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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69호] 국가보안법 구속자 이병진 동지의 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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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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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 05:50:12, 조회:3,225, 추천: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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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구속자 이병진 동지의 서신
이병진 동지는 이른바 국가보안법의 굴레를 뒤집어 쓴 채 8년 형의 장기형을 받고 전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국가보안법은 남북의 평화를 염원하고 북과 교류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수하고 열정이 넘치는 한 인도학자에게 ‘간첩’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낙인을 찍어 개인과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 이병진 동지는 비록 영어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노동자정치신문」에 인도 사회, 정치, 경제, 남북문제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기고를 해주실 것이다. 이병진 동지의 기고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야만적 실체를 다시금 확인하고 더 나아가 인도 사회와 남북문제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병진 동지의 고뇌와 투쟁에 동참하면서 동지의 자유와 진리, 진실을 위한 투쟁에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같이 하기를 기대한다.(편집자 주)
000선생님께(동지)
안녕하세요? 이병진입니다. 보내주신 인터넷 서신 잘 받았습니다. 10월 25일 편지를 읽고 제가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저는 그저 소시민적인 지식인에 불과합니다. 진실을 탐구하는 인도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진실을 추구하며 양심적으로 살았는데 결국 감옥까지 왔습니다. 제가 너무 순진한 것인지, ‘바보’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고립감 속에 지내고 있었는데 0선생님의 편지에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저 또한 0선생님과 지적교류와 소통을 하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진보적인 사상가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혁명가도 아닙니다. 정치학자로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좀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시민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인도정치를 연구했고 인도적 시각으로 분단의 아픔과 모순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 아니겠습니까? 수인(囚人)이 되니 저의 ‘진정성’ 보다는 이념의 딱지를 붙여 불온한 사람 취급하며 저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빼앗아가는 냉혹한 현실에 겨울보다 더 추운 겨울을 겪고 있습니다.
저로 인한 사회적 압박으로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반공이념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광폭하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의 화해와 협력 기반이 얼마나 취약했고 공허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야 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중략
저의 학문적 토양이나 지향점은 제3세계의 (인도) 식민지 문제에 놓여 있습니다. 0선생님과 지적대화와 교류가 0선생님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남아시아 정세를 이해하면 우리의 모습을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0선생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비록 몸은 갇혀 있지만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밖에서 저를 응원하고 자료나 신문 등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에 기쁨과 고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0선생님(동지)께 무한한 신뢰와 동지애를 느낍니다. 제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하고 싶었습니다. 향후에 논의해 보고 싶군요.
0선생님. 저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국보법의 해악과 사상과 학문의 자유의 침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직접적인 피해자입니다. 제 사례가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과의 교류와 소통을 기대하면서 이만 인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0년 10월 31일 전주교도소에서
이병진 올림.
000동지께
인터넷 서신 잘 받았습니다. 제 편지 받고 바로 답장 보내주시는 배려와 관심에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갈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순간적으로 여기가 어디지? 어리둥절하면서 아! 감옥이구나 알아차립니다. 제가 갇혀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익숙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제 자신이 적응을 못해서 겠지요.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문이 닫혀졌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외면하게 되더군요. 국정원 조사 받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버린 것 같아요.
오류와 실수(착오)에 의한 일들을 가지고 나의 진정성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건을 재구성하여 ‘간첩’으로 낙인찍히면서 나도 모르게 체념하고 단념하면서 누구와도 대화하기가 겁이 났습니다. 진실을 이야기하면 내 의도와 달리 사실을 왜곡해서 나를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인거죠.
나는 이미 ‘간첩’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아무도 내 이야기의 진실을 믿어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내조차도 혼란스러워하고 부모님, 형제, 그 동안 함께 지냈던 지인들과도 단절이 되면서 극도로 고립감과 외로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아니 감옥이라는 곳이 세상과 단절시키기 때문에 제가 어찌해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쌍용자동차 분들과 알게 되면서 인권단체 분들과 만났습니다. 저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진실의 눈’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용기가 생겼답니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차츰 씩 정신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조사 20일 검찰조사 30일 총 50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사를 받았으니 제 정신이 아니었죠. 제가 미치지 않고 버틴 것이 기적입니다. 곧바로 형식적인 재판을 1년 동안 받으면서 저는 정상적인 판단과 사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비극적인 일입니다.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사투를 벌렸지요.
이렇게 0동지의 편지를 받아보니 얼마나 기쁘고 감동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신뢰가 생깁니다. 보수언론들의 악의적인 왜곡과 비방에도 불구하고 나의 ‘진정성’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걱정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감격스러운 일인지....
오늘 0동지의 편지에서 그런 절박함과 가슴 뜨거움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그 동안 국가보안법의 굴레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학자적 양심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사과를 배라고 우기는 천박한 기득권 지식인들에게 빌붙어 교수가 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참담함. 지식인의 비애와 소외감이 컸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진실을 가르쳤고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제자들에게 거짓을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해서 북에도 다녀오고 깊은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범죄시되고 불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이 많이 답답하네요.
제 수사기록이 7천 페이지인데 공소장은 15쪽입니다. 수사기록에는 제가 일관되게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했는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흐름과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핀셋으로 뽑아내듯이 북에 다녀와서 자료주고, 여비 받은 것만 추려서 재구성하여 간첩이 되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자서전을 써서라도 이 부분은 해명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제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0동지의 편지 읽고 이런 나의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0동지께서 지적 동지가 되고 외부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주신다니 정말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 제가 힘들었던 이유는 고립감과 단절감입니다. 이런 것이 저를 위축시키고 나약하게 만들었습니다. 0동지는 저의 나약함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동기와 도움을 줄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저의 경험과 지식을 함께 공유해서 이것을 자산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꿈과 미래를 줄 수 있는 참세상을 만드는데 밀알이 되고 싶네요.
이번 달 신문의 내용이 기대되네요. 요즘 한겨레신문도 그렇고 점점 정치적 문맹이 되어 가는 것 같아요. 큰 흐름과 전체적인 판을 읽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지엽적인 문제에 빠져있습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진보적 지식인들이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공부를 안 하고 작은 기득권에 빠져서 게을러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용기가 없어서죠. 저 역시 그러니까요. 갇혀 있는 나도 편지 쓰면서 위축되는데 밖에 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게 현실이지요. 그러나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바꿀 수 없지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0동지와 인도 이야기를 가지고 토론도 해보고 글도 쓰고 싶습니다. 인도의 낙살라이트, 펀잡 농민들의 자살, 케랄라와 서벵갈에서 인도 공산당이 집권하는 이유, 포스코의 인도 진출의 문제 등등 인도를 통해서 국제정세를 이해하는 수준과 시각이 넓어지실거라 생각합니다.
그 대신 저는 0동지의 경험담과 밖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0동지를 만나면서 지적활력이 생깁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10년 11월 2일 이병진 올림
000동지께
잘 지내시죠.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세의 변화에 많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연평도 포격은 동북아뿐만 아니라 국제정세를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포격 이후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의 화폐로 무역결재를 하기로 체결하였습니다. 상하이협력기구(SCO)RK 동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냉전의 구도로 조정되는 상황입니다. 저는 6자회담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북한이 농축 우라늄시설을 공개한 상황에서 9.19공동성명 상황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미국에게는 그럴만한 정치적 동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향후 정세를 움직일 중요한 요인은 남한의 진보세력의 대응입니다.
...중략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는 서로 공통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서로가 상호보완적이고 강조점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동지와 뜻이 많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문제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자민통 세력들이 ‘노사협조주의’를 일삼았다면 비판받아 마땅해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저의 생각은 대북화해 정책(6.15, 10.4선언)이 이상은 높았지만 추진할 정치적 기반이 약했습니다.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서 많은 서민들은 고통 속에 사는데 대북정책의 의미와 뜻을 알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퍼주기’ 논란에 감정적으로 편승하게 되어 넘어간 거지요. 자민통 세력이 이점을 뼈저리게 비판하지 않는다면 희망도 없고 대안도 없습니다. 제 자신의 비판이기도 합니다.
자서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0동지의 말씀 듣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어서 부끄럽지만 책임의식을 갖게 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인도에 유학 간 시기가 냉전이 해체되어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중심에 빨려 들어가 버렸어요. 냉전이 종식되자 일본이 재빨리 움직였죠. 일본은 장기불황을 탈출하고자 끊임없이 시장을 찾아 나섰죠. 나진선봉 지역은 일본에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마침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가 총리여서 북-일 국교 정상화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그게 미국을 자극했죠.
북핵 사찰을 빌미로 일본의 의지를 꺾고 1997년 신 미.일 안보조약으로 자위대의 해외파병(PKO)를 용인해주면서 일본을 달랬습니다. 북한도 이때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고 연평도 포격까지 와 버렸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미국도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어 당혹스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의 생각은 2012년에 서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의를 열어 북한을 떠보고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2015년 경부터 평택기지를 중심으로 병력을 재결집해서 대중국을 압박하는 수위와 강도에 따라(수위조절하면서) 북한을 통제하려는 구도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엄청난 고민과 전략을 세우고 있을 거예요. 모두 함께 어떻게 ‘평화’를 지킬 것인지 고민해야할 시기 아닐까요? ...중략
0동지의 지적처럼 지금 현재의 시각에 따라서 과거의 것들이 재구성됩니다. 제 자신의 삶, 학문적 입장, 목적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0동지께서 저를 끊임없이 깨우고 사고하게 합니다. 그러한 열정과 힘은 동지애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끝까지 변화하지 않고 발전해 가길 기대합니다. 지금은 제게 0동지의 도움이 더 필요합니다. 그 도움으로 저의 경험과 지적자산이 저와 0동지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닦는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저에 대한 0동지의 굳은 믿음과 신념에 조금씩 자신감이 자라고 있습니다. 인도 공산당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알고 있는 수준입니다. 자료를 보내주시면 깊이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연평도 포격으로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과 향후 정세를 주시해야겠습니다.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0. 11. 28
주소
전북 전주시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2513 이병진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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