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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간11호]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은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잃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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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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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19:42:54, 조회:2,092, 추천: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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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은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잃었는가?
11월 4일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의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투표인원 대비 89.2% 찬성으로 가결되면서 1단계 투쟁국면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투쟁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단지 결과만을 놓고 조합원의 찬성율이 높았다는 것에 자족해서는 안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활동가들은 이 투쟁이 때로는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원칙에 충실했는지, 단사 노동자만의 이해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전진, 해방을 위해 복무했는지를 냉철히 평가해야 한다. 또한 이번 투쟁을 통해서 전국의 차별받고, 설움 받는 전국의 비정규직 동지들에게 희망을 주고, 투쟁의 전망을 심어주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말로만의 화석화된 원칙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에서 훼손되지 않고, 원칙을 생생하게 구현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과제라고 해서, 현실의 조건에 안주하게 된다면 조합주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투쟁 또한 중요한 순간에 이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투쟁의 성과에서 누락되었던 2, 3차 하청업체와 파견업체인 세우, 성신, 대림 노동자들이 ‘단협 동등 적용’을 내걸고 지회와 함께 천막투쟁에 돌입하면서 새로운 투쟁국면으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투쟁에 돌입한 지금, 지난 시기 투쟁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통해서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고, 성과는 계승,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1. 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의 성과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3년간 현투단의 투쟁경험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지만, 신생노조로서 짧은 기간 동안 현대, 기아 원하청 자본의 폭압적인 탄압에 맞서 투쟁하면서 고령의 조합원들을 투쟁주체로 우뚝 세워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중, 삼중의 착취를 당하는 비정규직 노예의 신분을 떨쳐버린 결과 어려운 조건에서도 소중한 성과들을 쟁취할 수 있었다.
(1)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남한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 최초로 독자적인 대중파업을 성사시켰다.
자본과 정권은 9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는 구조조정 공격을 자행했고, 그 중 ‘노동유연화’라는 명목으로 현장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본격적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윤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해 취했던 자본의 전략은 역으로 그들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낳았다. 자본으로서는 언제까지나 임금노예이기를 바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대오로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년 전부터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조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본의 저항 또한 완강했다. 자본은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현대차, 대우차 공장에서 비정규직노동조합이 결성되었지만, 자본의 공세에 밀려 제대로 된 대중적인 파업투쟁 한 번 전개하지 못했다. 몇몇 간부들이 월차 쓰는 형식의 간부파업이나,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부분파업 등을 전개하였지만, 자본에 별다른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생산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본이 투입한 대체인력 또한 막아내지 못했다. 자본의 이윤에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지 못한 투쟁은 역으로 투쟁의 장기화를 가져오면서, 지도부로 하여금 조직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도 만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조합원의 평균연령이 5,60대에 달할 만큼 주체적인 상황은 어려웠으며, 현대기아 원청과 하청자본의 물대포까지 동원한 물리적 탄압, 용역깡패의 현장난입으로 파업투쟁 때마다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주체적 조건의 어려움을 정면승부로 타개해 나갔다. 정규직 노동조합에서조차 관성화 된 보여주기 식 파업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에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는 노동자의 강력한 무기인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주체적 조건의 어려움이 있지만, 때로는 ‘조직력 보존’이라는 방패를 앞세워 투쟁을 꺼리기도 하는 일부 사업장이 있다. 그러나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은 ‘투쟁을 통한 조직화’라는 원칙을 현실에서 입증시켜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독자적 대중파업을 전개했으며, 비정규직 사업장 중 최초로 부족하긴 하지만 단체협약을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장 동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투쟁할 수 있다’는 말은 역으로 ‘현장 동력이 없으면 투쟁할 수 없다’는 투쟁회피론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동력은 거꾸로 투쟁을 통해서만이 조직되어질 수 있다. 이제 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의 독자적인 투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조직해나가자. 그럴 때만이 철옹성 같이 꿈쩍하지 않는 원청 자본을 끌어내는 한 단계 높은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2) ‘비공인 불법 파업’을 전개하면서 자본이 쳐놓은 ‘합법주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의 완강한 투쟁에 자본은 ‘업체 계약해지’라는 칼날을 빼들었다. 이에 비정규직지회는 10월 25일 기습적인 라인 점거 파업에 돌입하면서 전면파업을 선포했다. 자본이 규정해놓은 ‘합법투쟁’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물론, 이후 라인점거 파업을 푸는 과정이나 이후 투쟁이 급속도로 정리되는 국면에서 비정규직지회는 중요한 오류를 범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한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7, 80년대 자본과 정권에 의해 노동조합이 불법단체로 규정되고 노동조합의 일상활동 조차 불법활동으로 낙인찍히던 때, 노동자들은 과감히 불법투쟁을 감행했다. 자본의 사적소유 침해에 대한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자본가계급만을 위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감한 비공인파업, 불법투쟁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자본과 정권은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민주노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정규직 노동운동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오로지 합법주의 틀에 갇힌 투쟁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된 외주화,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에 관한 투쟁은 ‘불법파업’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 뿐인가? 법제도개선투쟁과 연대투쟁 역시 ‘불법’이며, 직권중재를 어기면 또한 ‘불법투쟁’이 된다. 이렇게 겹겹이 쳐놓은 자본과 정권의 합법 그물망에 갇히는 순간, 노동자 투쟁은 생명력을 잃고 질식되고 만다.
그나마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몇몇 선도투쟁으로 이러한 그물망을 찢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소수의 선도투가 아닌 대중투쟁으로 ‘불법파업’을 전개한 것은 기아차비정규직지회가 처음이다. 이제 이러한 시도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이것은 자본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며, 동시에 노동자투쟁을 합법주의, 조합주의 덫에서 해방시켜, 한 걸음 전진시키는 것이다!
(3) 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은 대공장 정규직 운동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의 투쟁으로 기아차 화성공장은 조용할 새가 없었다. 매일매일 긴장국면이 조성되었고, 정규직 활동가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장 이윤에 심대한 타격을 입자, 자본은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물리적 폭력과 고소고발을 자행했다. 이로써 자본가계급은 정규직을 비정규직의 적으로 만들고, 비정규직의 보호자를 자임했던 기만적인 허울을 벗어버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계급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허울을 벗은 것은 자본가계급만이 아니었다. 정규직에게까지 자본의 탄압이 가해지자, 정규직 노동운동은 급격하게 분화되기 시작했다. 정규직 조합원에게는 언제나 민주투사였던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원칙을 지키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가와 사이비 활동가로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전자의 선진 활동가들은 자본과 어용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했다. 대체인력 투입을 막기 위하여 같이 사수대를 뛰었고, 비정규직 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현장을 순회했다.
일반 정규직 조합원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의 일로만 여기던 비정규직 투쟁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를 비약적으로 변화시킨 계기는 9월 28일 조립 1라인 용역깡패 침탈 사태였다. 전국 각지에서 조달된 용역깡패들에게 현장을 유린당하자 조합원들은 분노했고, 이러한 분노는 즉각적인 본관 진격투쟁으로 이어졌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쇠파이프로 무장한 그 순간에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보이지 않는 벽은 무너졌다. 그 자리에는 오로지 현대, 기아 자본에 분노하는 ‘하나된 노동자’가 있었을 뿐이다. 이렇듯 비정규직 투쟁은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을 단련시킨 것이 아니라, 정규직 활동가와 조합원까지도 단련시켰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관료화된 대공장 정규직 투쟁을 뛰어넘음으로써 죽어있던 대공장 노동운동을 되살려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더욱 활성화될 때, 이러한 기운은 기아차 화성공장의 사례처럼 정규직 운동을 재무장시킬 것이고, 곧 전체 민주노조운동진영을 조합주의, 관료주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다!
2. 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의 한계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투쟁 과정 속에서 많은 오류와 한계 또한 있었다. 투쟁의 오류와 한계를 명확히 짚는 것은 이후 우리 투쟁이 발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더 나은 투쟁을 만들어 가기 위한 초석을 닦자.
(1) 자본의 계약해지를 온전하게 막아내지 못했다.
비정규직 투쟁을 약화시키는 자본의 최고의 무기는 계약해지다. 많은 비정규직 사업장에서도 이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지회 또한 대중파업을 통해 대공장 사내하청노조의 단협을 쟁취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계약해지라는 자본의 탄압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신성과 나머지 업체들의 계약해지 공세에 결정적으로 흔들리면서 투쟁에 소극적으로 동참하거나 노동조합을 대거 탈퇴했다. 구속, 수배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던 지회 간부들도 조합원들의 대거이탈이라는 상황 앞에서는 흔들렸다.
이는 10월 25일 라인점거 파업을 푸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기습적인 라인점거 파업에 정규직 노동조합은 원하청 연대회의 정신을 위배하는 독단적인 행위라며 길길이 날뛰었고, 즉각 파업을 풀 것을 종용했다. 원청 자본과 정규직 노동조합의 협공 속에 지회 조합원들은 점차 대오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에 지회 쟁대위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던진 안(‘파업을 풀고 신성업체의 3개사 분사를 통한 기만적인 고용승계, 단협을 기본단협 수준에서 정리할 것’)에 대해서 ‘공장 내 고용승계’를 마지노선으로 역제안 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기한 라인점거 투쟁을 전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정규직 노조는 지회의 역제안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응당 전차 쟁대위 결정사항에 따라서 무기한 라인점거를 어떻게 사수할 것인지에 대한 전술 논의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쟁대위에서는 표결까지 가면서 라인점거를 풀기로 결정하고 이를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는 투쟁 현장을 사수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지도부가 투쟁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투쟁의지 없음을 천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핵심 간부들은 물론 라인점거를 푸는 데 찬성하지 않았지만, 당시 현장위원까지 포괄하는 쟁대위 성원들의 결의 수준이나 객관적 상태로 봤을 때, 이것을 쟁대위에 부치면 안되는 것이었다. 투쟁을 풀자는 결론이 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왜곡된 민주주의다. 끝까지 투쟁을 결의한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쟁대위 결정사항을 던지는 것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 행위이다.
당시에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투쟁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는 투쟁 지도력이었다.다행히 조합원들은 끝까지 투쟁을 사수할 것을 결의했고, 쟁대위는 이러한 조합원들의 결의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 이후 정규직 조합 간부들과의 간담회를 통해서 조합원들 스스로 일단 파업을 풀기로 결정했다. 만약 당시에 쟁대위 결정사항을 통보하는 식으로 파업이 정리됐다면 끝까지 투쟁의 현장에 남아있던 조합원들에게 지금까지 쌓아온 지도력과 신뢰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투쟁의 핵심 주체들이 노조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지도부는 이탈하는 조합원들의 손을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겠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소수라도 끝까지 투쟁을 결의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그들을 믿고 신뢰하며 함께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투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원청 자본과 정규직 노동조합은 ‘신성업체의 3개 분사와 52명(나중에 60명으로 됨)에 한정된 공장 내 고용승계’를 최종안으로 던졌다. 공장 내 고용승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규직 노조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이미 기아차비정규직 쟁대위에서는 ‘공장 내 고용승계’를 최종안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비록 공장 밖으로 나가는 업체 조합원들의 고용승계, 단협 적용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안은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회 임원들은 이 안을 쟁대위에 부치면서, 사실상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고 정규직 노동조합은 곧바로 라인점거 파업으로 인해 중단시켰던 정규직 임시대의원대회 속개를 결정했다. 그들도 그 안을 쟁대위에 부치기로 한 순간, 투쟁이 정리될 것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결국 쟁대위에서 그 안은 통과됐고, 얼마 뒤 잠정합의안을 통해서 비정규직지회의 핵심업체이자 가장 선봉에 섰던 신성업체 노동자들은 3개사로 나뉘어졌다.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의 이번 투쟁은 지도부의 의지와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라인점거 파업을 전후로 투쟁이 장기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원하청 자본의 탄압과 공세, 정규직 노조의 반노동자적인 협박 공세에 조합원들의 대거탈퇴가 잇따르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습적인 점거파업을 감행한 것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 해도 분명 신성업체 계약해지는 막겠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하청 자본은 모든 인적, 물리적 힘을 동원하여 내부를 뒤흔들고 있었으며, 애초에 전체 조합원이 한 명의 이탈자 없이 투쟁에 동참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중요한 것은 지도부는 언제나 투쟁하는 조합원들의 가장 선봉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시기에 소수의 희생 위에 다수를 지키겠다는 희망사항이 자칫 이러한 중요한 원칙을 훼손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이번 투쟁의 핵심적인 한계이자 오류이다. 비록 늦었지만 비정규직지회는 철저한 평가를 통해 조합원들과 “끝까지 투쟁할 때 노동자는 승리할 수 있다”, “신성의 계약해지 협박 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을 사수했다면, 지금 우리는 모두 공장 안에 있을 것이다”라는 교훈을 함께 나눠야 할 것이다. 단결투쟁, 끝까지 원칙을 사수하고 투쟁하자는 것은 대안 없는 무책임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최선의 구체적인 대안이다!
(2) 파견업체와 2,3차 하청업체 조합원들이 단협 적용에서 배제되었다.
기아차 화성공장에는 화성공장에 납품한 집진기를 유지보수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파견한 세우업체와 2,3차 하청업체인 대림, 성신 업체가 있다. 그런데 이 업체 소속 조합원들은 이번 잠정합의안 적용대상에서는 일단 제외된 채, 별도 협의를 통해서 풀어가기로 결정된 바 있다. 자본은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분할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1, 2, 3차 하청업체로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이해가 다를 수 없듯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몇 차 하청업체 소속이냐에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자이다.
따라서 비록 ‘별도 협의한다’는 합의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이들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이번 투쟁의 크나큰 한계이다. 자본의 비정규직 내 분할구도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별도 협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문제가 고립될 수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한계가 도출된 것은 투쟁 과정에서 2,3차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사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3차 하청 노동자들의 조합 가입률은 1차 하청업체에 비하여 상당히 낮은 수준이고, 끝까지 투쟁에 동참한 노동자의 수도 대단히 적다.
현재 대림, 성신업체는 2차 하청업체로부터 10년 전 단가를 그대로 적용받고 있어서 임금을 이번 합의안대로 적용할 수 없다며 나머지는 그대로 적용하고 ‘임금 및 노동시간’을 수정한 단협안을 제출한 상황이다. 그리고 기아 원청 자본은 세우업체에 대한 계약해지를 통보해놓은 상태다. 이에 이들 3개 업체 소속 조합원들은 ‘단협 동등 적용’을 요구하며 지회와 함께 천막투쟁에 돌입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2,3차 조직화 사업과 이 투쟁을 핵심과제로 가지고 가야 한다. ‘계약해지’ 대응 투쟁과 2, 3차 동일적용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함께 걸려있기 때문이다.
노조로 전환하기 전에 6개월간의 장기투쟁 끝에 업체가 바뀌었지만 업체 이름과 사장만 바뀌고 모든 노동조건의 승계를 쟁취한 보성업체 노동자투쟁의 사례를 상기하자.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타 업체와의 공동투쟁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했기 때문에 보성투쟁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업체만의 고립된 투쟁이 아니라, 이를 전체의 투쟁으로 상승시켜야 한다. 그럴 때만이 신성업체와 같은 뼈아픈 한계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3. 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의 과제
지금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2,3차 단협 동일적용, 세우업체 계약해지 분쇄, 현장 재조직화, 실질적인 단협 적용, 업체별 현안 문제, 활동가층을 발굴, 조직하는 문제 등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2개월간의 투쟁이었지만, 그 격렬함만큼 전체 노동운동진영이 함께 고민해야 할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앞서 지적한 한계와 오류를 극복해나가는 것 외에도 중요한 몇 가지 과제를 정리해보자.
(1) 비정규직 투쟁의 독자성, 자주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우리는 이번 투쟁을 통해서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 투쟁의 주체로 나설 때만이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라인을 세우고 팔뚝을 흔들며 투쟁가를 부르고, 용역깡패와의 물리적 투쟁도 불사하자, 일반 정규직 조합원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 투쟁을 통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견인, 폭로는 때때로 흔들렸다. 정규직 노조는 중요한 시기마다 ‘마의 3대원칙(원하청 연대회의를 통한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을 들먹이면서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제하려 했다. 이미 원하청 연대회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 엄호하기 위한 기구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이 사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수위를 조절하고, 통제범위를 벗어났을 때 3대 원칙을 근거로 투쟁에서 발을 빼기 위한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투쟁의 경우 현실적 힘의 역관계상 투쟁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비정규직 지회가 자주성,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정규직 노동조합을 어떻게 투쟁의 장으로 끌어내느냐이다. 지난 9월 28일 용역깡패 침탈 시, 정규직 조합원들과 함께한 용역깡패 투입 항의 투쟁은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투쟁이 정규직으로까지 확산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노동자 대중들의 자발성과 능동성이 최고조로 발휘될 때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간부들은 더 첨예하게 투쟁을 주도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결국 이 투쟁은 정규직노조의 대의원대회 소집과 총회로 국면 전환이 되면서 거대한 불꽃으로 점화되지 못하고 정규직 노조가 투쟁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비정규직지회는 이 투쟁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서 정규직조합원과의 실질적인 공동투쟁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그럴 때만이 정규직노동조합도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투쟁의 장으로 끌려나올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힘의 우위를 정규직 노동조합이 갖고 있고, 비정규직 조합원들 역시 정규직 노조에 기대려는 심리가 있으므로 비정규직 지회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원칙적인 투쟁을 수행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 투쟁과정에서는 때때로 정규직 노동조합의 관료주의, 조합주의에 대한 전면 폭로와 투쟁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투쟁과정에서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 할 수 없음을 노골적으로 천명하며, 비정규직 투쟁을 탄압했을 때조차도 지나치게 신사적으로 대응했다. 투쟁의 막바지에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이 한 약속(‘공장 내 고용승계를 위해 최대한 노력’)조차 저버리며 노골적으로 투쟁 정리를 종용했을 때, 이에 대한 전면적 폭로작업을 수행했어야 한다. 또한 정규직 노조가 내세우는 마의 3대 원칙의 기만성에 대해서도 정면 대응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대공장 사내하청노조 활동가들은 정규직노조와의 관계에 대해 한 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투쟁은 주체들이 자주성, 독립성을 견지할 때만이 흔들림 없이 전진할 수 있다. 투쟁이 장기화 될수록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다. 때때로 자본의 완강한 저항에 흔들려서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에 의존하다보면 우리의 자주성,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 정규직과의 공동투쟁은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올바른 공동투쟁은 우리 요구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알려내고, 투쟁의 원칙에 훼손 없이 투쟁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알려내고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켜나가는 속에서 공동투쟁을 조직하자!
(2) 기아차비정규직지회 투쟁의 오류와 한계를 뛰어넘는 투쟁을 조직하자!
지금도 많은 비정규직 사업장은 원하청의 탄압과 정규직노조의 무관심 속에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비정규직 사업장은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자본의 탄압에 직면하게 된다. 노동조합을 인정받는 것조차 힘겨운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비정규직 사업장들의 투쟁을 위축되게 만들기도 한다.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최선의 목표가 노동조합 안정화가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것처럼 비록 투쟁 막바지에는 많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투쟁을 밀어나갈 때 오히려 조합원의 수가 배가되면서 탄탄한 조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원하청 자본의 탈퇴 공작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여전히 창립 당시 보다 많은 조합원이 꿋꿋이 노동조합의 깃발아래 서기도 하였다.
이제 ‘조직 안정화 다음에 투쟁’이라는 공식을 과감히 깨뜨리고 ‘투쟁을 통한 조직력 확보’라는 원칙을 현실에서 실천해내자.
“아직은 신생노조니까”, “지금은 주체적 조건이 힘드니까”라는 상황논리를 이제는 벗어던져야 한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의 사례를 거울삼아 이제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노조라는 거점을 통해 대중투쟁을 조직하자!
파업을 하더라도 대체인력이 투입되는 것을 바라만 본다면, 그 파업은 노동자의 녹슨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이나 전임자 수준의 기본협약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제대로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단협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준비해 들어가자. 이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그들의 활동을 보장하게 되는 순간, 자본의 이윤추구 전략이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임단협 투쟁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투쟁이 바탕이 될 때만이 자본과 정권의 비정규개악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 분쇄 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 현 시기 전국 투쟁의 구심은 비정규직 투쟁이다. 모든 비정규직 사업장의 투쟁이 집중되어 전국투쟁전선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정권과 자본에 대한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다.
기아비정규직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기아비정규직지회는 대공장 비정규직 중 최초의 대중파업을 통해 승승장구하면서 투쟁을 일궈왔다. 그러나 비정규직노동자들도 대중투쟁을 할 수 있다는 최대의 장점이 원청의 계약해지 공세 앞에 흔들리면서 조직력이 무너지자 약점으로 바뀌어 버렸다. 기아비정규직지회 투쟁의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오류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비판적 평가와 실천투쟁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만 남한 비정규직 투쟁과 노동자계급운동은 더욱 전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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