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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6호]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2) - 혁명사 기획연재(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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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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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7 08:36:00, 조회:3,199, 추천: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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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2)
이번 글에서는 지난 1905년 제1차 러시아혁명(1)에 이어서 당시 경제주의 세력과 혁명세력과의 투쟁, 이후 1917년 노동자 국가기구로 자리매김하는 소비에트의 등장과 그 의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마(의회) 및 합법공간에 대한 원칙적인 태도를 살펴봄으로써 1905년 혁명의 주요한 지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당내 경제주의 세력과의 투쟁
우리는 지난 1789, 1848, 1871년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혁명과 그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혁명계급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봤다. 부르주아 혁명에서도 노동자계급은 핵심 세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독자적인 지도세력 또는 정당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노동자계급은 매시기 혁명의 주도권을 부르주아에게 넘겨주는 한계를 보였다. 이러한 지난 혁명의 경험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당의 필요성을 최우선의 과제로 전면에 제기했고, 각국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노동자 정당이 만들어졌다.
1905년 러시아 1차 혁명도 이와 같은 배경에서 전개되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에는 폭발하는 자생적 투쟁에 비해서 비록 부족하긴 했지만 노동자정당에 의해 지도된 최초의 노동자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 정당이었던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의 모든 입장이 단일하게 모아졌던 것은 아니다.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역시 내부 투쟁을 통해서 변화, 발전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러한 치열한 내부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 1917년의 10월 혁명은 가능한 것이었다.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가던 시기,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은 내부 투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최초의 노동자정당인 사회민주노동당은 1898년 창당 되었으나 전국적으로 단일한 중앙조직도 존재하지 않았고, 당 강령도 없는 상태였다. 이후 혁명의 기운이 상승해가는 것과 함께 혁명세력들은 이에 시급히 대응하기 위하여 1903년 2차 당대회를 조직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오직 강력한 노동자 정당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혁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노동자 정당을 세우는데 있어서 혁명세력들은 내부의 적과 마주쳐야 했다. 당시 서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던 ‘경제주의’가 러시아 내에서도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주의’는 ‘수정주의’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베른슈타인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주창되었다. 그는 당시 서유럽의 일시적인 호황을 두고 이를 자본주의 체제의 항구적인 발전의 과정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간단했다. 자본주의 폐지 없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량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인 이행이었다. 이는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혁명노선의 폐기를 의미했으며, 당시 기회주의 세력들에게는 복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멘셰비키에 의해 주창된 ‘경제주의’는 러시아판 ‘수정주의’였다.
레닌이 ‘사도신경(the credo)’이라고 명명한 쿠스코바의 ‘최소저항의 길(the path of least resistance)’은 혁명세력들의 임무를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도록 지원하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 반대 세력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역할은 경제투쟁으로 제한했다. 혁명 전야와도 같은 시기에, 매일 24시간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선전선동해도 모자라는 시기에 이러한 경제주의자들의 주장은 가장 해악적이며 혁명의 사보타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레닌은 당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서 이러한 경제주의자들의 본질을 낱낱이 폭로하고 이러한 경향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다. 물론 레닌이 경제투쟁을 경시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주의자들과 혁명세력들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경제투쟁’을 혁명이라는 목표에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있었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는 언제나 개량을 위한 투쟁을 활동의 일부로서 포함시켜 왔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에 모든 종류의 조치에 대한 요구조건들만이 아니라 또한(그리고 주로) 정부가 전제정부이기를 그만두라고 하는 요구조건을 제시하기 위하여 “경제적” 선동을 활용한다…경제적인 투쟁뿐만 아니라 공적이고 정치적인 생활이 현상화된 일반적인 모든 것에 기초하여, 정부에 이런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간주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는 개량을 위한 투쟁을, 전체의 일부로서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투쟁의 일부로서 종속시킨다.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즉, 혁명세력에게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을 통한 혁명투쟁이 과제였다면, 경제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모든 투쟁을 경제투쟁으로 제한하는 것을 통해 또다시 혁명의 주도권을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에게 넘기는 것이 당면목표였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경제주의자들과의 투쟁은 곧 다가올 혁명을 사수하는 투쟁이었으며, 부르주아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혁명세력들과의 투쟁이었다!
불행히도 이러한 경제주의세력들은 지금 남한의 운동세력들에게도 널리 퍼져있다. 산별노조는 경제투쟁, 민주노동당은 정치투쟁이라는 이분법의 잣대로 현장투쟁을 협소화시키는 세력들은 경제주의자들이다. 또한 임단협 투쟁을 (협소한) 경제투쟁이라고 격하시키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개량만을 본질적인 목표로 하는 사회개혁투쟁을 정치투쟁인양 격상시키는 세력들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의 투쟁을 유일한 정치투쟁이라고 주장했던 러시아 경제주의자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세력이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우고 노동자들을 한 쪽에 몰아세우는 경제주의자들은 모든 노동자들의 정치파업을 불법화하면서 노동자들의 혁명적 분출을 가로막고 있는 자본가국가의 대리자들과 같다. 따라서 100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이러한 경제주의 세력들과의 투쟁은 모든 혁명세력들의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러시아에서 경제주의와의 치열한 투쟁이 없었더라면 1905년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또다시 부르주아의 들러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노동자 국가기구인 소비에트의 등장
소비에트는 1905년 10월 파업시기 ‘뻬쩨르부르끄 노동자 대표자 평의회’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당시 소비에트는 뻬쩨르부르끄에 있는 공장으로부터 출발하여 혁명이 진전함에 따라 맹아 형태의 정부가 되었다. 따라서 이 소비에트가 혁명을 통하여 짜르 정부를 분쇄하고 권력을 장악하느냐 아니면 짜르 정부가 소비에트를 무력화시키느냐가 혁명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당시 볼셰비키가 처음부터 이러한 소비에트의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본 것은 아니었다. 당시 레닌은 해외에 발이 묶여 있었고 1905년 봄에는 ‘광범한 비(非)당파적 노동자의 조직’을 건설하려는 멘셰비키와 볼셰비키간의 격렬한 논쟁의 영향 때문이었다. 레닌은 이러한 멘셰비키의 입장을 당의 해체와 같은 입장으로 보고 혁명 시기 당의 주도성을 더욱 강조하였다. 따라서 볼셰비키는 초기에 자발적으로 생겨난 소비에트가 공식적으로 당의 강령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이러한 초기 볼셰비키의 오류로 소비에트는 멘셰비키의 주도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레닌의 입장은 달랐다. 레닌은 그러한 볼셰비키의 입장은 합리적이지 못하며 소비에트와 당은 모두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소비에트는 하루 빨리 자신을 전체 러시아의 임시 혁명 정부로 선언하거나 또는 다른 형태 아래 같은 것이 되겠지만 임시 정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레닌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소비에트는 1905년의 10월 총파업과 12월 무장봉기를 주도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혁명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이후 짜르 정부의 기만적인 ‘10월 선언’으로 혁명의 기운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을 때에도 소비에트는 혁명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총파업의 조직이 어려워지자 소비에트는 짜르 정부의 공문구를 실질적으로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하였다.
우선 ‘정치범의 석방’ 투쟁을 전개하였다. 노동자들이 정치범의 특사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서자 짜르 정부는 경찰들을 완전 무장시켜서 시내의 모든 형무소들 앞에 배치시켰다. 그러나 곧 노동자들의 기세에 눌려서 특사령을 내려야 했다.
다음으로 소비에트는 ‘출판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검열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역(逆) 검열 기준을 세워서 소비에트를 공격하거나 반 노동자적인 내용의 문서인쇄를 거부했다. 또한 자유주의적인 젬스트보 의회의 정치 선언문의 인쇄도 거부하였다. 이후에 인쇄노동자들은 더욱 전진하여 정부의 검열 당국에 사본을 제출한 신문들의 인쇄도 거부하였다. 비록 6주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이러한 소비에트의 투쟁으로 짜르 체제의 러시아에서 실질적인 출판인쇄의 자유가 쟁취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비에트는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그러자 곧 자본가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 맞서서 자신들의 조합을 만들었으며 대공장과 국가기관이 이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은 크론슈타트 해군과 선원들의 반란에 대한 연대투쟁으로 전국 투쟁국면이 전환되면서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짜르 정부의 10월 선언으로 부르주아 세력들이 반혁명세력으로 돌아서고, 노동자계급은 10월 총파업이후 독자적인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 소비에트는 모든 사안을 투쟁의 계기로 활용하면서 혁명을 지속시켰다. 이러한 소비에트의 실천이 있었기에 12월의 무장봉기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해외에 있었지만 이러한 혁명기관 소비에트의 투쟁을 통해 노동가 국가기구의 단상을 보았던 레닌은 이후 1917년 혁명에서 그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정력적으로 노동자, 농민, 병사 소비에트를 조직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이러한 소비에트에 대한 태도는 필연적으로 자본가 국가와 노동자 정당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다. 핵심적인 자본가 국가기구인 의회의 장악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하는 세력들에게는 독자적인 노동자 국가기구에 대한 고민과 실천적인 계획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역으로 소비에트 자체를 물신화시키는 세력들은 노동자 정당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제로 그것을 대체한다.
이러한 입장들은 모두 소비에트와 노동자 정당 둘 다 혁명의 필수기관으로 작동했던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왜곡하는 것이다. 오직 혁명을 부정하고 개량을 추구하는 세력들만이 소비에트라는 노동자 국가기구를 부정할 수 있다. 또한 오직 자본가계급에 대항한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의 혁명적 지도를 부정하고 자율주의에 경도된 세력들만이 소비에트를 물신화시킬 수 있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비당적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에 참여해야만 하고, 각 소비에트에 가능한 한 가장 강력한 당원의 그룹을 오차 없이 구성해야만 하며, 이 그룹의 활동이 당의 일반적인 활동에 조응하도록 엄격히 지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917년 혁명은 이 두 요소의 혁명적 결합이 모든 노동자 혁명에서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합법공간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원칙적 태도
지금도 운동세력들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합법공간에 대한 태도는 러시아에서 1905년 혁명의 패배 이후 본격화된다. 짜르 정부가 혁명을 분쇄하기 위한 기만책으로 내놓은 것은 일종의 의회인 두마의 소집이었다. 그러나 두마에는 노동자 농민의 실질적인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였다. 볼셰비키는 명백하게 혁명의 시기였던 당시에 두마 보이코트 투쟁을 전개하였다. 유명한 표현을 빌자면 “공기 속에서는 화약 냄새가 나고 있었”고 당면 과제는 혁명을 통해서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고 노동자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멘셰비키는 두마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가 노동자 민중의 압력에 곧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하는 해프닝을 보였다.
이후에 혁명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레닌은 두마 참여의 입장을 세운다. 1906년부터 1910년까지 500여 개의 노동조합이 파괴되고 600여 개의 노동조합 등록이 취소되었으며 당원 수는 1913년 수천 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혁명의 패배는 확실시되었으며 짜르 정부의 탄압은 더욱 거세어졌다.
당이 비합법화된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을 조직화하기 위한 수단은 합법적 공간의 활용이었다. 레닌은 반동기라는 새로운 조건 하에서는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의해서 확보된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민 속으로 들어가라”는 슬로건을 정열적으로 주창해야 한다고 하였다.
두마 의회 참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었다. 노동자 당의 독립성이 충분히 확보될 것, 비합법적인 핵심을 유지 강화할 것, 이러한 비합법 중앙에 의하여 통제 및 지도하는 경우에만 허용할 것 등이 그것이었다. 멘셰비키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합법공간에 참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볼셰비키가 제시한 이러한 전제조건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계급투쟁을 확대 강화하는데 결코 기여하지 못하면서 두마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혁명을 붕괴시키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볼셰비키와 멘셰비키의 입장은 혁명 내내 본질적인 차이를 보였다. 1905년 8~9월 혁명의 시기에 볼셰비키는 두마 보이코트 및 직접적인 무장봉기를 주장하였다. 멘셰비키는 두마 참여를 요구했다. 1906년 말 혁명의 패배가 명확해지고 부르주아의 배반 및 짜르의 탄압 아래 볼셰비키는 두마라는 합법공간의 활용을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블록을 해체할 것, 특히 카데츠와의 블록을 해체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멘셰비키는 카데츠와의 블록을 찬성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진실의 전부이다. 이후 멘셰비키의 입장은 모든 비합법 당기구를 해체할 것을 주장하는 ‘청산론’으로 나아간다. 이는 혁명이라는 목표 아래 합법공간의 활용이 아닌, 합법공간의 활용만을 실천 활동의 전부로 간주하고 그 아래 혁명을 질식키는 입장의 필연적인 결론이다.(멘셰비키 내에서는 비록 소수에 불과했지만 플레하노프로 대표되는 비합법 당의 유지파도 있었다.)
한편, 볼셰비키 내부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청산론’과 반대되는 듯이 보이는 ‘소환주의’와 ‘최후통첩주의’가 등장한다. ‘소환주의’는 “짜르의 두마는 흑색단의 기구이며 진정한 혁명가는 거기에서 설 자리가 없다.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은 청산론자가 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혁명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논리를 더욱 확장시켜서 “합법적 기회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하다. 진정한 볼셰비키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클럽에서도 설 자리가 없다”라며 두마 의회뿐만이 아니라 모든 합법공간에서의 활동을 부정하였다. ‘최후통첩주의’는 두마의 사회민주주의그룹에서 엄격한 당 정신으로 활동하며 당 중앙의 모든 지시에 복종하지 않으려면 당의 대의원 자격을 포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기에 볼셰비키의 입장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 볼셰비키는 당이 두마 그룹과 결합하여 그들에 대한 활동을 확대하고 선동과 조직의 목적을 위해서 두마에서의 활동을 기술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당 사업을 확대하고 지속하는 것을 주장한데 비해 ‘최후통첩주의’는 두마 그룹에 대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당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최후통첩을 날리는 것뿐이었다. 따라서 ‘소환파’와 ‘최후통첩파’는 이론적으로는 ‘모험주의’로, 실천적으로는 ‘당의 분열’이라는 것으로 정확히 일치하였다. 레닌은 당시의 긴급한 임무는 당을 유지,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보고, 이러한 ‘소환파’, ‘최후통첩파’는 모두 좌익 청산주의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실제로 이들은 당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별도의 분파 조직을 결성하여 정열적으로 해당행위를 자행했다.(이후 수년 동안 레닌은 당을 유지, 공고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제세력들과의 내부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들을 축출해낸다.)
현시기 남한 운동세력에도 이와 같은 좌, 우익 청산주의 세력들이 존재한다. 물론 우익 청산주의 세력들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소련의 몰락을 계기로 대부분의 운동세력들이 합법공간에 자신의 몸을 의탁한 채 청산주의로 돌아섰고, 이들은 비합법 운동을 하는 세력들을 ‘골방주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교조주의’ 등으로 매도하였다. 남한의 청산주의 세력들은 스스로 남한판 멘셰비키를 자임하면서 지금도 부르주아 국회 내의 의석수 늘리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들에게는 합법적 기회 및 그 이용 자체가 목적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파산한 ‘사민주의’의 썩은 동아줄에 매달린 채,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모든 주도권을 내준 채,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의 확보를 위해서 노동자계급을 동원하기에 급급해 하는 것이 이들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의 동원전술은 이제 서서히 그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을 자신들의 정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또한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비정규개악법안과 로드맵 투쟁에서 이러한 그들의 반노동자적인 본질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합법적 공간, 특히 부르주아 의회의 혁명적 이용은 어떠해야 하는가?
레닌은 “의회 활동을 기본적인 것, 가장 중요한 것, 모든 것,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경향과 투쟁할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그룹활동의 내적 연관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의회 내 사회민주주의 그룹의 활동목표는 다른 모든 정당의 목표와는 원칙적으로 다르다. 프롤레타리아 당의 목표는 기존의 제세력과 거래나 논쟁하는 것도 아니고 반혁명적인 봉건적, 부르주아적 독재체제를 개량하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방법으로 노동대중의 계급의식, 명료한 사회주의적 사상 및 혁명적 결의와 다면적인 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두마 내의 사회민주주의 그룹은 우리 당의 최저 강령적 슬로건과 요구들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개량주의의 위선과 오류를 대중에게 폭로하기 위해, 그리고 대중을 독자적인 경제적, 정치적 대중투쟁으로 이끌기 위해 사회민주주의적 법안을 기초하고 제출해야 하는 바, 그러한 투쟁만이 노동계급에게 진정한 성과를 가져다 줄 수 있으며, 현존 체제하에서의 내키지 않고 위선적인 ‘개량’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해방을 향해 전진하는 노동계급을 위한 거점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두마활동과 관련된 볼셰비키의 임무에 관한 연설 및 결의 초안, 레닌)
이렇게 모든 혁명세력들은 합법공간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더욱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할 때만이 그것을 온전한 혁명투쟁의 거점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혁명시기에는 주저하지 않고, 부르주아 국회 내에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실천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통해서만 합법공간의 기회주의적 이용과 혁명적 이용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
1905년 혁명은 패배했다. 그러나 1905년 혁명은 모든 기회주의 세력과의 투쟁의 필요성을 각인시켰고, 최초로 노동자 국가의 맹아적 형태를 등장시켰으며, 비합법 투쟁과 합법투쟁의 원칙적이고 올바른 형태의 결합을 보여줬다. 또한 당면 혁명에 있어서 부르주아 혁명 ->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역사적 경향을 기계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주체 역량의 문제, 생산력 발전 수준이라는 한계 때문에 부르주아 혁명에 머물렀지만 볼셰비키는 당면 혁명을 극대화하여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시키기 위하여 분투했다. 그러나 멘셰비키는 2단계 혁명론에 입각하여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철저하게 부르주아 혁명의 한계 속에 갇히도록 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도권을 쥐면 안 된다고 했으며,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들에게 모든 주도권을 넘기려고 하였다. 볼셰비키는 1848년 프랑스 혁명의 교훈(봉건제 분쇄를 위해 부르주아와 노동자계급이 동맹하였지만, 부르주아가 권력을 장악하자 곧바로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고 반혁명세력으로 돌아선 것)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반혁명성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분출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을 독자적으로 조직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볼셰비키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러한 기회주의 세력들의 전형적인 소심함, 머뭇거림, 관료성에 의해 자칫 혁명은 압살될 수도 있었다. 또한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은 먼 미래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러한 1905년 혁명의 경험은 모든 투쟁에 임하는 활동가들의 태도에 살아있는 실천적인 교훈을 준다. 혁명가들은 가장 먼저 혁명의 깃발을 들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모든 세력들이 혁명이 패배했다고 떠들더라도 모든 세세한 투쟁의 기운을 놓치지 말고 가장 마지막으로 혁명의 깃발을 내려야 한다!!
이 밖에도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문제, 노동자 당의 역할 및 위상, 자본가 국가에 대한 태도와 소비에트, 합법공간 활용의 문제 등 이 모든 것은 오늘날에도 혁명세력과 기회주의 세력을 구분 짓는 잣대가 되고 있다. 오직 기회주의 세력들만이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왜곡하고 애써 눈감고 있다. 1905년 기회주의 세력들의 주장이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주위에 그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기회주의가 아닌, 1905년 혁명의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고 당시에 제기되었던 모든 문제를 현재에 맞게 실천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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