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노신보고서에 대한 반론을 일고 평가해 준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동지의 지적대로 사노신보고서를 쓴 필자와 반론을 쓴 필자는 향후 도철 현장투쟁재편의 동반자여야 한다. 보고서와 반론은 전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필자들이 서 있는 현장 내 역할의 차이로 인해 강조의 지점과 제기된 문제에 대한 동의여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도철 내 민주파 활동가들은 과연 현장의 대안세력일 수 있는가 하는 시험대에 끊임없이 놓이고 있다. 그러나 03투쟁이 기만적으로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부결 투쟁도 조직하지 못한 것은 도철 민주파가 변명할 여지가 없다. 또한 03투쟁 이후 후속조치 이행을 투쟁으로 쟁취하지 못하고 상층 실무교섭으로 구걸하다시피 하는데도 민주파는 회의체 내에서의 대응밖에 하지 못했다. 도철 민주파 활동가들은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상반기 노동시간단축투쟁과 단협개악 반대투쟁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 투쟁에 민주파가 어떻게 개입하고 지도력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이후 활동가들의 존립과 재편이 결정될 것이다.
도철 7시간 파업과정에 대한 평가에서 여전히 하나로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찬반투표’이다. 파업의 정리여부를 조합원들이 직접 결정한 점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는데 그야말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평가이다. 민주파는 지도부가 투쟁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기 위해 조합원 찬반투표를 붙이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예정되어 있던 취침시간(5시부터 9시까지)조차 무시하고 투표를 하기 위해 조합원들을 깨우는 폭력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어렵게 찬반토론 자리를 만들어 냈고 부결을 선동했지만 이미 조합원들은 찬반토론 자체를 지루해했다. 집행부가 파업돌입 이전과 비교할 때 아무런 차이가 없는 내용을 ‘최종안’이라며 투표에 붙이는 행위는 이미 백기투항이다. 조합원들이 이를 모를리 없다. 대오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민주파가 찬반투표를 저지시켜내지 못한 것은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지 변명할 게 아니다. 부결선동을 할 것이 아니라 투표거부를 주장했어야 한다. 취침시간을 지켜줄 것과 따뜻한 식사를 요구했어야 한다.
민주파는 03투쟁에서 그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냈다.
03투쟁의 한계와 오류는 단지 ‘조합원찬반투표’에 국한되지 않는다. 투쟁 전 과정에서 조합질서 이상의 어떠한 실천적인 투쟁도 조직하지 못한 민주파 활동의 문제점이 구체적 각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민주파 활동가들은 ‘민주연합집행부’와 대별되는 독자적 활동을 벌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고 그 부담감 때문에 파업을 벌인 그 자리에서도 민주파는 단일한 입장을 갖지 못했다. 민주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 중앙과 어떤 관계를 가져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사노신보고서에 대한 반론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도철 노동조합집행부와 민주파 활동가들로 이분화되어 있지 않은 구조임에도 이를 단순히 이분화하여 평가하고 집행부에 기대어 민주파 활동가들이 면피하고자 했다는 지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반론을 쓰게 된 것이다.
현장의 상황은 현 집행부가 늘어놓고 있는 노사협조적 행태들에 독자적인 대응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파 활동가들이 앞으로도 집행부와 어정쩡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청산하고 전투적 투쟁을 벌여낼 때에만 도철 민주파는 존립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