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정검>
보건의료노조 투쟁을 통해 본 산별 중앙교섭의 허와 실 :
사회적 합의주의 전략으로서 ‘준비된 투쟁’과 ‘준비된 양보’
보건의료노조의 13일간 중앙투쟁이 6월 22일 잠정합의와 지도부의 현장복귀 지침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노자간의 격렬한 전선은 산별 중앙 차원의 깃발이 내려진 뒤에 단위 지부 현장 차원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중앙 투쟁을 통하여 산별 중앙 교섭의 허와 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번 투쟁이 직권중재의 위협 앞에서 수많은 현안 문제를 남겨 놓고 주저앉아 버린 투쟁으로 긴급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먼저 보건의료 노조 현장 동지들의 외침을 통해 보건의료 투쟁을 평가해 보자!
“오늘도 고대, 서울대, 경북대병원, 광명성애병원 조합원들은 산별요구쟁취, 노조탄압분쇄를 위한 파업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현재 파업투쟁을 하고 있는 지부의 요구는 핵심 요구인 주5일제에 따른 인력충원, 비정규직, 지부요구, 거기에다 사측이 공동전선을 치고 관철시키려하는 무노 무임 철폐 등 총파업 사후대책 등입니다. 그러나 사측은 중앙교섭 잠정합의를 핑계 대며 지부교섭을 회피하는 전술을 공동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교섭지부든 파업지부든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사립대병원은 무노동 무임금 관철 서명까지 했다고 합니다.
잠정합의 이후 포기하는 심정에 빠져있는 동안 사측은 탄압의 고삐를 더욱 죄어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6월 23일 중앙교섭은 잠정합의 되었지만, 실제로 이후 지부교섭, 지부파업으로 전환하여 진행되고 있고 전체 보건의료노조 산별투쟁은 지부투쟁이 끝나야 전체적으로 마무리됩니다.” (조합원, 6.24)
“우리 병원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대우 문제 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산별노조 간부들을 탄핵하고자 합니다. 조합원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조직은 하루빨리 청산시켜야 합니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번 산별 중앙 차원의 투쟁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타결은 산별교섭 시대로 접어드는 분기점이며 노사교섭에서 사회적 교섭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교섭틀을 마련하는 개막전으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다…역사적 승리와 산별투쟁의 전형을 마련”한 투쟁이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현장 조합원들과 지도부의 반응은 대조적이다.
“우리 조합원들과 조무사, 보조원 지부는 13일 전면파업 했는데 무노동 무임금 적용돼서 어쩌죠?”(조합원)
“무노동 무임금은 세계적 추세다… 산별특별기금이나 지부에서 투쟁기금을 마련해 함께 해결…”(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이번 산별교섭(과 투쟁)과정에서 노조 지도부는 실제 요구안에 대한 쟁취는 물론이거니와 파업 마무리 과정에서 이겨내야 할 자본측의 무노동무임금 논리마저도 깨지 못했다. 병원 산별지도부와 민주노총 지도부의 ‘성공한 산별교섭’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현장에서는 문제제기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지도부는 싸울 의지도 없으면서 기대는 많이 했었나 보더라구요. 자아도취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시던데... 시간이 가니까 직권중재도 무섭고 감옥 가기도 싫고 엄청 떨리셨나봐요? 지도부들은 왜 우리 조합원들을 못믿고, 자기들만 살아남으려고 ‘다양한 전술’ 운운하면서 사기 치셨습니까?”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 잠정합의서 요약(2004/6/22)과
현장 조합원들 반응
1. 주5일제 노동시간단축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필요인력을 충원함에 있어 각 병원과 사업장별로 조합과 협의하여 시행,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우선 고려… 근기법에 따라 연월차 휴가 폐지 적용하되 기존 휴가와의 차액분은 비통상수당으로 보전… 생리휴가 무급화
“주5일제는 인력충원 없으면 무용지물에 안하느니만 못한데, 어떻게 하죠?”
“생휴는 현 재직 중인 직원들에게만 적용된다니, 신규간호사 얼굴을 어떻게 보죠?”
2. 비정규직 요구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4대보험 적용, 단계적 정규직화
“이제 각 지부에서 눈물로 호소하며 투쟁했던 비정규직 간호사들은 어떻게 보죠?”
3. 병원의 사회적 노력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재계약 승계 노력
“비정규직 카드(요구안)는 막판 교섭 중 유리한 조건을 위한 희생카드 아니었습니까?”
4. 최저임금제
월평균 정액급여의 40%를 산별 최저임금화
“결국 62만 여원 정도밖에 안되는 것은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5. 병원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
6. 임금인상
- 주5일제 시행하는 사업장에서는, 그에 따른 병원측 비용부담 증가 등을 고려하여 기본급 2% 인상
- 04년 미시행 사업장에서는 기본급 5% 인상
“나만 기본급 2% 받으려고 후배들을 팽개치고 앞으로 들어오는 후배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7. 협약의 효력
…임금과 노동시간단축 및 연월차휴가, 생휴 조항은 지부 단협과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황당한 산별교섭 합의됐다 치자, 그러나 이 조항이 지부교섭의 발목을 잡는다”
○ 관리(‘준비’)되는 파업이 아닌,
역동적 파업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박살내자!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은 중앙집중 투쟁의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위로부터 관리되는 투쟁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보건의료노조 중앙 지도부는 13일 간의 ‘새로운’ 총파업을 전개하면서 근무 없는 조합원 중심으로 집회 참가를 조직하고 파상파업을 통하여 파업의 파고를 약화시키고 부작용 줄이기에 급급했다. 파업 전술에 있어서는 직권중재를 최대한 피해가기 위해 축제 분위기의 평화적 파업전술만을 구사했다.
이번 파업은 조합원들의 총회를 통해서 결정됐지만 파업 마무리는 산별노조 지도부가 현장 복귀 후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죽고 위로부터의 관료주의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번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의 성과를 과장하면서 노사정 사회적 합의의 틀을 만들어 내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앞으로 예정된 투쟁들도 질식시키려 하고 있다.
“산별교섭의 원년을 열어가는 역사적 투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지도부와 조합원이 하나가 되어 산별투쟁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어 내었다”
“온전한 주5일제와 산별적 요구들은 여전히 과제… 서비스연맹과 화섬연맹, 금속연맹과 금속노조, 전교조와 공공연맹 등 연이은 투쟁 속에서 발전시켜 나가자”(민주노총 성명서, 2004.6.22)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 투쟁에서 보여준 평화주의적 교섭과 관료주의적 파업전술, 그것의 필연적인 결과로 만들어진 기만적인 합의 내용은 앞으로 이후 공공, 금속, 서비스연맹 등 전국적인 노동자 투쟁 현안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궤도 연대의 한 간부는 이를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공공, 궤도 노동자 투쟁의 예고전이다”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이미 중앙교섭과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나타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이를 전국적 활동가들의 결집으로 분쇄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번 보건의료노조 노동자들의 투쟁은 산별교섭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시험대이자 거울이었다. 따라서 본격적인 투쟁을 앞두고 있는 금속, 서비스, 화섬, 금융, 궤도 노동자들은 이 투쟁의 오류와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하여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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