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고)
교섭에 매몰된 궤도연대 공투본, 불안한 파업전야!
7월 13일 도철 조합원 야간총회에는 약 2000여명의 조합원이 모였다. 이날 총회는 그동안 집회 참여율이 저조했던 직능(역무)과 조합활동에 비협조적이던 나이 많은 3, 4급 조합원까지 상당수 참여하는 높은 열기 속에 진행되었다. 나머지 궤도사업장 또한 15일까지 릴레이로 조합원 야간총회를 개최하였다. 약 4개월 동안 진행되어 온 ‘주5일제 쟁취’투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태에서 파업에 돌입하기 위한 마무리 준비만이 남아 있다.
통상근무자들에 대한 토요휴무 일방실시로 인해 결렬되었던 교섭은 사측이 이를 철회하면서 지난 7월 14일 12차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공사는 애초 내놓았던 3조3교대 비숙박 근무형태가 아닌 진전된 안을 내놓겠다는 얘기를 수차례 거듭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진전된 안’은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조합에게 양보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지하철이 먼저 양보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도철공사 입장인데 서지공사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진전된 안’이 있지만 눈치가 보여 먼저 내놓을 수 없다는 양 공사의 답변이 되풀이되는데도 교섭을 지속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어용들이 “단사 투쟁이면 벌써 따낼 수 있는 것을 괜히 공투 한다고 해서 손해보고 있다”는 공격의 빌미만 주고 있을 뿐이다. 현재 도철, 서지 양 공사는 청와대, 건교부를 비롯한 각 해당 부처에 직권중재에 회부해줄 것을 요청한 상태이다. 상황이 이 정도이지만 집행부는 교섭을 중단하지 않았다. 궤도연대 공투본과 마찬가지로 도철 집행부 또한 최대한 타협 지점을 찾으려 애썼고 막판 교섭일정을 잡아냈다.
공투본은 19일까지 개별교섭을 하기로 결정했다. 공투본은 공동의 요구안을 마련하고 공동교섭 공동투쟁 공동타결이 원칙이라고 무수히 강조했다. 그러나 파업 직전까지 개별교섭을 진행시킴으로써 각 단위 사업장 조합원들이 “반드시 가는 구나”라는 판단 아래 스스로 결의하게 하기보다는 “교섭에서 뭔가 나오지 않겠는가?”라는 헛된 기대를 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지하철이 16일, 18일 막판 교섭일정을 잡았고 도철도 18일 교섭 일정이 잡혀 있다. 19일 지노위의 마지막 조정회의에 따라 조정안이 내려온다면 각 사측의 요구에 따라 20일 파업전야제 당일까지 개별교섭을 벌이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공동교섭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공동투쟁전선이 허물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궤도 투쟁의 핵심은 ‘신규인력 증원’이다. 공투본은 광주지하철이 5% 인원증원 조정안을 받았고, 보건의료노조가 10% 인원증원에 성공한 것을 기준치로 잡고 있다. 아무리 안돼도 정부가 그 정도야 주지 않겠느냐 라는 판단을 많은 집행간부들이 하고 있다. 궤도연대 지도부는 이 투쟁이 큰 희생 없이, 별다른 마찰 없이 잘 마무리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까지 하다. 조정절차를 거친 합법파업이라는 자신감, 양 공사가 직권중재 회부 요청을 하고 있지만 과연 정부가 그 부담을 안겠는가. 설령 중재가 떨어지더라도 공권력으로 정리해내지는 않을 것이다, 조정안에서 최소치가 제시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94년 이후 10년만에 벌어지는 궤도연대파업을 어떻게 강고하게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도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교섭으로 시간끌기, 언론과 시민이 이 투쟁에 우호적일 수 있도록 “타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연출이 아니다. 자본가 언론이 이 투쟁에 우호적일 수 없다.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고 이 투쟁을 엄호해 줄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도부는 조합원들에게 “위력적인 파업투쟁을 반드시 전개하여 신규인력 충원을 통한 주5일제를 반드시 쟁취하겠다”, “개악된 근로기준법은 단협을 사수하여 막아내겠다”, “단위사업장을 치고 들어오는 민간위탁, 비정규직 인력충원 등을 근절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히고 이 의지들에 신뢰를 보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계획들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공투본은 남은 기간 동안 투쟁의 파고를 높이고 궤도 전 사업장에 긴장감을 고조시킬 어떠한 투쟁계획도 배치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도철 집행부도 파업디데이까지 독자적인 실천 행동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 준법투쟁은 각 본부 상황에 맡겨 놓았고, 19일, 20일 이틀 동안 준법운행을 계획하고 있는 승무본부에게는 “서지 승무와 보조를 맞춰 달라”는 주문을 함으로써 준법투쟁조차 개별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서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집행부가 현장간부와 조합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파업투쟁의 주체로, 중심으로 서달라는 것이 아니다. 지도부가 정한 형식적 일정들을 충실히 따르고, 정해진 기간 안에 쟁의기금을 완납하고, 전야제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여 지도부에 ‘힘을 실어 주고’ 공사와 정부가 겁을 먹고 더 ‘진전된 안’을 내놓을 수 있는 압력을 행사해 달라는 것이다.
현장 민주파 세력들은 04년 ‘구조조정 분쇄/주5일제 쟁취 투쟁’에 목적의식적으로 결합하고 성실하게 역할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04투쟁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주요한 결정 단위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민주지부장모임․민주대의원모임 등 각 단위별 모임, 공동모임 등을 통해 회의체 투쟁을 계획하고 벌여 왔지만 집단적인 힘으로 집행부와 다른 입장을 제출하거나 관철시켜 오지 못했다. 파업디데이까지 회의체 투쟁은 이제 없다고 봐야 한다. 파업을 구체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실무적인 모든 권한은 궤도연대 공투본이 쥐고 있다. 궤도연대 공투본이 틀 잡고 있는 전체 구도를 깨뜨리기 위한 시도를 하기에는 일정상 한발 늦었다. 남은 것은 흩어져 있는 민주 세력들의 활동력을 극대화시켜 파업동력을 최대화하고 파업의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관리와 통제가 아닌 해방감을 맛보고 현장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뿐이다.
도철내 민주파 활동가들은 03년 투쟁 때와 달리 ‘활동가대회’ 등을 열어서 이 투쟁에 연대하고 공동으로 책임질 것을 결의하지 못했다. 현재 민주파 활동가들의 단일 대오는 없다. 현장조직의 대표격으로 현장회가 있고 민주파 집행간부, 각 직능 활동가로 산개되어 있다. 어떤 단일한 조직적 대오로서 역할하지 못하지만 이들 활동가들은 파업투쟁 전 과정에 얽히고 설켜가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 성과가 있을 때 투쟁 이후 조직적인 전망에 대한 논의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동의 지점은 “파업투쟁 과정에서 집행부의 타협적인 흐름을 끊어 낼 수 있도록 독자적인 역할을 하자”는 정도이다.
주5일제 투쟁 전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적 형태로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 해왔다.
모든 투쟁을 노동조합 질서 속에 가두고자 하는 집행부의 흐름에 맞서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안 문제들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들을 활발하게 벌여 왔다. 기술 토목의 레일연마차 민간위탁 저지 투쟁, 기관사들의 건강권 쟁취 투쟁, 현장통제를 꾀하는 관리자들에 맞선 현장 투쟁을 끊임없이 벌여 왔다. 공사가 쟁의행위찬반투표를 부결시키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통상근무자 토요휴무를 일방실시 했을 때 이들 현장활동가들은 사장실 점거농성 투쟁을 배치하여 사측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싸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산개하고 부분적으로 벌여 왔던 민주파 활동가들의 투쟁은 이제 04년 파업투쟁 전 과정에서 하나로 모아내야 한다.
교섭에 목을 매고 있는 집행부가 이 투쟁을 기만적으로 정리해내지 못하도록 실천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18일 교섭에서 사측 양보안이 제출될 것이고 사측은 19일 이후 막판 개별교섭을 꼬드길 것이 분명한데, 이때 집행부가 흔들리지 못하도록 반드시 실력으로 저지시켜 내야 한다. 파업의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잠재력이 역동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도록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각 상황마다 일관되고 바른 입장으로 선전, 선동해야 한다. 기만적인 교섭안을 합의안이랍시고 들고 나와 대오를 정리하고자 할 때는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민주노조’는 그 이름에 걸맞는 투쟁성을 갖춰야 한다.
위원장 얼굴이 바뀌었다고 민주노조가 아니다.
1,2기 배일도 잔당들이 뭉친 ‘조합원협의회’, 재집권을 노리는 노사협조세력들이 만든 ‘조합원실천연대’ 등은 벌써부터 “궤도연대 공투본은 약속을 지켜서 요구안을 100% 따와라”, “너희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보자”는 비아냥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민주노조’를 흔들어 대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민주파 활동가들이 새겨야 할 것은 ‘어렵게 만들어 낸 민주노조’를 흔들어 대지 말고 지도부의 일정과 계획에만 충실하게 따라 오라는 주문이 아니다. 지도부가 마지못해 선포하는 파업의 자리일지라도 진정으로 대중의 정치, 현장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모든 힘을 다 모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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