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844년 영국노동계급의 상태와
남한 노동계급의 오늘
1844년, 24살의 엥겔스가 2년간 영국을 여행하며 폭 넓게 관찰하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저술한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당시 영국노동자 계급의 생활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 고발은 현재 남한 노동계급에게도 생생하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노동자 계급은 산업의 발전과 함께 양적으로 증대하였다. 자본의 집중은 도시를 팽창시켰다. 그러나 도시의 대다수의 인구를 이루는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야만과 비참함 그 자체였다. 오늘날 타워펠리스와 철거촌이 공존하듯 화려한 문명의 대도시 뒷골목에는 버림받은 슬럼가가 존재하였다. 통풍이 되지 않는 주거지역은 악취와 쓰레기, 티푸스 등의 질병으로 들끓고,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 일하면서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음주와 단순히 감각적인 성적 쾌락 외에 모든 즐거움을 박탈당했다.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법률적 통제는 자본가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쓰여졌으며, 1834년 개정된 구빈법은 일명 ‘구빈법의 바스티유’라고 불리는 교도소 같은 노역장에 빈민을 가둬버렸다. 빈민들이 노역장보다는 차라리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을 희망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어느 특정지역, 특정산업 노동자가 아닌 면 공업의 중심지 멘체스터, 광부, 직물업, 농업 등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영국 전체 노동자계급에 해당했다.
그후로부터 약 160년이 지난 현재의 남한에서도 ‘사회적 살인’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소수의 부의 독점과 빈곤함은 양극화되고 있다. 얼마 전 파문이 됐던 결식아동의 급식으로 보급됐던 ‘부실도시락’은 원가를 분석한 결과 687원, 총 열량은 553.7Kcal인 것으로 나타나 권장량 700∼800Kcal의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 밤 술값으로 500만원을 넘게 쓰는 인간들이 본다면 “줘도 못 먹을 도시락”이 성장기 어린이들의 끼니가 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동아디지탈' 회사에서 일을 하던 태국 여성노동자들이 유기용제(노말헥산)에 중독되어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회사는 2004년 8월경 환기가 안 되는 검사실을 만들면서 태국여성노동자들에게 노말 헥산 관련 작업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그해 11월부터 무릎에 힘이 없고 수시로 넘어지는 등 걷지 못하는 마비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태국 여성 노동자들이 일을 한 세정실은 8∼9평 면적에 높이 2.5m의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으로, 천장에 환풍기가 달렸지만 화공약품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이 회사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불법 체류신분일 경우 하루평균 15시간씩 일하면서 기본급이 455,000원으로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 과거 영국으로 이주해 온 에이레 인의 생활이 비참하였던 것처럼 지금의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역시 비참하기 짝이 없다.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과잉인구’, 산업 예비군을 만들어낸다. 여전히 실업자는 늘어나고 있고, 계속되는 구조조정은 정규직을 고용불안에 떨게 하고, 비정규직으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서울시에만 저녁에 어디에서 누워야할지를 모르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통계상으로만 730명이 된다. 이 중 날로 늘어가는 여성 노숙자는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 해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현대중공업에서는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8명, 이 중 5명의 노동자가 겨우 두 달 사이에 압착, 추락, 과로, 질식으로 사망했다. 또한 2003년 11월경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헌국 씨는 회사에서 배 갑판 용접선을 도장하기 위한 연마작업을 거의 마무리하던 중, 와이어 브러쉬 핀이 안구에 박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료는 핀을 빼려하는 순간 안구가 같이 따라 나오려고 하는 바람에 급히 총무에게 연락을 했지만 회사측은 응급조치를 회피해 결국 혼자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다. 회사측은 그 와중에도 ‘작업복 입지 말고 의사한테 오토바이 타고 가다 눈에 박혔다고 해라’는 말만 했고 결국 박헌국 씨는 인공 홍채를 삽입해야 했다. 사고 뒤에도 산재처리나 공상은 꿈도 꾸기 힘들다. 회사의 책임을 묻다가는 곧바로 해고되거나 설사 현장복귀 뒤에도 감당하기 힘들 일을 시키거나 시급을 깎아서 알아서 나가도록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본가들의 파렴치함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분노로 치를 떨게 만든다.
노동자들은 어떤 면에서 노예보다 못하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으면서 “노예와 같이 팔리지 않으니 너는 자유롭다”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열사들의 분신과 자살은 남한 노동계급의 상태를 잘 말해준다. 2003년 한 해 동안 잇달았던 김주익, 이해남, 이현중, 이용석 열사의 분신과 2004년 박일수 열사의 분신, 고용허가제를 앞둔 이주노동자의 자살, 김춘봉 열사의 자살 등 투쟁의 불씨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남선 동지 역시 비정규직 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분신을 시도하였다. 분신은 가장 극단적인 분노의 표현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지배계급에 대한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을 때만 사람인 것이다! 적들의 탄압은 분노를 낳는다. 분노는 투쟁을 낳는다. 그러나 투쟁이 조직되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고립은 분신을 낳는다. 현장이 질식할 것만 같을 때 “누군가 죽어야 꿈쩍할 것이다” 는 절박한 심정이 노동자로 하여금 분신을 택하게 하는 것이다. 분할되고 고립된 현장은 적들의 침탈과 지배를 강화시킨다.
훗날 엥겔스는 1850년에서 1870년간의 20년간 자본주의의가 놀라운 진보를 거듭하여도 노동자계급의 상태는 언제나 거대한 실업 과잉인구의 유입, 새로운 기계에 의한 노동력의 끊임없는 대체, 농업인구의 이주 등으로 과거의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호황도 자본주의 체제 안에 벗어날 수 없는 경제법칙,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공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48년에서 1868년까지 노동자들은 산업 확장기 동안 비참함을 견뎌야 했을 뿐,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기껏해야 순간적인 개선만을 경험했다. 투쟁하지 않으면 자본가들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다! 호황에서의 부분적 개선, 개량조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자본의 위기는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임금삭감과 해고로 내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는 파업투쟁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노동자는 임금삭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임금 삭감의 필연성에 대해서까지도 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노동자는 계급적 단결의 힘을 얻는다.
레닌의 말에 따르면 엥겔스는 노동자들은 고통받는 계급 이상의 존재임을 최초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상황이 너무나 비참한 것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고 보았다.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환경자체는 노동자들을 스스로의 해방을 향한 투쟁에 나서게 하며, 현장에서의 훈련은 노동자들을 혁명의 전위로서 단련시킨다. 대중의 역동적인 파업으로부터 혁명의 불꽃은 타오른다! 오늘날 개량주의자, 관료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또한 투쟁이 되지 않게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을 애써 분리시키려 한다. 그러나 역사 속의 저 유명한 차티스트 운동가는 말한다.
“차티스트 운동은 선거권을 획득하는 것 따위가 중요하다는 식의 정치적인 문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운동은 일종의 나이프와 포크의 문제이고 차티스트 헌장은 말하자면 좋은 집과 훌륭한 음식과 마실 것, 넉넉한 살림과 짧은 노동시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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