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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호] 자본주의에서 ‘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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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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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8 03:48:01, 조회:2,778, 추천: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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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공정한 무역’, 가능한 일인가?
세계적인 커피전문회사 스타벅스의 불공정 무역에 관련한 논란이 될 때가 있었다. 논란의 시작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자국산 커피의 가치를 제대로 받겠다며 3가지 종류의 커피 상표 등록을 통해 자국산 커피에 대한 로열티를 받고자 한 것을 스타벅스가 거부한 것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의 나라에서 주되게 생산하는 커피가 무역시장에서 대단히 낮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등 유럽에서 팔리는 원두커피 1kg 당 소비자 가격은 평균 26.4달러(2만5천원 수준)이지만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같은 원두를 팔고 손에 쥐는 돈은 14센트(130원 수준)에 불과하다.
스타벅스는 이 협상결렬 이후 ‘불공정 무역’의 핵심자본으로 떠오르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비판의 중심에는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영국의 옥스팜(Oxfarm), 미국의 글로벌익스체인지(Global exchange) 등 공정무역단체들은 스타벅스가 커피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아프리카의 빈곤을 조장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세계화로 인해 선진국의 다국적 자본에게 무역의 독점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저개발국가의 상품이 불공정 거래로 인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상품의 생산자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선진국의 소비자, 유통업자가 제3세계의 농산물 등을 유통, 소비하는 대신 그 대가를 생산자에게 제대로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리적 소비’와 ‘선진국과 저개발국가와의 공정한 거래’를 주장하는 공정무역은 그 세력이 확장되어 매년 40~5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공정무역이 취급하는 품목은 커피, 설탕, 바나나 등을 넘어 꽃, 옷, 이불, 가구 등으로 확장되고 있고 그 수는 2000여 종이 넘는다.
'아름다운 상생'을 꿈꾼다, 공정무역
공정무역(Fair trade)은 세계시장을 장악한 다국적 기업을 거치지 않고 제3세계 생산자와 외국 소비자를 직접 잇는 거래를 지향한다. 이들은 현재 FTA 체결 등 자유무역과 국가 사이에서 무역을 둘러싸고 행해지는 덤핑, 정부 지원 보조금 등으로 인해 제3세계 국가의 생산자(농민, 노동자)들이 착취 받고 있다고 말하며 이 같은 세계화는 소비자본주의 확대와 분배의 양극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생산가격의 하락을 위한 식품조작과 화학염색 등 환경파괴에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정무역은 지금까지의 불공정한 무역을 개선하고 이익의 공정한 분배를 목적으로 1950년~6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저소득층에게 우선적으로 일자리 제공, 투명한 경영과 거래, 경영 능력 향상과 기술 개발 등을 통한 생산자 자립 기반 조성, 대화와 참여를 통해 결정된 공정한 가격을 생산자에게 지급, 여성 차별 금지, 아동 노동 금지, 친환경적 생산 방식 등의 원칙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다.
공정 무역 운동은 유럽을 넘어 남한 사회에서도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YMCA, 아름다운 가게, 두레생활협동조합,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공정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YMCA에서는 동티모르에서 커피 재배 농민들과의 공정무역을 해서 동티모르 기존 무역의 원두 가격의 3배 비싼 가격으로 사들여서 ‘피스 커피’라는 커피 상품을 만든다. 그리고 동티모르의 전통적인 재배방식을 존중하고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시설을 투자한다. 두레생협 또한 2004년부터 필리핀 네그로스섬에서 ‘마스코바도 설탕’을 수입해왔다. 그리고 그 설탕 판매 가격의 10%를 적립해 필리핀 네그로스섬에 우물, 수도관, 펌프를 놓고, 다른 수입원을 만들 수 있도록 산양 등 가축을 분양해준다.
초국적 자본의 중간착취를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 거래를 통해서 상생의 발전을 꾀하는 것. 이 같은 방식이 공정무역이 지향하는 무역의 모습이다. 이른바 ‘사람이 오고 가는 무역.’ 이들은 소비자들에게 윤리적으로 가난한 제3세계 농민들을 돕겠다는 ‘윤리적 소비자’의 정신으로 공정무역 상품을 사는 것을 호소한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들에게도 더 이상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탐욕을 버리고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공정 무역을 할 것을 촉구한다.
‘아름다운 착취’ - 공정무역의 한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의 질서는 초국적 자본과 제3세계 저개발국가의 무역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무역운동가들이 현장에서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대안 없이 만든 원칙은 자본주의의 차가운 착취질서 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실제로 생산품의 98%가 공정무역 업체를 통해 수출되는 네팔의 공정무역업체 작업장들의 모습은 공정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자본주의의 착취 질서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팔 공정무역 업체 작업장 중 하나인 마하구티 재봉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네팔의 다른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조건은 임금만 약간 상승했을 뿐, 동료들이 모여서 작업 환경이나 작업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과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90여 개의 ‘생산자 그룹’이 만들어낸 제품 모두는 공정무역을 통해 거래된다. 그렇지만 마하구티 공장에서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에게는 의료 수당, 보너스 지급, 최저 임금 보장 등의 혜택이 보장되지만 나머지 생산자 그룹에까지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공정무역의 원칙 중 하나인 ‘민주적 노동자, 주체적 생산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있는 현지인의 말은 공정무역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준다.
“FTG Nepal(네팔의 공정무역 단체 연합체)이 거의 모든 네팔의 공정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것 같고, 나름대로 기업화 돼 있는 것 같다.”
공정무역이 자본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전면으로 저항하지 않고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개량주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량주의의 대표주자인 베른슈타인의 생각을 “쓰디쓴 자본주의의 바다에 사회개량주의의 레모네이드 몇 병을 넣어 이 자본주의의 바다를 사회주의의 단물로 바꾸겠다.”는 것만큼이나 공상적이라고 비웃었다.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대부분도 사회 개량주의자들처럼 자본주의 내에서 수십, 수백 가지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중 하나가 자본주의 내의 제국주의 국가와 저개발국가간의, 한 국가 내의 대자본과 중소자본과의 불공정한 무역에 맞선 공정무역이다. 이들은 공정무역으로 거대자본이 지배적인 자본주의 무역질서, 착취질서에 도전하고자 한다. 이들의 주장은 베른슈타인의 주장처럼 공상적이다. 이들은 초국적 자본과 거대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맞서기를 거부한다. 마치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 기업이 자본주의에 고립되어 둘러싸인 작은 섬으로 존재하다가 결국은 자본주의 거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이를 막기 위해서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불행한 결과를 맞는 것처럼 공정무역은 초국적 거대자본의 지배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들이 말하는 공정무역은 자신의 개인적인 양심에 위안을 줄지언정 자본주의 무역질서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절대적인 후원을 받고 초국적 대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무역질서는 전 세계에 생산망, 판매망, 홍보망을 갖고 독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초국적 자본에 비해 공정무역은 자본력에 있어서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는다. 스타벅스 같은 초국적 자본이 공정무역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착취와 억압을 은폐하는 가리개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삼성, 현대 등 독점자본이 기부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자본주의 독점자본에 대한 대중들의 거부나 저항의식을 줄이고 기업의 이미지를 높여 시장장악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자본주의의 불공정 무역은 제국주의 자본과 저개발 국가의 자본, 대자본과 중소자본과의 생산력 차이에서 비롯된다. 제국주의 자본과 거대자본은 저개발 국가와 중소자본에 비해 월등한 자본과 생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훨씬 질 좋은 생산물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생산력이 훨씬 더 뒤진 국가나 자본은 하나의 생산물의 생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여 생산물의 가치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자본이 만든 낮은 가치의 생산물과 소자본이 만든 높은 가치의 생산물은 그 가치차이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같은 가격에 판매된다. 이 교환에서 거대자본이나 제국주의 자본은 공정한 무역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불공정 무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국적 자본은 이밖에도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원료개발에 대한 대가로 값싼 원료비용으로 얼마든지 자본주의 기업의 경쟁 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초국적 자본은 금융에 대한 접근이나 소비자에 대한 접근에서도 유리하다.
공정무역은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대한 저항감을 약화시키고 공정무역으로 착취질서를 대신할 수 있다는 환상을 대중에게 부여한다. 공정무역은 공정한 착취질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양심적이지만 공상적인 개량주의일 뿐이다. 이들이 정말 공정무역을 원한다면 자본의 무역착취질서의 핵심인 FTA 반대 투쟁에 결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투쟁일 것이다. 이들의 ‘공정한 무역’은 ‘공정한 착취’의 기반을 다지는 자본의 하수인 역할일 뿐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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