을 해결해보자는 ‘묻지마 투표’ 식으로 진행되는 산별전환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은 당연하다. 운동은 현재의 운동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운동이고 대중에게 기억을 남기는 투쟁이기도 하다. 현재는 비록 대중적으로 고립되지만 관료적 산별노조 건설을 단호하게 비판하고 이에 맞서 투쟁할 때 비판의 기억을 간직한 대중들에게 올바름을 검증받고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중파업을 금지시켜 현장을 약화시켜라!
우리는 지난 노동자정치신문 창간 17호에서 “현재 산별노조 추진을 반대하는 자본은 조건부 반대이다. 산별노조가 되면 이중교섭을 중단할 것, 이중교섭을 하더라도 단위 현장의 투쟁이나 파업을 중단할 것, 이를 위해 산별 중앙이 단위현장을 통제할 능력을 가질 것 등의 조건을 전면에 내건다”라고 주장했다.
금속 대공장에서 산별투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뒤 경총, 전경련 등 자본집단, 자본가 언론과 친자본적 지식인, 노동부 등 자본집단은 미리 각본을 짠 듯 하나 같이 사업장 수준에서의 이중교섭과 이중파업 금지가 없으면 산별교섭을 진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별 중앙교섭을 하고 현장 단위에서는 중앙교섭에서 다루지 못한 현장 요구와 쟁점을 파업권이 없는 노사협의회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산별노조가 오히려 자본가한테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산별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태주는 노동조합이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서 사용자들이 산별노조의 장점을 체득케 해서 산별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노조는 파업감소, 임금인상 압력의 완화, 노사 타협 체계 구축 등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자본이 산별노조 전환을 반대한다면서 관료적 산별노조 전환을 반대하고 비판하는 정당한 문제제기 조차 회사와 입장이 같다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단순한 흑백논리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자본이 산별전환에 대해서 반대하고 산별전환 성공 이후에 호들갑 떠는 것은 산별노조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산별노조를 추진하는 것은 노동진영이지만 자본은 여기에 개입하여 자신의 모습대로,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산별노조를 만들어 가려하고 있다.
2003년 5월 6일 처음으로 금속 중앙교섭이 성사되고 올해 4월 24일에는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법적으로 출범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고, 개량주의적 산별노조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부소장인 박장현은 “금속산업 사용자 단체의 출범을 축하하자”고 극찬했다. 하지만 노동사회연구소의 김영두는 이에 대해 “사용자들은 중앙교섭 여부를 둘러싼 지속적 갈등보다는 이를 수용함으로써 분쟁을 사업장 외부로 돌려 생산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중앙교섭을 수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김영두, 노동사회 2006년 2월호)고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자본이 이중교섭을 회피하고 중앙교섭만으로 가져가려 하는 것은 현장에서의 자본의 통제와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자본은 중앙교섭을 제도화시키고 단위 사업장의 교섭은 노사협의회 수준으로 전락시켜 파업 없는 현장으로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다.
“노사 모두 지부단위의 노사협의 기능을 확대해야만 한다. 사업장단위 협의기능 없는 산별 노조는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적대적 노사관계를 고착화시킬 것이다.”(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일보 7/3, ‘완성차 산업별 노조의 미래는’)
“‘유럽형 산별 체제에서는 산별 중앙조직만 노사교섭을 할 수 있다. 임금, 복지 등 근로조건과 관련한 교섭은 여기서만 이뤄진다. 사업장에서는 작업환경 개선 등 극히 개별 사업장에 국한된 문제를, 그것도 노조가 아닌 근로자 대표가 간헐적으로 협의를 벌일 뿐이다. 이를 위반하면 엄격한 제재가 가해진다.’고 하고 있다.”(매일경제, 7/3)
“산별 중앙의 '허락' 없이는 개별 지부나 지회, 분회 등은 독자적인 교섭과 파업을 전개할 수 없다. 즉 개별 지부나 지회 등이 파업하는 경우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셈이다. 실제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에서 개별 지부가 파업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기업별 노조 하에서 빈번하게 목격됐던, 사용자에 대한 압박카드로서의 파업은 산별노조 체제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된다. 산별노조가 되면 파업이 증가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이러한 산별노조의 조직구성과 운영원리에 대한 무지에 기반한 '기우'라고밖에 볼 수 없다.”(프레시안, 6/3)
사업장 단위의 파업권 금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산별 간부의 사업장 출입금지, 사업장 내 노조 사무실을 불허 등 자본이 원하는 산별노조는 철저하게 현장을 약화, 붕괴시키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관료적 산별주의자들은 재정과 인력의 중앙집중을 산별노조의 근본원리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의 논리를 따라 산별노조를 완성하려 한다. 대표적인 산별주의자인 경남대 임영일 교수는 기업별 노조를 해산하고 현장 노조 단위의 상근자들을 산별 지역이나 중앙조직으로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료적 산별주의자들은 현장을 약화시키고 관료적 중앙집중만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박유기위원장은 산별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파업 양상도 달라진다. 굳이 현대차 라인을 끊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서열 되는 공장을 하루이틀 세우면 현대차 생산 자체가 중단된다.”
산별전환 투표를 앞두고 박유기 위원장은 "혼란스러울 때는 자본이 가지 말라는 곳으로 가자,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조합원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박유기는 철저하게 자본이 가자는 길대로 산별노조를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는 현장 공동화의 문제보다 중앙의 정책적, 정치적 역량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은 정책, 교육, 선전, 교섭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우자동차 이성재는 산별전환 투표를 앞두고 직공장들에게 “산별 가면 파업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우려할 부분은 없을 것이다”라며 산별가결을 설득 했다.
이렇게 현장 단위에서의 파업을 회피할 수 있는 게 산별노조의 장점이라면 그것은 투쟁을 회피하고 현장을 약화시키는 산별노조다. 독점자본과 국가에 맞서 전투력을 집중시키는 산별노조가 아니라 산별 중앙을 교섭 중심으로 끌고 가는 투쟁하지 않는 산별노조다. 박유기는 각급 단위 노조간부들의 인사권조차도 현장 조합원의 선출이 아니라 중앙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현장 민주주의의 파괴이자 관료들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산별노조다.
산별의 규약과 교섭체계, 재정 등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산별완성 준비위는 전환 총회 가결 사업장 1인, 금속노조 지부별 ·1인, 연맹 위원장 및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 기아자동차노조는 산별 완성 준비위에 3명을 파견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가 산별전환 뒤에 가지는 영향력이나 발언력 비중을 볼 때 박유기와 이성재의 발언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산별 관료주의자들이 모범적으로 완성된 산별노조의 상으로 그리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보자!
“현장조직으로는 직장마다 전 종업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직장평의회(Betriebsrat) 외에 노조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신임대의원(Vertrau-ensleute)이 있다. 직장평의회는 직장평의회법에 의해 보장되는 노조 외 조직인 반면, 신임대의원은 노조의 현장조직으로서만 기능하며 어떠한 법적 지위도 갖지 않는다.”(정병기, 「1장 독일 노동조합 체계」, 『산별노조운동의 역사와 현재』)
실제 독일에는 단위노조가 없다. 대신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신임 대의원(우리 식으로 말하면 현장위원)이 있다. 이들에게는 파업권, 교섭권 등 어떤 공식적인 지위도 주어지지 않는다. 산별관료주의자들은 현장의 공백을 우려하면 현장위원 제도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장위원들은 사실상 허수아비에 가깝다. 독일에서 지역지도부(지역지부) 의장은 산별노조 중앙 의장이 선임하기 때문에 현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더욱이 산별파업은 전체 조합원의 75%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하다. 합의안의 거부는 75% 이상의 반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소수의 산별 중앙관료들이 재정과 인사권, 파업권, 교섭권을 독점하고 위로부터 철저히 현장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산별노조이다.
“1952년 공장법의 제정으로 정치적 파업이 금지되고 노조가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DGB(독일노조총연맹. 실은 민주노총 같은 개별노조의 총연합체가 아니라 산별노조연합체인 독일노련-인용자 주) 차원의 정치적 역량이 철저히 봉쇄되는 한편, 파업권을 비롯한 모든 단협정책 권한이 산별노조 중앙 지도부에 집중되고 이를 조정해야 하는 DGB가 무력화됨으로써 노조 내 민주성과 노조 간 연대의 틀이 쉽게 형성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사업장 차원에서도 신임대의원과 노조의 권한이 어떠한 법적 근거도 획득하지 못한 채 파업권과 단협권을 갖지 못한 직장평의회만이 법규상의 현장 노동자 이해대변 기구로 인정된 것은 노조의 현장 토대성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같은 책)
산별노조가 되더라도 자본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임금삭감 공세,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 현장통제 등 작업장 수준에서의 공격을 강화한다. 자본은 작업장에 대한 장악을 통해 자본의 현장권력을 강화하려 한다. 작업장에서 현장권력을 둘러싼 투쟁에 실패하면 산별노조는 덩치만 큰 종이호랑이가 된다.
중앙교섭은 사회적 최저 수준의 요구를 다루는 기본단협에 불과하다. 이러한 중앙교섭만 이루어지고 작업장 수준에서 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일상적으로 몰아치는 자본의 현장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중앙교섭의 요구를 넘는 현장 단위에서의 임금과 단협수준은 점차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대우자동차노조는 산별전환을 독려하면서 조합원들한테 “산별가면 현대자동차 수준으로 임금과 단협을 높일 수 있다”고 막연하게 기대를 부풀렸다. 대공장에서 피터지게 싸워 쟁취해온 임금과 단협수준이 약화되는 것을 막는 것은 결코 대공장의 이기주의적 기득권이 아니다.
금속노조는 금속의 중앙교섭은 보건의료노조와 다르게 우선협약이 아니라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 보충교섭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금속노조에 있어서도 독점자본은 산별협상에 참여하는 전제로 이중교섭과 이중파업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설사 보충교섭이 앞으로도 이루어진다 해도 산별관료주의자들은 ‘교섭비용의 절감’을 외치기 때문에 현장 내의 주요 쟁점이나 요구에 대해서 산별 중앙교섭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이중교섭과 파업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을 외치던 박승옥이나 민주노동당 최병천은 산별노조의 네덜란드 모델이나 스웨덴 모델을 예로 들며 대공장이 비정규직이나 미조직 노동자를 위해 임금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일정부분 책임을 지겠다는 '사회공헌기금'의 기본 문제의식을 살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자제'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최병천 민주노동 의정지원단, 프레시안 2004-09-16, “노동운동, '네덜란드-스웨덴 모델'에서 대안 찾자")
최병천은 네덜란드처럼 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분적으로 해고 요건 완화를 수용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별 개량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산별노조의 양보교섭을 부추기고, 노동조건과 임금수준을 하향평준화 시킨다. 이들의 주장은 노동자의 양보를 획책하고 자본의 이윤을 늘이려는 자본과 정권의 노동귀족론, 대공장 고임금론 주장과 일치한다.
산별 개량주의자들은 산별노조 중앙교섭을 국민국가 차원의 노사협상을 벌이는 노사정 합의의 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들은 산별노조를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과 통제를 통해 정책대안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의 산업정책 개입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이들은 노동력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을 산별노조의 개입과 통제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산업특수적인 숙련을 정의개발 할 수 있고 산별노조가 할 수 있다면 다른 기업으로 옮겨가면서 훈련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을 놓고 피터지게 싸울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산별 차원에서 산업정책의 개입정책은 훈련을 매개로 한 노동정책이다. 노동계가 이 가장 소중한 자원을 갖고 있는데 교섭에 지렛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이 주장은 사실상 산별노조가 정리해고를 인정하자는 말이다. 다만 산별노조 차원의 교육을 통해 노동력의 숙련도를 높이면 정리해고를 당해도 숙련기술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업장으로 언제든지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산별노조를 직업소개소나 취업알선 센터로 전락시키고 있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당시 ‘희망센터’의 예를 들더라도 이 주장이 얼마나 반동적인지 잘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초기의 분열돼 있던 숙련공과 미숙련 노동자는 산별노조의 틀로 단결했다. 현대 자본주의는 자동화, 기계화 등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정규직노동자 조차도 단순화된 작업으로 내몰고 있다. 십년, 이십년을 종사해온 직업을 떠나 신기술을 익히기도 싶지 않거니와 숙련기술을 가진다 해도 실업문제가 심각해서 재취업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산별노조의 거시적 개입의 내용으로 “저성장기에 고용이 확대되려면 실 수령임금의 동결이나 낮은 증가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과 통제는 노조의 임금 양보교섭을 부추기고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반동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관료화에 맞설 것인가?
산별 완성 대의원대회 준비위가 꾸려졌지만 비정규직 노조나 전투적인 입장이 이 틀 속에서 반영될 가능성은 낮다. 사실 완성 대대 준비위는 산별 관료주의자들의 독무대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기존 금속노조 보다 더 계급타협적인 대공장집행부들이 대거 완성 대대 준비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현 금속노조 규약 제63조 쟁의행위 결의 2항은 “산하 조직의 교섭단위별 쟁의행위 결의는 조합 쟁의대책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해당 교섭단위 조합원들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결정한다”로 되어 있다. 1항의 전국 쟁의행위 찬성율도 독일과 달리 과반수이상이면 가능하다. 아직 금속노조에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적 기풍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규약상 산하 조직의 파업은 중앙 쟁대위와 협의만 거치면 가능하다. 실제 금속노조 산하 산별 지회의 파업은 금속 중앙에 형식적인 보고나 공문 처리만 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금속노조가 독일식 모델을 추구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삼호중공업 같이 자본이 금속사용자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별지회지만 실제적으로는 기업별 수준의 교섭과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2007년부터 대자본이 사용자 단체에 들어와 중앙교섭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지회단위의 파업에 점차적으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지회, 지부 파업이 중앙의 승인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고 현 규약의 ‘협의’가 모호한 표현이기 때문에 이것의 해석을 둘러싸고 마찰이 생길 수 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의 경우도 정규직 노조가 산별로 전환했기 때문에 직가입 ‘분회’로 들어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비정규직 지회에서는 직가입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직가입 이후의 독자성과 자주성이 없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기존 원하청연대의 3원칙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노조는 독자적인 파업을 중단하라는 정규직의 압박을 끊임없이 받았다. 그런데 정규직 노조(기아자동차 화성지회)의 분회로 가면 독자적인 파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비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 단협수준이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고 정규직이 주도하는 노조 속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적인 요구가 화성지회의 보충교섭에서 주변적인 요구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물론 직가입됐을 때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독자적인 파업권이나 교섭권, 체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정규직 중심으로 합의가 되고 비정규직 관련 요구안이 무시됐을 때도 화성 지회 전체 차원의 찬반투표로 가결이 되서 판이 끝날 수 있다. 직가입으로 인한 상대적인 고용안정성도 계약해지가 발생했을 때 비정규직 주체가 투쟁하지 않으면 정규직 지회의 일방적인 교섭에 의해 자본의 계약해지가 수용되면 말짱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지난 해 계약해지 때 화성지부가 대리교섭으로 신성분사를 수용한 경험을 상기해보라! 그래도 그땐 비록 대리교섭으로 잠정합의가 만들어졌지만 비정규직 조합원 스스로 찬반투표를 통해 이 안을 선택할 체결권은 있었다.
정규직 노조도 중앙교섭에서 단사의 주요 쟁점들이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독자파업권, 체결권을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실제 이번 산별전환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정치조직이나 현장조직은 모두 독자 파업권과 체결권이 단사에 보장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단위 노조의 현장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남은 것은 관료적 중앙집중이다. 분회, 지회, 지부, 중앙이라는 산별노조의 위계질서 속에서 현장이 붕괴되고 현장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관료주의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관료적 중앙집중에 맞서 현장의 힘과 의지를 기반으로 민주적 중앙집중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미국노동운동의 사례를 볼 때도 산별노조의 관료주의에 맞서는 최고의 투쟁은 작업장 투쟁, 지부투쟁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30-40년대 미국노동총동맹(AFL)의 관료주의와 산별노조의 파업중지서약에 맞서 평조합원(우리의 기업별노조의 현장단위 중심)들의 광범위한 반란으로 아래로부터 산별노조를 강화했다. 반면에 1940년대 산별노조회의(CIO) 중앙관료들은 지부나 현장 차원의 투쟁을 억압했다.
"그것은 파업을 이용하여 평조합원들의 투쟁열기를 빼내면서 동시에 전국조합 지도부의 권력을 더욱 중앙집중화하려는 용의주도한 전략이었다. [노조 지도부의 통제권을 벗어나] ‘마구 날뛰는’ 전투성을 보인 경우가 한번 있었는데-전투적인 CIO지부 차원의 산별평의회들이 여러 도시에 걸쳐 파업을 이끌었다- 이때 전국집행위원회는 이 평의회들의 자율권을 박탈하고 지부조합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권을 제거하는 등 무자비하게 탄압했다.”(마이크 데이비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이후 미국은 이 노동총연맹과 산별노조협의회가 통합조직을 건설해서 미국노동총연맹산별노조회의(AFL-CIO)라는 관료조직을 더욱 강화시켰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미국 노동운동 내에서는 대규모 제조업체들이 ‘우수리 교섭’(보충교섭)을 둘러싸고 이를 없애려는 자본과 유지, 강화하려는 노동자간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제너럴 모터즈, 제너럴 일렉트릭 및 크라이슬러 등에서는 연쇄적인 점거파업이 발생했다. 이러한 흐름을 차단하고자 광산노동자연합(UMW) 같은 산별노조 관료들은 관료적 중앙집중을 강화했다.
“이 노동자연합은 급진주의자를 배제했을 뿐더러 조합규약에 ‘엄격한 중앙통제, 지부조합의 자율성 제한 및 평조합원 참여의 최소화’를 규정하고 있었다.”(같은 책)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유럽 산별의 경우에도 산별노조가 관료화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장으로 전락했다. 산별 차원의 중앙협약은 일자리 협약이라는 노사정협약으로 고용보장 대신에 임금양보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교섭으로 인한 고용보장 약속은 자본이 공황에 빠지거나 공세를 강화하면 순식간에 날라 간다.
관료적 산별주의자들은 단위 현장의 조직력이 강화되는 것은 산별노조의 원리와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보건의료노조에서는 단위 사업장의 단협을 후퇴시키는 10장 2조 합의에 의해 단사의 단협이 파괴되자 이에 반발해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병원노동조합협의회(병노협)가 만들어졌다. 이 병노협은 최근 다시 공공보건산업노조(가칭)로 산별전환을 했다. 병노협은 조합원 1/4의 소환발의가 가능하도록 하여 관료주의에 맞서는 규약을 만들고 소수노조, 여성 30%를 대의원 할당하는 민주적 규약을 만들려고 한다. 공공보건산업노조(가칭)는 단위현장과 지역의 힘을 바탕으로 민주성과 현장성을 강화하는 산별노조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산별교섭이라고 중앙에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 안 된다. 불만과 요구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교섭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본다. 중앙은 중앙대로, 지역지부는 지역대로, 단위사업장은 단위사업장대로 교섭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할 일이다.”(레이버투데이, 7월 24일자 현정희 병노협집행위원장 인터뷰)
관료적 산별주의자들은 자신만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은폐하기 위해 민주적 중앙집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 시기 산별노조에 비판적이면서도 일단 산별전환 뒤에 내용과 형식을 채워보자고 한 세력들과 부결투쟁을 주장했던 세력들은 산별노조로 전환한 후에도 관료적 산별노조에 대한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산별 완성 대의원대회 준비위에서 규약과 형식, 산별노조의 이념이 만들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추상적으로는 계급적 단결을 외치면서 막상 자신의 사업장 내에서 비정규직과 연대하기를 거부한 세력들을 폭로해내면서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기업별노조나 산별노조나 다 같이 노조다. 어느 형태든 노조운동 그 자체로는 계급적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노조운동에 끊임없이 개입하여 노조를 계급투쟁의 진지로 만들려고 한다. 유럽의 관료적 산별노조의 뒤에는 국민정당화 된 사민주의 정당이 버티고 있었다. 산별노조 시대에 있어서도 우리의 혁명적 진지는 여전히 현장이다. 산별관료주의자와 개량주의에 맞서서 현장에서 계급투쟁을 만들어내고 현장을 반란의 거점, 해방의 요새로 강화해야 한다. <노/정/협>
|
|
|
![]() |
![]() |
 |
|
![]() |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150-898)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15-3 301호
노동자정치신문 Tel. 070-8254-1917 / E-mail labor04@jinbo.net
copyleft by 노정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