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동시간을 둘러싼 두 이야기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요구 8시간 노동제로 표현되어 온 는 200여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의 한 축이었다. 노동시간 연장을 통해 자본가에게 강탈당해 온 육체적·정신적, 그리고 정치적 발전을 온전히 회복하고 노동자의 필요에 의해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자각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요구는 남한에서 또한 일본 식민지하의 사회주의 운동에서, 그리고 전평을 통해 노동조합의 요구로 제출되었다.
매시기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노자 양측은 긴장된 줄다리기 싸움을 벌여왔고 그 현재는 주40시간 노동, 주5일 노동의 쟁취로 표현되었다.
"나는 정상적인 길이의 노동일을 요구한다. 더욱이 나는 당신(자본가)의 동정에 호소함이 없이 그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상거래에서는 인정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나는 표준노동일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상품의 가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맑스, 『자본론』)
그러나 주5일제 노동은 현재 왜곡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발전을 추동해왔던 대사업장에서는 주5일제에 따른 휴일의 확대가 특근 횟수를 증가시켜 임금의 추가확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고임금' '귀족노동자'라는 자본의 악선동에도 불구하고 대공장 노동자가 실제적인 생활임금을 확보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의 결과가 전체 노동자의 전진을 위한 기초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노동자의 고용-노동시간 단축분에 대한 보전을 약속받는 대신, 비정규직이나 이후 신규 입사자에 대해서는 임금 노동시간에 대한 어떠한 보장 없이 더 열악해 지는 것을 방치한 경우가 그렇다.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자간의 이해
노동시간 단축 법정노동일(표준노동일) 제정 을 둘러싼 노자간의 대립은 결국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만, 이를 둘러싼 노자간의 이해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먼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본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함께 노동자계급의 '건강과 육체적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나아가 지적 발전과 사교와 사회적 및 정치적 활동 등의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해' 절박하게 필요한 것이다.
일상적 시기에도 진행되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선 싸움에서 기타 제반 노동조건의 하락없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언제나 투쟁의 주요 요구이며, 주40시간 노동이 아닌 더욱 단축된 노동시간으로도 실질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투쟁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과제이다.
반면 자본가계급이 노동시간 단축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에 동의하는 이유는 자본을 투하하여 구입한 노동력으로부터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기 전에 노동력의 생명이 다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다. 만약 노동시간을 자본의 욕구에 따라 무한정 연장한다면 거기에 따른 노동자의 (과로사, 산업재해, 질병 등에 의한)
수명단축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더 많은 추가비용을 요구하며, 그만큼 이윤이 축소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자신의 장기적인 이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노동일 단축 요구를 일정정도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 육체적 및 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통 등에
관한 불평에 대해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켜 주는데 어째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라던 자본의 태도는 장기적 이윤의 확대앞에 은폐된다. 결국 노동자가 요구하는 "교육·정신적 발달·사회적 기능의 수행·사교·육체적 정신적 생명력의 자유로운 활동 등등을 위한 시간 모두
자본가의 것"이 된다.
자본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이윤축소를 상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는데, 작업속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신기계·신기술을 이용하여 짧은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을 더욱 올리려고 한다. 또한 법·제도로 규정된 노동시간을 적용받지 못하는 대량의 노동자를 활용하는 것, 즉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본의 이데올로기 선전은 자본의 끝없는 이윤확대 욕구를 뒷받침해준다. 주40시간이 아니라 35시간의 노동시간으로도 자신의 부를 챙겨왔던 유럽 자본가들이 노동자계급에게 가한 공격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6월 지멘스 노동자들은 향후 2년간 고용 보장을 대가로 무임금 노동시간 연장에 합의했다. 또한
다임러 크라이슬러 노동자 역시 독일에 있는 한 공장 노동자 6000명의 고용보장을 대가로 무임금 노동시간 연장에 합의했다. 그리고 폭스바겐은 독일 서부지역에 있는 전사업장을 대상으로 추가수당 없는 노동시간 연장을 들이밀었다. GM도 유럽에서 1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려고 하고 있다. "공장이전으로 고용불안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노동시간 연장과 임금삭감으로 고용을 보장받을 것이냐." 그 결과는 이처럼 노동자계급의 양보와 패배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이것은 사실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투쟁의 힘이 사라져버린 노동자들에게는 이것마저도 현실일 뿐이다.
임금 인상없는 노동시간의 연장을 수용하고 고용을 보장받으려는 것으로 표현된 유럽 노동자들의 처지는 남한 노동자의 미래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투쟁의 성과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의 강력한 조직적 힘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자본은 언제든지 다시 노동자계급을 공격해 오며, 법적으로 보장된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또 그간의 투쟁에서 확인해 왔다.
뻔한 얘기 속의 진실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투쟁은 한 쪽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지 않고 뒤를 잇는 새로운 투쟁을 계속해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자본에 맞서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노동자의 투쟁은 한편에서는 이 사회,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팽팽한 긴장의 끈으로 존재한다. 노동자 계급 내부를 갈라놓으려는 것에 맞서 전체 노동자들의 처지가 최소한 동등해질 때까지, 법·제도적으로 보장된 주40시간의 노동만으로도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확보받을 수 있을 때까지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여러분, 흑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흑인 노동자의 이익이 백인 노동자의 이익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흑인 노동자가 살아가는 데 있어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러분의 행동에 의해 조용하지만 강력하고 광범위한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아이잭 마이어즈의 연설 중,『알려지지 않은 미국 노동운동이
야기』)
"흑인 노예의 해방없이 백인 노동자의 해방 또한 없다"고 외쳤던 150여년 전의 미국 노동자 계급처럼 노동시간 단축이 일부 노동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투쟁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현재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어떤 혜택(?)이든 누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해야 할 투쟁이다.
또 한편에서는 노동시간과 임금을 연계지어 하락하는 이윤을 끌어올리려는 자본의 폭력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시간 단축투쟁 그 자체는 노동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필요한 것은 확보된 노동시간을 잔업과 특근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주인'으로써, 자본에 맞서는 정치적 힘을 강화하기 위한 시간으로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다.
피 흘린 투쟁의 결과인 노동시간 단축마저도 자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얽어매려는 이 사회를, 노동시간을 결정, 실행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력으로 화답했던 역사의 경험으로 대체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할 뿐이다. 그 첫걸음은 시작되었다! 그것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전면적인 요구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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