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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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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13:13:14, 조회:2,506, 추천: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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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의 중심, 세종시 논란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력투쟁의 정점, 세종시 문제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서 도시 건설을 둘러싸고 세종시 문제만큼 치열하게 정치적 논란의 와중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세종시 문제는 사실 가장 멀리는 봉건 지배 권력의 교체기마다, 현대사에서는 77년 박정희 정권의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서부터, 가까이는 노무현의 2002년 대선 공약 제시와 2004년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관습법’이라는 봉건적 논리를 들어 수도이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청와대를 제외하고 규모가 축소된 9개 행정부처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즉 세종시 건설 문제로 나타났다. 노무현정권 시절에 세종시 이전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되는 듯싶었으나 이명박정권이 작년부터 행정복합 도시인 세종시 건설 원안을 폐기하고 세종시 이전을 사실상 백지화하는 교육, 과학 중심 도시인 세종시 수정안을 언급하면서 거의 1년여 동안 블랙홀처럼 모든 정치세력을 권력투쟁의 장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세력 대 반동적 부르주아 정치세력 내부의 논란이었으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뒤에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박근혜 진영이 세종시 원안 사수 입장을 밝히면서 한나라당 내부로까지 권력투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이제 한나라당 내부의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대립, 정권과 야당의 대립,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대립, 정권과 충청도 민중, 서울과 지방의 토지 소유자의 대립, 서울과 지방, 각 지방 간의 대립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나타나고 있다.
세종시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고, ‘강도론’ 운운하며 저열한 말싸움과 진흙땅 개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근 1년에 걸쳐 기존 정치세력들은 날마다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고, 언론 역시 저마다의 해석을 하며 수천, 수만 개의 기사를 토해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는 권력을 향한 지배자들의 궁중 암투를 그리는 사극 드라마에서 역사의 본질을 발견할 수 없듯, 권력투쟁의 문제만을 흥미 위주로 보도하면서 깊이 있는 진실을 찾아 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심층적인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는 소부르주아 언론마저도 세종시 원안이 균형발전,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인 냥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진흙탕에서 진주를 발견할 수 있듯이, 우리는 현상적인 권력 투쟁 배후에 담긴 본질에 한 발짝이라도 더 접근해야 한다. 세종시 문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가?
세종시 논란에서 본질에 접근하기
우습게도 우익들의 가당찮은 색깔론 속에서 우리는 세종시 문제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뉴라이트인 전원책변호사는 세종시 토론회에서 “‘천도는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이 나라의 중심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배세력을 등장시키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절차’이라며 ‘그건 국토균형발전이나 수도권 과밀 해소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념의 문제(계급혁명적 발상)’”(독립신문 09/ 11/9, “행정수도 이전은 계급혁명적 발상”)라고 주장했다. 이인제는 “노무현이 수도이전을 들고 나왔을 때 그는 혁명을 꿈꾸고 있었고, 혁명이 성공하면 마땅히 구세력의 근거지인 서울에서 아예 수도를 옮겨버리겠다는 것이었다.”며 “선거에서 승리한 후 보여준 그의 행보가 이를 뒷받침하고도 남는다.”(뉴데일리 10/02/17, 정부부처 무조건 이전은 본질 벗어난 일)고 주장을 했다.
황당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지배권력 주류에게 있어서 행정수도 이전은 행정과 정치, 경제권력이 집중된 서울 중심의 권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문제인 것이다. 물론 권력의 공간적 이전이 권력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지배권력이 누리는 기득권과 계급적 이해를 계속적으로 누리려 하는 것이다.
공간도 이와 같이 권력을 매개하고 가시화하는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가는 공간을 개발하고, 동원하고, 구획하고, 점령하고, 전복시킴으로써 권력을 행사한다. …… 그러나 살아 있는 정치권력이 서울에 머물러 있는 한, 재벌 기업들이 이전할 리 만무하고, 설령 이들의 일부 공장이 이전한다고 해서 현 정부가 호소하는 대로 갑작스럽게 첨단 과학기술 발전 벨트가 조성되고 자족 기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세종시를 둘러싼 다툼의 쟁점은 중앙 부처의 일부 이전 여부인 듯하지만, 실상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이해관계와 세종시로 상징되는 비수도권 지방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최병두/대구대 교수.지리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6호] 10/1/6, 「세종시와 4대강 배회하는 권력의지」).
세종시를 둘러싼 권력투쟁의 문제를 지배계급 내부의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투쟁으로 보는 관점은 현상적인 권력투쟁을 보도하는 부르주아 신문 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한 차원 더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인식은 도시라는 공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계급투쟁과 자본의 계급지배를 분석하는 신(新)맑스주의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리라 짐작한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과 그 기본적인 지배에 대한 계급관계를 재생하려는 경향은 도시 정치의 주축이 되었다. 생산, 소비, 교환의 조직화를 위한 효과적인 하부구조의 역할을 하면서 자본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지탱해 주기에 적당한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의 형성은 정치적. 경영적 관심의 제일선으로 밀려왔다. 그런 문제들은 그것이 도시간 경쟁에서 성장, 축적, 혁신과 효율성을 보장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효율성과 경제성이란 의도로 접근되어야 했다(데이비드 하비, 「도시의 정치경제학」, 한울, 초의수 옮김, p.51).
이렇게 세종시 문제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직접적인 계급투쟁의 문제는 아니지만 권력의 지배 방식과 지배공간을 둘러싸고, 중앙에 밀집한 권력과 지방으로의 권력이전을 통해 새로운 권력의 중심에 서려는 세력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이점은 서울과 수도권에 토지를 보유한 세력과 지방에 토지를 보유한 세력과의 투쟁의 문제도 뒤섞여 있다. 세종시 문제는 세종시에 토지를 보유한 지방의 지주와 지방권력의 경제적 이해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세종시 문제의 본질로 접근하는 데에 또 다른 단서는 권태신 총리실장의 ‘사회주의 도시’ 발언에서 튀어 나왔다. 권태신 총리실장은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면 사회주의 도시가 된다.”, “세종시 도시 개념은 민주도시를 지향하는데 이런 도시는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사회주의적 이념을 적용한 도시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이 말 역시 참으로 가당찮은 색깔론이지만 이 말에 대해 “비이념 사안에 대해 색깔론을 편다.”(김종배 시사평론가, 프레시안 2/4, 이젠 도시에까지 색깔론 씌우나)고 공박하는 것은 오히려 세종시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주장에 불과하다. 세종시 문제는 단순한 비이념 사안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자본 간 이해관계의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황당하게 튀어나왔지만 권태신의 말대로 도시 건설에 있어서 자본주의 도시와 사회주의 도시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계를 안고 있지만 그나마 가장 심층적이고 본질에 근접한 기사가 한겨레에 실렸다.
세종시를 둘러싼 극한대립은 불균형 성장과 균형 발전, 권한의 중앙집중과 지방분산 등 거시적 정책목표뿐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토지소유 관념과 국토와 도시공간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 도시문제는 결국 계급문제이며, 거대 국책사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행세한다. 독일의 사회주택 건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카다피의 대수로사업… 어느 것 하나 이념과 관련되지 않은 게 없다(이봉수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한겨레 2/24, 「도시는 ‘사회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세종시 원안은 균형발전의 길이고, 자본주의에서의 도시와 농촌의 대립의 문제, 불균형 발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인가?
세종시 원안이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책인가?
노무현은 수도이전 공약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재미 좀 봤다”고 했다. 노무현 특유의 솔직한 말투로 이 공약이 대선에서 표를 더 얻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진행됐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의도는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이라는 대외적인 명분하에 진행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행정수도의 이전을 생각했던가? 그는 현재의 수도권 중심의 생활방식으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국가균형발전을 생각하게 된 주요 계기였다. 수도권 중심의 '수직적 발전'(아파트·빌딩의 고층화)에서 전국 단위의 '수평적 균형 발전'을 통해 진정으로 국민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기본적 발상이었다(이종선, 오마이뉴스 09/12/16, 「세종 행복도시 건설의 진정한 이유? 노무현의 문제의식과 법안 수정 제안 비판」).
이종선은 2-3시간의 출퇴근 시간으로 인한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강도 높은 노동, 냉혹한 경쟁, 높은 사교육비와 일류대병, 치솟는 부동산과 주택가격 등 모든 문제들로 인해 행복한 삶이 파괴되는 것이 ‘서울 중심의 삶의 구조’에서 온다고 하면서 “요컨대 세종시 건설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과 세종 행복도시 건설 그리고 국가균형발전 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자 대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장시간 노동은 고려하지 않고 긴 출퇴근 시간만으로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운운하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세종시 이전에 대한 맹목적 환상은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맹목적 환상은 아니지만 세종시 원안 사수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선진당, 박근혜는 물론이고 세종시 이전이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다르지 않다.
물론 효율성을 이유로, 권력투쟁를 위해, 또는 재벌에 대한 특혜의 목적을 가지고 정치적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리고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하는 이명박의 파렴치한 행위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이명박정권은 원주민들로부터 토지를 강제수용하여 재벌에게 토지를 초저가로 공급하고 마음껏 토지를 개발하는 권한을 주는 원형지 공급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으로 인해 세종시 대상 지역의 대다수 가난한 농민들은 생존권을 말살당하고 있다.
‘죽기보다 떠나기 싫었쥬. 그렇지만 명품 행정도시가 들어온다니께 그나마 위안으로 삼았슈. 그래도 우리 자식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살 수 있겠구나 하니께 참았쥬.’
할머니가 받은 보상금은 고작 3000만원이었다. 세종시 수정안 여파로 한때는 1억5000만원까지 갔던 분양권 가격이 300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할머니 같은 원주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탔다. 세종시 건설계획으로 고향을 떠난 원주민은 4760여명. 이들 중 보상금 1억원 미만은 26.7%, 3억원 미만은 60%에 이른다. 2005년 이후 생활고 등에 따른 가정불화로 이혼한 경우도 742쌍(15.5%)에 달한다. 고향 떠나온 서러움과 생활고로 허덕이는 판에 정부가 수정안까지 강행하려는 처사가 원망스럽기만 하다(경향신문 2/23, 세종시 원주민 이순자 할머니의 한숨 “고향·집 잃고… 정말 못살겠슈”).
이처럼 세종시 건설은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생존의 터전을 잃어버린 대가로 이주자 택지분양권을 제 값에 받아내는 것 외에는 다른 이해관계가 없었다. 물론 그 택지분양권도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안정적으로 살아가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은 세종시가 건설되면 명품도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미래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정치적 선전으로 세종시 건설에 대한 저항을 잠재웠다. 세종시 건설로 인해 세종시 대다수의 농민들은 쥐꼬리만한 경제적 보상을 받았지만 세종시 수정안으로 인한 생존권의 말살은 가장 극심한 것이 되었다. 세종시 건설로 인해 막대한 혜택을 받게 됐던 세종시 지역의 소수 지주들 역시 수정안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지주들은 토지 보유량 자체가 많았기 때문에 생존권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고 있다.
여기서 노무현이 정치적 의도가 있었든지 아니면 노무현 신봉자의 주장처럼 진정으로 수도권 과밀화와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도시 건설을 추진했는지는 그 정치적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전체 인구 중 21.4%가 서울에 집중되고, 국토면적 2%인 수도권에 39%가 집중된 인구 밀집 등 수도권 집중현상을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다면 세종시 이전이 부분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도시 이전을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거나 서울로의 집중현상과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 성장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이 될 수 있다는 주관적 환상을 유포하는 것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행정도시 이전은 국가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라는 명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거기에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달리하기도 하지만 자본의 이해도 숨어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 탄생의 근본 배경은 '국가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 두 가지 핵심 가치로 요약될 수 있다. 과밀화(특히 서울의 경우)로 야기되는 교통정체에 따른 물류비용의 증가, 땅값, 집값의 상승에 따른 생산원가의 상승, 환경오염과 주거환경의 열악화로 인한 사회비용의 증가, 등등 그 폐해는 너무나 커서 그것을 계량화하기조차 힘들다(김영명, 오마이뉴스 10/01/14, 「세종시 문제, 수도권 과밀화 해소가 핵심. 어찌 충청도민의 이권문제로 뒤바꿈 하려는가?」).
이명박이 세종시 수정안에서 재벌에게 막대한 특혜를 준다고 하지만 노무현정권 역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건설로 토지 강제 수용과 개발 이익환수, 세금 감면혜택, 규제완화 등으로 자본에게 막대한 혜택을 부여했다. 세종시 또한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교통정체에 따른 자본의 물류비용의 증가나 지대상승으로 인한 토지사용료의 증대, 사회비용의 증가에 따라 자본이 치러야 하는 비용의 증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본의 이해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꾀한다는 명목 아래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는 계획은 박정희정권 때부터 끊임없이 시도되어 행정기구 일부는 과천과 대전에 이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과밀해소와 지역균형 발전은 조금도 이뤄지지 않았고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집중은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을 뿐이다.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꾀하는 정책은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 가속화한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추진돼 왔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발표했고, 1979년 이를 위한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마련했다. 이 계획은 박 대통령의 타계로 무산됐지만,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수도이전 정책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1979~94년 과천에 제2정부청사를 만들어 11개 부처를 옮겼고, 1998년 대전에 제3정부청사를 지어 11개 청을 이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40여년 동안 계속된 정책에도 수도권 집중은 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해마다 수도권에서 20만~30만명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2007년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보면, 2011년에 전 국토의 11.8%인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가 모여 살게 될 전망이다(한겨레1/12, 「‘지역 균형발전’ 50년 고민, 몇달새 송두리째 날려」).
왜 수십 년 동안 수도권 과밀 해소와 균형발전의 목표를 추구해왔지만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과 수도권의 기형적 성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는가? 이것은 단순히 이명박정권이 세종시 이전을 반대해서인가? 세종시 이전은 농촌의 낙후와 농민의 빈곤과 생존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세종시 원안 사수가 아닌 농민의 자주적 요구를!
자본주의의 도시의 형성과 발전은 자본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공업의 집중과 함께 인구도 도시로 집중되었고, 인구의 도시로의 집중은 대공업을 더욱 더 발전시켰다. 대공업이 발전한 도시에는 원활한 노동력과 원료공급, 생산물의 판매 등을 위해 철도, 운하, 도로가 발전하였다. 뿐만 아니라 늘어난 거주자들을 위한 주택과 공장건물과 사무실이 대량으로 건설되고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시는 자본의 생산물을 대량으로 판매하기 위한 거대 상업자본이 집중하게 되고, 자본의 신용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한 금융기관도 집중되었다. 여기에 자본의 지배를 위한 정치권력과 행정권력도 도시에 집중되었다. 도시는 부르주아 국가기관과 자본의 심장이 되었다.
과거 자본주의 이행의 시기에 상업무역의 시기에는 상업도시가 번성했다. 하지만 대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영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도래하자 상업도시들은 쇠퇴했다. 자본주의 시대는 이렇게 산업자본, 상업자본 등 자본의 생산과 유통을 중심으로 해서 도시가 발전하고 도시 성격을 규정한다. 이러한 도시의 건설은 농촌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농촌의 희생으로부터 가능했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 부르주아지는 거대한 도시들을 만들고, 도시 인구의 수를 농촌 인구에 비해 크게 증가시켰으며, 그리하여 인구의 현저한 부분을 농촌 생활의 우매함으로부터 떼어 내었다. 부르주아는 농촌을 도시에 의존하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야만적 및 반半 야만적 나라들을 문명국들에, 농업 민족들을 부르주아 민족들에, 동양을 서양에 의존하게 만들었다(맑스. 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저작 선집1』, 박종철 출판사, p.404-405).
이처럼 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농촌은 도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나 마찬가지다. 자본은 마치 제국주의가 후진적인 농업민족들을 착취하고 수탈하여 제국주의 지배를 하는 것처럼, 농촌의 수탈과 착취로부터 자본축적의 기반을 다진다. 자본은 원시적 축적과정에서 농민을 토지로부터 추방하여 대규모 목초지를 만들었던 엔클로저 운동을 통해 도시로 쫓겨난 농민들로부터 대규모 노동력을 공급받으면서 발전했다. 농촌의 피폐화와 도시의 발전은 도시와 농촌 간의 대립을 심화시키고 균형발전을 저해한다.
[근대적 도시공업에서와 같이] 근대적 농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노동이동의 증대는 노동력 자체의 낭비와 파괴에 의해 얻어진다. 더욱이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약탈하는 방식상의 진보일 뿐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식상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모든 진보는 생산력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이다. 한 나라가 대공업을 토대로 발전하면 할수록[예컨대 미국처럼], 이러한 토지의 파괴과정은 그만큼 더 급속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과정의 기술과 결합도를 발전시킨다(맑스, 「자본론 1하」, 비봉출판사, 김수행 역, p. 678-680).
모든 자본주의 역사가 그러하듯, 한국 자본주의 역시 농촌의 황폐화와 농민의 생존권을 송두리째 박탈하는 것으로부터 발전해왔다. 노동자는 농민 출신이거나 농민의 자식들이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가혹한 소작료와 저곡가 정책, 농가부채 등으로 농민을 수탈하여 농촌을 벗어나서 도시로 이주한 농촌 출신 노동자들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받으면서 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에도 우루과이라운드와 한미FTA,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서 보듯 독점자본의 성장을 위해 농민들은 끊임없이 생존권이 위협당하고 파산당해야 했다. 역대 모든 정권들은 독점자본을 위해 다수 농민을 파산으로 몰아가고 그 대신에 극소수의 기업농, 전업농을 육성하여 농촌에 대한 구조조정을 완료하려는 반민중적 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제국주의 하에서 전체 국민이 식민지 지배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도시 내부의 자본가계급을 비롯한 일부 지배계급만이 농촌 식민지를 수탈하고 착취한 것에서 혜택을 누릴 뿐이다. 도시 제국주의의 지배자는 바로 독점 자본가 계급이다. 자본은 농촌의 희생과 지배로부터 도시발전을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이로부터 도시 전체가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 내부에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와 인민들의 첨예한 계급모순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증가하고, 주택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으며 심각한 환경의 파괴가 자행되고 있다.
…… 생산수단의 집중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일정한 공간에 그만큼 더 집중되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축적이 빠르면 빠를수록 노동자들의 주택사정은 그만큼 더 비참해진다 ....... 다른 한편,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집세는 그 질에 반비례해 비싸지고, 또한 주택투기꾼들은 빈곤이라는 광산을 포토시〚볼리비아 남부의 도시〛의 은 광산채굴보다 더 많은 이윤과 더 적은 비용으로 채굴하고 있다 …… 더욱이 런던에서는 ‘개량’이 진행되고 그와 더불어 낡은 거리들과 가옥들의 철거가 진행됨에 따라, 그리고 또 공장들이 새로 설립되고 사람들의 유입이 증가함에 따라, 끝으로 또 도시의 집세가 도시지대의 상승 때문에 인상됨에 따라, 노동자계급 중 비교적 처지가 나은 부분도 소매상들 및 하층 중간계급들과 함께 이 더러운 주택사정의 재앙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맑스, 「자본론 1하」, 비봉출판사, 김수행 역, p. 898-901).
초호화 거대건물의 빌딩 숲 사이로 자본주의 도시에는 여전히 빈민굴이 존재하고 있고, 이 빈민거주 지역은 도시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싹쓸이 철거를 당하고 있다.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은 건설자본과 투기꾼들의 이해 때문에 끊임없이 재개발된다. 이로 인해 끊임없이 살인적인 철거가 자행되고 주택가격과 건물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주택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영세 상인들의 파산은 늘어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계급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공간의 문제로만 사고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공간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계급적대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종시 문제는 직접적으로 노자 간의 계급적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도시와 농촌의 대립과 적대현상, 불균형 발전이라는 본질이 도시 간, 도시 내부, 도시와 지방이라는 공간의 문제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말처럼, 도시와 농촌의 불균형한 발전을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의지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사항”이다. 분업에 기초한 도시와 농촌의 분리와 대립, 이를 바탕으로 한 도시와 농촌의 불균등한 성장은 정치세력의 선의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 원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책적 선의마저도 농촌의 낙후성과 농민의 빈곤과 파산이라는 현실 앞에서 기만적인 정치적 선전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도시와 농촌 간의 대립은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부족제에서 국가로의, 국지성에서 민족으로의 이행과 함께 시작하여 오늘날 [반곡물조례동맹]에 이르기까지 문명사 전체를 관철해 왔다. 도시의 출현과 동시에 행정, 경찰, 조세 등 간단히 말해서 자치제도와 정치 일반에 대한 필연성이 대두되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주민이 양대 계급으로 분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노동분업과 생산도구들에 직접적으로 기초하고 있다 ...... 도시와 농촌간의 대립은 사적소유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 도시와 농촌의 대립의 지양은 공동체를 위한 제1의 조건들 중 하나로서, 누구나 금방 알 수 있듯이, 다시 일련의 물적 전제들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단순히 의지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사항이다(맑스 . 엥겔스, 「독일이데올로기」, 두레, 김대웅 역, p.97-98).
도시와 농촌의 대립과 불균형 발전, 계급 모순의 심화 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생산을 근본적으로 철폐하지 않으면 끝없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새로운 악순환,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현대 공업의 모순을 지양하는 것 역시 현대 공업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지양해야만 가능하다. 생산력들이 하나의 단일한 거대한 계획에 따라 조화롭게 맞물려 움직여 가도록 만드는 사회만이 공업 자체가 발전하고 그 밖의 생산 요소들이 유지되고 발전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공업을 전국에 분산시킬 수 있다 ..... 물론 문명은 우리에게 대도시라는 유산을 남겨 놓았으며, 이 유산을 제거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 과정이 장구하더라도 이 유산은 제거되어야 하며 또한 제거될 것이다(엥겔스, 「반- 뒤링」, 『저작 선집5』, p.325).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 도시화의 문제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는 길 역시 사회주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것은 혁명적 실천으로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정의와 도시』의 마지막 단락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진정으로 인간화된 도시주의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착취에 기초한 도시화로부터 인류에 적합한 도시주의로 전환시키는 혁명적 이론이 남아 있다. 그리고 혁명적 실천이 그런 변혁을 성취하는 일이 남아 있다.
그 목적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것을 더 넓은 전망 속에 두고 싶다. 자본주의 도시화의 그 결과를 외면하는 사회주의 지향의 운동은 반드시 실패한다. 특징적인 사회주의적 형태의 도시화를 구축하는 것은 마치 자본주의 도시의 상승이 자본주의의 지지에 필요하였던 것처럼 사회주의로의 전환에도 필요하다. 사회주의적 도시화라는 길의 모색은 사회주의적 대안 그 자체를 향한 경로에 대한 구도이다. 그리고 그것은 혁명적인 실천으로 달성해야만 하는 것이다(데이비드 하비, 도시의 정치경제학, 한울, 초의수 옮김, p.85).
자본주의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왜 사회주의가 대안인가?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 원리는 도시와 농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도농복합 도시이다. 자본의 이윤을 위한 탐욕 하에 무정부적 생산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비해 사회주의는 인간의 의식적 계획 하에 자연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사회주의 생산의 주요한 목표는 노동자와 인민의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산업 간, 도시와 농촌 간의 균형성장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원활한 신진대사를 도모하고 토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신좌파적인 맑스주의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현실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도 자본주의 도시화의 결과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현실 사회주의의 건설이 역사적으로 지극히 제한된 조건 속에서 건설되었고, 공산주의로의 발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와 농촌의 대립, 정신노동과 물질노동의 대립을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 건설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쿠바의 예를 보면 도시와 농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도농복합 도시라는 사회주의 원리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쿠바는 쏘련의 붕괴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미제국주의의 봉쇄 속에서도 도시농장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100%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쿠바인민들이 먹는 각종 야채의 3/4를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쿠바의 실험은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조차도 모범적인 사례로 간주하고 쿠바실험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철폐하지 않는 한 도농복합체의 건설이라는 쿠바의 실험은 전 사회적으로 의식적인 계획 하에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종시 수정안을 통해 재벌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고, 농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이명박정권은 물론이고 세종시 원안 고수를 주장하는 정치세력들이 외치는 행복도시, 명품도시 건설 주장 역시 기만적인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다. 지방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정치세력들은 농촌의 낙후와 농민들의 생존권의 파괴의 진짜 원인을 끊임없이 은폐한다. 행복도시, 명품도시라는 저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농촌의 파탄과 농민 생존권을 지키는 길은 한미 FTA반대, 저곡가 정책 반대, 농가부채 탕감 등을 내걸고 투쟁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저들의 거짓 구호에 속지 말고 농민의 사활이 걸린 자주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노동자계급과의 철저한 계급동맹으로 농민을 파탄시키는 독점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명품도시, 행복도시를 건설하는 유일한 길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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