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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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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16:11:55, 조회:2,164, 추천: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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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주의와 차별되는 현장 지도력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지난 번(창간22호) 「대공장 노동운동의 과제」에서 진단한 것처럼, 그리고 도시철도 역무활동가의「현장보고-지금 도철은?」에서 생생하게 전해들은 바대로, 지금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는 회의와 패배주의, 나아가 보신주의에 기반한 몰계급적 이기주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투적 활동가들에게 보내지는 조합원들의 싸늘한 시선, 해봤자 손해라는, 그래서 너희들도 마찬가지라는 조소와 무관심이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한편, 현장의 활동가들은 이처럼 얼어붙은 현장 분위기 속에서 활동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기존의 한물간 활동방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이러한 답답한 운동양상을 극복하고자 올해 초부터 우리가 제기한 화두가 바로 ‘지도력’이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우리 자신의 상태를 냉정하게 짚어보고 현장 지도력을 세우기 위한 계획과 실천에 지금 즉시 돌입하자.
조합원들의 무기력한 정서, 그것은 조장된 것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오늘날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들의 보신주의적 정서는 무매개적으로 단지 세대가 변해서, 시간이 흘러서 그냥 그렇게 변해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료들의 투쟁회피와 배신, 직권조인이 조장해온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된 정서이다.
지긋지긋한 어용 한국노총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민주노조를 건설한 경험이 있는 철도노조, 발전노조, 도시철도노조의 조합원들, 그들이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자신감과 희망은 지금 현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개량주의 정치를 가지고, 그래서 처음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돌입한 파업이 허무하게 마무리된 것이 벌써 몇 번째인가. 이제 조합원들은 믿지 않는다. 파업을 때리면 일단 집결하지만 소주잔만 기울이면서 현장복귀 명령이 언제 떨어질지 수군덕거린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복귀명령이 떨어지면 그럴 줄 알았다는 허탈한 표정으로 파업배낭을 챙기고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귀가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강화될 현장통제를 미리 걱정하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민주파라 해도 별 수 없구만’, ‘민주파가 집권하면 되는 건 없고 몸만 피곤해질 뿐이구만’이라고 말이다. 과거 어용과 구별되는 소위 민주파가 주도한 파업은 이처럼 조합원들에게 굴욕적인 현장복귀와 그 후 훨씬 강화된 현장통제라는 무거운 피로감만을 남겨주었을 뿐이다.
현대, 기아차 등 금속의 대공장 상태는 더욱 가관이다. 이들 대공장 노조관료들에게 있어서 이제 파업은 ‘실무’ 그 이상이 아니다. 적당한 선에서 적당한 시기에 파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관료들의 능력으로 되어 버렸다.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집행부가 협조주의적 성향이건 전투파건 간에 상관없이 이러한 파업에 대한 관료적 인식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은 철저하게 대상화되었고 점점 더 수동적인 존재로 길들여져 왔다. 조합원들이 느끼는 어용-협조주의-전투파간의 차별성은 선거공약에서 활자로만 인식될 뿐, 현실적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조합원들은 판단한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그래서 ‘누가 되건 상관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현재의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들의 무기력한 정서와 수동적인 태도는 무능력한 개량주의자들과 조합주의 관료들에 의해서 그렇게 조장되어 왔던 것이다.
활동가들의 상태
오랜 기간의 현장투쟁 경험을 가지고 있는 ‘숙련된’ 활동가들, 그들은 웬만한 현장 쟁점이나 사업이 있으면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결론지어질 지에 대해서 사전에 미리 꿰뚫어 보는 전문가적 기지(?)를 발휘한다. 그러나 그들의 한계는 바로 그와 같은 ‘경험주의’에 있다. 자신이 대중활동을 해 오면서 쌓은 경험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기 때문에 그 경험에서 벗어나는 계획이나 전술제안은 ‘현실 가능성’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미리 재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조합원 대중의 상태나 운동의 전개양상은 항상 과거의 시점에서 박제화 되어 있기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힌 정체된 운동, 흐름에 맞춰가는 운동은 할 수 있을지언정, 발전적 전망을 가지고 계획적인 활동을 하는 데는 하염없이 미숙하다.
한편, 계급정치를 자신의 신념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경험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조합원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 보통 이들은 조합원들에게 전투적인 활동가로만 인식되고 있을 뿐 그 이상의 ‘대안’으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실천투쟁에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있지만 일상적인 시기에 현장에서 자신의 정치를 조직하려는 끈기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결정적인 시기에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항상 소수파로 남아 조합주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활동가들의 이와 같은 활동방식들은 각자 경향성을 달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론은 일맥상통한다. 대중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보려하지 않고 경험주의적 판단과 실천에 갇혀 있는 것이나 계급정치를 현장에 녹여내려는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부재한 것 모두 우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중들을 조합주의 관료들에게 내다 맡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들 역시 조합원 대중으로부터 무능력한 개량주의자들과 함께 도매급으로 싸잡아 취급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가 개량주의자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조합원 대중이 알지 못하는 한, 그래서 조합원 대중의 의식이 현재의 상태에 정체되어 있는 한, 우리는 그저 조합원 대중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현장정치신문’으로부터 시작하자
우리가 대중들로부터 명실 공히 하나의 ‘세력’으로 승인 받고 권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내용을 현장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면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것도 능력이겠지만, 끈기를 가지고 과감하게 현장에서부터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치투쟁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실천을 현장정치신문으로 시작하자. 현장정치신문은 별도의 독립적인 매체로 발행될 수 있고, 각 현장의 조건에 따라서는 기존 대중조직의 매체를 이용하여 그것의 정치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정치 교양과 그들의 정치의식 진전에 적극 매진해야 한다. … 정치적 교양은 … 노동자들의 정치적 억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그들과 고용주들의 이해관계가 상호 대립함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던 것처럼). 이 같은 억압이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를 선동해야 한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박종철출판사 74-75p 참조)
각각의 활동공간에서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사소한 현안문제로부터 외주화, 용역화, 통폐합 등 직접적으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굵직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현장정치신문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자기 공장 울타리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다양한 쟁점에 대한 노동계급적 관점을 제시하고, 각각의 문제들에 대한 국가와 자본가들의 문제로 명쾌하게 설명해 내야 한다.
대부분의 공장 내 현안문제에서조차 경제적인 요구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대부분의 현장 선전물들의 현실이다. 공장 내의 현안 문제를 비롯한 각종 자본가 계급의 냉혹함, 국가권력의 광폭함 등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폭로와 노동자 계급 독재를 선전하는 것이 ‘현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선전, 선동 활동이 공장안에서 진행되는 데에는 선진 활동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역량과 함께 대중적 정서라는 두 가지의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현장 노동자들은 갈수록 조합주의의 포로가 되어 개개인의 실리에 더욱 빠지도록 내몰린다.
경찰의 폭압과 전제주의의 광폭함이 드러나는 모든 현상들, 온갖 사례들이야말로 그 같은 ‘끌어들이기’를 위해 부족함이 없이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지, 결코 경제투쟁과 관련된 현상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 사회민주주의자에게는 그에 못지않게 ‘널리 적용될 수 있는’ 다른 여러 수단들이 있는 것인데, 그 중 하나만을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 선언하여 정치 선동의 폭을 미리 좁혀야할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같은 책 76-77p)
노동자들은 공장 내의 현안 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수많은 뉴스와 신문들을 보면서 각종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 등에 걸쳐 주의 깊게 듣고, 읽는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노동자들의 관심은 단지 공장 내의 문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선진 활동가들이 스스로 조합원들의 관심사와 인식 수준을 제약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선진 활동가들이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이는 여타의 선전, 교육 활동을 통해 자기 계발을 시켜야 할 문제이다.
역량이 있다면 징검다리를 건널 필요 없이, 전면적인 정치폭로가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현장의 경우에 현시점에서 ‘전면적인 정치 폭로’를 독자적인 현장정치신문을 통해서 진행하는 것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능한 기존의 대중 매체들 속에 노동계급의 정치성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개입력과 이데올로기적 선전의 확대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현안문제에 대하여 단지 매체를 이용할 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는 당위적 구호에 머무르는 것은 현장정치신문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우리는 그러한 현안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그렇기 때문에 개량주의적 대안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의식적으로 폭로해내야 한다.
현장정치신문의 발행은 정기성이 매우 중요하다.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정기적인 발행이 담보되어야만 그 신문에 권위가 실릴 수 있다.
신문사업은 조직사업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현장정치신문에 관심을 보이는 조합원이 있다면, 아주 집요하게 계획적으로 조직하자.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일단 우리의 정치에 동의하는 핵심층을 발굴하고 이들이 각각 포진하고 있는 현장을 신문배포 거점으로 만들어서 일상적인 현장 정치토론을 조직해 들어가자.
침체된 조건이라고 해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오히려 침체된 조건이기 때문에 그 상태를 개척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동지들!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하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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