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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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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08:28:06, 조회:2,342, 추천: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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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맞이하며’ 잘못된 결론
올해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20년이 되었다. 많은 노동조합과 단체들이 2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는 6월 투쟁에 이어진 7,8,9월 노동자 투쟁으로 많은 노동조합들이 한국노총 어용을 뚫고 민주화되었다. 그리고 많은 노동조합들이 결성되었고 노동단체들도 생겨났다. 그렇기에 올해 들어 20주년을 기념하는 곳들이 많다.
하지만 20주년을 되새기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부르주아 정치에 합류한 예전의 운동권 출신들은 ‘당시에 목숨 걸고 사수한 민주화 투쟁 덕분에 지금의 나아진 민주주의 현실이 있다’면서 자신들의 공적을 자찬한다. 현대중공업과 같은 어용노조들도 자신들 조직이 87년 대투쟁과정에서 결성되었기에 2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노조도 새로워져야 한다며 노사상생의 축배를 들고 있다.
87년 대투쟁에 대한 해석들
87년 당시, 노동자들이 분노를 폭발하고 투쟁에 나서고 노동조합을 결성(민주화)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노조를 결성하기 이전인 70년대에도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요구했던 것은 ‘자주성과 민주성 쟁취’, ‘하도급화 반대 및 직영화’, ‘노동자간 차별 해소와 인간적인 대우’, ‘현장통제 분쇄’였다.
당시의 요구는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서 투쟁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거의 미조직상태이거나 한국노총 산하의 식물노조, 어용노조라는 열악한 조직 상태를 뚫고 나서는 투쟁이었다는 점, 그리고 자본과 국가 역시 노동자들에 대해서 군대식으로 통제하고 비인간적으로 대우했다는 점, 투쟁의 주체들이 경공업 여성노동자들이거나 중화학공업 남성노동자들이었던 점이 객관적인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착취가 노동자와 민중들의 분노로 조직되고 현장의 파업투쟁으로 전면화 되었던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서는 공통된 평가가 존재한다.
경제적/정치적 불안과 혼란이라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표출된 것이었다는 점, 자연발생적인 대중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이 형성되었고, 이로써 민주노조운동이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었던 점, 그렇지만 이 거대한 대중투쟁을 지도할 정치적 지도력이 취약했고 이 폭발적인 대중투쟁이 조직적 발전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적 지지 세력들에 의해 소부르주아 정치세력들에게 6월 투쟁의 성과를 넘겨주면서 노동자대투쟁이 정치투쟁으로 확대되지 못했던 점 등에 대해서는 나름 진보진영 내에서는 동의하는 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의 평가 속에 몇 가지 중요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첫째,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자생적인 대중투쟁이었고 사회주의 세력들의 개입과 정치적 지도가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사회주의 정치적인 지도와 개입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는 견해와 경제적 투쟁에 매몰된 나머지 사민주의적 의회 진출이 부재했던 점에 대해 지적하는 견해는 완전히 다른 결론과 과제를 도출한다.(87년 당시에는 사민주의 요구가 거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그런 요구가 부재했던 것을 평가로 지적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 사회 연대적 노동운동을 주장하는 개량주의 세력들은 87년 이전의 구로동맹파업이나 이후의 투쟁들에서 학생출신 운동권으로 표현되던 사회주의 정치세력들의 개입과 대중투쟁이 결합된 성과들에 대해서 왜곡한다. 자생적 대중투쟁과 의식적 정치지도의 문제를 분리시키고, 선택을 강요하여 결국 대중투쟁을 자생성에 굴종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의식적 지도를 의회주의, 개량주의로 치환시켜 버리고 있다. 이제 하루빨리 노동자 민중 출신의 진보세력들이 의회로 진출해서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법, 제도와 정책을 정비해야 사회적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면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둘째, 사업장단위의 요구들에 한정되었던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요구들은 자신의 현장문제들, 탄압과 착취에 대한 분노들을 모아낸 투쟁들이었기에 현안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처우와 차별 반대 및 하도급화 반대, 임금인상과 노조 민주화라는 것은 자신들의 문제이자 남한 노동자계급 모두의 요구였다. 이들의 요구는 각기 다른 요구들이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87년 대투쟁의 성과는 민주노조운동을 일반화시켰다는 점에서 이후 연대투쟁과 전노협 등의 전국조직 건설로 이어졌던 것이다. 단지 여기서도 평가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6월 항쟁의 한계로 지적되듯이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사회적 분노와 투쟁을 소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이 이용하는 것에 그쳤던 것의 연장선에서 사회주의 정치지도력의 부재를 지적해야 한다.
이러한 평가의 차이는 전노협 건설 논쟁을 거치면서 정치적 지도와 결합을 시도했던 노동단체들은 배제된 채 이루어졌다. 전노협 건설 이후로도 자본과 국가의 탄압 속에 축소되었던 조직률을 근거로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전노협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의의를 축소시켰다.
이처럼 개량주의자들은 전노협이 노동자계급 전체를 포괄하지도 대표하지도 못했고 조직 축소마저 겪었다는 점을 근거로 전노협 정신을 훼손시키면서 민주노총의 정신에 반영시키려 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단협 갱신 및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생존권 투쟁을 부차화 시키며 경제투쟁으로 분리시켰고, 민주노총의 과제를 사회개혁 제도개선투쟁으로 돌려버렸다. 그리하여 민주노총이 건설된 이후의 10년간 사회적 합의주의세력들은 사회개혁투쟁론과 산별노조 만능론의 날개로 그간의 총단결 연대투쟁의 성과들을 체제 내적인 개량투쟁으로 묶어세우려 했다.
특히 자본의 구조적 모순이 나타나는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살리기’와 ‘경쟁력 강화’를 참가자 선언문으로 채택하는가 하면,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97년 노사정위원회에 참가 탈퇴를 반복하면서 노사정 대화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비록 노사정위 활용론이라는 입장으로 참여를 주장했지만, 이들의 ‘선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사정위원회는 현실의 투쟁들을 발목잡고 국가의 중재 외양을 띠고 노동자운동을 교섭에만 매몰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 교섭주의에 대해 현장에서, 현장조직 활동가들이 문제제기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와 재투쟁을 결의하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반성과 명확한 투쟁방향 설정 및 결의가 확인되지 않은 결과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재투쟁 철회 등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투적 투쟁, 새롭게 전면에 등장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그리고 구조조정 분쇄와 임단투 고용안정 등의 생존권 투쟁이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투쟁이라고 매도되면서 개량주의자들이 다시 들고 나온 것이 사회연대적 노동운동이었다. 이들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정체되고, 대공장 지도부들과 일부 현장조직들의 반동화, 현장 내에서 활동가들과 현장투쟁의 고립화,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정규직 집행부들의 외면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또한 대공장 노조 혹은 노사 비리문제들이 폭로되면서 도덕성의 위기, 조직대표성의 위기, 연대성의 위기 운운하면서 사회 연대적인 운동을 주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회연대적 노동운동은 노동계급운동이 중심이 되어 전사회적으로 계급투쟁을 확대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다양한 사회적 운동 속에서 부문화 시키고, 노동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계급투쟁의 주체라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이에 대해서는 노동자정치신문에서 사회연대적 노동운동과 새흐름, 사회당의 노동운동노선에 대한 비판 글들을 통해서 여러 번 다루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사회적인 책무 운운하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차원의 나눔 운동을 노동조합의 주요 임무로 삼는다. 이들에게는 비정규직 투쟁 역시 심하게 차별받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연대하게 되고, 이들과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하는데 투쟁이 어려우니 정규직들이 양보하자는 기조가 나오는 것이다. 이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개량주의적 발상 차원에 있다.
민주노총이 2000년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를 가동시켜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노선을 결정하려고 했던 것이나, 한국노총이 ‘평등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참여와 사회연대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더 구체적인 방안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계급협조적, 몰계급적 노동운동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1987년 이후 20년, ‘세상이 변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정에서 결성된 많은 노조들이 올해로 창립 20주년 기념식들을 치루고 있다. 얼마 전 노동부장관까지 초청하여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룬 현중 어용노조는 현중 20년사를 펴내고 노사화합을 위한 연구소를 차렸다.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을 기점으로 어용노조로 화려하게 변신한 현대중공업 등의 어용노조들은 이제 환경이 변했으니 노조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정치권에 편입한 과거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나 어용노조나 둘 다 맥락은 20년 전의 열악한 환경에 비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 공통의 근거다. 이걸 근거로 그들은 조직과 정치가 변해야 한다면서 자본의 정치에 합류했다.
“처음에 내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노동자들은 못산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노조가 계속 강하게 치고 나갔다. 그런데 우리 삶의 질이 향상되고 하다보니까, 강성노조가 주장하는 전제와 우리 현실이 안 맞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회사에서도 계속 조직적으로 자기네들 편을 만들려는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소위 말하는 회사 편에 있는 사람들이 당선이 됐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노선으로, 현실적인 노선으로 계속 가니까 이게 계속 이렇게 유지가 되고 있다.”(현중 조합원)
그런데 이러한 ‘먹고살만 해졌고’, ‘어용들은 파업이라는 부담이 없이도 실리를 준다’는 생각의 물질적인 기반은 바로 자본의 위기시기에 위기감을 ‘고용 유지하는 대신 양보교섭’이라는 논리로 돌파한 사측과 노조의 실리주의 노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미 93년부터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현중과 대우조선 등 한국의 대공장에서 자본은 일본식 노동유연화, 신경영전략을 시도했다. 물론 당시의 강성노조들이었던 대부분의 대공장 민주노조들은 이를 투쟁으로 방어했다. 하지만 반생산체제, 팀제 등 직접적인 생산속도, 생산성 강화 방식이 아닌 작업체계 변화 등 노동과정에서 도입되는 미세한 노동유연화 방안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또한 현중과 대우조선 등을 중심으로 해서 90년대 중반부터 이미 파업을 굳이 하지 않고도 임단투를 진행하고,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면서 대공장 무쟁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결과는 96, 97년 노동법개정투쟁 전국총파업 국면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김영삼 정권 하에서 추진된 ‘노사관계개혁’이 ‘노사협조주의적 노사관계로의 재편’을 위한 각종 ‘노동유연화의 제도화’, 즉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및 변형시간제로 대표되는 ‘3제’ 신설 등이었기에 현장에서는 반대움직임이 조직되었다. 96년 12월 노동법이 국회에서 개악되었을 때 뉴스가 보도되자마자 현장에서는 민주노총의 지침 없이도 자발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와 같이 현장에서의 생산에 차질을 주는 파업은 하지 않고 가두로 나가는 왜곡된 정치파업이 나타나는가 하면, 현대중공업과 같이 파업지침이 내려와도 현장에서는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일부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97년 총파업 과정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노개투 총파업 할 때 파업이 ‘절반의 성공’밖에 못했다. 그 전에 이미 현장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과정이었는데, 노개투 파업을 집행부가 때렸다. 처음부터 절반 정도밖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눈에 띄게 기울기 시작했지 않았나 싶다. 정리해고에 대한 조합원의 부담감, 이런 게 생각 외로 엄청 컸다. 지금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현장도 활발하고 활동가들도 그나마 의지가 있었는데, 사측이 조합원들에게 ‘튀면 정리해고 1순위다’고 집요하게 괴롭혔다. 집에 전화를 걸어 당신 남편 저렇게 다니면 재미없다고 협박하고….”(현중 해고자)
87년 전후로 90년대 초반까지 노동조합 결성과정, 탄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든든한 연대투쟁과 후원자였던 가족들과 지역공동체는 사측이 현장 안팎을 교육, 문화사업 등으로 장악해가면서 노사상생의 이데올로기에 젖어들게 되었다. 회사가 지역복지사업으로 뛰어들어 조합원들의 후생복지를 주도했다. 사택재개발사업으로 조합원들을 주택융자를 끼고 들어오게 했고, 조합원들은 파업을 하면 융자금 내기 힘들어지는 부담감으로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이는 현중 만이 아니다. 많은 대공장, 특히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들어온 독 묻은 사과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조합원들에게 파업의 부담감을 안겨주었고, 활동가들에게도 조합원들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끌어내지 못하는 자괴감을 심어주었다. 특히 현장에서부터 차근차근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대의원들의 절대다수를 장악해온 사측과 어용세력에 의해 활동가들과 해고자들은 밀려났다.
이렇게 현장 내에서도 회사가 잘돼야 고용도 보장된다는 상생논리와 함께 대공장, 정규직 고임금노동자 혹은 고용이라도 안정된 노동자라는 ‘노동자투쟁 이기주의’ 여론전에 밀려서 현장투쟁이 조직되지 않는다. 게다가 활동을 해도 안팎으로 후원하고 지지해주기는커녕 아직도 그런 활동을 하려하느냐면서 말리고 고리타분하게 보는 분위기들로 인해, 전투적 활동가들은 오히려 고립되어간다고 느끼고 있다. 결국 변한 것은 커져가는 자본의 위기이며 자본의 공격과 논리에 굴종하는 개량주의요, 변치 않는 것은 노자 계급대립이다!
2007년 이후 새롭게 강화해야 할 것은?
문제는 맛 간 어용들이나 자본에 빌붙어 반동화 된 기회주의자들에게서만 이런 태도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노사정위원회를 이끌면서 노무현 정권의 하수인으로 노동운동과 자본의 만남을 주선했던 김금수를 배출한 한노사연이나 민주노총 연구원, 민노당 연구소와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세력들 역시 ‘세상은 변했다, 그런데 노동운동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도 확대되지 않고 그래서 민주노총이 정부자본에게 무시 당한다’면서 노동운동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량투쟁의 이중적 의미를 지적한 레닌의 말을 각색해서 인용하고 있다.
“제도․정책 개선은 자본 측이나 국가권력의 일정한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고, 그것은 개량적인 성격을 갖는다. 양보와 개량은 노동자들을 체제 내로 편입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와 본질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양보와 개량이 노동계급의 육체적․정신적 퇴화를 막고, 투쟁의 성과로서 더 큰 단결과 폭넓은 활동을 촉진하고 체제개혁에 대한 목표에 다가가도록 할 수 있다면, 이러한 개량은 노동운동의 맥락에서도 적극적인 의의를 갖게 된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정책․제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책참가 또는 정책개입이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노조의 정책참가는 목표와 원칙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김금수, 한노사연 87년 20주년 기념 토론회 중)
이들은 개량투쟁의 이중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 중 체제 개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전면에 세운다. 하지만 어떤 전략 전술이 이중적이라면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그리고 부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거세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정책참가- 제도개혁-체제개혁이 자동으로 연결되는 듯한 발상은 아래의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구체화되고 있다.
“다음으로 기구운영의 민주화와 다양한 참가 방식의 활용이 요구되며, 조직과 투쟁이 병행 추진되어야 하고, 노조의 정책역량 향상이 긴요하다. 또한, 제도와 정책의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세력화의 강화 역시 필수적이다.”(김금수, 같은 글)
여기에서의 다양한 참가 방식 활용은 이런 것이다.
“노조가 사측과 교섭하듯 노조의 중앙조직인 총연맹이 사측이나 정부 측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역할이다... 정부가 그러한 협의 창구를 공식적으로 만들어서 하겠다고 하면 구태여 그것을 회피하고 별도의 협의기구를 요구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하고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일종의 덫이라면 노동계급이 영리한 여우가 될 필요는 없을까? 지금 여우에게는 덫에 놓인 고깃덩어리를 안전하게 빼오는 영악함이 필요한 상황 아닐까?”(이수봉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 토론회 중)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참가 방식 중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주의 활용론을 전략적으로 갖고 있으며 이제는 교섭주의의 연장선, 확대판으로 사회적 합의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의 현실화 방안, 참여 주체로는 민주노총과 함께 산별노조(산별 교섭)가 강조된다.
특히 이제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 등 주요 연맹들이 산별노조로 전환해서 활동해왔고, 이제 올해 말이면 민주노총 내의 다수가 산별노조로 편입됨에 따라서 제 2기 산별노조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주요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의 현 사회적 합의주의 지도부는 이제 산별노조가 노조 내의 비정규직들, 그리고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노동자들을 대표하고 지도하기 위해서는 산별중앙협약이 중요하며 중앙교섭 실현을 위해 자본을 교섭석상에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산별노조가 힘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힘과 협상력을 갖추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풀을 산별노조가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산별노조가 노동력 제공에 대한 힘을 갖추고 자본과 협상 한다는 것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 산별노조가 그런 협상력을 갖추는 것의 전제를 노동력을 자유롭게 이전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위해서 노동력의 배치 이전 자체를 노동자가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며, 둘째는 자본이 교섭 상에 나오게 하기 위해 산별노조가 현장에 대해서 중앙집중력을 발휘하여 현장투쟁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자본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그럼 중앙집중적 통제력으로 실제 자본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여 고용을 보장한다는 노사협조적 노선으로 전향해야만 그 형식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지금의 산별노조가 중앙통제력이 부족하다는 근거로 보건의료노조에서의 서울대병원지부 등 공공대병원노조들 탈퇴 사례나, 금속노조 산별교섭에 대한 사측의 불참 사례들이 제시된다. 이로써 우리가 87년 투쟁에 대한 이견으로부터, 계획된 투쟁이었지만 결국 양보교섭으로 정리된 97년 총파업, 그리고 그 후로도 강조되어온 노동자운동에서의 대중적 정치지도력의 강화는 상층 관료들의 개량주의적 중앙통제지도력 강화로 대체되고 있다.(이는 우리가 지난 신문들에서 문제제기한 반동적 조합주의가 한층 강화되고 있고 지금 전면에 나서는 비정규직 운동까지도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자본과 정권이 산별노조의 이중교섭, 이중파업 금지와 파업 절차의 요건과 내용 규제를 강화하는 조건으로 산별노조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을 이미 자본과 국가는 노사관계 로드맵을 통해서 마련해왔다.
그런데 현재의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이러한 조건들에 부합하기 위해 산별노조 체계 속에서도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제 종료시키고 기아비정규직 투쟁에서와 같이 강제 직가입으로 노조를 파괴하고 어용의 준동에 휘둘려 파업을 엄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이닉스와 같이 비정규직 노조의 깃발을 내리게 하는 등 반동적 조합주의를 강화해가고 있다.
이들 사회적 합의주의, 사회연대적 조합주의자들이 제시하는 2기 산별노조의 상은 “산업횡단적 고용체제”(연대적 노동시장체제) 즉, 고용부문의 노동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평생학습 직업훈련 강화와 이에 대한 노사공동지원과 운영, 이를 위한 한시적 산별기금과 사업장과 현장내 이전 배치 활성화를 위한 직무훈련 및 기금 강화, 퇴직연금을 대체할 산별연금 강화로 자본투자의 위험요인을 노동자들이 전체적으로 공동 분담하는 등) 이들은 산별노조가 직업소개소의 역할을 하면서 한 기업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취업할 수 있는 ‘고용 안정’을 제시하고 이와 함께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를 확대시키는 직무 숙련급을 강화하자고 제기하고 있다. 그 부가적인 방안으로 산업 내에서 직장 이동을 하는 동안, 다른 자본의 요구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산별노조에서 직업훈련, 평생교육, 그리고 교육받는 동안, 일자리 구하는 동안 먹고 살기 위한 산별기금과 산별연금을 적립하자고 하고 있다.(이병훈, 한노사연 토론회, 민주노총 산별 연구발표회 참조)
더 나아가 정이환은 앞으로 노동조합의 임금인상을 할 것인지, 아니면 비정규직과 기업 간 임금차별을 해소하는 것에 주력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라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기 위해 임금차별 해소(축소)에 집중하자고 주장한다.(민주노총 산별연구발표회) 이를 위해서는 임금인상의 근거였던 생계비 쟁취를 폐기하고,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 및 소득분배율 등을 근거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임금 차별축소에 집중하자는 얘기다. 이는 결국 개별노조들 차원에서 임금억제 방안으로 자본이 행해온 성과급이라는 편법을 확대하는, 즉 총자본 혹은 산업자본 혹은 개별자본의 지불여건에 따라 임금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기준을 비정규직 투쟁에 나서기 위한 임금정책 같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이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노동자들 내에서 서로 양보하여 분배해가자는 것, 그것을 산별차원에서 통제하겠다는 것 이상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사회연대적 노동운동전략의 산별노조 임금전략이며 비정규직 투쟁 방안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 구상에 대해서 관념적으로만 비판하지 않는다. 이미 비정규직 투쟁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산별노조 관료들을 통해서, 그리고 ‘연대’를 외치면서 파업을 파괴하는 일부 정규직 관료들을 통해서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기아비지회가 정규직노조집행부에 의해서 직가입이란 형식으로 파괴당할 때 금속노조는 ‘일단 중단하라 했는데 말을 안 듣는다’면서 정규직 지부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을 뿐만 아니라, 비지회가 어렵게 구사대의 폭력을 뚫고 정규직 지부의 외면 속에서 파업에 돌입했을 때에도 엄호하기 위한 집중집회 한 번도 준비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더욱 더 ‘연대’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운동을 파괴하려는 개량주의를 뚫고 비정규직투쟁의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강화할 수 있고 계급투쟁의 조직 역시 다시 무장할 수 있을 것이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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