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Category |
![]() |
|
노정협
|
2006-04-25 19:08:19, 조회:2,175, 추천:279
|
![]() |
|
|
![]() |
파업과 지도력
파업의 성격변화
파업은 할 수밖에 없었다. 파업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도록 자본과 자본가 정권이 만들었기 때문에 했다. 물론 자본이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주고 충족시키면 파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파업은 언제나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노자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라면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할 수 밖에 없는 파업’은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파업, 피하고 피하다가 떠밀려서 하는 파업을 말한다.
처음부터 민주노조운동이 떠밀린 파업을 한 것은 아니다. 1987년 이후 1990년 초반까지 민주노조진영은 노동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내걸고 자본가와 협상하여 노동자의 주요한 요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파업을 하려고 하였다. 파업이라는 무기를 활용하여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고 노동자의 단결력을 강화하고 자본을 압박하려고 하였다. 즉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파업을 조직하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힘의 관계를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소련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에 따른 사상의 혼란과 정치조직의 해체와 변절, 전망의 상실, 일정한 명분과 합법성을 갖춘 김영삼 정권의 등장은 다양한 타협주의 노동운동이 창궐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하지만 노자협조주의자들의 바람은 그 자신들의 주관적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은 여전히 노동자를 배제하는 일방적 정책을 펼쳤고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다. 노자협조주의자들은 파업을 피하고 생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지만 자본은 이들의 애절한 눈빛을 모질게 외면했다. 결국 파업은 피할 수 없었다.
자본은 신경영전략을 통하여 현장을 파고 들어와서 현장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었지만 현장에는 전노협의 정신을 계승하는 현장 활동가들(건강한 전투파)이 있었고 현장 노동자들의 분노와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자본이 노동자의 요구를 외면하면 노조 집행부는 파업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파업에 들어가면 노동자 투쟁은 급속하게 강화됐다. 노동자의 역동성이 파업에서 건강하게 발휘되었다. 90년대 중반은 자본의 공세를 파업을 통하여 막아내면서 서서히 밀리는 국면이었다. 이 국면은 96-97년 노개투 총파업을 통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의 더러운 거래는 투쟁의 성과를 심각하게 왜곡했고 97년 남한 자본주의 공황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만들었다.
소위 IMF체제는 1987년 노동체제를 부정하고 자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노동체제가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과 자본가정권은 자본의 위기를 전면에 내세워서 강력하고 끊임없이 현장을 압박하고 1987년 이후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얻은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 현장에서 자본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되찾았다. 자본은 강력한 탄압과 함께 90년대 들어와서 진행한 개별적 노사관계의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전투파는 체제의 전망과 전투적 투쟁을 결합시키는 데 실패하고 전국적 전선을 형성하는 힘을 잃어갔다.
‘현장권력’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무너진 자리에 자본의 완강한 권력이 들어왔다. 일상적인 치열한 현장투쟁은 이슈가 발생하면 싸우는 사후 약 방문 식 투쟁으로 변했다. 물론 이 때에도 노동자는 무조건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파업을 통하여 특히, 공공부문 대공장 노조의 파업을 중심으로 자본과 자본가 정권의 공격에 저항하면서 밀렸다. 그러나 이 때는 90년 대 중반과는 두 가지가 달랐다.
첫째, 자본은 아주 완강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남한 자본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은 전혀 타협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항복!’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의 위기의식과 현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둘째, 노조 관료주의자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파업을 피하거나 파업을 파괴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명분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거나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타협을 하거나 파업 이후에 투쟁이 확대되자 겁나서 일방적인 업무복귀를 선언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직권조인이 점차적으로 현장에서 용인되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다. 자본에 대한 두려움, 현장으로부터의 자립화의 심화,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적 해결 시도는 관료주의자들의 자립적 행동의 폭을 넓혀 주었다.
여기에서 공통적인 것은 노동자의 현장권력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현장 활동가와 현장 노동자 사이가 벌어졌고 현장 활동가들의 현장 지도력이 약화되었다. 자본에 저항하고 관료주의자들을 압박할 수 있는 현장 투쟁의 진지가 허물어진 것이다. 이것은 현장투쟁을 체제의 전망과 결합시키고 체제의 전망 아래서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데 실패한 결과이다.
현장조직은 독자적인 자신들의 전망을 창출하고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여 노조의 부속물로 전락했다. 비공식적인 노조조직이 되었다. 일상적인 현장활동과 파업의 준비와 진행 그리고 파업의 종결 때 독자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노조의 품에 묻혀서 노조와 운명을 같이하는 노조의 부속기관이 되었다. 노조 집행부 장악과 노조활동이 모든 것이 되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철도와 지하철 파업 전야제를 보라! 철도의 현장조직들은 그 ‘현장조직의 이름’으로 파업 전과 파업과정, 업무 복귀 때에 무엇을 하였는가? 그냥 노조원으로서 노조의 테두리에서 열심히 헌신적으로 활동했을 뿐이다. 위원장의 업무복귀 결정이 속보로 인터넷에 뜰 때 올라온 현장조직 명의의 유인물은 그 시점과 관련해서 볼 때,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서울지하철 노조 파업 전야제에서 위원장의 업무복귀 명령에 대하여 자유발언을 요구하며 단상에 올라가다가 관료들에게 끌려 내려온 노동자는 단 2명이었다. 그 중의 한 명은 자신이 속한 현장조직에서 ‘돌출죄’를 물어서 제명하려고 해서 그 현장조직을 비판하고 그 현장조직을 탈퇴한 일도 있었다. 이제 노조는 모든 것이 되었다!
파업의 역동성과 역학관계
우리는 파업의 역동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파업의 역동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파업의 지도력과 준비를 강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파업의 역동성은 주체가 노동자이기 때문이지만 이 노동자는 추상적인 노동자가 아니라 역사적인 노동자이다. 누적된 노자관계, 누적된 노동자의 경험과 분노의 기억, 지도력과 현실적 역학관계가 응집된 구체적인 노동자이다.
현재 자본은 노자관계의 주도권을 확고하게 쥐고 있다. 관료주의자들은 안하무인이다. 현장의 지도력은 너무 미약하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 부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공장에서 파업이 조직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본이 주도하는 파업이 만들어 질 가능성이 크도록 한다.
파업이 벌어지면 어찌할 줄 모르다가 위원장의 업무복귀 한마디에 무너지는 어이없는 현실이 만들어졌다. 노동자 파업의 역동성은 존재하지만 그 역동성은 자본의 강력한 공격과 관료주의자들의 파업파괴 행동, 정치적 지도의 부재, 불신에 의해 제약되고 왜곡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파업이 안 되어도 문제고 파업이 시작 되더라도 문제이다.
이제 파업이 되면 자동적으로 노동자의 역동성이 발휘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아주 무책임한 태도이다. “파업으로만 가면 된다”가 아니라 “어떻게 파업을 조직할 것인가”에 관심과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이 때 핵심적인 것은 적은 수의 힘이라도 현장의 정치적 지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부단히 일상적 현장활동에서 독자적인 입장을 제출하고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파업 때는 파업의 준비와 진행과정, 종결 때 독자적인 행동을 조합원과 함께 조합원 앞에서 명확하게 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대중 앞에 밝히고 공개적으로 행동하여 대중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대중의 정서를 두려워하여 진실을 말하기를 꺼려해서는 안된다. 대중은 알아야 하고 알고서 스스로 결정하여 행동해야 한다. 대중을 믿고 대중에게 말하고 대중이 생각하게 하고 토론해야 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모든 것을 활동가들이 대리해서 다 해줄 것처럼 말하거나 “파업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활동가들은 메시아가 아니라 현장의 대중 투쟁가들이고 참주 선동가가 아니라 진실의 선동가들이다. 어려움도 두려움도 대중에게 정직하게 말하고 함께 나누고 돌파해야 한다.
파업의 조건, 진행국면과 종결국면의 성격과 해야 할 임무와 과제를 밝히고 대중의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의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은 대중의 신뢰와 활동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특히, 아주 강하게 말하다가 정작 행동해야 할 때에 몸을 사리거나 숨기는 말만 전투적인 행동은 활동가들을 대중의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경계해야 할 태도가 있다. 현재 활동의 어려움을 이유로, 대중의 정서를 핑계로, 수세기라는 국면의 성격을 이유로 현장투쟁의 조직화와 지도를 포기하고 소모임 속으로 숨어서 자족적으로 순결성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패배주의이고 기권주의이고 자족주의이다. 활동은 연속적이고 역사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활동환경이 좋아지거나 활동가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활동과 영향력을 통하여 비약의 계기가 만들어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다. 대중이 어려울 때는 대중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대중의 상태가 좋을 때만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태도이다.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현장의 핵심모임을 만들고 일상투쟁에서 파업까지 전체 과정에서 정치적 지도력과 대중적 선도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자본의 공격에 맞서서, 관료주의자들의 광란에 맞서서 대중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앞서서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가장 먼저 투쟁에 앞장서고 가장 늦게까지 투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정치적 지도력과 책임 있는 행동만이 파업에서 대중의 역동성을 되살리고 새로운 현장조직을 만들고 현장권력을 형성하는 계기를 창출할 수 있다. 자본연출, 관료주의자 주연의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준비하고 계획하고 끝내는 노동자의 대중파업을 조직해 나갈 수 있다. 우리 모두 파업의 주인이 되자!<노/정/협> |
|
|
![]() |
![]() |
 |
|
![]() |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150-898)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15-3 301호
노동자정치신문 Tel. 070-8254-1917 / E-mail labor04@jinbo.net
copyleft by 노정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