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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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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0:47:07, 조회:2,196, 추천: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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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역무활동가
조합원은 공부 중
“아무개가 파주 당첨 되었다”
부러운 탄성들이 이어진다. 요즈음 조합원들 최대의 관심사는 아파트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 재테크다. 조합원들 모인 자리에서는 예외 없이 누가 아파트 분양받아 1년 만에 1억 벌었다는 얘기, 어느 지역이 오를 것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한 채 분양받지 않은 조합원들은 괴짜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경제신문 필독은 기본이고 인기 있는 부동산 관련 서적들을 탐독한다. 경제동향을 줄줄 읊어대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들을 한다. 40대 초반에 이른 중견 조합원들이 아파트에 열을 올리는 반면에 입사 2,3년차 조합원들은 공무원 수험서, 토익 공부에 열심이다. 현장 조합원들은 날아가고 싶어 한다. 도시철도 사업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소수로 전락한 민주파
지난 9월 도철 대의원선거에서 민주파는 30명이 당선되었다. 전체 120명 대의원의 3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다. 민주파를 제외한 나머지 대의원들의 경우 대부분 회사가 만들거나 어용노조가 내세운 후보들이다. 조합의 주요 결정사항을 대의원대회에서 다루기 때문에 민주파 활동가들은 그동안 회의체 투쟁에 집중해 왔다. 그렇지만 공식 회의체에서 소수로 전락하게 되어 앞으로는 회의체계를 활용한 투쟁보다는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거나 거부하면서 민주파의 독자적인 입장들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이번 대의원선거는 어떠한 쟁점이나 긴장감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민주파 활동가들이 나온 선거구에는 예외 없이 어용 후보가 붙거나, 급조되어 경선이 되었지만 그 외에는 모두 단독 후보로 출마했다. 대의원선거는 민주파 활동가들에게는 소수 위치를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지만 현장 조합원들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일으키지 않았다. 경선으로 선거가 치러진 선거구에서조차 조합원들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고 단독 선거구의 경우 조합원들은 누가 대의원 선거에 나왔는지조차 몰랐으며, 후보는 선거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주파 활동가들만 참 외로운 선거운동을 벌였다. 새벽 첫차를 타고 시작한 선거 운동을 막차 끝날 때야 마무리하는 운동 방식은 민주파의 성실함을 보여주는데 그쳤을 뿐이다.
현장 조합원들은 “어용도 싫지만 민투위도 싫다”고 한다.
어용세력들은 “명분 뿐인 투쟁이 아니라 실리를 가져오겠다”고 조합원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당선된 어용 집행부가 조합원에게 가져다준 실리는 없다(설 선물로 30만원 상품권을 준 것을 실리라면 할 말 없다). 집행부가 묵인하고 조합원들을 기만하면서 구조조정은 가속화되었고 현장통제는 강화되었다. 조합원들은 집행부에 불만을 많이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 불만이 민투위로 대표되는 민주파 활동가들에 대한 지지로 바뀌지 않는다. 집행부의 무능과 파렴치함도 싫지만, 민투위가 주장하는 “투쟁해야 지킬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민투위 집행부(사실 아님)가 파업을 했지만 얻은 것은 하나도 없고 손해만 봤다. 그런데 다시 민투위가 집행부를 잡으면 무모하게 파업을 또 할 것이고, 조합원들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게 조합원들의 정서다. 이런 정서는 결과적으로는 어용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또 하나, 이번 대의원선거에서는 사측의 선거 개입방식이 이전과 달라졌다.
선거운동을 가장 치열하게 벌여내는 것은 언제나 사측 관리자놈들 이었다. 후보를 내세워야 하고, 술자리를 벌여야 하고, 승진을 미끼로 던져 주고, 편한 곳에 계속 남아 있고 싶으냐는 위협을 일삼았다. 운동기간 내내 조합원 동향을 체크하고, 투표율을 파악하고, 투표를 재촉하고 민주파를 헐뜯는 유언비어를 흘리는 등 그들에게 노동조합 선거는 가장 중요한 업무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사측의 개입은 현격하게 줄었다. 민주파 후보들이 나온 곳이 단 한곳 예외도 없이 경선구도가 되고 일부 관리자들이 자기보신용으로 저지르는 행태들이 있긴 했지만 사측이 전체 구도를 잡고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선거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파는 떨어졌다. 역무의 경우 활동가조직인 단동회에서 나온 7명의 후보는 전원 탈락했다. 7명 후보의 개인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경선인 선거구를 찾아보며 “여기만 민주파 나왔구만”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굳이 회사가 나서서 “누구 찍어라”는 수고를 하지 않더라도 조합원들은 이미 알고 있다, 누가 민주파 후보인지, 회사가 원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현장 질서는 회사가 완전 장악했다. 굳이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통제방식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회사의 논리와 의도를 조합원들은 내면화하고 있다.
선거 이후
선거 이후 회사는 회사대로, 조합은 조합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회사는 구조조정 속도를 높였다. 인원 활용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근무형태 개악(2조1교대 비숙박근무), TTU폐지 등 업무축소, 부동산임대 수익사업개발을 어떤 견제도 없이 추진하고 있다. 조합은 11월 초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자신들의 공약이라고 내세우는 조합비인하를 관철시키겠다고 떠들고 있다. 해고자생계비지원 항목을 줄여서 조합원들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상급단체 연맹비를 내지 않고 그 돈으로 해고자들 생계비 깎인 것 보전해주겠다고 덧붙이고 있기는 하다.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6개월 넘게 천막농성을 벌인 해고자들은 천막 철거를 계획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한때 주식에 미쳐 있었다.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퇴직금중간정산을 받아서 주식에 투자하고 거덜났다. 로또열풍이 불자 너나 할 것 없이 로또에 빠져 들었고 누가 당첨되어 도철을 떠났다는 풍문이 돌았다. 지금은 아파트가 자신들의 처지를 바꿔줄 것이라고 매달리고 있다. 늦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 조합원들은 이곳에서는 내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용 집행부가 구조조정에 맞선 싸움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민투위가 나선다고 그 싸움에서 승리할 거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다. 어디라고 투쟁해서 승리한 곳이 있는가? 나 스스로 미래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는 개인주의, 패배주의가 현장에 만연해 있다.
민주파 활동가들은 현장을 주도하기는커녕 방어조차 힘겨운 극소수세력으로 전락하고, 투본을 해체하면서 아무런 조직적 구심조차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어려움은 현장에서 극복해야만 한다. 조합원들의 패배의식 한편에 잠재되어 있는 분노를 일깨우는 실천들을 부단히 벌여 나가야만 한다. 활동가들을 집결시키는 조직은 어느 어느 지점에 동의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공동실천과 공동투쟁 속에서 재확인하고 검증하면서 구심을 만들어야 한다. 한때 조합원들은 ‘민투위’에 희망을 걸었다.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고 감격에 겨워한 때가 있었다. 지금 있는 이곳이 그들에게 모든 것이고 희망일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 몫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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