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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노동자정치신문 32호 목차/ 사회주의 연합 건설에서 잊고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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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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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9 13:29:11, 조회:2,786, 추천: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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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 홈페이지 : http://lmagit.jinbo.net
TEL : 02-6414-1917 / E-mail : labor04@jinbo.net
노동자정치신문32호(통합 44호)입니다.
[쟁점] 사회주의 연합 건설에서 잊고 있는 것
[인터뷰] '결사항전 임전무퇴 조합원이 힘이다' -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김수억 지회장
[노동1] 대우차 15% 합의와 1차 하청 구조조정을 저지하자!
[노동2] 산업 초호황 아래 벼랑으로 내몰리는 조선소 노동자들
[현장기고1]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을 죽이는 자 과연 누구인가? -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현장기고2] 죽어도 현장으로 돌아간다! - 신길운수 해고자 박한용 동지
[기획연재-혁명사] 노동자 투쟁과 국공합작의 해체 - 중국혁명사(1)
[기획연재-교육] 계급타협의 ‘파기’ 노동자를 공격하라! - 신자유주의
[주장] 학위조작사건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능력
[혁명시]프롤레타리아의 노래 - 보그다노프, 1900년
사회주의 연합 건설에서 잊고 있는 것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의 공동활동과 연합조직 건설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최근에 와서만 벌어지는 양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공동활동과 연합, 통합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해왔다. 다만 지금의 공동활동과 연합이 과거와 다른 점은 공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 과거 보다는 좀더 각자의 활동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자 연합 주장에 대해서 “각개약진이 더 필요하다”라는 입장으로 반대했다. 그런데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 종파주의니, 선전주의니 하는 악의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당건투의 비난은 점입가경이다. 당건투의 이러한 태도는 사회주의자들의 연합과 통합에 지금 당장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에 대한 비난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소아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 만약 당건투의 이러한 비판이 최소한 정치적 근거를 갖으려면 주관적 주장과 매도가 아닌 합리적 근거와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당건투는 공식적인 토론은 아니었지만 우리와 이행기 강령을 중심으로 하는 논쟁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후 당건투는 몇 차례 나온 공식 입장에서 우리의 입장에 대해 구체적인 인용을 통해 비판하지 않고 간접적인 추론으로 비난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악선동에 대해서 반비판할 권리가 있다. 또한 이러한 반비판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에 대한 악의적 왜곡을 정정하고 현 시기 사회주의자들의 각개약진이 더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사회주의자들의 공동활동과 연합의 조건과 방식,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힐 것이다.
사회주의 연합의 실질적 조건은 무엇인가?
지금 사회주의 연합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써클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당적 활동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당위를 꼽고 있다. 당건투(양효식)는 지금 사회주의 정치활동이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면서 “써클적 선전 중심의 정치 활동에 안주”할 것인가, “계급투쟁과 대중행동을 조직하고 지도할 강령에 기초한 정치활동으로 곧장 나아갈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당건투의 주장대로 하면 지금 사회주의 정치 활동의 수준은 써클적 선전 중심에 머물러 있다. 당건투도 이 수준에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다만 당건투는 이제 써클적 선전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당적 수준의 정치활동으로 전진하려 하는 것이다. 당건투에게 이러한 전진의 두 가지 주요한 수단은 사회주의 연합과 이행기 요구이다. 당건투의 이행기 요구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하겠다.
당건투의 주장대로 지금 사회주의 세력들이 써클 중심의 선전 활동에 머물러 있다면 단순히 몇 조직이 연합을 한다고 해서 이 수준을 돌파할 수 없을 것이다. 연합에 이어서 통합으로 가는 과정은 써클 수준의 선전에서 연합으로 바로 나아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공동의 실천과 검증, 신뢰의 확보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 연합과 통합으로 곧바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단지 정세가 필요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각 조직이 합치는 실용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실용주의는 정세의 포로가 되어 각 정파 간의 실질적인 이론적, 정치적, 노선적, 실천적 차이를 은폐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야합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그것이 아니면 연합 과정에서 오는 차이나 불신이 극명하게 부각되면서 갈등과 분열로 갈 수 있다.
그런데 당건투의 주장과 다르게 지금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파들은 써클 중심의 선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소련의 몰락 이후 남한의 사회주의 정파들은 정파 분립의 시기를 거쳐 왔다. 이 시기는 이데올로기 정립의 시기였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이스크라’ 신문 발행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연합이 아닌 분리정립을 주장했다.
“통일에 앞서 우리는 통일을 위한 전초작업으로 분리의 선을 단호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긋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통일은 현재의 혼란을 은폐하고 그것의 철저한 제거를 방해하는, 단순한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남한의 사회주의 정파들은 ‘색조분화 투쟁’이라는 이데올로기 정립의 시기를 거쳐 왔다. 우리는 이에 대해 “색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게 나누어지기 때문에 실천 속에서 검증되지 않는 색조분화 투쟁만으로는 누가 옳고 틀린지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남한의 사회주의 정파들은 이데올로기적 분리정립의 시기를 거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이러한 목표는 아직도 여전히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오직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면서 단련해온 세력만이 유일하게 생존했다. 나머지 세력들은 소리도 없이 사라지거나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다함께처럼 소부르주아 선전 세력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당건투는 써클적 선전 중심의 활동이라고 비난하다가 뒤에 가서는 “현재 사회주의 정치조직들은 선전을 넘어 노동자 투쟁들을 조직하고 주도할 조건에 있게 될 때조차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투쟁 요구 이상으로, 이 투쟁을 확대 발전시키고 투쟁을 전면화, 일반화시킬 수 있는 요구안을 내놓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선전 중심의 정치활동에 안주하는 조직”들이 과연 어떻게 “선전을 넘어 노동자 투쟁들을 조직하고 주도할 조건에 있게 될” 수 있는가? 선전주의가 문제인가? 선전 중심의 활동을 벗어났는데 이행기 강령을 내걸지 않아서 문제인가? 악의적인 종파주의에 사로잡혀서 한 입으로 두말하지 말라!
지금의 사회주의 운동은 각 조직의 편차는 약간 있지만 이데올로기적 선전그룹에서 현장에 대한 실천적 기반을 점차로 확대해 들어가고 있다. 지금은 단순히 주의, 주장만으로 자신들을 반정립하는 시기를 넘어섰다. 물론 반정립은 자신들을 정립하고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이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현실 계급투쟁의 무대 위에서 실천적으로 공개 검증해야 하는 시기다. 이러한 검증과 대중적 지도력의 확보에 실패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누구한테도 그 권위와 정당성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남한의 사회주의 운동은 이 과정에서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하고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했다. 현실과의 결합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가 두려워서 다시 선전의 시대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그 세력은 투쟁의 무대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현실 개입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조직적으로 비판하고 정정하지 않는 세력 역시 정체하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다.
지금 사회주의 세력들은 선전그룹에서 실천그룹으로 변모하는 기로에 있지만 대중운동에 결합할 수 있는 지반은 아직도 지극히 미약하다. 우리는 여전히 실천적 지도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운동에 결합을 한 투쟁에 있어서도 실천적 과오를 범하거나 상호불신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현장조직 운동, 산별에 대한 입장,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입장 등 사회주의 세력들은 주요한 노동자 계급의 문제에 있어서 뚜렷하게 입장을 달리했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의 독자성과 자주성 문제의 시금석인 1사 1조직 편제 등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실천적 차이를 넘어서 심각한 오류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회주의 연합을 추진하는 당건투와 노동해방연대는 대공장 사내하청 투쟁의 과정에서 심지어 주류, 비주류로 나눠져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서로가 공동의 활동기반을 가지고 있는 공개적인 계급투쟁의 무대이기 때문에 이 갈등은 더욱 더 선명하게 부각됐다.
우리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정립의 시기에 비해 발전의 한 측면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입장 차이들이 나타나고 싶어도 나타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의 계급투쟁에서 공개적으로 서로 검증될 수 있는 공동의 활동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들이 분명하게 부각된 것이다.
그런데 이 차이들이 과연 연합을 하지 않아서 발생했는가? 아니면 조직적 차이가 아니라 개별 사업장의 특수한 조건이나 개인들 간의 성향 차이 때문에 발생한 문제인가? 만약 그래서 그러한 갈등과 대립이 빚어졌다면 지금까지 각 조직들은 조직적 활동이 아닌 개별적 활동을 수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적 통일성과 규율이 없는 활동에 대해서 뼈를 깎는 자기비판을 수행해야 한다. 반대로 조직의 노선과 기풍, 전술을 가지고 수행한 활동이었다면 각 조직들은 현실에 개입해 들어가면서 심각한 내부 이견과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노동해방연대와 당건투는 이러한 실천적인 분열과 대립, 차이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노동해방연대는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의 확대는 ‘지금 시기에 주어진 역사적 임무’에 응답하지 못하는 노동해방주의 써클들의 무능력과 자연발생성, 그리고 10여 년 동안 확대된 써클주의적 편향의 결과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노동해방연대는 현장 내에서 벌어졌던 실천적인 차이를 써클주의의 편향의 결과물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연합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현장 내에서의 분열과 대립, 갈등, 오류가 써클주의의 편향이라면 솔직한 평가와 책임 있는 공동실천을 통해 오류를 정정하고 서로 신뢰를 쌓고 대중적인 지도력을 다시 확보해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고통스런 과정 없이 연합으로 “써클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당주의의 시대를 열!” 수 있는가?
산별 관료주의자들은 모든 운동의 위기를 기업별 노조의 한계로 돌리고 산별전환으로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료들은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조합주의적 태도와 반노동자적인 작태는 모두 기업별 노조의 흔적으로 돌리면서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렸다. 조직 형식 전환과 투쟁 없는 산별을 그토록 비판하던 사회주의자들이 관료들을 닮아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연합이나 통합을 말하기 이전에 각자의 공동활동의 기반을 확대해 들어가서 공동활동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서로가 공동의 활동기반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조직적 공동실천을 통해서 신뢰를 쌓고 대중적으로 검증돼야 한다. 그럴 때만이 대중적으로도 실천적인 지도력을 굳건하게 갖추게 될 것이다.
“대중과 결합하여 가르치고 배우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검증하고 있다. 대중적 검증, 현실의 시련을 어떻게 견디어 내는가, 현장의 실천을 통한 훈련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고 단련되느냐에 따라서 각 소규모 조직과 조직들 사이의 관계의 형태가 결정될 것이다.”
“비정규직 투쟁과 함께 있는 현장에서 책임 있는 공동투쟁을 조직하자. 책임을 질 수 있고 또 소규모 조직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공동투쟁이 되어야 한다. 괜히 겉만 빛나고 소리만 요란하고 생색내는 식의 공동투쟁은 잠시 조직구성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조직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선진 노동자와 대중의 눈을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신뢰와 권위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각 소규모 조직은 각개약진의 지속을 통한 결과에 따라서 이합집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하나의 주도적인 조직, 압도적인 힘과 영향력과 신뢰를 받는 조직이 탄생하면 그 조직을 중심으로, 그렇지 않고 몇 개의 앞선 조직이 탄생하면 그 조직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정치신문 24호 정치조직의 현 단계)
우리가 말하는 “각개약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과연 사회주의 진영의 써클적 분열을 조장하는 종파주의이고 분열주의인가? 우리는 노힘이 좌파 공동 테이블 제안을 하기 이전에 이미 이러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써클적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정치조직 수준으로의 도약을 열망하지 않는 세력은 아무도 없다. 당적 수준으로 정치 활동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 필요를 절감하지 않는 세력 또한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연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대중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진영에 더욱 더 책임 있고 실력 있는 세력으로 서려고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세력들의 연합이나 통합을 통한 당적 수준의 운동으로의 전진은 주관적 열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한 주객관적인 물적조건을 충실하게 갖춤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이 유물론자다운 태도이다. 정세의 필요에 의해 절충적으로 제기되는 연합은 자칫하면 사회주의 세력들 간의 불신과 대립을 키우고 대중들한테 사회주의자들의 권위와 지도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
사회주의 연합의 정치적 근거와 범위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연합의 조건에 대해 말했다면 조직 간의 연합의 정치적 근거는 무엇인가? 연합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연합의 당위에 대해서는 많은 말이 있었지만 정치적 근거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노동해방연대는 당장의 정치적 실천을 하면서 벌어지는 연합조직간 차이와 미래에 불거질 수 있는 사안들을 둘러싼 정치적 차이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노동해방연대는 전자는 반드시 해결을 봐야 하고 필요하다면 다수결로라도 정리해야 한다고 하고, 후자는 최대강령, 궁극적 목표로 이론적 토의를 남겨둘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조직 간의 실천적 차이는 당장의 연합이 아니라 현장투쟁에 대한 공개적 평가와 오류의 정정, 책임 있는 공동투쟁과 신뢰와 지도력의 확보를 통해서 해결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후자는 먼 미래의 문제인가?
조직 간 연합 특히 통합을 염두에 둔 연합은 공동실천에서의 신뢰와 더불어 강령적 수준에서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령논의를 미래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연합과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 물론 소련 사회에 대한 태도 등은 연합적 질을 가지고서 풍부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국유화, 계획화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전위정당에 대한 태도와 입장은? 그리고 연합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는 좌익 공산주의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연합의 공통의 지반이 맑스레닌주의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모든 강령을 다 완성하고서 연합을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역사적으로 확인된 강령과 원칙에 대한 기준은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맑스레닌주의는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이미 확인된 원칙이다.
우리는 노힘의 좌파 테이블 제안에 대해서 실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강령적 수준의 문제에 대한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참여하지 않았다. 노힘은 강령적 수준에서의 차이는 논의해 가면 된다고 했다. 지금 제기되는 사회주의 연합에서도 노힘과 마찬가지의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현장에서의 실천과 마찬가지로 강령적 수준에서의 토론과 논쟁은 사회주의 연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이 논쟁을 통해 강령에 대한 논의가 풍부해지고 실천적 차이가 과연 강령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단지 서로 다른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정치적 오류에서 기인한 것인지 분명해질 것이다.
특히 이행기 강령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당건투는 이행기 강령을 가지고 우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최대강령 선전주의, 최후 통첩주의, 대기론적 실천 등 인용할 수 있는 모든 수사를 다 동원하고 있다.
당건투는 “각개약진이 더 필요하다는 노정협의 주장은 곧 ‘퇴조기’를 구실로 지금 반격과 정세 반전은 불가능하고 여전히 수세적 정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고 우리를 비난하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가 언제, 어디서 현 정세를 ‘퇴조기’로 규정짓고 지금 반격과 정세 반전은 불가능하다고 했는가? 구체적인 인용을 통한 비판이 아닌 자의적 해석과 추측을 동원한 당건투의 논쟁 방식은 참으로 고약하고 악의적이다.
당건투는 “자본주의의 파국적 위기 시기가 아니면 이행요구는 현실성을 가질 수 없다”, 또는 “‘일상적’시기에 이행강령은 현실성을 가질 수 없다”며 우리의 입장을 단순화하여 왜곡하고 있다.(우리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려면 노동자정치신문 창간17호에 실린 ‘이행기 강령과 실현조건’을 보라!)
우리는 최소강령을 자본주의에서 실현가능한 요구로 제기하고 최대강령을 단지 선전으로만 제기하여 개량과 혁명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는 독일 사민당 식의 최소강령, 최대강령을 반대한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처음에는 소유권과 부르주아적 소유관계를 전제적으로 침해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즉 경제적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안정되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운동을 거치는 동안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생산양식 전체를 변혁하는 수단으로 꼭 필요하게 되는 방책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최소강령의 의의를 밝혔다.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하는 최소강령이 자본주의 사적 소유를 잠식해 들어가지 않고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흡수돼버린다면 개량주의 요구로 전락할 뿐이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에서 실현 가능한 요구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침해해 들어가는 투쟁강령, 전투강령을 내걸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행기 강령의 문제의식을 동의한다. 하지만 이행기 강령의 모든 요구를 이행의 각 국면의 객관적 정세, 특수성, 계급 역관계를 살피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당건투는 최대강령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우리에게 최대강령 선전주의, 최후 통첩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최대강령을 말하지 않는 이행기 강령은 개량주의 강령이 될 뿐이다. 맑스도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1871년 빠리꼬뮌의 경험을 통해 공산당 선언에서의 “강령은 몇몇 군데에서 오늘날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라고 했다. “소유 문제를 운동의 기본 문제로 내세운다”는 맑스의 사상은 운동의 발전 수준과 상관없이 사적 소유 철폐가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구로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맑스는 과연 최대강령 선전주의이고 최후 통첩주의자인가? 당건투는 최대강령을 주장하는 세력을 비난함으로써 스스로 최대강령을 기각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주의 연합에 있어서도 최대강령은 나중에 해결해도 되는 문제로 전락했던 것이다.
최대강령에 대한 선전선동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사회주의 운동의 혁명적 현실성과 전망을 대중들한테 분명하게 심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자본주의에 아무리 환멸을 느껴도 이러한 전망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이행기 강령이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당건투는 “각 시기에 따라 이행강령의 특정 요구안은 빠질 수도, 다시 넣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로츠키가 자본주의의 급격한 위기의 시기인 이중권력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제출했던 노동자 통제 요구나 코민테른 초기에 사민당의 부르주아와의 연합을 깨고 사민당을 지지하고 있는 대중들을 끌어내기 위해 내걸었던 ‘노동자 정부’ 슬로건을 지금의 국면을 이해하지 않고 교조적으로 내걸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자본의 전일적인 힘이 지배하고 있는 지금의 시기에 공장위원회를 통한 생산통제 요구를 내걸고 행동에 나선다면 자본가는 이 시도에 대해 비웃어버리거나 탄압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경영참가나 공동결정제로 노동자를 자본의 통제 하에 두어 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통제는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를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추상적인 요구나 개량주의적 요구로 전락할 뿐이다.
노동자 정부 슬로건은 또 어떤가? 당건투는 민노당이 진보대연합에 나서기 때문에 이행기 요구로써 ‘노동자 정부’ 슬로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진보대연합이 민노당이 중심이 되는 외연의 확대전략으로 부르주아와의 연합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이때 ‘노동자 정부’ 슬로건은 독자적으로도 충분히 개량주의 세력인 민주노동당과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슬로건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위험한 요구라고 했다. 당건투는 현 정세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방책이라도 되는 듯이 주장했던 ‘노동자 정부’ 슬로건을 왜 지금은 내걸지 않는가?
이행기 강령은 각 이행국면에서의 구체적 적용조건을 살펴서 창조적으로 내거는 것, 구호만 내걸 것이 아니라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의 구체적 경로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규직 철폐’나 ‘정리해고 분쇄’야말로 대중적으로 내걸 수 있는 최고의 투쟁강령이다. 당건투는 ‘구조조정 저지’, ‘정리해고 철폐’ 등은 사회주의자들의 주도 없이도 투쟁들이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면서 “당면 투쟁에 멈추지 않고 이를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방책들, 전략전술, 요구안, 조직 방안 등을 체계적인 강령의 형태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에 “현 단계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본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대중들의 요구와 다른 뭔가 쌈빡한 요구, 정치적 요구를 내거는 것이 핵심 방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대중적인 요구 보다 고차원적인 체계적인 강령적 요구가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노동자 정부’ 슬로건인가? ‘노동자 통제’ 슬로건인가? 우리는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분쇄 등이 바로 현 시기 우리가 내걸어야 하는 요구라고 본다.
단, 슬로건을 내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슬로건을 가지고 대중투쟁에 개입해서 이 투쟁을 좀 더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방향으로 끌어가야 한다. 현 시기 가장 전투적인 이랜드 투쟁을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을 주도하면서 이 투쟁이 관료들의 교란에 의해 무기계약직화로 후퇴하거나 타협적으로 정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이랜드 투쟁이 비정규직 악법을 분쇄하는 전 계급적인 정치투쟁으로 상승해서 자본의 이윤을 타격할 수 있는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적인 신뢰와 지도력을 획득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체계적인 강령의 형태로 정식화된 요구 자체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인 요구들을 걸고 투쟁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력과 힘이다.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내건 대중적인 요구는 ‘빵’과 ‘토지’와 ‘평화’였다. 볼셰비키는 대중들의 사활이 걸린 요구와 특별히 다른 방책이 담긴 요구를 내걸었던 것이 아니다. 러시아 민중들은 부르주아와의 연합으로 민중들의 사활이 걸린 요구들을 뒤로 미루는 정치 세력 보다 볼셰비키가 자신들의 요구를 가장 잘 성취시켜 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볼셰비키를 지지했던 것이다.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현실적인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대중적인 슬로건이 될 수 있었다.
우리도 지금의 정세가 퇴조기라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세 인식은 현실을 변증법적으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대중투쟁에 대한 수동주의, 기권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정세는 대공장의 침체와 계급투쟁의 연이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대중투쟁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시기다. 살아 움직이며 요동치는 정세를 일면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계급투쟁이 연이어 패배하고 있다는 것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강력한 반증 아닌가?
대공장도 임박한 전 세계적인 위기 국면에서 구조조정이 극심해지면 다시 요동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진 것이 없어서’ 싸운다면 대공장 노동자들은 ‘가진 것을 빼앗긴다’ 고 생각할 때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다만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정세변화를 앞두고 조합주의와 관료주의에 맞서서 지도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분투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자들과의 공동활동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전국적 수준에서의 공동활동도 적극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또한 강령적 수준에서의 논쟁에도 적극 임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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