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이닉스 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
이제는 실감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그 서러운 이름을
“98년 외환위기 이후 금성일렉트론(LG반도체의 전신)에서 현대반도체로 공장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속이 금성일렉트론이었는지 (주)○○였는지 알게됐다. ‘회사 살리기’, ‘고통분담’의 일환으로 상여금을 600%씩 반납하고 난 후 금성일렉트론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은 얼마후 다시 되돌려받았으나 (주)○○ 소속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고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지기만 하였다.
전까지는 자신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도 모르고 모두 똑같은 대우로 노동을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하는 일은 변함없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점차 낮아지더니 현재는 정규직의 40%밖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10년간 일 하면서 업체가 7번이나 바뀌었는데 근로계약서는 10년 전에 한 번 써보고 안 써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업체 명의와 사장 이름도 이젠 다 외우지도 못하겠다. 언제나 자동으로 고용승계 해왔으면서 지회를 만들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04년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해고되었다.”
인터뷰
-신재교 지회장, 불법파견대응팀 양순직 부장, 김광복 대외협력부장
1. 지회 설립 과정은?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는 작년 10월 22일 설립되었다. 원래 ‘노사협의체’라는 틀이 있어 하청업체사장과 근로자대표 3인이 협의를 할 수 있게 되어있긴 하나 형식적일 뿐 한계성이 너무 분명했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하여 노조와 관련한 교육을 받으면서 노조 설립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10월 14일 하이닉스 반도체 사내하청업체 중 현대휴먼플러스라는 업체에서 청주공장 37명, 경기도 이천․영동․구미공장 67명 총 104명 불법파견 진정을 넣어 판정이 났다. 이를 계기로 사측에서 현장에 대한 감시와 관리가 한층 강화되자 이 상태로라면 노조를 띄우기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어 당시 노조를 준비하고 있던 초동주체 4인이 기습적으로 야간에 노조가입원서를 돌리고 다음 날 아침 노동부에 팩스로 노조설립신고를 넣는 등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당시 60～70여명 정도가 가입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었지만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300여명이 노조에 가입을 하였고 이것은 총 5개 업체에서 90%에 가까운 조직률이었다.
2. 지회 설립 후 투쟁경과는?
‘민주노조인정! 고용승계 보장! 임단협 쟁취! 비정규직 차별철폐!’라는 4대 요구안을 걸고 12월 4일 최종 교섭 결렬 후 7일부터 준법투쟁을 시작했다. 토, 일요일 출근거부 - 잔업(O/T)거부 - 13일, 14일 4시간 부분파업 - 15일 이후 전면파업 등 점차 투쟁의 수위를 높여갔다.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계약해지(해고)하겠다는 바지사장의 경고문은 수시로 날아왔지만 우리의 대오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결국 12월 25일 조합원 모두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장폐쇄’를 받고 새해선물로 ‘해고’를 받았다.
그 후 매일 오전 하이닉스 정문 앞에서 공장진입투쟁을 하고 있고 오후에는 청주지방노동사무소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고 있다. 29일 공장진입투쟁에서 많은 조합원들이 발톱이 빠지고 뼈에 금이 가는 등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또한 1월 14일 청주노동사무소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판정 결과를 내온 상황이다. 이에 따라 회사 정문 앞 천막 농성을 시작하였고 청주노동사무소의 불법파견 진정 조사과정에서 및 회사와의 유착관계에 대한 항의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3. 그 동안의 투쟁 과정 속에서 조합원 동력은 변함없는지?
처음 5개 업체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3개의 업체 150여명의 조합원이 남아있다. 한 개 업체는 지회를 처음 설립했던 초동주체 4인 중의 한 명이 소속되어있는 업체였지만 투쟁 과정에서 사측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버렸고 다른 한 개 업체는 고령노동자가 많은 업체인데 현재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면서 마음속으로만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이 업체에 대한 지회 차원의 징계도 있어야 하지 않나 고려 중이다.
그러나 현재 함께 직장폐쇄당하고 해고된 3개 업체 150여명의 조합원들은 끝까지 동고동락할 우리 동지라고 확신한다.
4.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도 불법파견 진정을 넣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급업체를 가장한 인화, 성훈, 에프엠텍, 안호 4개업체 230여명의 조합원을 대표하여 7명이 불법파견 진정을 넣었다. 노무관리를 원청에서 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분명 불법파견 판정이 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청주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와의 면담 결과 공정하게 조사했다며 불법파견 불인정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 생각은 다르다. 현재 전 사내하청노동자는 특정한 위치에서 근무는 하고 있으나 원청 회사 설비기술팀에서 모든 업무 및 근로자를 관리하고 있다. 일일업무보고, 이상발생내용, 작업지시, 회의 등등 일일이 모든 간섭을 하고 있고, 하청업체 사장은 인원 및 근태 기록해서 월급만 주는 전형적인 바지사장이다. 그러기에 불법파견이 명백하다.
5. 불법파견 판정에 대해 조합원들의 기대심리도 있었을 텐데,
불인정 판정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응은?
조합원들은 처음에는 실망이 컸다. 불법파견이 당연히 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된다면 복직도 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생각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부 판정에 연연해하지 않고 민주노조 인정 및 고용승계를 위해 흔들리지 않고 계속 투쟁하고 있다.
6.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하이닉스 사측을 얼마나 압박하여 굴복 시키느냐
인데 직장폐쇄와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지금
사측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를 조립하는 클린룸의 적정 온도, 습도, 차압을 유지시켜주고 초순수 물과 초고순도 가스 등을 제공해주지 않으면 그 순간 라인에 나와 있던 반도체 전 물량은 모두 불량이 될 정도로 ‘조업안정성’이 생명이다. 반도체를 조립하는 ‘클린룸’에는 흰 옷 입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지만 정작 그 양옆에서 클린룸의 조립 환경을 조성해주는 주요 유틸리티 설비 쪽은 100% 하청이다. 생산 장비에서 에러가 발생하면 한 대당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만 우리 하청업체가 관리하는 파트는 어떤 한 부서에서 생산 장비 에러가 발생하면 생산 장비 전체가 다운될 수도 있다.
때문에 지회에서 부분파업이나 잔업, 특근 거부 등을 들어가면 사실상 생산이 어려웠고 전면파업 이후에는 A/S업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쓰고 있긴 하나 다년간의 노하우 없이 그러한 완벽한 반도체 생산 환경을 조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 자체만으로 이미 사측에 압박이 되고 있다고 본다.
7. 대체인력투입이 있었다는 말인데?
작년 12월 7일의 준법투쟁부터 전면파업, 그리고 25일 직장폐쇄, 31일 해고 때까지의 과정에서 하이닉스 사측은 일당 9만원이라는 조합원의 임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용역 아르바이트생이나 A/S업체 소속 직원을 투입했다.
8. 대체인력도 투입 되었고 총 12개 사내하청 업체 중 조합원이 소속되어있는 3개
업체만이 전면파업을 들어갔다면 사실상 생산의 차질이나 타격은 미약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반도체 산업은 ‘조업안정성’이 생명이고 다년간의 노하우가 없으면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생산차질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현재 클린룸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까지도 사측에게 지회와의 사태를 빨리 해결하라고 아우성이라고 한다.
또한 조합원 수를 늘리고 싶어도 지회가 기습적으로 설립된 후 사측에서 재빨리 나머지 업체에서 한국노총 소속 노조를 만들어 놓아서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
9. 앞으로의 투쟁계획은?
우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하이닉스 정문 앞 천막농성을 굳건하게 유지하며 오전의 하이닉스 정문 앞 공장진입투쟁 집회와 오후의 청주지방노동사무소 항의집회는 계속 진행할 것이다. 전문화되지 않은 인력을 임시직으로 고용해 쓰는 사측으로서도 상당한 사건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지금도 공장에서는 계속적인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청주의 얼굴인 하이닉스를 언론공격을 통해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힐 것이다.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과 연계하여 전국적으로 이슈화시켜 낼 것이다. 곧 시민단체와의 공대위 구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같은 정치적 문제는 당과 상급단체에서 하고 우리는 현장에서 열심히 당면문제에 대하여 투쟁할 것이다.
사측은 우리의 대오가 곧 시간이 지나면 흩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10.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투쟁 등 정치적인 문제는 민주노동당과 상급단체
의 역할이라고 하셨는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에서 하이닉스-매그나칩 지회
투쟁에 어떠한 연대투쟁을 펼쳤는지?
지역집중집회를 2번 박았고 민주노동당에서 사장과 이사장을 만나 개별면담을 요청하고 국회에서 압박을 넣을 것이라고 본다.
11. 청주의 얼굴인 하이닉스 업체의 도덕성을 훼손시켜 시민단체와 함께 언론화
시키는 것에 매진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것을 통해 어떻게 하이닉스 자본이 타격이나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앞에서도 말했듯이 반도체 산업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측은 현재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지회를 말살하기 위해 참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민단체와 함께 도덕적으로 무력화시킨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전례 투쟁의 한계를 딛고 전진하자!
현재 하이닉스 원청은 2004년 12월 31일자로 지회 소속업체와의 계약을 만료하고 2005년 1월 1일부로 새로운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맺은 상태이다. 이제 불법 ‘대체인력’이 아니라 합법적인 ‘고용인력’이 확보된 것이다. 또한 불법파견이 우선 불인정으로 판결났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사청지회에서는 천막농성에 돌입했는데 연맹차원에서는 불법파견 인정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잠잠한 모습이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불법파견이 인정된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정규직화 투쟁으로 이끌어내느냐가 사실상 핵심 투쟁이다. 사측의 계약해지, 합법도급화, 업체변경, 직접고용 비정규직 재계약 등 법망을 피해가는 각종 술수를 차단하고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쟁취를 따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강고한 투쟁, 현장에서부터 타격하는 투쟁만이 필요할 뿐이다.
또한 노동 과정에서의 노하우와 전문지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당장에 약간의 손실에 사측에 가해진다고 해도 자본의 입장에서는 계급적 의식을 가진 노동자 투쟁보다 위협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 투쟁을 무력화 시키려 한다. 자본이란 노동자에게서 뽑아낸 피땀으로 이윤을 지속적으로 축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데 계급적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굴레를 거부할 수 있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생사가 걸린 투쟁에서 사측이 노동자의 요구를 인정하게 하는 방법은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자본에 타격을 입히는 것뿐이다.
2002년 발전노조는 반도체 산업 못지 않게 전문적인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발전산업에서 조합원 이탈 거의 없는 38일간의 산개투쟁이라는 총파업 전술을 성공적으로 펼쳐냈다. 유니온 샵에 전국적 지부를 갖고 있던 발전노조의 총파업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소는 대체인력으로 결국 전력난 없이 잘도 굴러갔고 (전력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발전노동자들의 파업을 이기적인 반국민적 행위로 몰아간 것은 오히려 부르주아 언론이었다.) 그 결과 발전노조의 투쟁은 현장이 아닌 외곽에서의 선전과 집회로 머무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민주노총의 2002년도 4월 2일 기만적인 총파업 철회 이후 발전노조 파업은 더욱 고립되었고 이후 복귀한 현장에서는 각종 징계와 손배가압류, 해고 등 현장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적 관계는 온전히 힘의 관계이다. 자본이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교섭테이블로 들어올 때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통해 힘으로 자본을 굴복시켰을 때 뿐이다. 또한 자본가는 각종 부르주아 매체(방송, 라디오, 신문 등)까지 장악하고 있고 그것을 노동자 투쟁의 무력화와 분열에 이용한다. 결국 언론플레이는 노동조합에 힘이 있을 때만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2003년 5월 15일 화물연대는 ‘물류대란’, ‘물류붕괴’라는 대대적인 부르주아 언론의 매도 속에서도 굳건하게 포항, 부산 등 핵심항구에서 14일간의 총파업을 진행하여 결국 노-정 교섭으로 특수고용직노동자 노동3권 인정 등을 쟁취했다. ‘줄 게 없다’며 공권력 투입과 지도부 전원 구속 등 강경대응 방침을 일관하던 정부도 흔들림 없는 파업으로 대책이 서지 않게 되자 파업 중인 화물노동자들이 운전대를 잡지 않으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하루 아침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개시’로 입장을 바꿨다. 결국 ‘다 퍼 준 것 아니냐’는 경제계와 부르주아 언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으면서도 화물연대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꾼다’는 손수건 그대로 흔들림없이 투쟁을 전개하여 따낸 승리였다.
2004년 여름을 달궜던 보령과 춘천의 풀무원 노조 투쟁. 풀무원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저임금에 모두들 경악했다. 정규직의 노동환경마저 워낙 열악해서 비정규직이 필요 없는 현실. 아니,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는 현실이 풀무원 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풀무원노조는 청정기업, 풀무원에 대한 이미지타격에 집중하면서 실질적인 춘천 사측에 대한 투쟁은 방기하였다. 교섭권을 투쟁 막바지에 연맹에 위임하면서 투쟁은 삽시간에 정리되었고 일찍 현장에 복귀했던 보령노조의 합의안은 말할 것도 없고 끝까지 남았던 춘천노조의 합의안마저도 기본적인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철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투쟁의 사기와 동력은 조합원 대중의 역동성과 자발성에 의해 정말 순식간에 높아지기도 하고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한다. 이것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점진적으로 투쟁 수위를 높이면서 노동자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조직적으로 표현하는 길 뿐이다.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의 비정규직 투쟁이 이러한 전례 투쟁의 과오와 한계를 거름삼아 굳센 비정규직 투쟁의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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