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노사정위 참가를 앞에 두고 어떤 행동을 조직할 것인가?
“지난 시기의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와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합리화하면서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기구로 전락했던 ‘안 좋은 추억’을 지닌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의회진출, 산별건설 진전이라는 일부 변화를 들어 노사정위 재참가 여부를 논의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5월 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새로운 노사정위 체제를 논의키로 했다는 소식은 기존 노사정위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교섭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입장을 관철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노동과 세계’ 제293호 김창희 사무금융연맹 정책실장)
배신과 변절, 좌충우돌과 대중에 대한 약속파기가 판치는 노동운동판에서 일관된 지도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집권 전과 후에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관되고 치밀하게 자신의 공약사항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이수호 집행부는 현재의 노사정위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말을 약간만 뒤집어보면 현재와 다른 구조와 형식, 위상을 가진 노사정위라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관료주의자들은 현재의 노사정위를 대체할 수 있는 강화된 위상과 틀을 가진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를 갈망해 왔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되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 졌다고 하면서 노사정위 참여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입법화한 기존의 노사정위는 단지 ‘안 좋은 추억’일 뿐이라며 자신들의 반동적 행위에 대해 스스로를 위안하고 대중들을 기만하려 하고 있다.
이들 관료주의자들은 미래의 노사정위는 논의 의제를 대폭 확대하고, 노사정 협의의 틀을 산업별, 지역별로 다양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새로이 개편될 노사정위에 참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토론을 넘어 중층적인 교섭구조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정책적 역량을 강화하고 조직력을 강화할 것인가를 현장에서 토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전술적 참여론자들이 말하는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를 경계하자는 주장과 똑같다. 노동 대중들이 실질적으로 노사정위의 반노동자성을 경험하고 선진 활동가들이 극도로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더 이상 노사정위 참가가 전략이라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세력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조금만 직관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들은 전술적 참가의 이름으로 전략적 참가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금속과 공공연맹 상층에 포진돼 있는 기존의 전술적 참여론자들은 이수호 집행부의 노사정위 참가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고 있다. 그들은 왜 제동을 걸고 있을까?
“논의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내용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우리사회의 수준이 아직까지는 부족함을 말해준다. 민주노총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내부논의 과정과 사전에 충분한 내용을 준비하는 태도가 절실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노동과 세계’ 제293호 노재열 금속산업연맹 정책기획실장)
전술적 참여론자들은 이렇게 단지 절차상의 문제와 노사정위 참가 일정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문제 제기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사정 논의과정을 굳이 반대하거나 장황한 설명으로 문제의식을 희석할 생각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잘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성급하다.”(같은 글)
이들은 대공장 노조가 대부분 8월 휴가를 앞두고 임단투가 정리되는 데 3개월 동안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결정하면 사전 논의를 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좀더 시간 여유를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지들! 여기서 헷갈리지 말자! 이들이 시간을 달라는 것은 노사정위 참가 여부를 현장에서의 토론을 통해서 결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달라진 사회적 대화틀 참가를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참가하는 것은 확실하나 참가 시기, 방식, 노사정 틀과 논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 사전에 논의하여 제대로 “잘 하자는 것이다” 성급한 참여는 “현장 노동의 거부정서가 과잉조성”되어 또 다시 현장의 아래로부터의 대대적 반란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절차적 하자 없이 일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빈깡통을 차고 먼길을 떠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는 속도조절론자들과 속전속결론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기존의 전술적 참여론자들이 더 새빨간 전략적 참여주의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관료주의적 산별노조를 체계적으로 추구하면서 법률적 청원기구인 민주노동당을 한 축으로 하고, 노동조합 중앙 차원에서는 산별 중앙교섭과 중앙 노사정위원회를 하부 단위에서는 지역단위, 업종별 노사정협의체로 단사에서는 독일의 공동결정제, 공인노무사를 통한 사적조정 제도 같은 얽기고 설킨 거미줄 같은 정교한 교섭 체계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참가의 완성판인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힘의 역관계에 따라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일부 관철하기도 했으나 결국 “경영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진다”는 업보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자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다룰 것을 약속한다.
관료주의자, 개량주의자들에게 산별노조는 더 이상 단사와 업종, 정규직, 비정규직, 실업자 등 노동자 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강력한 전투부대로서의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다. 또한 더 이상 계급투쟁의 참호인 현장의 강력한 힘과 이것의 지역적 확대 전선이 더 이상 아니다. 아니 처음부터 현장의 계급투쟁을 봉쇄할 목적으로 관료주의적, 개량주의적 산별노조를 건설해 왔다.
이제 감히 그 누가 있어 횡축, 종축으로 미로같이 막아 놓은 계급투쟁 질식구조를 뚫고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단 말인가?
향후 노사정위원회가 노리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노사정위원회의 본질이 개량주의적 노동운동 지도부를 들러리로 내세워 합의와 동의의 외양을 채우고 계급투쟁의 질식구조를 제도화하여 자본의 영원한 착취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기구라고 규정했다. 노사정위의 이러한 본질적 성격을 파악하면서도 우리는 각 시기의 노사정위가 직접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알아야지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1기 노사정위는 사회적 합의의 최초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같은 노동악법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당시 민주노총 배석범 직무대행은 자본의 들러리 역할에 능동적으로 충실하면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도입에 직권조인 하였다. 이후 현장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 직권조인한 합의안은 98년 2월 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고, 개량주의 지도부는 사퇴했다. 자본과 정권은 바터로 합의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입법화는 빠르게 도입하고 현장 내에서 폭력적으로 이를 관철시키면서도 전교조 합법화, 실업자의 초기업 노조 조합원 자격 인정 등의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이행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관료주의자들은 기존의 노사정위는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기구가 아니고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노사정위’를 건설해야 한다고 재빠르게 말을 갈아탔다.
2기 노사정위원회는 이른바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하에 공공, 금융 및 각종 구조조정 방향을 정립하고 노동유연성을 위한 법, 제도의 추가적 정비에 앞장섰다. 철도, 발전, KT 등 공기업 사업장을 몰아친 민영화 태풍과 금융의 매각․합병 등 2, 3기 노사정위는 상시적 구조조정을 관철하려는 핵심 목표를 가졌다. ‘사회통합’이라는 수식어는 이러한 상시적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여 계급투쟁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민주노총이 탈퇴와 참여를 반복하면서 내부의 혼란과 갈등으로 소용돌이치는 상황에서도 노사정위는 각 시기마다의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다만 2기-3기 노사정위는 이후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인해 상층에서의 합의 사항을 현장 밑바닥까지 관철시키는데 좀더 어려움을 겪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 하에서의 노사정위가 관철시키려 하는 자본의 교시는 무엇인가? 이를 통해 정권이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바로 ‘노사관계 선진화방안’으로 제출된 ‘노사관계로드맵’이다. 6월 4일 1차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는 노사정위원회 개편방안과 노사관계법 제도 선진화방안(노사관계 로드맵)을 이후 핵심의제로 잡았다. 작년 ‘노사관계 로드맵 폐지’구호가 어느새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의제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노사관계 로드맵은 거의 ‘적들의 가공할만한 도발’이라고 할 수준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정리해고 요건 완화와 파견업종 확대, 성과급제 등 임금체계의 합리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의 최소화와 초과지원 시 제재, 파업 기간 중 무노동 무임금 유지, 임금 지급 요구 파업 금지, 복수노조 허용 시점에 맞춘 유니언 샵 규정 정비 또는 폐지, 사업장 무단 침입과 점거농성 등은 침입죄, 업무방해죄 등으로 제재, 쟁의행위 찬반 투표의 시기와 유효기간 설정, 파업의 불법, 합법성 관계없는 직장폐쇄 가능, 공익 사업장 파업 시 대체근로 제한을 없애고 신규 채용과 하도급 허용, 현행 30일에서 60일로 파업 금지기간을 연장하는 긴급조정 제도 변경 등 거의 ‘적들의 가공할만한 도발’이라고 할 정도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노사정위 조건부, 전술적 참여를 주장하는 개량주의자들은 노무현 정권의 노동개혁을 함께 완수하기 위해 노동자한테 유리한 조항도 있고,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 노조의 가입만 인정하는 내용은 1기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하면서 바터로 합의한 내용에 불과하다. 그것도 단위 사업장 가입은 불가능하다. 손배, 가압류 개선안은 효성, 태광 등의 노동자들에게 지금도 가해지고 있는 탄압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그것조차도 합법파업의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노사관계로드맵이 현실화되면 공장점거 파업과 공장 내 천막농성, 본사 점거와 항의방문 등 공세적인 파업전술이 모두 불법이 된다. 따라서 파업권이 파괴되는 한 손배, 가압류 제도는 여전히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일 뿐이다.
교섭주의자들은 단위 노조에서도 교섭과 투쟁을 병행하는데 노사정위 참여가 뭐가 문제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투쟁의 힘을 비축하고 준비하면서 교섭결렬에 따라 언제든지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단위 노조 교섭과 국가가 총대를 메고 개입하여 제도화된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질이 아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노사관계로드맵을 관통하고 있는 본질은 사용자에게는 무제한의 대항권을, 노동자에게는 불법 파업의 굴레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런데도 개량주의, 관료주의자들은 적들은 한 판 전쟁을 벌일 기세로 달려들고 있는 데 대응 및 반격을 조직하기는커녕, 노사정위에서 외교담판으로 해결하려는 망상에 빠져 있다.
과연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는가?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는지 5월 31일 ‘노사관계 토론회’에 제출된 노동부 자료를 보자!
한시적으로 노사정위원회와 별개의 중앙단위 노사정 대화채널 가동 필요
- 노사정위원회 개편문제를 우선 논의하고, 주요제도개선 현안에 대한 논의 방향과 일정 등의 공감대 형성
- 향후 노사정위원회로 연결
현 노사정위원회와 별도로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중앙단위 노사정 대화 채널’이 바로 ‘노사정대표자회의’이다. 노동부는 명시적으로 이것이 ‘향후 노사정위원회로 연결’ 된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증거가 명확한데도 이수호 집행부는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이제 사실을 좀더 분명히 정리해보자! 관료들에게 노사정위는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데 다만 노사정위 운영 방식과 구성, 조직방식, 논의 의제 등이 결정되지 않았을 뿐이다. 또한 여기에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은 시민 사회단체 까지 포함하는 ‘경제사회위원회’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참고로 기존의 전술적 참여를 외치던 이른바 중앙파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을 통해 시민 사회단체를 포괄하고 있는데 참가의 저변을 넓힐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기존의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이 참여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 노사정위원회는 노동계의 온전한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그 기능과 역할에 있어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하고 있다. 또한 “위상강화 및 운영의 실효성 제고, 분과위 체제로 개편, 업종․지역 노사정협의회(와) 연계”하여 “각계 의견을 수렴, 명실상부한 사회적 대화의 총괄기구로 개편”한다. 노동부는 이렇게 관료들이 요구하는 방식과 내용으로 노사정위 참가 명분과 외형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봉쇄하는데 있어서 관료주의자들과 노동부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청와대 정책실 산하에 ‘노동개혁T/F팀’(이후 노동비서실로 변경하여 정책에서 노사관계 현안대응 중심으로 나아감)을 구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해왔고, 노사정위원회에 민주노총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첫해에 배달호 열사 투쟁, 화물연대 투쟁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고 비정규직 노동열사들의 분신자결투쟁이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공식적인 청와대 라인(김영대, 이목희, 김금수, 박태주 등)을 통한 사전정보와 사후통제에 실패했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은 노동운동을 체제내로 포섭하는 것이 사활적 과제로 되면서 씨줄 날줄의 중층적, 총체적 교섭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하여 계급투쟁의 완충장치를 제도화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정부와 민주노총 사이에 검토되고 있는 ‘핫라인’은 정말로 시사적이다. 과거에는 이 ‘핫라인’이 비공식적이었지만 이제는 좀더 공공연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교섭구조의 제도화를 위한 노력은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의 등장과 민주노동당 내에서 우파들의 득세로 인해 한층 더 탄력을 받고 진행되고 있다.
아직 산별로 전환하지 않은 대공장에서는 자동차공업협회나 조선공업협회 등에 교섭을 요청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측만 참석하면 자연스럽게 노사정 협의체가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수호 집행부는 아직 노사정위원회 복귀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으며 대대를 통해서 확정할 것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지금 말장난하자는 것인가? 현장노동자들이 노사정위 탈퇴, 해체를 요구한 것은 단지 ‘노사정위원회’라는 명칭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체제내적으로 통제하려는 모든 기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구성되면서 실질적으로 노사정위원회는 재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 ‘사회통합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총력투쟁을 앞두고 민주노총 대표자들을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라는 몰계급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주제의 토론회에 끌어들인 것 자체가 이미 자본과 정부는 절반 정도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앞서 “총력투쟁 시기를 앞두고 문제해결을 위한 집중교섭을 10일까지 벌여 의미 있는 합의를 만들자”고 재계에 제안한 것도 토론회 바로 다음날인 6월 1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갔는지 뻔하지 않은가? 민주노총은 여기서 더 나아가 6월 6일, 7일 ILO총회 참석 명분으로 노사정이 나란히 출국하더니(이는 91년 ILO가입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11일 열린우리당과의 간담회에서 장기사업장 문제해결을 위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총이 매월 정례회의를 개최키로 합의하였다. 게다가 이수호 선생님은 6월 25일 2차, 3차 총력투쟁 사이에 경총 주관 조찬 세미나에서 ‘민주노총의 노동운동 방향’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흔쾌히 수락 했다. 개량주의 관료들의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은가?
참여연대는 자신들도 끼워달라면서 노사정위 발전적 해체 및 정부와 정당, 기업과 노동자, 자영업자,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가)경제사회협의회’구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는 이미 열린우리당과 어느 정도 소통이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바로 다음날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이지폴뉴스’와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를 시민사회단체까지 포괄하는 ‘경제사회위원회’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하였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자신들의 확고한 지지기반인 소부르주아적 시민사회단체들까지 끌어들여서 확실히 주도권을 장악하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회통합’이다!!
대표적인 개량주의 교수인 윤진호는 ‘한국 노사관계 지형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대화전략’에 대한 논평에서 “이념을 빼고 본 사회적 합의주의는 자체로서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다”라고 했다. 윤진호는 하나의 사물을 제멋대로 추상화하여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노사정위에서 자본의 이념을 뺄 수 있다면 우리는 “정신을 빼고 본 윤진호는 그 자체로서 ‘개량주의자’도 아니고 ‘혁명주의자’도 아닌 하나의 살덩어리에 불과하다”라고 고쳐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윤진호식의 사유와 인식 방법론이라면…
이처럼 개량주의자들의 준동이 끝이 없지만 동지들 아직 포기하지 말자! 자본과 노동은 하나의 계급관계이다. 이 계급관계는 주체들의 노력에 의해 변화무쌍하게 살아 움직이는 생물(生物)이다. 따라서 우리는 관료주의자들의 거짓말과 다른 차원에서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치밀하고 대담하게 반격을 준비해야 한다.
전략적 반대 세력을 핵으로 반대전선을 확산시키자!!
우리는 먼저 노사정위 반대 투쟁을 재조직 하면서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투쟁은 당면한 노사정위 반대 투쟁을 통해서 민주노조 운동 내의 관료주의자, 개량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준동을 노동자 대중들한테 폭로하고 사회적 합의를 박살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한번의 투쟁으로 불리한 역관계가 뒤집어지지는 않는다. 정권은 노동운동 내의 전투적 활동가들을 제거하려고 하는 반면에 기회주의자들의 입지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서도 정부는 직권중재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가 이수호 집행부가 19일 비상소집된 중집회의를 통해 “노사정 관계를 전면 재검토”한다고 반발하자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직권중재를 보류한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절망의 끝에서 한줄기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으로서 극단적인 저항을 계속하면서 열사 투쟁 정국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개량주의자는 이에 대해 “이제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입성했는데 여전히 분신을 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가증스런 개량주의자에게는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이 노동자의 저주받은 절망적 고통과 자본의 탄압을 해결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각은 아직 의식적이지 않고 즉자적인 반응에 불과하다. 이러한 즉자적인 자각은 현재 다른 투쟁의 대안도 막혀 있기 때문에 “내 한 몸 불살라서 자본과 싸워보겠다”는 절규로 나타난다. 박일수 열사를 포함한 분신을 선택한 동지들이 남긴 자본과 정권에 대한 증오가 담긴 유서를 보라!
관료주의자들은 단위 사업장 내부로 전선을 축소하면서 열사투쟁을 파괴했지만 단사 차원에서 기만적인 형태로라도 합의안을 만들어 내면서 아직 실체가 만천하에 폭로되지 않았다. 관료주의자들의 실체를 대중적으로 까발리고 대체할 만한 전국적 대안과 구심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서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 엄포를 논 것은 정권이 관료주의자들의 입지를 보장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민주노총 지도부를 끌어 들이고 몇 달 안에 노사정위 참가를 결정하는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비록 유보하기는 했지만 직권중재 얘기가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현 노자관계의 불안정성과 가변성의 진폭이 크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문제는 객관적인 사회적 합의의 토대가 불안정한데도 불구하고 전투적 진영의 고립분산성과 역량의 한계 등으로 인해 계급 역관계는 오히려 대단히 불리하다. 투쟁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과 주체 역량의 부재라는 간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개량주의자들은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극은 현재는 더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의 생존권의 위기는 한층 더 극심해지고 있는 반면에 노사정위에서 직권조인한 합의안을 엎어버렸던 98년 2월 8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대중적 구심 역할을 했던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이하 전국회의)는 정치적 권위를 상실하고 조직적 구심 역할을 전혀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먼저 노사정위에 대한 전략적 반대와 사회적 합의 분쇄를 주장하는 중심부 핵을 구성해야 한다. 이 중심 핵에는 현장조직이 서야 한다. 남한 운동 내에서 현장조직 운동은 이미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의 조직’이라는 생기 없는 규정을 넘어 하나의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현 시기 전국회의의 조직적 상태와 정치적 위기와 상관없는 규정이다. 계급투쟁의 참호이자 요새인 현장에서 선진 활동가들의 아래로부터의 전국적, 전계급적, 전투적 운동으로서의 ‘현장조직 운동’이 이러한 상징적,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비정규직 투쟁과 이주노동자 투쟁, 노조 집행부, 단체, 혁명적 정치조직 운동까지를 포괄하는 운동성을 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를 조직 형태의 위기로 사고하면서 ‘개별 활동가 조직’이나 ‘선 지역조직 건설 후 전국조직 건설’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단계적 사고가 얼마나 천박한지를 알 수 있다.
98년 6.10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전국회의는 부결투쟁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 참여가 가결된 뒤 “이후의 상황까지 고민하여 지침을 생산하는 것은 이미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우리의 의식이 손상될 수 있다”는 전략적 반대와 사회적 합의기구 해체 입장을 견지했다. 당시 전국회의는 168 대 28일로 참패를 하고 강력한 항의와 함께 대의원 대회 장소를 퇴장했다. 여전히 이러한 전략적 입장을 견지하고 중심 핵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전술적 활용 입장에 교란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공연맹 중앙과 일부 소속 단위 노조의 입장은 현재의 노사정위에 대해서 사전 논의가 부족하다는 절차에 대한 제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최근 노사정위 공공부문 구조조정 특별위원회에서 전력부문 배전분할 추진 중단을 골자로 하는 대정부 결의문이 채택된 것을 근거로 활용론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민영화는 소유체계의 재편을 통한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 목적이 있다. 노사정위에서는 배전분할 중단 의견을 내면서 ‘책임경영체제’를 도입하자고 하고 있다. 이 책임경영 체제는 “경쟁적 시장원리와 사적 경영 체제 도입”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민영화가 중단된다고 해도 ‘공격’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 셈이다.
한편 민주노동자전국회의에서는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에 노사정위 반대를 내걸고 공동전선을 형성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가 이수호 집행부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입장은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내부의 산별연맹 협조주의자들에게 비판적인 정통 우파 세력들의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입장과는 사안별 연대는 가능해도 전략적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이미 5월 14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5월 3일 출범한 ‘전주노사정협의회’ 반대 성명을 냈고(“전주시 노사정협의회는 ‘노사분쟁 사전소위원회를 구성해 노사분규에 대한 사전중재와 조율로 기업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겠다’고 선언했다...이는 기업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3권을 제약하겠다는 의도..”) 포철고용특위(구 삼미특수강)도 포항제철 부당해고노동자 복직문제 해결 없는 노사정 참여 반대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대중적 단위들도 전략적 연대나 전략적 핵의 외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국, 독일, 일본 등 중심적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은 서서히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전세계 경제는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는 중국경제의 양상에 따라 극심한 변동을 겪을 것이다. 지난 4월 28일 중국 원자바오 총리가 로이터 통신과의 회견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중국의 강력한 성장세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발표를 한 이후 세계 주식 시장은 폭락하고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중국 경제는 현재 심각한 과잉투자, 과잉축적, 과잉생산에 직면해 있지만 자본은 불안감 속에서도 이에 대한 제어를 못하고 있다.
전세계 경제가 중국경제의 부침에 좌우되는 현실을 풍자하면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프리드먼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중국의 지도자 후진타오 주석이 건강하며 안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대붕괴가 닥치기 전에 중국의 금융체제 구조조정과 막대한 부실채권 및 부패의 제거를 위해 꾸준하고도 주도면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옵소서”라는 ‘중국의 주기도문’을 발표하였다.
풍자적인 내용이지만 전세계 자본주의의 현실과 심리상태 등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한 자본의 경우에는 더군다나 내수가 위축되고 수출의존이 더욱 더 늘어나면서 중국경제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는 전면화되지 않았지만 위기는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는 위태로운 형국인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노사정위에 끌어들여 계급투쟁을 최대한 억제하고 자본의 불안정한 상태를 돌파하려고 한다. 따라서 관료들이 현장의 반발을 억누르고 자신들의 입지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사정위 참여의 절차, 형식, 의제 등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조정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과 절차를 통하여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은 세차게 진행할 것이다. 남한 자본의 위기가 급격하게 가시화된다면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형식적인 절차마저도 내던져버릴 것이다.
동지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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