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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간12호]보편의지로 위장한 ‘자본가계급의 의지’ - ‘법’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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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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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25 19:40:48, 조회:2,356, 추천: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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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의지로 위장한 ‘자본가계급의 의지’ - ‘법’ -(1)
심희수-공인노무사, 버스노민추법규국장
<차례>
1.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2. ‘법’, 언제나 지배계급의 ‘국가’와 함께 했다
3. 자본주의 국가와 법
4. 노동입법
5. 노동법 현상 - 노동위원회 제도를 중심으로
6.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본 노동권리입법 투쟁의 의미와 한계
1.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현대미포조선 해고노동자 김석진씨. 그가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는 김씨의 해고무효 확인소송이 대법원에서 무려 35개월째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2002년 울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복직판결을 내려 김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사측 현대미포조선은 5명의 변호사외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까지 선임해 지난 2002년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로부터 무려 35개월이 하염없이 흘렀다.(프레시안, 2005. 1. 10)
2억여 원의 손배가압류와 정리해고 무효소송을 벌이고 있는 태광산업 해고자들이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며 손배가압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1년 11월 태광산업이 경영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850명의 노동자들을 퇴출(정리해고 127명, 희망퇴직 723명)시킨 것과 관련해 파업을 벌였으나 재판부가 사측의 손을 들어줘 4년째 투쟁을 벌이고 있다. … 또한 울산지법은 80여 일 동안 파업을 벌인 … 노조 대의원 등 19명에게 “1천만 원씩 1억9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판결까지 내렸다. 부산고법 역시 부당해고 무효소송에 대한 기각하고 지방법원보다도 무거운 '2억2,4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려 이들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매일노동뉴스, 2005. 10. 26)
지난 2005년 7월 22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은 후 김석진 동지는 기나긴 해고자 생활을 접고 마침내 복직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8년 이상 동안 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고통으로 몰아간 현대미포조선 자본에 대해서는 그에 합당한 엄중한 처벌이 있었다거나 혹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조차 전혀 들리는 바가 없다. 한편 태광산업 조합원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국가로부터 2억2,400만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과 형사처벌까지 두드려 맞았다. 그래서일까? 흔히들 푸념하듯이 이야기 한다. 법은 가진 자에게는 솜방망이요 못 가진 자에게는 쇠망치라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말이다. 요지경처럼 돌아가는 이 복잡한 세상에 대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대중들은 경험만으로도 그 ‘진실’의 일면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던데, 그 평등해야 될 법이 왜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못 가진 자들 앞에서만 고압적인 자세로 그 차가운 권위를 과도하리만큼 냉정하게 집행하는 것일까? 최근 떠들썩해진 거물급 법조브로커 윤씨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법조계에 만연한 비리가 법적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매수와 법조계의 비리는 ‘있는’ 법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는 요소일 뿐, 본질은 법의 존재이유 자체에서 비롯되는 계급적 성격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법은 그 뿌리부터 체계적으로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게끔 만들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자본주의 국가의 부정부패를 정화하거나 사법제도를 개혁한다고 해서 - 그럴 수도 없겠지만 - 계급 간 법적 불평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 ‘법’, 언제나 지배계급의 ‘국가’와 함께 했다
보통, 법은 국가의 기본질서이자 국가 의지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국가와 법은 언제나 생사를 같이 하는 운명공동체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기본질서 - 법 -를 공포하고 이를 집행해온 자들은 항상 그 시대 국가의 지배계급들이었다.
노예 노동의 착취를 기반으로 성립된 고대 국가의 법은 기본적으로 노예가 인간임을 부정하였고 그 생사여탈권을 노예주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농노의 봉건지대를 경제적 기초로 하고 있었던 봉건시대 국가의 법은 농노를 평생 토지에 묶어두면서 봉건영주의 지대수탈을 보장하였고, 영주의 장원에서 도망한 농노에 대해서는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법은 지배계급의 경제적 기초와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강제된 사회질서)로써 정비되었고, 이러한 계급 불평등의 사회제도는 궁극적으로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무장력, 즉 국가권력이 만든 군대, 감옥 등의 억압기구에 의지하면서 그 권위를 지탱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들은 이처럼 그 역사적 한계로 말미암아 ‘신분제에 기초한 법’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노골적인 모습으로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역사적 한계 속에서도 지배계급들은 나름대로의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를 통해 피지배계급 속으로 신분제적 법질서를 정당화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배계급들은 집단적 의지에 기초한 숙명론이나 종교적 교리를 근거로 피지배계급 스스로 자신들의 법질서에 순응하도록 유도했다. 즉, 국가의 기본질서(법)는 무력이라는 왼쪽 어깨와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라는 오른 쪽 어깨 위에 올라앉아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력과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에 기초를 둔 법은 신분제가 폐지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더욱 더 강력하고 세련된 논리로 지배를 강화하고 기능을 확대시켰다.
3. 자본주의 국가와 법
(1) 소유권 - 계급사회의 핵심적 권리
자본주의 이전 사회(노예제, 봉건제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의 법제도에서 공통적이면서 핵심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소유권’이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성문법전인 고대 함무라비 법전은 노예소유주의 소유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면서 노예를 그 소유권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고조선의 8조 금법 역시 “도둑질 한 자는 주인의 노예가 되거나 50만전을 배상한다”고 하면서 소유권의 보장을 명문화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고대 국가에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들(소유권 보장이 필요한 자들)이 과연 누구였겠는가? 바로 경제력의 집중을 배경으로 군림하고 있던 지배계급들이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률을 통해 지배계급 간 또는 피지배계급과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고자 했다. 이미 고대 국가에서부터 비롯된 그와 같은 소유권 사상의 정립배경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기본적으로 공통된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은 더 나아가 소유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격상하여 규정하고 사법관계와 공법관계를 통해서 그것을 체계적이고도 전방위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 국가의 법을 다루기 전에 먼저 이 소유권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 역시 - 비록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 이전 사회와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제에 기반 한 계급사회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인류와 사회는 생산 활동 없이는 단 하루도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이 생산 활동이 조직되는 방식은 전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의 의지에 달려있다(물론 각 시대의 생산력 수준에 따라 역사적, 사회적으로 제한을 받는 의지이다). 고대 사회와 봉건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귀족과 봉건영주는 자신들의 ‘지배’에 부합하는 생산을 조직하고 여기에 맞는 법을 제정하여 사회적으로 강제했다. 이로 인해 직접 생산자들(노예, 농노)은 귀족과 봉건영주가 소유한 생산수단(토지)에 종속되어, 또는 생산수단의 하나가 되어 수탈당해야만 했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는 어떨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접 생산자들(노동자)은 법적으로는 자유인이지만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인격적 지배(신분제) 없이도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자신의 뜻대로 생산을 조직하면서 전반적인 사회관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법은 신분제를 폐지하고 형식적이나마 자유와 평등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 사유재산제 - 는, 각각의 시대마다 그것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제도나 법조항은 달랐지만 그것이 지배계급의 전 사회적 지배권의 기초였고 계급사회의 기본 모순을 이루는 전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2) 자본가계급의 국가권력 획득과 법제도 정비
부르주아 혁명 과정에서 국가권력을 획득한 자본가계급은 봉건적(또는 고대적) 법체계에서 그들의 경제적, 정치적 원리들과 이데올로기적 관점들에 모순 되는 부분들 - 신분제 등 -만 제거하였고 자신들의 지배에 도움이 되는 전통적인 법체계 - 소유권 등 -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체계적으로 더욱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은 새로운 부르주아 법의 주요원리들을 정식화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1조)와 “인간은 자유, 재산, 안전과 억압에 대한 저항권을 포함하여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을 가진다(2조)는 점들이 선언되었다. 소유권은 인간의 권리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선언의 마지막 조항(17조)은 “소유권은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이다”라고 명기했다.
프랑스에서 국가권력을 획득한 부르주아지가 천부인권으로 선언한 자유와 평등은 과거 봉건영주의 신분적, 정치적 지배 하에 있던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전망을 실현하고 농노에 대한 봉건영주의 신분적 구속을 해방시켜 노동력의 원활한 수급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는 그와 같은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 이데올로기를 구체적으로 만인에게 적용하기 위한 법제도로 정비했다. 이것이 바로 근대 시민법이다. 시민법(민법)의 3대 기본원칙은 ①소유권 절대의 원칙 ②계약자유의 원칙 ③과실 책임의 원칙이고 이러한 기본원칙을 뿌리로 하여 파생되는 제반 법리를 민사법과 형사법 영역에서 유기적으로 구성하였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은 자본가들의 생산수단 소유와 부를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법원칙이다. 이를 통해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의 사용, 수익, 처분에 관한 전권을 보유하면서 생산과 노동을 조직하고, 이른바 경영권이라는 자본가들의 불가침적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파업을 하게 되면 곧바로 이 소유권을 침해한 것이 되어 민사상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형사상 업무방해죄를 적용받도록 하였다.
계약자유의 원칙은, 노동자도 자본가도 동등한 인격체이므로 상호간에 자유롭게(?) 계약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다는 형식적 자유를 그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직접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자로서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다. 이렇듯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됨으로써 그 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노동자들의 경제적 종속을 더욱 강화했다.
과실 책임의 원칙은 잘못이 있어야 책임을 진다는 내용인데, 이것이 산업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더라도 자본가에게 직접적인 과실이 없는 한 그 자본가는 별도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낡은 봉건적 질서를 타파하고 국가권력을 획득한 자본가계급은 이처럼 구체제에 반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에 딱 들어맞는 자유와 평등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다시 말하면, 근대 부르주아 국가가 선언한 이 ‘자유’와 ‘평등’은 처음부터 자본가계급을 위한 - 그들이 국가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 자유와 평등이었고, 반대로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자본가계급이 자유롭게 그들을 착취할 수 있게 하는 자유와 평등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뿌리로 제정된 자본주의 국가의 법은 처음부터 본연의 이데올로기적 취지(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게끔 제정되었다. 따라서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이 자본과 노동 간에 실질적으로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 법을 제정한 자본가계급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며 평등한 것이 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이상도 결국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의 의지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한편으로 그것은 실질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의 법도 실상은 자본가계급의 의지, 즉 자본가계급의 경제적 존재조건에 의해 그 본질적 성격과 방향이 규정되는 의지가 법제화된 것에 지나지 않다.
법이 사회내의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조정자라는 고전적인 말은 역사 속에서 하나의 허구임이 입증되었다. 역사 속에 나타난 법은 모두가 지배계급의 지배관철을 위한 압제와 수탈의 강력한 도구였으며 항상 ‘법의 지배’라는 이름으로 근로인민 위에 군림하였다. 법이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에는 계급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권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기에 법을 통한 변혁(개량)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결국 법 자체의 변혁도 궁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법 일반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과거 자본가계급이 국가권력을 획득하면서 자신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법 일반을 제정했던 것처럼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법은 오직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국가를 폐지하고 정치권력을 획득, 노동자계급의 국가를 새롭게 건설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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