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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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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3 19:59:43, 조회:2,534, 추천: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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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과 전문가 집단
심희수(공인노무사, 버스노민추법규국장)
민주노총 지원 노무사 과정을 보면서
민주노총은 지난 2002년부터 공인노무사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노조와 노동자 대상 법률지원활동을 준비하는 ‘민주노총 지원 노무사 과정’을 운영해 왔다. 올해로 제5기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매년 수십 명의 노무사들이 ‘민주노총 지원 노무사’로 배출되어 왔는데, 이들의 진로는 주로 민주노총 산하 연맹이나 단위 노조의 법규 담당자의 길을 걷거나 별도의 사무소나 노무법인을 설립한 후 외곽에서 민주노총을 지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무사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자본가들을 자문하면서 합법적으로 노동운동을 파괴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반해 자본가들을 의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고 나선 민주노총 지원 노무사들의 자기희생적 선택은 어쨌든 상당히 차별적이고 신선하다.
그러나 노동자가 아닌 전문적 지식인이라는 객관적 조건은 노동운동을 고민하는 노무사들에게 더더욱 의식화된 계급성과 올바른 계급정치를 요구한다. 그렇지 못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양심적 가치관에만 의존하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 지쳐 떨어지거나 남는다 하더라도 법규 실무자로서, 운동가가 아닌 직업인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한계는 노동운동과의 관계를 기회주의적으로 왜곡시켜버린다. 노동운동판이 이들 노무사들에게 있어서 틈새시장의 의미 그 이상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보아온 ‘양심적 노무사’들의 추이가 실제로 그러했다.
이 글은 이제 막 노동운동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건강한 노무사들에게 올바른 노동계급의 정치가 왜 중요하고, 올바른 정치적 내용을 가지고서 전문가로서 자신의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기 위한 출발이다.
잘못된 만남
노무사들에게 보다 많은 수입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계급은 노동자도, 상인도, 농민도, 다른 어떠한 계급, 계층도 아닌 바로 자본가계급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가장 안정적인 수입원에게서 등을 돌리고 노무사로서 오로지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만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그들의 주된 활동이 자신의 업무영역 내에서의 법률지원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무사가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럼 뭘 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적인 역할 제약은 자기 존재조건에서 오는 기회주의적 태도일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체제에서 노동법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본주의적 착취질서를 전제로 하는 것인 이상, 법률지원에만 국한된 활동만 하겠다는 것은 실천적으로 노동자계급의 근본적 굴레인 착취질서를 용인하겠다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노동운동의 언저리에서 ‘노동자들의 편에서 법률지원’을 한다는 명판을 가지고 나름대로 명망을 쌓아오고 있던 노무사들의 행보가 최근 들어 예사롭지 않다. 지금까지 노무사 시장에서 수동적인 지위에 머물러 있었던 그들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한 이후, 확대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 8월 18일에는 단병호 의원과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이 공동으로 주최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있었는데, 이 날 공청회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공청회 자료집을 훑어보는 과정에서 씁쓸하지만 눈에 띄는 개정안이 있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게끔 하고 기존에 있던 원직복직을 위한 구제신청과 이 손해배상청구를 동시에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 신설 조항이 개정안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찔했다. 그동안 경총에서 주장해온 해고에 대한 금전 보상제도 도입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형식과 명칭만 달리할 뿐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법안이었다. 그래서일까. 주최 측은 이 신설 법안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된 후 원직복직을 위한 구제신청까지 막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애써 예민한 반응을 보이곤 있지만, 손해배상 청구가 기각된 후 같은 기관(노동위원회)에 제기하는 원직복직을 위한 구제신청이 인정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이러한 뻔한 사실을 관련 전문가들이 몰랐을 리도 만무하다.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된 후에 다시 원직복직을 위한 구제신청을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견해까지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모로 보나 이 법안의 목적은 노무사들의 업무영역 확대에만 관심이 있다. 노동자들을 위한 개량과도 전혀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소부르주아까지 아우르는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적 정치기반과 노무사들의 계급적 한계에서 오는 기회주의적 태도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사례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지원 활동’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조는 노무사라는 자신의 소부르주아적 존재조건에서 오는 한계이며, 이러한 한계는 오히려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내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편향
지원 노무사 과정을 거쳐 배출된 노무사들의 반 수 정도는 곧바로 노동조합의 실무자로 배치되고 있다. 이들이 배치되는 노조는 영세조직보다는 연맹단위나 지역본부 또는 공무원 노조 같은 비교적 대규모 조직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노조의 경우 단위노조이면서 변호사와 노무사로 구성된 법규팀을 별도로 구성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현장이전(?)한 노무사들의 구체적인 역할은 조직 내에서 발생한 법률적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다른 개업노무사들과 별반 차이점이 없다.
안타까운 점은 이들 노무사들 대부분이 노동조합의 과중한 실무에 묻혀 산다는 것이다. 특히 연맹이나 지역본부의 경우 각 산하조직에서 집중되는 업무량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이들은 기껏해야 조합주의나 경제주의에 봉사하는 역할만 할 수밖에 없다. 노무사라는 전문적 영역을 가지고 노동운동에 복무하고자 마음먹었다면 그러한 조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역사에서 노무사가 없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위태로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노동조합이 자주성과, 민주성, 투쟁성을 상실하며 위태로워졌던 계기는 한결같이 관료들에 의해서 조합원들이 대상화 되고 조합주의, 경제주의의 틀 안에 매몰되어 온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합주의는 현재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개량주의 정치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노동운동에 복무하고자 하는 자라면 당연히 현 시기 남한 노동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무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는 노동자대중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올바른 계급정치이다.
자본주의 철폐, 착취질서 종식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대의와 진정으로 함께하고자 하고자 하는 노무사라면 단순 법률지원의 차원을 넘어서서 올바른 정치의식으로 무장하자. 그리고 그 정치를 현장에 전면화시킬 수 있는 방법과 조직적 관계를 함께 고민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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