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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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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 23:26:05, 조회:2,641, 추천: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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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투쟁단 동지들께 전하는 짧은 편지
사진활동가 점좀빼
[편집자 주: 이 글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 문화제에서, 필자가 사진활동가로 함께 투쟁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어 공투단 동지들에게 낭독한 편지입니다.]
일전 한 친구가 제게 이상한 잠꼬대를 한다고 하더군요. 소리 지르며 행진도 하고 싸우기도 한답니다. 현실에서의 저는 그림자가 되어 현장을 기록하는 기록노동자입니다. 나름 냉정과 열정을 지닌 한 인간이기에 현장에선 할 수 없는 투쟁방식을 꿈에서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엔 동지들과 술잔 기울이며 평온한 일상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이런 소박한 일상과 달리 갑작스럽게 오열하며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떨고 있거나 쓰러져 있는 동지들의 모습을 보면 혼란스럽습니다. 카메라를 들었지만 어쩔 줄 몰라 가만히 서 있기도 합니다. 최대한 냉정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가슴 한쪽 구석엔 동지들의 이런 모습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 못다한 싸움을 꿈에선 동지들과 함께 하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거리의 노동자들을 잘 몰랐습니다. 뉴스에서 겨우 접하거나 처음 듣는 현장들도 많았습니다. 이름만 듣던 재능, 기륭전자, 콜트콜텍, 기아차해복투부터 생소한 코오롱, 유성, 3M, 스타케미컬, 골든브릿지까지... 기록노동을 하면서 겨우 이름을 익히게 된 것입니다. ‘동지‘란 말이 이젠 입에 붙었지만 여전히 노사관계나 조합 이야길 들으면 용어가 생소하거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기도 합니다. 거리의 노동자들에 대해 이런 생경함을 느끼는 제게 공투단은 말 그대로 교과서 같기도 합니다. 이 책엔 마음의 울림이, 기쁨이, 쓰라림이,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노동자가 있습니다.
사실 현장을 접해가면서 눈에 쉽게 띄는 것들은 그렇게 밝은 면들이 아니었습니다. 쪼개지고 쪼개져서 공장 안에서 고립되거나 공장 밖으로 쫓겨난 노동자들, 쫓겨난 자리엔 어느새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는 사업장들, 폴리스라인을 벽으로 느끼는 사람, 용역침탈 소식을 듣고 달려가니 조합원은 한 명도 없고 깡패들만 넘쳐나던 강원도의 어느 사업장, 공장을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
작년 여름 즈음 공투단을 처음 접하면서도 특별한 것을 느낄 순 없었습니다. 그저 해고노동자들이 싸우는 사업장들이 많기도 하구나 정도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흥미로워지더군요. 공동투쟁단이란 이름 아래 다른 사업장에 연대를 가서 연행까지 되는 노동자들, 인천공항까지 가서 비정규직투쟁에 함께 하는 모습, 사업장에 홀로 남아 싸우는 조합원을 챙기는 동지들, 서로를 알아가고 챙기고 손을 잡는 모습. 이런 면면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 중에 하나는 ‘권력은 결국 현장에서 나온다!’입니다.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사법, 행정, 언론, 정치권이 아닌 바로 현장에서 싸우는 자에게서 잉태된다는 걸 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노동자중심성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현장에 서 있는 노동자들이 제게는 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입 안에 침이 고이는 순간이죠. 전 감동 먹으면 입 안에 침이 고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도 공동투쟁단을 꾸리고 연대를 다닙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적당히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도 듣는 사람도 투쟁을 외치지만 그 누구도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는 그런 암묵적 동의를 느낍니다.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연대투쟁을 말하지만 외양 형식에 치중함이 제 눈에도 쉽게 들어오더군요. 공투단 덕에 눈이 높아진 겁니다. 이런 공투단의 움직임과 활약이 박제되어 이름만 남기 전에 민주노조 내에서 확산되길 소망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바람이 민주노조에 분다면 머지않은 미래엔 정리해고 비정규직 손배가압류 정도는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공치사는 접고 좀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졸필의 편지를 끝내겠다는 거죠.
작년 초겨울 어느 날 시청광장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손톱을 깎던 한 노동자를 기억합니다. 9년째 투쟁하고 있는, 거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코오롱 동지의 이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좀 애잔해졌습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모습이 아니어도 가끔 동지들의 뒷모습을 보면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영화처럼 공장 지붕에 올라 촛불을 들고 사진까지 찍어 SNS에 올리고선 영화처럼 연행된 콜트콜텍 동지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글에 쉼표가 있고 사진에 여백이 있는 것처럼 투쟁하는 동지들도 이 쉼표와 여백이 충분했으면 합니다. 단순한 온정, 측은지심이 아닙니다. 모두 투쟁하는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평범한 일상이 있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거리생활을 장기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긴장된 삶의 연속이고 노동자가 24시간 싸움만 하는 기계가 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뱃살만 늘어나는 술 마시는 거 말고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실천하는 동지들 공치사를 좀 했지만 솔직히 동지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염려하는 마음에 전하는 겁니다.
교과서적으로 동지를 믿고 어깨 걸고 힘차게 투쟁이라고 쉽게 말하기 힘든 부분이 제게 생겼습니다. 현장촬영을 하며 정신없이 찍기에만 바빴는데 어느새 도가 텄는지 여유를 부립니다. 사람의 틈을 보고 찾게 됩니다. 잠시 긴장이 풀린 순간의 표정, 몸짓을 응시합니다. 종종 피로감을, 불안함을, 외로움을 읽게 됩니다. 이런 감정들은 쉽게 전염됩니다.
이 편지를 쓰다가 지난 공투단 사진들을 다시 봤습니다. 철탑에, 종탑에 오르기도 하고 목에 밧줄을 맨 동지들도 있고요. 어떤 동지는 병마와 싸우기도 했고 또 어떤 동지는 예상치도 못한 일에 속이 썩어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만나기 힘든 동지들이 많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의 시간, 공간, 사람 모두 너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지난 시간들의 소중함을 지켜나가는 게 노동자들의, 민중들의 싸움이란 생각도 듭니다. 저 또한 역사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편파적으로’ 기록하는 노동자로서 동지들과 함께 하며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오늘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엔 그동안 많은 인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도부터 질기게 이어지고 또 새롭게 만나 거리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쌍용차지부 공투단은 물론 영상팀 ‘대한문에서 만나요’ 연대활동가 등 많은 동지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외쳐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찰싹찰싹<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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