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폭로>
유시민과 민주노동당의 논쟁이 보여주는 것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모두 사표다”라고 해서 민주노동당을 자극했던 유시민이 6월 12일에는 “조중동과 민주노동당은 공부 좀 하십시오”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유시민의 도발적인 발언에 민주노동당 논객들 전체가 달려들어 반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재영 정책국장은 지난 14일 “유시민 의원은 경제학보다 윤리학부터 공부하라”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또한 노회찬 의원은 “유시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고 특유의 독설을 사용해 비판했다.
노무현의 이념적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유시민과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논객들의 논쟁은 이들의 이념적 지향과 그 수준, 국가에 대한 태도 등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논쟁의 기원
유시민은 “시장시스템은 경제적 기본질서이기 때문에 철폐할 수가 없습니다 … 이론과 경험 양쪽 모두에 비추어 볼 때 ‘시장 친화성’이 강한 정책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라며 국가의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을 주장하고 있다.
유시민의 주장은 시장원리야말로 최고로 경제적 합리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도 시장의 경쟁 원리가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의 주택상가임대차보호법이나 농민을 위한 수매제도, 비정규직 보호 입법화 등의 노력이 시장질서를 왜곡하여 선의와 다르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이재영 정책국장은 “굳이 시장친화적 정책만을 펼 것이라면 무엇하러 정책 개입을 하나 … 국가의 정책 개입은 시장을 교정하기 위한 것 … 미국의 뉴딜이나 유럽의 사회복지는 지극히 비시장적이지만 ‘필요’에 대응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논쟁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경제학 내에서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 사이에서 벌어진 오래된 논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유시민과 이재영, 노회찬은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적 사민주의의 인격화이다.
‘민노당 잡는 매’한테 잡힌 민주노동당
이러한 논쟁은 분배와 성장의 논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본은 이러한 논쟁에서 항상 “파이를 키워야지만 분배도 가능하다”라며 자본의 선성장을 위해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 반면에 선분배 주장은 분배를 통한 유효수요의 창출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회찬 의원은 경제정책 질문을 받고 “민주노동당은 반(反)성장론이 아니며,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노회찬은 신동아 6월호 인터뷰에서도 민주노동당 강령은 시장질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소유권 제한”이라고 했다.
유시민이 ‘민노당 잡는 매’가 된 것은,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의 시장질서를 인정하면서 그것의 폐해를 점진적으로 극복하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경쟁과 성장 이데올로기, 노동자 착취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못한다면 유시민과의 논쟁에서 민주노동당은 이길 수 없다. 아니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자주적인 투쟁을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경우에도 자본의 생산성 이데올로기와 지불능력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못하면 임금인상 투쟁이나 고용안정 투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동지들이 더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시장의 효율성과 국가의 중립성
유시민이 시장논리를 내세워 큰소리를 치는 이유는, “시장은 효율적이고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는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에 시장이 낳은 분배의 왜곡 같은 문제는 국가의 개입으로 줄일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시장은 효율적이고 국가는 중립적인가?
자본주의 경제학에서의 효율성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얻는 것이다. 개별 기업은 이를 위해 시장 상황에 맞춰 합리적인 생산, 고용 등의 계획을 잡는다. 그런데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합리성과 효율성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온갖 혼란과 불균형을 낳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력 없는 자본의 몰락과 자본의 독점화가 진행되면서 사후적으로 조정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도시와 농촌, 산업간, 국가간의 불균형적 발전, 자원과 노동력의 비효율적 이용과 낭비를 낳는다. 실업과 공황, 전쟁은 자본주의 경제가 ‘광란의 경제학’임을 가장 잘 보여준다.
민노당은 뉴딜플랜과 서구 사민주의의 복지국가의 사례를 들면서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이러한 케인즈주의적 정책은 1929년, 1937-38년 극심한 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시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으나 국가의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독점자본과 한층 더 긴밀하게 결합하면서 독점자본주의를 강화시켰다. 이후 과잉축적과 이윤율의 하락에 직면한 자본가 국가는 79년, 80년을 지나면서 악명 높은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으로 나타났다. 국가는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고 자본의 편이었다.
유시민의 ‘시장친화’와 노사관계선진화 방안
청와대와 민주노동당 의원단과의 만남에서 단병호 의원이 제기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노무현은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하고 법으로 무언가를 강제하는 그런 정책수단을 가지고는 당신들이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노무현은 비정규직 이 입법화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논리이자 냉혹한 자본주의의 착취논리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논리에 대해 “윤리학부터 배우라”는 도덕적 호소가 먹히겠는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의 유시민은 사민주의자에서 합리적 자유주의자로 이제는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적인 정책의 주구임을 자처하고 있다. 유시민의 반동적인 주장은 하이예크나 프리드만 같은 부르주아 경제학자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6월 15일 전경련은 노동자에 대한 무제한적인 착취를 보장하는 ‘기업도시특별법’ 제정 계획을 제안하고 18일에는 수십조 원의 투자발표를 했다. 여기에 화답하여 노무현은 규제완화를 약속했다. 유시민과 노무현 같은 반동적 자유주의자들의 시장논리는 당면한 주5일 투쟁에서 노동법 개악으로 나타나고, 하반기에는 파업권을 봉쇄하기 위한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으로 나타날 것이다. 결국 유시민과 민주노동당의 논쟁으로부터 노동자는 시장의 착취질서를 전면 거부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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