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사관계 로드맵’은 이미 시작되었다!!
결국 이렇게 마지막 밤을 보낸다.
하지만 잃은 것이 얻은 것이 된다.
상처가 새로운 결의가 되고 아픔이 다시 원동력이 된다.
아흔 아홉 번의 패배를 겪으며 살아남으라.
단, 그저 살아남지만은 말라.
아흔 아홉 번의 패배가 주는 패배감과 배신감과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심장에 새겨라.
절대 잊지 말라.
오늘 밤 역시, 이 밤과 촛불과 지랄 같은 서울의 야경과 동지의 아픔과
나의 분노를 심장에 아로새긴다.
- 12. 1 타워의 마지막 밤 - (김주익 동지 글 中)
“아픔과 분노를 심장에 아로새기며” 비정규직 동지들이 개량주의, 관료주의 지도부에 의해 타워크레인에서 사실상 끌려 내려왔다. 민주노총 지도부와 노무현 정부의 은밀한 거래(총파업 폐기 - 비정규 개악 입법안 처리 유보)로 네 명의 동지 중 두 명이 적들에 의해 구속되었고, 전국전선은 위로부터 강제로 해체되었다.
하반기 정세에 또 하나의 핵심 축이었던 철도노조 총파업도 무산되었다.
자본의 나팔수인 언론집단들은 또다시 ‘노동운동 말살’을 위한 이데올로기 융단폭격 - '귀족노조' 파업에 시민들 외면(12.3 중앙일보), 강성노조 설 땅 잃었다…시대변화 못 따라(12.4 매경) - 을 퍼부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사측이 임금 인상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동결을 선언한 팬텍 사례를 ‘아름다운 노사관계’로써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노무현은 영국 주요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전투적 노조’가 ‘고립을 자초’하고 있고 그 결과 이제는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이는 적어도 일부는 진실을 담고 있다. 다만 노동운동 내에서는 ‘통제’와 ‘관리’가 ‘사회적 대화’, ‘사회적 교섭’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이 기만적으로 현재의 투쟁대오를 분열시키고 총파업 흐름을 끊어내기 위해 그 처리시기를 늦춘 것을 가지고 민주노총 지도부가 대대적인 성과인 양 선전하고 있 던 바로 그 때,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 ‘기업도시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적들은 매 순간순간 의 작은 틈도 놓치지 않고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고 있다. 무엇이 승리이고 성과란 말인가?
승리감에 도취된 자본은 이제 자신들이 지난 11월 정부에 건의한 ‘노동조합 투표 등과 관련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까지 호시탐탐 관철시키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 지난 11월 24일 발표된 이 개악안은 그것이 통과될 때에 노동운동 전체에 미치는 엄청난 파장에 비해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각 현장에 그 내용을 공유, 선전하여 철저한 대응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1. 경총이 제기한 소위 ‘문제점과 개선 방안’
경총은 노동조합 투표의 문제점으로 5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조합 투표가 당해 노조에 의해 모두 관리․운영되므로 공정성 확보가 어렵다는 점 둘째, 현행법상 일사부재의원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 가결될 때까지 표결을 실시할 수 있는 반복의 문제가 있다는 점 셋째, 찬반투표 시기에 있어서 노조는 단체교섭 개시 전 또는 과정 중에 파업찬반 투표를 실시하고 파업가결을 해놓은 이후에 이를 무기로 사측을 압박하는 등 악의적인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찬반투표 기간에 제한이 없는 관계로 찬성이 과반수를 넘을 때까지 투표기간을 연장한다는 점 넷째, 의결정족수 문제로 과반수 찬성에 의한 결의는 신중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법상의 문제로 ‘한 장소에 집결하여 집단적인 최면상태에서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등 외부적인 요인이 득표수 및 찬성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체사례를 들면서 장황하게 문제점을 제기하고 난 이후에 ‘개선 방안’을 제출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관이다. 그 대략의 내용은 ▲ 조합원들의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 반영을 위해 절차 및 결과를 반드시 공개하도록 법규정화할 것 ▲ 쟁의행위 투표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최후수단성의 원칙을 명문화할 것 ▲ 투표용지를 법정화하고 우편투표제를 시행할 것 ▲ 투․개표시 제3자 참관인제를 도입할 것 ▲ 투표기간의 단축 및 재투표를 제한할 것 ▲ 파업 찬반투표 실시 7일전까지 사용자에게 찬반투표 일시 및 참가자 수 등을 통보하고 파업참가 예정자의 성명, 일시 등을 서면으로 통보하도록 법정화할 것 ▲ 조합원들의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의결정족수를 조합원 2/3 찬성으로 할 것 등이다.
이러한 ‘개선방안’은 독일, 영국, 프랑스, 스와질랜드 등에서 철저하게 자본의 입장으로 악용되고 있는 몇몇 사례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물론 시기적으로 봤을 때, 일차적으로는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04년 전반에 걸친 노-자 계급투쟁에서 승리한 자본가계급은 이 기회에 노동자계급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시키려 하고 있다.
2. 또 하나의 개악안이 노동자의 목줄을 죄어오고 있다!
자본가계급은 비정규 개악입법에도 그러했듯이 총체적 노동탄압 프로그램인 ‘노사관계로드맵’ 역시 노-자간 힘의 역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시기를 조정하여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제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마치 권투 시합에서 툭툭 잽을 날리다가 결정적 시기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며 회심의 일격을 가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지금 경총에서 제출한 내용대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개악된다면, 설사 이후에 노동자투쟁에 의해서 ‘노사관계로드맵’이 원안 그대로 관철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현장이 충분히 자본의 뜻대로 무력화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자본이 75% 찬성 시 쟁의행위가 가능한 사례로 들고 있는 독일의 경우가 그러하다.
한 때 막강한 조직력을 과시했던 독일 금속노조가 무너지고 있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IG메탈)는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 지난 2002년 전국 80개 사업장에서 10만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파업을 벌였으나 이미 관료화된 지도부에 의해서 13일 만에 그 투쟁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는 쟁의행위 개시요건을 75% 찬성으로 명시한 금속노조 자체 규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1930년 이후 70년만의 첫 파업이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모든 투쟁에 있어서 ‘파업투쟁’이 실제로 현실 불가능한, 또는 가능한 자제해야할 투쟁전술로 인식되어 있는 상황에서 급조된 파업투쟁이 그 위력을 발휘할 리가 없다.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무기인 ‘파업권’을 스스로 제약한 결과는 참담했다. 슈뢰더 총리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노동․사회분야 개혁안’(‘아젠다 2010’)이 실제로는 실업수당 삭감, ‘해고방지법’ 적용을 현행 5인 이하에서 10인 이하로 대폭 확대(10인 이하 사업장은 전체 독일 기업의 80%에 해당하는 것으로 실제로 전체 노동자에 대한 자유로운 정리해고를 보장하는 규정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계획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금속노조는 이에 대항하는 변변한 파업조차 조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독일 금속노조는 그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자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이는 비단 외국의 상황만은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98년부터 사측이 노골적으로 투표행위를 저지해왔다. 자본의 입장에서‘공정성’은 투표장소를 관리자들이 장악하여 카메라를 들고 찍어대는 등의 ‘위협과 협박’으로 둔갑했다. 자본의 입장에서 ‘투명성’은 사측과 어용이 투표지에 미리 표시할 위치를 지정해주거나 현장 노동자로 하여금 본인이 투표한 것을 카메라폰으로 찍게 하는, ‘강요된 투명성’으로 실현되고 있다. ‘집단적인 최면상태’는 개별면담을 통해서 본인의 의지대로 투표할 경우 가해질 각종 불이익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제거’되고 있다. 군사 정권 시절의 체육관 선거와 다를 바가 없다. 그 결과 12월 2일 마무리 된 대의원 선거에서는 전체 195명 중에서 2-3명의 극소수 민주파가 당선되었다. 이쯤 되면 그나마 당선된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세계 조선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은 최대의 이익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다. 이미 임원 160여 명 중 20%인 30여 명을 감원했고 10여 명을 추가로 감원할 예정이며, 최근엔 초급 간부들에게도 명예퇴직을 권고한 상태이다. 문제는 이러한 임원진의 감원이 현장에 불어 닥칠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포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략 간부급들한테는 다른 전직자리를 미리 봐준 채 짜고 치면서 현장에는 ‘고통분담’ 어쩌구 할 것이 뻔하다. 현장도 이러한 구조조정의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있으나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다.
3. ‘노동조합 투표 등과 관련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 분쇄! 파업권 사수!를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자본과 정권이 노리는 바가 이것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현장을 무력화하라!
‘노동조합 투표 등과 관련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자본과 정권의 최종 목표는 ‘노사관계로드맵’의 관철이며, 그것을 위해 ‘로드맵’ 중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을 자본의 입장대로 더욱 강화한 형태로 제출한 것이다.
2003년 9월 4일자 ‘노사관계로드맵’의 중간보고서 中 1. 집단적 노사관계법 부문을 보면 ‘1-3.쟁의행위 중 ꊱ 쟁의행위 찬반투표의 공정성․투명성 제고 ☞파업 찬반투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를 마련 ▲투표시기․투표의 유효기간 설정 ▲투표결과의 공개․보존 및 열람 및 노동위원회의 행정지원 ▲ 투표결과의 사용자 및 노동위원회 통지 등 ☞의결 정족수는 현행(재적 과반수 찬성) 유지 ※ 우편투표제는 도입하지 아니함 … ꊵ 쟁의행위 보호와 규제의 합리화 쟁의행위의 최후 수단 원칙을 명시’의 내용이 있다.
자, 이제 보다 명확해지지 않는가? ‘노사관계로드맵’보다 더욱더 자본의 입맛대로 정리한 ‘노동조합 투표 등과 관련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통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노동자계급의 파업권을 봉쇄하는 것, 그것을 통해 서서히 현장을 무력화시키는 것, 그리고 결정적 시기에 총체적인 노동탄압 프로그램인 ‘노사관계로드맵’을 관철시키는 것! 설사 그것이 원안의 형태로 관철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파업권이 무력화된 마당에 노동운동 자체를 말살시키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이것이 자본의 목표다!!
지금 자본은 노동자계급의 반발을 우려해서 마치 대단한 선심을 쓰듯이 ‘노사관계로드맵’에서는 도입하지 않겠다던 ‘우편투표제’까지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의결정족수까지도 ‘노사관계로드맵’보다 더욱 개악된 형태로 제출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대응이 시급하다. 비정규개악입법이 단지 ‘유보’된 것에 한숨 돌리고 있을 때에 자본에게 무한한 착취의 자유를 안겨준 ‘기업도시특별법’이 기습 통과된 것처럼 자본은 임시국회 때 또다시 ‘노동조합 투표 등과 관련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의 기습통과를 시도할 것이다.
이것이 통과된다면 정세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비정규 개악 관련한 총파업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하반기 파업의 저조한 찬성율은 지도부들이 총파업 자체를 조직할 의지가 없었던 것에 그 핵심적인 원인이 있지만, 아직까지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의 사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현장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장의 정서를 바꿔내는 데에는 주체들의 투쟁과 선진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선결되지 않는 속에서 75% 의결정족수의 개악은 끊임없이 불법파업 시비를 가져올 것이고 이는 개량주의 지도부들에게 또다시 투쟁을 회피하는 면피용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현장의 투쟁을 조직하여 자본의 모든 공격에 적극 대응해야한다.
‘노동조합 투표 등과 관련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을 통한 자본의 의도를 알려내고, 현장 강화를 위한 모든 실천을 조직하자.
하반기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당장 한 달 후 임시국회 때 총자본과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격돌이 예정되어 있다. ‘노사관계로드맵’은 매 시기마다 명칭만 바뀐 채 호시탐탐 전체 노동자계급의 목줄을 죄어오고 있다. 이제 우리가 매 시기마다 자본의 목줄을 죄는 투쟁을 조직하자! 적들의 ‘파업권 봉쇄’ 공격에 ‘파업투쟁’으로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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