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폭로>
경제위기 논쟁이 노리는 바는?
1. 경제위기인가? 정치위기인가?
96, 97년에 자본집단 내부에서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도 당시 남한 자본주의의 경제위기론 논쟁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하기 위한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자본의 허위 이데올로기”인 경제위기‘설’이냐 아니면 장기적인 이윤율의 하락 경향에 의한 실질적인 자본의 ‘경제위기’냐 하는 논쟁이 있었다.
최근에 또 다시 자본집단 간에 경제위기 논쟁이 일고 있다. 이 논쟁은 정부와 열린우리당, 친여당 쁘띠부르주아 신문인 한겨레신문과 한나라당과 극우 신문인 조중동 등을 중심 축으로 경제연구소와 경제학자들이 가세하면서 점입가경(漸入佳境)의 양상을 띠고 있다. 경제위기 논쟁에서 청와대는 “7월 경제지표에는 희망적인 것과 비관적인 것이 있는데 언론이 비관적인 것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한나라당과 언론에 불만을 쏟아 부었다. 정부의 입장을 일관되게 옹호하면서 극우 자본가 신문의 경제위기론의 정치적 의도를 비난하던 한겨레신문은 지난 8월 9일 경에는 경제위기론에 대해서 “수출전망 비관론은 지나친 기우”라면서 정부를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위기의 측면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정부와 한겨레신문의 입장에 대해 한나라당과 극우 자본가 언론은 “경기 침체마저 언론 탓”으로 돌린다면서 남한 경제가‘우울증 및 무기력증, 강박증, 순환기 장애, 노화와 산성화’등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이런 위기 상황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회주의형․인기영합형 운동권식 국정운영”에서 비롯됐다고 하면서 현정부 정책을 ‘분배정책, 평등정책’이라고 원색적 색깔론으로 비난했다.
이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이념공세”라고 반박을 하던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위기는 아닌데 경제양극화가 문제”라고 한발 물러났다.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시장주의자를 반시장주의자로 몰면 안된다”면서 “경제를 위기로 본다면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내야 하는데 지금 우리 경제가 5% 안팎의 잠재성장률 가까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제위기가 정치적 의도로 제기되어 경제 주체에 심리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 민간경제연구소조차도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5%대에서 4%대로 낮춰 잡았고, LG경제연구원도 지난 4월 발표한 하반기 성장률 5.6%를 하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4년 하반기 이후 경제전망’이라는 보고에서 “2004년 하반기에는 수출증가세 둔화, 내수부진 지속으로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5.4%에서 4.6%로 둔화될 전망”이라고 하면서 “2005년에는 3.7%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대한상공회의소는 “상당수 기업들이 올 성장률을 3%대로 예상하고 있다”는 비관적인 분석을 발표했다.
경제위기론이 현 정부를 궁지에 몰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던 열린우리당은 8월 9일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 확대를 촉구했다. 8월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콜금리를 3.75%에서 3.50%로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최근 경제상황을 살펴보면 별도의 대책이 없으면 경제 성장세가 하반기부터 내려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내수경기 회복을 정책의 우선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김대중 정권의 카드 정책을 염두에 두고“무리한 경기부양은 당장 한숨을 돌릴지 모르나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고 나중에 후회할 일이 반드시 생긴다”라고 말했다.
자본집단은 이러한 내수 경기 진작을 위한 “콜금리 인하가 곧바로 소비와 투자회복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를 시장에 강력히 전달함으로써 경제주체들의 위축된 심리를 개선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금리인하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미국 월가의 유명한 금융자본인 모건스탠리는 “통화적 부양책(금리인하)이 한국경제의 펀더멘틀(기초여건) 약세를 전환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면서 “구조적 문제로 인해 한국 경제가 향후 수 분기 동안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금리인하의 약발에 강한 회의를 표시했다. 실제 12일 콜금리 인하 발표 이후 시중 자금은 은행을 빠져나와 금리가 더 높은 미국자본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금리인하가 주식투자나 생산자본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자본집단 내부도 남한 자본주의 경제위기의 해결책을 둘러싸고 좌충우돌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것이 케인즈주의식 뉴딜정책처럼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오히려 막대한 비용부담만 지면서 경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케인즈주의 대 신자유주의의 대립국면 같지만 실은 서로의 입장이 뒤섞여서 전개되고 있다. 보통 케인즈주의자들이 재정확대 정책을, 신자유주의자들은 감세정책을 선호하지만 정부는 금리인하, 재정정책, 감세정책 등 동원가능한 모든 정책을 다 동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자본가 언론은 ‘올인정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만큼 자본집단은 경제위기 해법을 둘러싸고 좌충우돌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올인’ 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는 대부분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남한자본주의의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를 낳고, 정치위기는 경제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2. 경제위기 논쟁의 독점적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처럼 정권의 위기 극복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지만 이미 자본집단들은 이 논쟁을 통해서 엄청난 수혜를 입고 있다. 지난 해 9월 11일 행정자치부는 과세표준 현실화를 통한 부동산 보유세 강화 방침을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 건설교통부는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부동산 보유세에 대한 중과세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에 이어 지난 8월 11일 이후 부동산 취득, 등록세 인하 및 종합부동산세 부과대상 축소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인해 자본집단은 법인세와 소득세 50% 감면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해 이미 세법 개정을 통해 2005년도 사업소득분부터는 법인세율이 각각 과세표준 1억원 이하 기업은 13%, 1억원 이상 기업은 25%로 인하된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과표 1억원 이하의 기업의 법인세율을 다시 10% 수준으로 내리는 세법개정안을 마련키로 하고, 특별소비세 적용 대상 품목 축소, 세율 인하를 추진하고 에너지세 인상 유보, 부가가치세 인하, 소득세율 인하 등 자본집단을 위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이정우 청와대 정책위원장과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 사이에서 논쟁이 일고 있고, 이미 이헌재와 이른바 386출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서도 가시 돋친 설전이 오고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친노동자적 정책 대 반노동자적 정책의 차이가 아니라 자본의 이해를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를 둘러싼 자본 집단 내부의 이해관계의 차이에 불과하다. 재벌개혁이나 출자총액제한의 문제처럼 총자본의 이해관계는 때로는 개별 자본집단과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그것은 국가가 자본의 이해를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자본가 독재이지만 “사회로부터 자신을 소외”시켜서 외견상 상대적 자율성을 누리면서 중립적인 외관을 취하기 때문이다.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는 아직 전면화 되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최근에는 유가가 45달러를 돌파하면서 도이체 방크는 “하반기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심리적 마지노선인 50달러 선이 무너지면 3차 오일 쇼크도 배제할 수 없다”(조선일보 8월 11일자)고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세계 9대 석유소비국 중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같은 신문)고 우려했다.
치솟는 비용가격만큼 시장가격의 상승으로 만회하지 못한다면 자본의 평균이윤은 잠식당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자본간 경쟁 때문에 비용가격의 상승만큼 시장가격을 올리기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카르텔 같은 독점체의 독점가격조차도 자본의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독점체 내부, 독점체와 비독점체 사이의 경쟁 등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형성되기 어렵다. 결국 자본은 이러한 위기 앞에서 목숨을 건 자본간, 국가간 경쟁을 할 것이고 이것이 고스란히 노동자 계급에 대한 초과착취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비용상승분만큼 시장가격 인상에 일정 정도의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석유는 대부분의 생산재와 소비재 생산에 원료로 투입되기 때문에 물가인상으로 연결되어 대중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위기는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전면화 될 것인지를 논하지는 않겠다. 이는 공황론의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96, 97년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쟁의 실천적 결론은 경제위기를 빌미로 가해 오는 자본가 계급의 공격에 어떻게 맞서 투쟁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3. 이른바 ‘고임금론’이 노리는 바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처럼 자본가 언론을 앞세운 자본집단들은 올 상반기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온갖 이데올로기적 악선동과 더불어 구속, 수배, 징계, 공권력 투입 등 물리적 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다만 이 ‘하이에나’적 자본집단은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 어슬렁거린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노동자들을 물어뜯고 공격했다. 그것도 하나의 목표를 찾아 집단적으로 공격하고 이 목표물이 만신창이가 되어 죽어 나자빠지면 새로운 신선한 먹이를 찾아 달려들고 있다.
상반기 투쟁에서 나타난 자본집단의 광기어린 각종의 악선동과 폭력은 남한 자본주의가 처한 객관적인 경제위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 객관적 경제상황을 자본집단은 주관적 의도로 부풀리거나 포장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선택적으로 사용하면서 상반기 노동자 투쟁을 압살시켰다. 그것의 핵심이 바로 이른바 레닌의 ‘노동귀족론’을 연상케 하는 정규직 노동자 ‘고임금론’이었다.
서울지하철 공사와 도시철도 공사는 파업 3일차인 22일에 임금명세서를 공개하고 고임금 노동자의 ‘배부른 파업’이라고 악선동을 했다. 자본집단은 서울지하철, LG칼텍스노조의 파업에 대해 “귀족노조 막무가내 투쟁 ‘왕따’”, “고연봉, 고복지 배부른 투쟁 용납 못한다”(한국경제, 8/4)라며 선정적인 비난을 쏟아 부었다. 파업 사업장에 대한 자본가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등에 업고 정부는 신속하게 직권중재 결정과 공권력 투입을 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국민경제나 시민생활에 영향이 큰 사업장의 불법파업에 대해선 즉각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사측도 불법파업에 당당히 맞서라”고 요구했다.
노동자 파업에 대해 고임금론으로 공격하던 조선일보는 LG칼텍스 노조의 파업이 깨지고,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이 무력화 된 뒤에는 “대형 병원 노조들과 금속 노조, 지하철 노조, LG칼텍스 정유 노조 등은 이라크 파병 반대, 비정규직 차별대우 철폐, 완전한 주5일제 획득 등을 요구했다. 임금 문제는 아예 주요 이슈로 내걸지도 않았다”(8월 8일자 사설)며 이제는 ‘사치스런 정치파업’이라고 매도했다.
이제 상반기 노동자 투쟁이 마무리 된 지금 ‘하이에나’적 자본집단은 50일 이상을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코오롱 노조를 목표로 하여 게걸스럽게 달려들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공권력으로 코오롱 노조를 에워싸고 항복을 요구하고 있다.
정규직 노조의 투쟁에 대해 ‘고임금론’으로 악선동을 하던 자본집단은 올초 박일수 열사의 투쟁 당시에는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차별’이라면서 교묘하게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본가 언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나 생산성의 차이를 무시하고 ‘일률적인 동등대우’를 요구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사측만의 책임으로 돌려서도 안된다. 비정규직 문제는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와 생산성을 훨씬 웃도는 임금 인상 그리고 정년까지 단 한 명의 근로자도 해고할 수 없는 경직된 노동시장이 원인”(조선일보 3월 10일자)이라면서 공격목표를 분명히 했다.
경총의 김영배 부회장은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양보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같은 신문)라고 주장을 했다. 결국 자본집단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체 하면서 공격의 방향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통한 노동의 유연화와 임금삭감 임을 분명히 했다. 경총은 지난 1월 28일에는 실업 문제 해결방안을 위한 대기업의 임금동결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한 여건조성을 위해 안정적 노사관계 구축,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주장했다.
어용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은 자본의 요구에 화답하여 정규직의 반성을 촉구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 운운하면서 정규직의 임금 양보를 역설했다. 최근 이용득 한국노총 신임 위원장도 마찬가지로 “노동자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고액연봉을 동결해야 한다”고 정규직의 임금양보를 주장했다.
자본집단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공격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정규직으로 돌려서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정규직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자본은 조직화되고 집단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대공장 정규직 노조를 공격하여 박살내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화물연대나 타워크레인 노조, 건설운송 노조, 대공장 사내하청 노조 등 조직화된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자본의 ‘고임금론’이 노리는 바를 단적으로 정의하면 “정규직 죽이기”와 “비정규직의 확산과 제도화”이다.
그런데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한다”는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조차도 “‘사회적 대화(교섭)’틀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허구적 합의주의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노동자로 한정되어 지는 특수한 노동자 계층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꼴이 될 것이다”(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부유(浮遊)하는 ‘사회적 대화(교섭)논의, 노동자민중에게 과연 무엇인가?”)라고 사회적 합의주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올 4월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을 정규직의 85%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요구에 대해서 한국경제연구소는 “경제성장률이 지난 해(3.1%) 보다 높은 5.0%로 예상되지만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반시장적, 분배 우선적 정책의 도입 가능성 등 위험요인을 감안하면 4%대에 머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자본집단은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이 26조원 이상의 추가비용을 낳을 것이라고 임금인상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최근에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업종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난 해 9월부터 직접 고용관계가 없는 원청업체와 단협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공갈협박, 금품갈취 혐의로 구속 8명, 수배 11명, 출두 요구 20명이라는 건설일용노조에 가해지는 가공할만한 탄압을 보면 자본집단이 얼마나 파렴치한지를 알 수 있다.
지난 8월 9일 열린우리당은 ‘기업규제완화 15개항’을 발표했다. 이 15개 항에는 '산업폐기물 해양 배출 기준 완화와 수도권 대기환경 규제 기준 재검토' 같은 반사회적 내용의 규제완화 방안과 투자활성화 방안이 있다. 이 조항 중에는 “무엇보다 여당이 검토 중인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를 제한한 현 노동관련법 규정의 철폐는 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노동계의 파업 양상 자체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자본가 언론 스스로 고백할 만큼 노동자에게 재앙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 ‘고임금론’에 대한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실천은?
경제위기 논쟁은 객관적 사실의 문제인 동시에 고도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자본집단이나 노동운동 진영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본집단의 뻔뻔하고도 치밀한 대노동자 공격에 대해 노동자들은 적극적으로 응수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자본의 ‘대기업 이기주의 공세’에 대해 “그나마 기업의 투명성도 보장되지 않고, 임금인상을 억제해서 그 수익금이 비정규직 등으로 환원되는 아무런 장치도 없는 가운데 임금억제만 주장하는 것은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는 떼강도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노동과 세계, 제286호)라고 맞대응하고 있다. 자본의 공세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논리는 몰계급적인 경영참가나 반노동자적인 정규직 임금양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본의 고임금론 악선동에 대해 해당 노조들은 “실제 노동시간에 비해서 과도하게 언론이 부풀리고 있다”거나 “장기 근속자의 예를 가지고 평균적 노동자의 임금으로 왜곡하고 있다”, “주요 요구안은 임금이 아니라 인원 충원 문제나 비정규직 차별철폐의 문제다”라며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코오롱 노조의 경우에는 “3조 3교대로 그 어느 사업장보다 노동강도가 높은 현실을 무시하고 고임금 노동자들의 불법파업으로 몰아가려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 논리들은 나름대로 대중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폭로사례다.
이 보다 더 적극적인 대응은 각각 노동자 평균임금의 119배, 11배 이상에 달하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임원 연봉과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교하고 폭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이윤 대비 임금 몫을 비교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는 그것이 가지는 적극적인 의의에도 불구하고 생산과정 내에서의 노동력의 실질적인 착취라는 노자관계의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다.
자본은 노동자를 착취해서 나온 부가된 잉여가치를 가지고 먼저 화폐자본가에게 이자를 지급하고,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를 나눠준다.(물론 현대 금융자본은 스스로 은행자본을 소유하고, 토지를 소유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재생산에 투입한 뒤 남는 잉여가치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봉급과 노동자의 임금을 나눠서 지급한다. 재생산에 투입된 잉여가치는 자본에게 직접 분배되지는 않지만 확대재생산에 투하되어 임금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예속과 지배의 자본주의적 관계를 재생산하기 때문에 자본가의 몫에 다름 아니다.
자본은 관리, 감독을 포함하는 ‘기획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봉급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기획노동’의 역할은 생산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산산이 깨져 나간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현대 대자본가들은 ‘기능자본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자본은 단지 주식 소유권을 가지고도 자신의 고연봉을 합리화하지만 주식은 자본의 이윤을 근거로 한 가공자본으로 거품이 꺼질 때 휴지조각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자본은 “올 1월-5월 명목임금 상승률은 4.6%이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 3.3%를 감안한 실질임금 상승률은 1.3%에 그쳤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의 실질임금 상승률 7.1%의 5분의 1도 안되는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며 물가오름폭의 절반에도 못미칠 정도로 둔화된 것이다”(한국경제, 8월 12일자)라며 물가인상에 비한 실질임금 상승률 둔화가 소비위축을 가져올 것을 우려했다. 자본이 소비위축을 우려하면서도 ‘고임금론’으로 노동자를 공격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 자신들의 이윤을 축소시킬 것을 우려하는 한편, 고임금론 공격을 통해 조직된 노동자 대오를 말살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관점으로 자본의 악선동에 맞서 싸워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자본간의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죽고 사느냐”의 정글의 법칙 앞에서는 힘이 곧 무기이고 오직 승리하는 것만이 진실일 뿐이다. 그런데 자본집단의 막가파식 악선동 앞에서 노동운동 진영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철저했을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굴복하고 항복하였다.
작년 철도 투쟁의 선복귀 이후에 무조건적인 선복귀가 유행이 되고 있다. 예전에는 노동대중들을 배신한 기만적인 합의가 질타를 받았다면 이제는 그 합의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복귀하여 과연 “무엇을 위한, 왜 파업을 했는가?”라는 파업투쟁 무용론이 횡횡하고 있다.
특히 올해 투쟁에서 보건의료노조의 관료주의적 중앙교섭과 합법주의에 매몰된 교섭주의 전략은 해당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칼텍스와 코오롱 노조의 투쟁에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면서 전체 노동계급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또한 파병에 맞서 군수품 수송을 거부하는 정치투쟁을 전개하겠다던 대한한공 노조는 자본의 협박에 굴복한 무쟁의 타결로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극우적 자본집단은 ‘네델란드식 노사정 합의 모델’ 조차도 ‘노조 편향적 정책’이라면서 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극우적 자본집단이 비판하는 사회적 합의모델은 “우리도 이제,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경영진은 투명경영과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노사간 협약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라는 정부 관료의 주장을 볼 때 오로지 자본을 위한 정책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극우적 자본집단이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상반기 투쟁에서 번번이 백기항복하는 노동자 투쟁을 보면서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절차와 형식마저도 번거롭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집단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반면에 상반기 투쟁전선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노동자 계급은 심연(深淵)의 패배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결국 우리는 개량주의, 관료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적 합의주의와의 ‘전략적 반대’ 투쟁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 또 다시 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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