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고>
효성 손배 가압류 -죽거나! 당하거나!
-효성 조합원 정명자
4백여명 290억에서 57명 70억으로
2001년 5월 25일 효성 노동조합은 ‘불법’파업을 했다.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사측의 방해로 불가능했고, 파업을 저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진행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113일간에 걸친 질기고 격렬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파업은 승리하지 못했다. 파업 대오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면서 사측의 징계와 현장 탄압 속에서 급격하게 무너져 내려갔고 우왕좌왕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2001년을 보냈다. 그리고 2002년 상반기 다시 한번 철농과 단식을 통해 반격을 시도했지만 현장이 일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판에 뒤집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속에 47명에 달하는 해고자들은 조직을 정비하고 출투와 각종 투쟁에 결합하면서 해고자 투쟁의 일상을 만들어 갔다. 2003년 열사들의 투쟁으로 촉발된 손배․가압류 투쟁시기에는 해고자들은 서울역과 열린우리당 점거투쟁을 하였고, 그나마 움직이는 현장 활동가들은 공장 정문 앞에서 작은 투쟁을 전개했다. 당시 손배․가압류 문제는 아직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었다.
법은 멀지만 거머리처럼 끝까지 달라붙는다.
2001년 파업 당시 효성 노조와 조합원에게 떨어진 손배․가압류 금액은 290억 이었다. 파업 대오들의 통장은 거의 다 묶였고, 집과 전세금에 대한 압류는 기본이었다. 심지어는 집까지 들어와 빨간 딱지를 붙이며 파업 대오를 위협하고 복귀를 협박했다. 그러나 당시의 투쟁기운 속에서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게만 보였고 그래서 그런 짓거리가 코미디로 보였고 아무 위협이 되지 않았다. 파업이 끝나고도 3년이 되어 가는데 재판은 지지 부진했고 그래서 더욱 손배․가압류 문제는 그리 심각한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가 저러다 말지 끝까지 가겠나,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사례가 없었다는데’ 그런 기대 속에 속편하게 지내왔다. 그러나 서서히 일상에 젖어들고 투쟁이 생겨나지 않는 가운데 법원에서 날라 오는 종이쪼가리 하나가 일상을 흔드는 위협이 되는 상황이 되니 손배․가압류는 엄청난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2003년 6월에 태광에 대한 손배․가압류 재판 판결이 나왔고 그걸 보며 발등에 떨어진 불이란 다급한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그러나 어떻게 꺼야 하나.
그러나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투쟁이란 너무 멀고먼 당신이 되어있었다. 거기다 3백명이 넘는 사람에게 떨어져 있던 손배․가압류는 풀어줄 사람은 거의 다 풀어주고 57명에게만 남는 짐이 되어 더욱 대상자들을 힘 빠지게 했다. 몇 번을 모였으나 모임에 나오는 사람은 절반을 넘는 정도였고 모여서 논의를 해도 무얼 하자보다는 무얼 해도 안된다는 생각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농담 삼아 사람들이 모이면 ‘이건 누가 죽어야 해결되는 거지 뭘 해도 안된다’ ‘누가 죽을지 뽑자, 오래 타는 니가 끄실러라’ 듣기에 따라선 섬뜩한 얘기들을 웃으며 주고받곤 한다. 그러나 모든 투쟁은 계획되어서가 아니라 몸으로 겪어야 일어나는 것. 몇 번의 모임이 되는 둥 마는 둥 모이다 흩어지다, 판결을 코앞에 둔 6월부터는 체계적으로 모임을 꾸려가기 위한 노력을 해가고 있다. ‘손배 가압류 철폐를 위한 투쟁 기획단’을 꾸려서 모임을 정례화하고, 손배 가압류 대상자들 전체가 투쟁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첫 발을 떼다.
기획단에선 그 첫번째 행동으로 7월 15일 전체 대상자를 조직하여 ‘거리 선전전’과 손배․가압류에 대한 간단한 교육, 법원 앞 집회를 계획하였다. 막상 당일 실제로 행해진 것은 준비팀의 잘못으로 ‘거리 선전전’과 간단한 교육 정도였지만 일단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위안한다. 야간을 마치고, 휴무를 내고, 출투에 잘 안보이던 해고자들도 참석하여 모여도 스무명 조금 넘는 인원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라도 모여서 공동행동을 함으로써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인을 한 것으로 우린 첫 발을 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체적으로 모아지는 생각은 손배․가압류 재판에서 지면 우리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액수가 크면 너무 커서 불가능 한것이고 적더라도 억울해서 어떻게 배상한단 말인가. 파업을 자본이 손해 보라고 하지 득 보라고 하는 것인가. 더 분한 것은 실제로 저들이 손해 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01년에 저들은 역대 최고의 매출액과 순이익을 올렸다.
남는 문제들
손배․가압류 재판은 8월 9일 결심을 하고 곧 선고를 하게 될 것이다. 태광의 예로 보아서 기각이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법이 손배에 대한 집행을 인정하고 나면 어떤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인가. 가장 확실한 길은 사측의 숨통을 조여서 취하시키는 것인데 현장은 숨죽이고 있고, 노조는 사측의 꼭두각시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데 저들을 압박할 수 있는 당장의 투쟁방안이 있기는 한 것인가. 또다시 항소를 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 나가는 과정을 진행 시켜야 하는가. 어차피 저들의 법인 것을. 이런 낙서를 본 기억이 난다. ‘끝까지 싸우자, 최소한 비기자, 지면 개기자’ 한참을 웃으면서 ‘맞아 맞아’ 했던 글귀였는데 지금 드는 생각은 개기는 것도 힘이구나, 우리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개길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으니 개기면서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수밖엔 없지 않나. 현실에 닥친 싸움을 피하지 않고, 자기 활동을 내팽개치지 않고, 멈춰 있는 것 같지만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처럼 그렇게 나아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효성, 태광 손배 가압류 재판 진행 경과
효성은 2001년 3월부터 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손배 가압류를 하였고, 파업에 돌입하자 조합원 4백여명과 노동조합을 상대로 290억의 손배 가압류를 하였다. 파업이 끝나고 파업대오가 현장으로 복귀한 뒤 선별적으로 개인들을 골라 손배 가압류를 풀더니 2003년에는 노동조합과 개인 57명을 제외한 전원에 대해 손배 가압류를 취하하였다. 2001년에 제기된 재판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3년을 끌어왔다.
올 6월 태광 자본이 태광 정리해고자에 대해 신청한 손배 가압류 20억에 대해 재판부가 ‘노조 간부는 노동조합으로 볼 수 있으므로 간부 19명에 대해 각 천만원씩, 1억 9천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하였다.
그 후, 효성 재판도 6월부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7월 15일 재판에서 재판부는 8월 9일 양측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참석하여 조정을 거치고 그게 안 되면 결심을 통해 선고 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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