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각국의 사민주의 정당 비판(스웨덴)
스웨덴 사민주의-예외는 없다!
1.복지국가의 꿈은 계속될 수 있는가?
‘복지국가’- 스웨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스웨덴은 제3의 길(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의 이상향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스웨덴은 화려한 지표를 자랑한다. 50년간을 사민당이 안정적으로 집권한 국가(놀라운 정치의 안정성), 일상적 시기 1.5%, 불황기 3%의 실업률을 보여 거의 완전고용이 실현되는 국가, 노조의 조직률이 80%를 넘는 국가, 여성의 취업률이 남성의 80%에 도달하고 남성과의 임금격차가 7-8%정도이고 이혼을 할 경우 여성 위주의 대책이 보장되는 국가, 사회복지 수준이 세계최고인 국가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2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런 장점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수출지향적인 경제정책을 펼쳐왔다. 인구가 1000만이 되지 않는 소국이기 때문에 국민 총생산의 3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은 전쟁의 상대적 혜택과 정치적 안정, 노자간의 안정적인 타협을 토대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여 왔다. 그리고 그 재원으로 복지재정을 충당해왔다.
그러나 영원토록 계속될 것 같았던 복지국가의 꿈은 좌절을 맛보기 시작한다. 1980년대 들어서 스웨덴 경제는 과거 40년의 지속적인 성장과 대비되는 지속적인 경기후퇴를 하고 있다. 유럽의 장기불황의 파도는 스웨덴에도 예외 없이 덮쳤다. 세계자본의 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고, 신흥공업국이 부상하면서 스웨덴 자본주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조선, 자동차, 전기, 전자산업은 경쟁력을 잃거나 약화되고 있다.
오늘날 스웨덴 경제의 성장과 생산성은 매우 저조한 수준에 있고 장기간 그러한 상태에 머물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의 개혁을 지원하기 위한 조세의 인상이 더 이상 불가능하리라는 점은 분명 새롭고도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군나 프레데릭슨, 「유럽 노동운동은 끝났는가?」)
자본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특히 유럽연합의 통합속도가 빨라지면 스웨덴 자본주의의 위기와 일국적인 스웨덴 모델은 더욱 빛을 잃어갈 것이다. 경기침체에 따라서 실업률이 상승하고 복지비용 지출은 ‘재정적자’를 유발하고 있다. 그래서 82년 선거에서 노총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금억제 정책을 도입했다.
사민당 정부는 1990년 초 인플레이션이 문제되자 일정 기간 파업 금지, 임금동결, 불법파업에 대한 벌금인상, 의료지원 축소 및 일부 선거공약(6주 휴가 실시, 종전 12개월에서 18개월로의 임금삭감 없는 출산 휴가 연장 등)연기를 계획했었다(같은 책)
스웨덴 사민주의도 긴축재정, 복지예산삭감, 노동조합의 권리축소라는 공통분모를 가질 수밖에 없다. 스웨덴 사민주의의 독특한 길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사민당과 노조의 사이는 더 벌어지고 긴장과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노자타협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지고 복지예산이 마련돼지 못하고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상태에서 기존의 권리를 지키려는 세력과 현실에 맞게 복지국가를 뜯어 고치려고 하는 세력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증폭은 피할 수 없다.
2. 정치지형의 변동
사민주의는 사민당과 노조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토대로 노조를 조직적 기반으로 한 의회주의를 추구하였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민당과 긴밀히 결합된 스웨덴 노총 역시 마찬가지로, 공황 이전의 시기까지 한편으로는 자본가들과 맞서 강력한 총파업 투쟁을 기조로 하는 경제투쟁을, 다른 한편으로는 보통선거권 쟁취를 위한 정치투쟁을 사민당과 함께 전개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노총과 사민당은 더욱 긴밀히 결합하였다. 양자는 조직적으로도 크게 중복되어 있었는데, 예컨대 여러 지역에서 노동조합의 결의에 의해 노동자들이 단체로 사민당에 가입(집단가입)하는 등 사민당원의 70-80% 이상이 노동조합원, 특히 노총의 기간대오였던 생산직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임영일, 「산별노조론」)
그러나 양 조직의 긴밀한 협력 관계의 제도적 뒷받침 역할을 했던 집단가입제 즉, 지역 노동조합이 조합 내 투표를 통해 다수가 선택한 정당에 조합원 모두를 일괄 가입시키는 체계는 폐지됐다.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조합원들과 자본가정당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왜 이 압력 때문에 집단가입제도가 폐지되어야 했는가? 압력은 항상적으로 있어 왔던 문제다. 이 압력이 통하는 것은 그만큼 노조와 사민당의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1991년 선거에서 사민당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37.6%의 득표를 하는 데 그친 것이다. 사민당의 득표율은 1932년 처음으로 40%에 도달한 이래 1991년까지 한번도 4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사민당은 제1당의 자리는 차지했지만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 선거에서 21.6%를 득표한 보수당은 9.1%를 득표한 자유당, 군소정당이었던 기민당(7.1%), 새로 생겨난 신민당(6.7%)과 함께 4당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보수당 지도자 칼 빌트가 1928년 이후 처음으로 수상직에 취임하였다. ‘임노동자 기금 정책’도 91년도에 폐기되었다.(같은 책)
사민당 지지자들은 응집력이 강해서 지지정당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부동층이 증가하였다. 특히, 젊은 층에서 부동의 경향은 더욱 증가하였다.
50년대 후반 부동 유권자층이 7%였는데 비해 1988년에는 20%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과거에는 단지 4.3%만이 ‘사회주의’정당과 ‘시민자본가’ 정당 간에 부동적이었으나 이들 간의 부동 투표도 증가하여 사민당에게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 젊은층들은 투표에서의 결정이 상대적으로 더 늦어져서 선거운동 초반에 결정하는 비율이 20년대에 약 80%였으나 이제는 60%로 떨어졌다.(군나 프레데릭슨, 「유럽 노동운동은 끝났는가?」)
이 결과 언론매체 특히 TV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증가하였다. 이미지 선거, 인물 선거의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 점은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서유럽 사민주의와 같다. 선거에서 부동층이 증가하고 투표행태의 유동성이 증가하자 ‘계급투표’성향이 약화되고 ‘견해투표’성향이 강화되고 있다. 계급소속에 대한 고려 없이 투표하는 유권자가 50%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젊은층이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부동층이 증가하여 사민당의 독점적이고 안정적인 정치적 지위와 지도력은 무너졌다. 무엇이 50년간의 견고한 사민주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바꾸고 있는 것인가? 경기침체와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이 정치의 불안정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서유럽 사민주의와 같다.
사민당의 정치적 리더십과 강력한 노조, 사민당과 노조의 긴밀한 협력, 노자타협에 의하여 경제안정과 경제성장, 정치안정을 이룩해 왔던 것이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돌아서고 미래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사민주의 정치질서가 약화되고 보수적 자본가 질서가 강화된 것이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는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신자유주의와 미국문화가 밀고 들어오면서 탈이데올로기적 경향, 개인주의적 경향이 젊은층에서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사민당이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재와 미래의 믿을 수 있는 정치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불안정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스웨덴의 정치질서를 휘감고 있다.
노조의 조직율과 영향력도 감소하고 있다. 산별노조의 집중교섭구조도 자본의 공세를 받아 약화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정책도 자본의 공격을 받고 흔들리고 있다. 실업이 증가하고 사민당과 관계가 벌어지고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안정적인 노자협력체제가 파괴되었다. 노조는 새로운 대안을 확보하여 과거의 관성을 깨고 변신해야 할 상황에 처해있다.
3. 스웨덴 사민주의
스웨덴 사민주의는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을 실천하여 점진적으로 사회주의에 이르는 공세적 또는 능동적 사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효율성-시장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경제의 틀 내부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하고 강화시켜 사회주의 이념에 근접한 사회체제를 건설하는 점진적이고 진화론적인 사회주의가 스웨덴 사민주의다.
스웨덴 사민당은 양자간에 상호 존재의 인정과 타협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노동의 우위 속에서의 계급관계의 점진적 재편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 사민당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존중하는 가운데 1)노동자계급의 정부가 부르주아 정부에 비해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운용의 능력이 있음을 현실적으로 입증하는 가운데(경제 성장의 지속) 2)시장경제가 수반하는 문제점, 특히 균등한 ‘과실분배’의 문제와 ‘고용(실업)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국가개입 정책으로 이를 완화 내지 극복해 간다는 방침을 마련해 갔다 … 이러한 정책의 성과 위에서 ‘경제민주화(사회주의 경제로의 전진)’를 위한 후속 정책의 마련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1975년에 입안되어 많은 논란 끝에 1984년 도입된 ‘임노동자 기금정책’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임영일, 「산별노조론」)
스웨덴 사민당은 자본주의 발전법칙이나 파국은 없다고 보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혁명적 길과 일찌감치 분명한 선을 그었다. 경제정책이나 주체의 의지, 정치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이 하기 나름이다”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베른슈타인의 관점과 동일하다.
스웨덴 사민당은 1920년 대 말 대공황을 통하여 의회를 통한 집권과 ‘국유화’, ‘생산수단의 사회화’에만 머물러서는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없다고 보고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개발하여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을 제압하려고 하였다. 사민당은 대공황에 대한 해법으로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을 써서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보장하고 공공투자를 늘려서 ‘내수의 확대’를 꾀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정책을 마련하였다. 이후 정치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민당은 50년 동안 독점적인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고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졌고 복지사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사회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임노동자 기금정책이 그것이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인정하되 사회적 제한을 하는 사민당의 정책은 민주적인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독점강화’로 나타났다. 연대임금정책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정책은 지불능력이 약한 중소자본을 도태시키고 지불능력이 풍부한 대기업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비용을 지출하게 하여 초과이윤을 확보하도록 만들었다. 독점은 강화되었다. 이에 대한 문제가 확산되자 임노동자기금정책이 1976년 채택되고 자본가들의 극심한 반발 속에 완화된 안이 1983년 말 부터 시행되다가 1991년 폐지되었다.
남한에서도 조돈문이 민주노총 발전전략에서 이 입장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기금안의 응용인 연금기금안이 주장되기도 한다. 노정신에서 이미 비판한대로 민주노총에서도 ‘사회발전기금’이니 ‘사회공헌기금’이니 하면서 임노동자기금의 조잡한 형태가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기금의 출연을 어떻게 하고 기금의 운영을 어떻게 하든지 상관없이 이 기금안은 계급성과 현실성이 없는 안에 불과하다. 이 안은 시장의 효율성에 일정한 사회적 제한을 가하여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구체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시장의 효율성만을 중시하지 그 효율성이 어떤 효율성인지를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의 사회적 성격, 계급적 성격을 보지 못하는 기능론적인 입장이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의 효율성 또는 생산성은 보다 많은 이윤을 생산하는지 못하는지에 달려있다.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임금삭감, 노동강도 강화-를 전제로 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시장을 정지해 있는 사물 또는 단순한 숫자로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효율적이지 못한 자본만 시장에서 도태시키면 시장은 효율적인 상태를 지속하여 자본주의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너무 발전하여, 자본주의 과잉축적이 원인이 되어 자본들의 경쟁이 격화되고 자본의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오늘의 자본주의 현실의 검증을 견뎌내지 못한다.
스웨덴에서 임금기금안이 경기불황으로 1991년 폐지된 것은 그 단적인 예를 제공한다. 이 구상은 자본주의를 ‘노동자 주식회사’로 만드는 것이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발상으로 노조의 집단적인 주식취득을 통한 경영참가와 경영통제를 하겠다는 생각과 그 기본적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기금안은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으로부터 이윤의 일정한 몫을 얻어내는 것은 현실성이 없고 투자하더라도 불황과 경쟁격화로 투자한 자본자체가 없어 질 위험이 크다.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보라! 연금기금안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노동자를 집단적인 자본가로 만들어서 서로 경쟁시키고 노동자를 집단적인 착취자로 전락시키는 반동적인 입장이다.
스웨덴 사민주의는 능동적, 건설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민주의로 다른 사민주의와 구별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민주의 운동양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자본의 장기불황 앞에서 스웨덴 사민주의는 서유럽 사민주의와 같이 사민주의 운동의 토대- 노자타협, 사민당과 노조의 긴밀한 결합-를 상실하고 자본의 위기타개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스웨덴의 사민주의도 결국 ‘사민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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