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인터뷰-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를 찾아서>
산별 관료주의에 대응하는
서울대병원지부의 투쟁은 정당하다!
보건의료노조 서울대병원지부가 최근 산별노조 조건부 탈퇴를 결의(조합원 89.9% 찬성)한 가운데, 공개적인 토론회를 제안했다.
그동안 ‘산별만능론’을 주창했던 관료들에게는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10월에 화학섬유, 금속, 공공 등이 줄줄이 산별전환 계획을 잡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 성과를 과대포장 해야 그나마 약발이 먹힐 거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산별교섭을 두고 ‘산업별 노사관계로 전환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헛갈리지 말자. 그들이 말하는 ‘산업별 노사관계’는 ‘산업별 노사파트너쉽’을 의미할 뿐이다.
사실 ‘산별노조’는 그동안 노동계에서 오랫동안 논쟁되어 왔던 사안이지만, 중앙파, 국민파가 현장에서의 충분한 토론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시키면서 현장의 건강한 문제제기들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산별노조는 현실투쟁에 실물적인 흐름으로 등장하였고, 저들은 이것을 근거로 이제는 ‘산별대세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실 계급투쟁의 한복판에 들어선 산별노조는 그들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역으로 그 폐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로써 산별논쟁은 현실투쟁을 근거로 2라운드로 들어섰으며, 지금, 서울대병원지부가 외롭게 거대 관료세력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이 투쟁은 일부에서 ‘내홍’, ‘조직 내 계파싸움’이라고 왜곡, 폄하하는 것과는 달리, ‘과연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전장에서 노동조합의 임무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그러하기에 모든 운동세력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노동자계급운동의 원칙을 다시 재정립하는데 서울대병원지부 투쟁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서울대병원지부 김애란 지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면상 충분한 내용을 담을 수 없었음을 사과드리며, 차후에 산별에 대한 독자 기사를 통해서 풍부한 논의를 전개할 것임을 밝힌다.)
- 먼저 산별교섭이 진행됐던 상황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주십시오
- 98년 산별노조로의 조직 전환 이후 올해가 첫 산별교섭이었다. 사실 병원 사업장도 처한 조건이 제각각이어서 중소병원 노동조합의 경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어려운 사업장도 힘을 받고, 공동투쟁을 통해서 보다 나은 조건을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거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투쟁 기간 내내 본조는 그러한 현장의 열망을 받아안지 않았다. 또한 투쟁을 기획하면서 객관정세판단에 있어서 굉장히 안이한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공동으로 7일 정도 파업하면 뭔가 나오겠지’라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투쟁전술에 있어서도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무조건 상경해서 중앙에 때려 박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중앙에 집중할 땐 하되, 각 지부 현장투쟁의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병원 사업장의 특성상, 현장에서 때려박는 투쟁이 효과적이다. 처음 7일 동안 파업전술이라고는 광화문 앞 집회와 선전전이 다였다. 그러다가 사용자측이 완강하게 나오니까 서울 소재 병원의 지부진격투쟁으로 전술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2차 때는 사용자측이 ‘대오 빼면 교섭하겠다’고 하니까 교섭명분으로 대오를 빼버렸다. 그 때에도 서울대병원은 대오를 빼지 않고 로비점거투쟁을 계속했다.
- 잠정합의안 이후 독자파업을 지속했는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는지?
- 사측의 태도가 달라졌다. ‘사측에서는 산별교섭 했으니 할 필요 없는 거 아니냐’로 일관하면서 ‘파업 풀면 교섭하겠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파업투쟁은 사측이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이전에는 이런 식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거기다 근무형태 개악안까지 제시했다. 시간외수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무시간을 변경한다는 건데, 교대 근무하는 간호부에만 해당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현장 내부를 분열시키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후 투쟁을 통해서 철회시켰다.
- 연관해서 이번에 삭제를 요청한 10장 2조에 대한 설명과 그것이 현장에 미친 파급력에 대해서?
- 10장 2조의 내용을 보면 ‘임금, 노동시간단축, 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생리휴가는 지부 단협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동 협약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협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모든 노동조합 투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데, 이것에 대해서 산별협약이 우선 효력을 가진다는 것은 지부차원에서의 투쟁을 차단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내용이 알려지자, “힘들게 17년 동안 따놓은 단협을 이렇게 홀라당 바꿀 수 있는 거냐!”면서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사측에서도 핵심사항은 맘 편하게 합의해놨으니, 그 사안에 대해서 거론하면 ‘배째라’식으로 나온다.
- 보건의료노조(본조)의 반응은 어떠한가?
- ‘(우리의) 문제제기에 대해서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노당에 투쟁지원을 공식 논의안건으로 상정할 것을 요청해서, 논의할 때에도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도 있다면서 논의가 집중되는 것 자체를 막으려 했다. 현재 8월 4일 보건의료노조 서울본부 집행위 회의에서 서울대병원지부에 대한 징계결의안을 중집으로 올린 상태다. 9월 1일 중집 수련회가 있는데, 그 때 논의될 것으로 알고 있다.
- 지부 독자 파업기간 동안 본조 차원의 지원은 있었나?
- 44일간 독자파업하면서 당장 ‘무노동 무임금’ 때문에 투쟁지금 지원 및 생계비 대여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7월 19일자 서울본부 답변이 “조직적으로 잠정합의된 산별 잠정합의안에 대한 수용여부가 쟁점으로 되어 있어 이에 대한 서울대병원지부의 입장변화가 없는 한 … 수용하기 어렵다 … 경희의료원, CMC 장기파업 당시에도 3개월째부터 … 그에 따라 지원을 결정하더라도 3개월째부터 지원하는 것이 적절…”, “서울대병원지부가 10장 2조 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그간 조직의 명예를 훼손한 점에 대한 사과가 선결되어야만 조직적인 지원 방침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다음날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잠정합의 10장 2조 문제제기에 대한 공식입장 중 지원관련 내용은 “산별합의안 수용을 거부하고, 무효를 주장하면서 파업을 지속하는 한 보건의료노조 차원의 전면적인 지원은 불가능하다”였다. 7월 16일에 (본조)위원장이 처음 방문했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 문제가 있더라도 내부에서 바꿔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 이번 문제는 돌발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사안이 아니다. 그동안 지속되어왔던 폐해가 일부 드러난 것뿐이다. 예전에 서울대병원 간병인 노동자들이 8개월 동안 투쟁할 때에도 그 투쟁을 적극적으로 받아안지 않았다. 하다못해 간병인지부로 승인 받는 것조차 굉장히 어려웠다. 우리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현장 조합원들부터 이미 본조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다. 물론 독자로 가는 것에 대한 현장의 불안이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조건부 탈퇴에 89.9%의 찬성표가 현재 조합원들의 의지와 상태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숱하게 문제제기 해오고 내부에서 바꿔 보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안된다. 지금도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모든 정보와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상태에서 이대로 가다가 내년 투쟁은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다.
- 보건의료 쪽만 아니라 이미 대다수의 연맹들이 산별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타 연맹의 ‘산별만능론’에 대해 현장 동지들에게 하고픈 말은?
- 이번 금속산별 교섭할 때, 사측에서 오히려 보건의료노조의 잠정합의안을 들면서 이 정도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해서 금속노조에서는 ‘서울대병원지부 사례를 보라’고 대응했다고 하더라.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단결을 크게 하는 것은 맞다. 최대한 대산별로 가야 한다. 우리도 산별노조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중앙이 관료화되면 상황은 틀려진다. 이번에도 교섭위원은 물론이고, 쟁대위도 본조 임원과 본부장급까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지부장의 참여도 배제된 상태에서 현장의 요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노동조합이 무엇인가? 노동자들의 대중적인 투쟁조직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기본정신과 원칙을 저버린다면, 산별노조나 기업노조나 안되는 거다.
- 그러한 관료화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예전에 금속에서는 지부의 독자파업권, 체결권 등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하나의 제도적 장치일 뿐이고, 지부장님이 생각하기에 관료화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결국에는 현장이 살아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현장도 그러한 분위기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그게 지금 보건의료노조의 상황이다. 투쟁을 할 때에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고 얘기한다. 노동자가 줄 게 뭐가 있는가? 이런 정서가 확산되다 보니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적극적으로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최대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장과 함께 하면서 현장이 살아 숨쉬도록 만들어야한다. 그럴 때만이 관료화, 개량화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노동조합이 힘을 가질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이후 계획은?
- 8월 28일(토)오후 2시에 서울대병원 본원 지하 1층 A강당에서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다.
최대한 이번 사안을 노동운동 내에서도 공론화해서 정말 올바른 방향을 도출시켜야 된다. 현재 보건의료노조 대경본부 등과 함께 토론회 기획팀을 꾸렸다.(보건의료노조 구미차병원지부, 김천의료원지부, 경북대병원지부, 동국대의료원지부, 동산의료원지부, 대구적십자병원지부, 상주적십자병원지부, 파티마병원지부, 혈액원지부가 1)산별 잠정합의안 10장 2조의 합의과정 공개 2) 산별 잠정합의안 10장 2조의 문제점 시인 및 전 조직적인 공유 3) 산별 잠정합의안 10장 2조에 대한 전면적인 재교섭을 요청한 바 있다.) 동지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