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고>
보워터한라제지 노조설립후,
3년차 임단협 투쟁을 마치면서
-보워터한라제지 노동조합 오세택(사무국장)
보워터한라제지노동조합은 전남 영암 대불산업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1994년 한라펄프제지 법인으로 출발하여 1997년 IMF사태로 인한 한라그룹 부도로 미국자본 보워터사에 M&A 인수되었다. 265명의 생존권을 담보로 현재는 연간 매출액 1800억 규모에, 경상이익이 매년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달하는 우량기업으로 거듭난 회사이다.
극도의 노동탄압과 착취 속에 목숨 바쳐 일한 노예노동자!!
한라제지 노동자들은 과거 1996년 건설 단계부터 2001년까지 공장의 정상가동을 위해 휴일도 반납하며, 때로는 72시간 이상 잠도 자지 않고 회사를 위해 청춘을 다 바쳐 헌신적으로 일해 왔다. 그러나 회사는 납득할 만한 정당한 사유나 명분도 없이 목숨 바쳐 일해 온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구조조정 해왔으며 수차례에 걸쳐서 전체 현장직 노동자의 30퍼센트 이상을 정리해고하기 위해 준비했다. 사장은 현장노동자를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폭언을 밥 먹듯이 일삼고, 일부 중간관리자들은 자신에게 잘못 보이면 짤라 버린다는 등 공갈협박을 자행하면서 비인간적인 노예적 굴종의 삶을 강요하였다.
자본의 억압과 탄압이 극치에 달하면 노동자계급의 분노는 반드시 폭발한다!!
이에 현장 노동자는 이렇게 살다가 결국에는 짤릴 것이라 생각하여 2002년 1월 1일 관리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신정휴일에 노동조합 설립하였다. 노조설립 소식이 현장에 전해지자 삽시간에 현장직 150명이 노조에 가입하고, 노동조합은 1.투명한 인사정책 2.공정한 인사조치 3.인간의 존엄성 회복 4.노동시간 단축 5. 삶의 질 보장을 핵심요구로 내걸고 전 공장의 모든 기계를 일시에 멈춘다. 조합원 모두가 공장을 점거한 채 일체 생산을 하지 않는 강력한 전면파업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파업에 들어감으로써 한라제지 노동자들은 신문용지 제조업체 역사상 유례없는 59일 파업 투쟁의 역사를 전개한다.
하지만 미국자본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한라 경영진은 노동조합의 전면파업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교섭에 임하기보다는 공격적인 직장폐쇄로 맞섰다. 전문 용역깡패를 투입하고 파업에 동참한 조합원 앞으로 수억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식당 및 사내 모든 복지시설을 폐쇄하고 단전단수 조치를 하였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자’는 조합원들의 흔들리지 않는 투쟁 속에서 조합원 절반 이상이 삭발하고 목포시청부터 관할 행정관서 타격투쟁, 급기야 서울 상경투쟁과 국회와 각 정당의 정치투쟁까지 전개하고 나서야 미국의 보워터 자본은 노동조합과 2002년 7월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하나의 투쟁이 끝나면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인사탄압과 차별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2002년 59일의 파업투쟁을 결국에는 승리로 만들어 현장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파업 마무리 과정에서 정리하지 못한 무노동 무임금과 사측에 의해 고소, 고발 처리된 형사사건 진행으로 인하여 조합원은 파업의 승리감과 패배감을 동시에 느끼며, 비조합원과 사측 관리자를 대상으로 때로는 더욱더 분노하는 노동자로, 투쟁하는 노동자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2003년 임금인상투쟁은 또 한번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단결된 폭발로 사측을 공세적으로 압박하며 승리한다. 하지만 59일간의 파업투쟁 후 해소되지 못했던 간부 간, 조합원간의 내부 의견 차이, 노동자계급 중심의 투쟁파와 교섭 실리주의 온건파의 마찰로 잠정 합의안이 겨우 50%를 넘긴 채 투쟁이 마무리됨으로서 노동조합에 새로운 과제로 남게 된다. 그러나 노동조합 투쟁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체적인 투쟁 결과에 대한 평가와 정리를 하지 않고 투쟁을 정리함으로써 하나의 투쟁을 승리하고도 노동자계급이 발전하지 못하는 과오를 남기고 만다.
2003년 7월 31일 출범한 2대 집행부는 비타협 투쟁을 선언하며 지난 2년간의 노동조합의 과오를 정리하고 새로운 노동조합관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로 출범 즉시 집행부를 구성하며 규약을 전면 개정한다. 조합원의 가입 범위를 공장 내 전체노동자로 확대시키고 해고 투쟁을 대비하여, 신분 보장 관련 규약안을 총회에서 통과 시키며 천천히 2004년 임단투를 준비하며, 현장을 재조직하기 시작한다.
2004년 노동조합 설립 3년차, 준비는 철저히! 투쟁 결단은 단호히!!
2대 집행부는 그 동안 철저히 준비해온 148개 단협 조항과 임금인상안을 가지고 교섭 시작 전에 전 조합원 04년 임단투 승리 출정식을 힘차게 치루며 전 조합원 집회 속에 투쟁지침 1호부터 먼저 내리고 2004년 5월 7일 사측과 04년 1차 교섭에 들어간다. 반드시 전 조합원의 투쟁 속에서 04년 임단투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집행부의 의지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사측 탄압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임단협 시작부터 조합원에게 철저히 04투쟁 요구안의 필요성을 알려내고 결의를 만들어가면서 시작된 04년 임단투는 조합원에 대한 믿음과 신뢰 속에서 ‘1.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주40시간 쟁취 2.노동조합 활동 보장과 현장위상 강화 3. 표준생계비 확보와 공정분배 쟁취 4. 복지후생제도의 투명성 확보 5.노동조합 자립기반 조성’을 04년 임단협의 주요 방향과 목표로 설정한다.
하지만 사측 또한 경총의 지침을 적극적으로 고수하며 교섭이 한달이 되어가도 노조요구에 대해 “법대로 하겠다”는 것이 전부인 배수진을 치며 노동조합 요구에 단 한 개의 합의사항도 내놓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본교섭 8차에서 단호히 결렬을 선언하고 04년 임단협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결과 93.8%라는 압도적인 쟁의행위 찬성 가결로 사측을 압박하며, 즉시 쟁대위를 구성하고 장치산업-신문용지 제조업인 한라제지 공장의 특수성에 맞는 쟁의전술을 개발해 내기 시작했다.
최초로 시도되는 생산관리 쟁의전술, 선배 노동자의 조직력이 필수 조건이다
04년 임단협 투쟁에서 노조 지도부는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철칙으로 사측의 지휘명령을 거부하고 자본의 노동통제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일상투쟁 속에서 상시적 공장을 점거하고 노동력은 제공하되 통제는 노동조합이 관리하는 생산관리 쟁의전술 채택한다. 이 생산관리 전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노조 지도부는 현장의 직/반장 위주로 생산관리팀을 쟁대위 조직 내에 별도로 편성하고 수차례에 거쳐 선배노동자의 역할과 생산관리 전술 속에서 현장위상강화를 만들어 낸다는 결의를 한다. 또한 노조는 이후 생산관리전술 2단계, 3단계까지 철저히 준비하고, 생산관리 전술과 함께 파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 조합원 숙식 순환철농을 만들어 내며 사내에 설치한 천막을 거점으로 조합원의 적극적 조직화와 선배노동자의 투쟁의지에 힘을 싣는다.
투쟁하는 노동자만이 협약을 쟁취한다!!
교섭이 계속 진행되어도 사측이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노조 요구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 없자 노동조합은 다시 한번 중대 결단을 결정하고 사측에 결정 시한을 통보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노조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2002년 투쟁의 역사인 59일 이상의 파업이 전개되더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무노동 무임금이 깨지는 그날까지 파업투쟁을 전개할 것이다”라는 것을 교섭석상에서 밝히며, 조합원과 사측에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일정을 공개한다. 조합원에게는 04년 투쟁에 대한 각오를 사측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음을 통보하며 7/2일부터 파업투쟁 지침을 전 조합원과 사측에 통보한다. 노동조합의 파업이 현실로 다가오자 그 동안 단협 148개 조항 중 단 개도 합의하지 않았던 사측이 노조에 교섭을 요구한다. 이에 한 차례 더 교섭에 응해 보지만 몇 개의 단협 조항만 가지고 나왔을 뿐 노조의 핵심 요구들은 다 빠져있었다. 이에 더 이상 교섭이 의미 없음을 밝히며 노동조합은 투쟁으로 요구안을 관철시키겠다며 한창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조합원 대오와 파업광장으로 나와 버린다. 이후 노조는 사측의 재교섭 요청을 받아들여 정회와 속회를 거듭하며 교섭을 진행한다.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조합원은 집회대오를 밤새 끝까지 유지하며 흔들림이 없었고 지도부는 교섭과 투쟁의 수위를 조절해 나간다. 결국 46시간의 교섭과 파업투쟁 속에서 한라제지노동조합은 128개의 단협 조항과 차별 조항 등을 공정분배로 만들어 내며 노동조합의 핵심 요구안들을 거의 쟁취하는 올해 또 하나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냈다.
2004년 임단협 투쟁의 성과와 이후 과제
그 동안 노조 설립 과정부터 올해까지 3년차 투쟁 속에서 무엇보다 제일 소중했던 것은 단 한 명의 조합원도 희생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265명 규모의 사업장에서 기존의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 40시간제를 완전히 쟁취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준생계비 근접한 임금과, 조합내의 전임자 확대와 정규직 전환 및 노조의 재정을 확충해 나갈 수 있는 사내 시설 운영권 쟁취. 단협 조항에 고용보장을 문구로 합의하고, 쟁의권 확보와 손배소 제한 등 이후 노조의 활동력과 쟁의권 확보에 대한 조항들을 만들어 낸 것은 정말 소중한 투쟁의 결과이다. 새롭게 최초로 시도해 본 생산관리 전술을 사측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쟁의전술로 검증했으며, 파업에 대한 두려움을 말끔히 해소 시켜버린 것 또한 이번 투쟁의 성과이다. 04년 투쟁을 통해서 그 동안 이겨내지 못했던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은 이제 깨졌으며, 전 조합원의 순환조 철농에 조직을 집중시켜 04년 투쟁의 핵심과 목표를 더욱 더 조직화 시켜내고 신문용지 제조업 노동자의 투쟁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생산관리전술을 성공시켜낸 것은 이후 새롭게 평가될 것으로 판단한다.
지도부의 계속되는 장시간의 교섭에 파업대오 속에 있는 조합원이 혹시 위축될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중간에서 교섭을 한번 정도는 중단해도 좋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파업투쟁과 교섭전술을 동시에 전개했을 때 조합원은 파업 현장에서 노조의 지도부나 간부가 없더라도 “스스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조합원 내부로부터 자생할 수 있고 투쟁할 수 있다“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중요한 지점도 있었다.
보워터한라제지노동조합은 04년 투쟁의 기풍을 향후 투쟁의 중요한 원칙과 기조로 대불산단 내 전체 노동자계급의 구조조정 분쇄와 비정규직 철폐 등 신자유주의 저지투쟁으로 이미 시작된 자본의 공격에 대하여 준비하고 반격할 수 있도록 조합원동지들의 자생력 강화에 중심을 두고 건전한 활동가를 양성하는 교육사업에 치중 할 것이다. 또한 대불산단 내에 업종별 산업이 서로 다른 현대삼호중공업과 한국화학노조 등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연대의 틀을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이며, 대불 산단 내 전체 노동자의 조직적 단결과 자본의 향후 공세를 어떻게 막아내고 반격을 이루어 낼 것인가의 기초 논의 단위도 만들어내야 할 공동 과제들로 남아 있다.
2004년 7월 6일 04년 투쟁을 노사 합의하고 7/6일부터 7월 8일까지 전 조합원 상대로 04투쟁에 대한 평가 간담회를 실시하면서 조합원 개개인이 느끼는 04년 투쟁에서 아쉬운 점과 향후 과제들을 스스로 평가, 정리해 보며, 이후 남아 있는 과제들도 정리해 본다. 04년 임단투를 마무리하면서 7월 15일 야간근무를 마친 조합원을 포함하여 코오롱 노조(총파업 23일차) 연대투쟁을 가는 30여명의 동지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스스로 조금씩 투쟁이 뭔지, 싸움이 뭔지 배워가는 나와 조합원과 노동조합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또한 함께 하는 가운데 부대끼며 느끼는 동지애와 노동자투쟁의 시각에서 조직되고 교육되어 철저히 의식 무장하며 현장으로부터 들고 일어서는 노동자중심 계급투쟁의 기풍을 이미 만들어 내고 있는 보워터한라제지노조의 밝은 앞날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반면에 자칫 잘못하면 단사 내 실리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것도 고민해가며 조합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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