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노신의 ‘도시철도 7시간 파업보고서’에 대한 반론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이하 사노신)은 03년에 도시철도가 벌인 임단협 투쟁에 대한 상황을 보고함과 동시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였다. 7시간에 불과했던 파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이 매우 자세하게 설명되었지만 도시철도 집행부, 민주파 활동가 내부, 어용 각 분파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결여되어 있어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 사노신은 "쟁대위와 활동가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재의 투쟁을 최대한 강화시키고 조직하려는 노력보다 투쟁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평가를 받쳐줄 구체적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쟁대위와 활동가들의 불신관계라는 분석은 옳지 않다. 위원장을 비롯한 중앙 임원과 지부장, 대의원을 포함하는 현장간부 사이의 불신이 본질이다. 쟁대위에서 민주파 확대간부와 대의원들은 중앙(위원장)을 강제하기 위한 회의체 내에서의 투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문제는 싸잡아 표현한 '쟁대위와 활동가들의 불신'이 아니라 쟁대위 안에서의 조직화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 현장회를 중심으로 하는 현장의 활동가들이 조합 회의체 밖에서 03투쟁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 사업장 차원의 현장투쟁을 제대로 벌여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 "파업현장의 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투쟁력을 높여나가지 못하고 지도부와 함께 주저앉아 버린 것은 전투적 활동가들의 한계였다"는 지적은 도시철도 내의 민주파 활동가들의 현재 수준을 드러내는 측면에서는 맞다.
그러나 그것뿐 이다. 도시철도 내 민주파 활동가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조직적 중심으로 묶는 주체가 현재 없다. 현장회는 4개 직능을 포괄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활동과 실천에 조직적 강제력과 규정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03년 투쟁을 실질적인 파업투쟁으로 조직하겠다는 선언 외에 정말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투쟁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03년 투쟁에서 집행부외 현장의 구심으로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다.
문제는 전투적 활동가들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전투적 활동가들을 어떻게 재편하고 현장의 대안세력으로 우뚝 세울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함께 제출되어야 한다.
- 또한 신내기지에서의 공사최종안에 대한 찬반투표는 민주파 활동가들이 파업을 종료하고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제안된 전술이 아니다.
집행부가 제대로 투쟁하고 있지 못한 상황, 파업을 어떻게든 정리하고자 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의 힘에 의해, 결정에 의해 집행부의 파업회피를 막기 위한 적극적 전술이었다. 투쟁의 동력인 조합원들 스스로 최종 결정권한을 갖게 하자는 것이었다. 집행부는 파업 전부터 파업대오에서의 찬반투표를 상정하고 투표용지를 사전에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집행부는 조합원들에 의해 면죄부를 받았다. 문제는 파업대오에서의 파업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찬반투표라는 형식에 있지 않다. 파업현장을 책임지고 구심 역할을 할 조직적 단위가 있는가의 여부이다. 이때 찬반투표는 오히려 파업을 어떻게든 중단하고자 하는 집행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조직적 지도단위나 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전술을 구사한 것은 잘못되었다. 사노신에서는 잠정합의안 찬반투표가 집행부와 활동가들을 싸잡아서 면피 구실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왜곡된 평가이다.
- "몇몇 활동가들이 쟁대위에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쟁대위가 수용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뼈 속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옳다. 뼈 속 깊이 사무치는 말이다. "활동의 중심은 지도부에 대한 강제가 아니라 대중의 조직화여야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지도부에 대한 강제와 대중의 조직화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취사선택 되어질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도부에 대한 강제는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가 아니라 민주파의 의견을 관철시키도록 해야 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를 독자적인 실천 활동으로 벌여내야 한다. 모든 투쟁을 계획하고 전체의 투쟁으로 조직하는 것을 노동조합 질서에 맡겨둬서는 안된다. 집행체계를 최대한 강제하고 투쟁에 나서도록 조직하는 것과 병행해서 현장에서의 독자적인 실천, 일상적인 현장투쟁을 벌여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현장조직의 몫이다. 이것은 이분법적으로 사고할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합체계를 통한 강제와 현장 대중 속에서의 직접적인 실천 활동, 조직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파업 종료와 임단협 합의서 서명으로 03년 투쟁은 끝났다.
집행부가 무릎 꿇고 항복하면서 투쟁을 정리하자 칼자루는 고스란히 공사에게로 넘어 갔다. 공사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 대한 무단결근 처리, 간부들에 대한 징계 협박, 합의사항의 미이행, 합의내용에 대한 번복, 시간 끌기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집행부에 대한 현장의 불신은 극대화되었다. 집행부는 협조주의적 행태들을 점점 노골화해가고 있다. 집행부는 공사가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중에 노사화합 명목으로 계획한 노사공동 단체교섭 워크샵, 등반대회, 도철문화제 등에 전적으로 동참하고 있고 이를 명분삼아 미해결된 합의사항 이행을 이끌어내고 있다. 도철 민주파 활동가들은 집행부의 이와 같은 협조주의적 행태를 끊어 내야 한다.
현재 현장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어용들이 '민주' 집행부를 흔들어서가 아니다. 현 집행부가 노사협조적 집행부로서의 성격을 노골화해 가는 것을 조합원들이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다. 03년 투쟁과 후속조치 이행의 전과정에서 무력했던 도철 내 민주파 활동가들은 집행부에 대한 자기입장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집행부가 문제 있다"는 인식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민주연합선본'으로 현 집행부를 세웠다는 부채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 책임지는 자세는 집행부에 대한 보위가 아니다. 투쟁을 조직하고자 하는 아무런 계획 없이 양보와 교섭만으로 실리를 따내고자 하는 현 집행부와 맞서 구체적인 실천투쟁을 벌여 내고 바로 닥친 투쟁에 현장 조합원들이 나서도록 조직화해야 한다. 상반기에 맞이하는 '노동시간단축과 단협갱신, 04년 임투'는 도철 내 민주파들이 03년 투쟁에서의 한계와 오류들을 극복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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