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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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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2 16:44:51, 조회:3,642, 추천: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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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강화에 조합주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전망의 부재와 증오의 정치
가장 정치적 토론을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으로 이사를 간 할아버지들일 것이다. 거의 매일 공원에 출근해서 해가 저물어야지 돌아가는 공원에 취직한 사람들이다. 보수는 무보수이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들이 공원에 나오는 것은 그들을 반겨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고립감, 소외감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종로 3가 행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들은 이곳에서 소주를 한 잔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거칠고 큰 목소리로 정치토론을 한다. 대화라고 보기 어려운,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거나 경청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말하는 독백에 가까운 대화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면서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대부분의 대화는 보수적인 아니 반동적인 내용들이다.
종묘공원의 토론문화와 분위기는 종묘공원에만 있었다. 그저 할 일 없는 할아버지들의 소일거리였다. 피식 한 번 웃고 지나가거나 주변에 널려있는 쓰레기와 소음에 얼굴을 한 번 찌푸리고 지나가면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종묘공원은 종묘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이곳 저곳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마침내 종묘공원은 우리사회의 자화상이 되어가고 있다.
베트남전참가군인, 해병전우회, 퇴역장교들과 군인들이 그들만의 사회활동을 하더니 반동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종교집단은 종교집단 내부에서만 내던 정치적 목소리, 일부 반공선교집단이 내던 공개적인 목소리를 사학법 개정을 토대로 공개적이고 전국적으로 질러대기 시작했다.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소리,“미친 것들!” 이라고 생각되던 목소리는 문학과 영화, 신문과 방송, 사무실과 현장, 가정에까지 파고 들어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이상한 소리’가 아니다! ‘당연하고 정상적’인 목소리다. 아니 날로 무섭게 세력을 넓혀가는 주류의 목소리다. 낯설고 이상한 소리나 모습도 자꾸 듣고 보고 거기에 일정한 논리의 옷을 입히고 채색을 하면 특히, 그것이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에 의해 ‘현실의 힘’으로 작용하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소리와 모습이 된다. 강력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87년 6월 부르주아 민주화 투쟁과 7,8,9월 노동자 대파업을 통해 ‘군사독재의 종식’과 함께 안녕을 전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보수반동이 되살아나고 있다. 아주 힘차고 자신 있게 기지개를 펴고 사회의 구석구석을 종횡무진 활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보수반동의 흐름은 단순하게 과거의 보수반동의 재연이 아니다. 새로운 흐름이다! (여기에서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권의 차이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둘은 노동자에 대한 공격에서 살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같다. 노무현 정권과 한나라당은 차이는 어떤 보궐선거 후에 중앙일보가 조사하고 평가한대로 대북정책과 인권의 문제이다. 나머지 정책 특히, 경제정책은 똑같다. 한나라당과 반동적 시민단체는 노무현 정권이 사회전체에 그리고 일관되게 반동적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을 과대포장해서 좌파정권, 친북정권이라고 비판할 뿐이다.)
‘강력한 힘에 의한 질서’를 외친다는 측면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보수반동은 동일하다. 국가주의와 반공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면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과거는 국가의 힘에 의해 사회의 위에서, 사회의 외부에서 사회에 강제되고 강요된 성격이 강했다면 현재는 부르주아 사회 내부에서 자라나고 확대되고 있는 성격이 강하다. 노인, 퇴역군인, 소부르주아, 실업자 등 사회에서 소외되고 파멸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국가에 의한 사회총동원, 경제발전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부르주아지의 경쟁력을 사회발전과 재편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노조는 사회의, 공공의 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는 사회를 주도하고 재편해 나갈 수 있을 만큼, 국가로부터 일정한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가의 정책과 진행방향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의 힘이 커졌다는 것, 소부르주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조직할 수 있을 정도로, 소부르주아들이 자발적으로 부르주아를 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본이 힘이 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현재의 보수반동의 사회적 정서가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보수반동적 사회심리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부르주아지의 질서에 저항하고 있는 노동자, 부르주아지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노동자에 대한 고려 없이 부르주아지의 힘의 작용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반동의 공세를 취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의 일반적 취향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그 존재이유로 하기 때문에 자본은 ‘본질적’으로 반동적이다. 그러나 그 자본의 본질적 반동이 어떻게 표현되는가는 자본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계급의 힘 관계에 따라서 결정된다.
자본은 자본의 위기를 사회의 위기로, 자본의 위기의식을 사회전체의 위기의식으로 전화시키고 있다. 자본은 국가와 직간접적인 형태로 소통하고 결합하면서 자본을 사회의 대표자로, 부르주아지를 사회의 지도자로, 애국의 전위로 부각시키고 있다. 자본과 국가는 외친다. “자본이 살아야 사회가 산다! 모든 사회세력이여, 자본을 중심으로 단결하라! 그것이 너희들의 살 길이다!” “노조여 어찌하여 자본이 위기에 빠지고 그래서 사회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는 이 때, 너희 밥그릇만 생각하고 자본을 괴롭혀서 자본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사회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가! 노조여 회개하라!”
이런 자본과 국가의 선동이 먹혀들고 있다. 고립되고 소외된,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와 실업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영세 노동자의 상당수 나아가서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상당수도 이런 자본과 국가의 선동에 동조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이 주인이기 때문인가? 그렇다. 자본이 위기구조에 빠져있기 때문인가? 그렇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아니 너무 일반적이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늘 자본은 주인이다. 그러나 자본이 위기에 빠졌다고 자본 맘대로 그 위기를 노조에게 전가하고 자본은 피해자로 선동하는 것이 성공할 수는 없다. 계급의 정치는 계급적 역학관계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를 유일한 사회체제로, 자본주의에서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노동계급운동은 체제의 전망을 잃자 자신감과 전투적 기상이 약화되고 현존하는 체제에 굴종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자본은 자신감을 가지고 자본의 위기를 사회전체의 위기로 드러내 놓고 홍보하고 노동자를 사회위기의 주범으로 공격하고 자본위기의 세계화, 자본주의 체제 재편을 꾀 하였다. 역학관계의 변화는 계급 주체들의 분위기와 기세를 바꾸고 그래서 행동을 바꾼다.
남한자본주의 사회는 87년 6월 부르주아 민주화 투쟁과 7,8,9월 노동자 대파업으로 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해방의 사회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6월 투쟁이 위로부터의, 6, 29선언으로 마무리 되면서 반동적인 정치문화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반동적인 정치문화와 타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보수반동적 세력이 새로운 조건에서 새롭게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는 역사적 토양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전투적 기상을 자랑하며 줄기차게 뻗어나가던 노동자 투쟁의 기상과 노동해방을 지향하는 조직의 힘찬 결집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를 통하여 날개가 꺾이고 추락하고 말았다. 노조는 주로 노동현안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고 노동해방을 추구하던 조직들은 해방의 꿈을 접고 흩어져서 대부분 부르주아의 품에 안겼다. 노동자와 노동해방 사상, 조직의 힘찬 결속력은 썩은 동아줄처럼 무참하게 끊어졌다. 조합주의의 기본구조가 형성되었다.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준동과 자본과 자본가 정권의 공격에 허둥지둥하고 밀리던 노동자는 96-97년 노개투 총파업 때 기존의 혼란과 동요와 후퇴를 마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지만 개량주의, 관료주의 노조집행부의 배신과 자본가 국가에 대한 투항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것은 바로 밀어닥친 97년 IMF와 자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반동적 노동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파업의 주도권은 금속노동자에서 공공부문 대공장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공공 노동자들의 투쟁은 개량주의, 관료주의자들의 파업파괴와 민주노총 집행부의 파업파괴 배후조종(물밑 접촉의 정치)에 의해 패배했다. 현장과 노조 지도부의 사이는 구조적인 거리가 만들어졌다. 현장에는 불신과 허탈감, 좌절의 심리가 만들어졌다.
현장조직운동은 87년 노동체제와 그 현실적 표현체인 전노협 정신의 의식적 계승자가 되어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타파하고 현장의 전투적 기풍을 살리고 현장권력을 쟁취하려고 했다. 노조운동의 계급적 재편과 현장권력 쟁취 요구는 건강한 계급적 본능의 표현이었다. 현장조직운동의 실천으로 보면 현장조직운동은 ‘전투적 조합주의’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조직운동을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운동을 결과적이고 정태적으로 보는 것이다. 현장조직운동은 노동해방에 대한 건강한 열망과 지향성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 건강한 열망과 지향은 구체적인 정치적, 조직적 운동으로 구체화 되지 못하고 조합주의 조직으로 전락했다. 노동해방에 대한 지향과 열망을 조직적으로 담아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노조운동을 계급적으로 재편할 수 있겠는가? 운동에 대한 역사적 선도와 지도력을 잃어버리자 현장조직은 노조운동을 재편하고 선도할 수 있는 내용을 상실하게 되었고 노조운동의 부속물로 전락해 나가게 되었다.
현장조직운동의 화려한 계급적 비상과 허망한 추락은 정치조직에 대한 불신과 자신들의 힘에 대한 과신의 결과이다. 정치조직에 대한 불신은 세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첫째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 노동해방의 운동을 청산하고 떠난 정치조직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이다. 둘째는 현장 중심성을 거부하고 의회주의를 추구하는 현실의 개량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반발감과 불신이다. 셋째는 노동해방을 추구하는 소그룹에 대한 불신 즉, 소그룹의 무능력에 대한 냉소적 태도다.
이런 불신은 현장에 대한 집착과 자신들의 직접적인 행동과 그때그때의 효과에 대한 과장된 만족과 자신감으로 작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의 존재조건에서 솟구치는 투쟁과 그 투쟁이 지향하는 해방의 목표와 방향이 끊임없이 긴장하고 상호작용하고 결합하지 못하면 노동자의 투쟁은 자본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노동자의 투쟁이 상승하고 투쟁이 성공하면 자신감이 커지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커지고 노동자의 계급적 결속력이 강화되겠지만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고 노동자의 투쟁이 패배하면 반대의 효과가 노동자를 지배하게 된다. 노동자 투쟁의 성공과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노동자 계급의 혼으로 만들어야 노동자는 현실의 투쟁을 통하여 노동해방을 성취해 나갈 수 있다.
자본과 자본가 국가는 노동자에 대한 총체적 공격을 줄기차게 감행했다. 물리적, 법적, 이데올로기적, 경제주의적 탄압을 파상적으로 자행했다. 이 중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이데올로기적 공격은 노조운동에 강력한 새로운 충격을 주었다. 손해배상 청구는 돈에 더욱 민감해지게 만들어서 조합주의를 더욱 부추겼고 이데올로기 공세는 노조를 고립시키고 다른 계급과 세력에 포위시켰다. 대공장 노조를 귀족노조, 이기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국가와 자본과 자본가 언론의 무차별적 공세는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와 정규직 노조의 비정규직 노동자 외면과 이용, 노동자 연대의 실종, 소부르주아지의 파산, 불안과 맞물려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대공장 노조는 경제 위기, 사회적 위기, 사회적 재앙의 화신으로 낙인 찍혔다. 자본은 그러한 위기를 선두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세력으로 미화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 농민, 다른 소부르주아 세력은 경제적, 사회적 위기로 고통 받는 세력으로, 대공장 노조는 경제적 위기, 사회적 위기의 주범이자 고립되고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세력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기주의 세력으로 왜곡됐다. 어떤 구체적인 현실적, 논리적 근거가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사회전체에 파고들어가서 사회적 심리를 형성했다. 대공장 노조는 ‘죽일 것들’이 되었고 모든 사회적 악의 화신으로 질투와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대공장 노조운동에 대한 광기에 찬 증오와 공격이 사회전체적으로 수용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먼저 대공장 노조가 사적 세력으로 행동한 것 때문이다. 자본이 위기에 빠지고 피억압 계급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대공장 노조는 조합주의적 이익에만 갇혀 타협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사회를 기본적으로 구성하는 생산의 주체로, 보편적인 사회계급으로 행동할 때 노동자는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 해방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노동자의 이익이 노동자만의 이익이 아니라 피억압 계급의 이익이자 사회전체의 이익이 될 때, 또 노동자가 그런 노동자의 이익을 힘있게 밀고 나갈 때, 소부르주아는 노동자를 지지하고 노동자의 행동에 동참한다.
대공장 노조의 ‘조합주의라는 진실10%’ +‘부르주아의 조작90%’(비유적으로 말하자면)를 섞은 부르주아의 대공장 노조에 대한 공격은 ‘부르주아의 진실90%’ +‘조작이나 과장 10%’로 사회로 스며들고 있다. 여기에는 광범위한 이데올로기 공세 효과 이외에 결정적으로 계급적 역학관계가 작용하고 있다.
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고 노동자가 조합주의에 빠지자 소부르주아와 실업자와 노동자의 상당수는 자본의 힘, 주도권을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고 즉, 자본의 주도권을 기정사실화 한 상태에서 자본의 지도력을 따라서 자신들의 고립감과 고통, 불안정성, 답답함을 쏟을 공격대상을 찾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욕구불만과 증오심을 미친 듯이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 절실했다. 그 일차적인 대상이 대공장 노조가 된 것이다.
대공장 노조에 대한 공격은 노조전체에 대한 공격이자 노동자 전체에 대한 공격이다. 대공장 노조를 제물로 삼아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이미지 즉, 이기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이고, 반동적인 세력, 사회의 고통의 주범이라는 이미지를 사회에 유포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를 포위하고 고립시켜 노동자를 무장해제 시키고 자본의 착취 고속도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현재 자본과 자본가 국가는 노동조합의 해산과 어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본과 자본가 국가는 노조 상층부의 개량주의, 관료주의화, 현장과 노조 집행부의 괴리와 현장공동화를 이용하여 파업을 불법화시키고 개별적 노사관계를 강화하고 성과급제를 통해 노동자의 분열을 심화시켜 단체협약을 개악하여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 개악, 노사관계 로드맵, 재난 안전 기본법을 보라. 화섬 대공장 노조의 잇따른 무력화와 공공 대공장의 잇따른 어용의 행진을 보라. 또 민주노조 집행부와 어용노조의 말과 선언의 차이를 넘어선 구체적 행동과 임단협 결과의 도토리 키재기를 보라. 자본은 현장 밖뿐만 아니라 현장 안에서도 노동자에 대한 주도권을 확고하게 틀어쥐었다. 조합원은 노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눈치를 본다. 조합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의 반동적 공세만 강화시킨다. 조합주의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
산별전환과 비정규직 노조의 조합주의화의 위험성
대공장 노조는 전체적으로 조합주의화 되었다. 직접적인 자기이익이 유일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계급적 연대는 추억의 노랫가락이나 립싱크가 되었다. 조합주의는 노조를 계급해방 의 수단이 아니라 사적인 이익 추구집단 즉, 경제주의적인 속물로 타락시킨다. 노조는 조합원 개인의 이익추구집단, 조합원의 개별적 이익의 산술적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조합 사이의 연대도 직접적인 조합원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만 한다. 연대도 개별적 이해관계의 직접적 연장에 불과하다. 자본이 현장을 장악하고 집단적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개별적 노사관계를 장악한 상태에서 조합주의는 자기가 속한 부분의 물량확보를 위한 경쟁, 인원충원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노조가 무엇을 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자본의 관리체계를 통해서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한다. 조합주의는 현장에 계급적 단결을 해체시키고 개인주의를 만연시키고 있다.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 사이의 관계가 이런데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아닌가?
이런 현장의 상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 비법 아닌 비법으로 등장한 것이 ‘산별노조로의 조직형식 전환’이다. 기업별 노조는 기업별 의식을, 산별노조는 산별의식을 형성시킬 것이라는 조직형식에 대한 신앙으로 조합원 의식의 획기적 전환이라는 조직형식의 은총을 기대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투표권을 주면 숫자가 가장 많은 노동자가 권력을 잡아서 자본가에게는 사회적 재앙이 내릴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던 참정권 논란기의 부르주아처럼, 노동자는 저절로 계급의식을 형성할 것이라는 경제주의자와 같은 소박한(?) 바람을 산별주의자들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존재가 의식을 바로 규정한다는 기계론적 유물론이 얼마나 허황된 생각인지를 너무나 잘 알면서 산별노조로의 조직형식전환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소박한 바람이 아니라 절망적 선택이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계급투쟁의 경험이 부족했던 시기의 존재와 의식의 직접적 동일성 주장은 소박한 계급적 의지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조활동에 닳고 닳은 산별주의자들의 주장은 악취가 진동하고 징그럽기 짝이 없다. 우리는 산별주의자들의 악취의 진원지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한 대중적 산별노조 건설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관료적인 산별노조 건설의 추구에서 찾을 수 있다. ‘위로부터의 관료적 통제 강화’가 그것이다. 현장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노조의 문제를 풀려고 한다. 사회적 조합주의의 조직적 구체화와 안정적인 관료적 위치와 지도력의 재생산이 산별만능주의자들이 산별노조로의 조직형식전환에 혈안이 되는 이유이다.
정치는 민주노동당이 독점하고 노사관계는 산별 중앙에서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이석행 민주노총 집행부가 선언한 것처럼 ‘실익이 없는 파업’은 자제하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합의주의, 양보교섭의 구조화에 다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산별노조로의 조직형식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민주노총 간부들은 대다수가 가지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 산별노조로 전환을 한 노조간부와 아직 전환하지 않은 노조 간부의 의식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산별노조 건설운동과 노조간부의 의식” (경상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원)을 보면 산별노조로 전환한 노조간부들은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노조활동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 신중하고 소극적인 반면에 아직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은 노조의 간부들은 기대가 대단히 크다. 그리고 산별노조로 전환한 노조간부나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않은 노조간부나 공통적으로 산별노조가 ‘현장의 의견반영 원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이 책에서는 대다수의 노조간부들이 산별노조를 통해서 ‘노동자를 위한 법, 제도개선’을 추구하고 절반의 노조간부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영향력 증대’를 추구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화로 거의 의견이 수렴되어 있고 노조간부들의 의회 진출에 대부분 긍정적이라는 것을 노조간부들이 건강하다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관료주의적 산별노조 건설의 위험성을 볼 수 있다. 현장 투쟁의 조직화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장의 의견반영을 소홀히 하고 중앙교섭과 민주노동당의 정치력 강화를 통해 ‘노동자를 위한 법, 제도개선’을 추구하는 교섭주의, 관료적 중앙집중주의, 정치적 대리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관료주의자들의 정치적 출세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을 통해서 ‘법과 제도개선’을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가? 그럼 정치를 통한, 의회를 통한 법과 제도개선은 하지 말자는 것인가라는 항의가 있을 수 있다. 의회를 통한 법과 제도개선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을 대상화시키고 통제하면서 대중을 투쟁의 주체, 문제해결의 주체로 조직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대리자로 전락시키는 법과 제도개선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또 노정신 지난 ‘1905년 제 1차 러시아 혁명’ 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노동해방을 위한 투쟁의 부산물이자 일부분으로, 수단으로 의회를 통한 법과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지 의회를 통한 법과 제도개선이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는 의회주의적인 법과 제도개선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것은 노동자의 해방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자본주의 법과 제도라는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효성 측면에서도 민주노동당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민주노동당은 세계적인 의회주의의 조류를 따라서 헤엄치려고 한다. ‘제3의 길’ 또는 ‘신중도’로 대표되는 블레어와 슈뢰더의 모습이 어땠는가?이들은 계급정당, 조합주의 정당이라는 국민적 이미지를 지우고 국민정당이라는 국민적 이미지를 그리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다. 당의 정책 보다 당수의 국민적 이미지를 좋게 해서 표를 많이 얻는 여론정치에 당력을 쏟았다. 이들이 부르주아 이미지 정치에 발을 깊게 담글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를 대세로 받아들이고 정치노선의 우경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이 우파정당과 다른 것은 이민정책(인권정책), 외교정책뿐이었다. 우리가 사민주의 국가에 대한 기획연재에서 밝힌 것처럼 사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격랑에 휩쓸려 역사에 ‘종말’을 고하고 사라졌다. 사민주의적인 신자유주의 또는 ‘어떤’ 신자유주의만이 현실정치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민주의가 현실정치의 지형에서 국민여론을 조직해서 보다 좋은 것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사민주의는 현실정치의 바다 속으로 수장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를 보라. 토니 블레어는 대처리즘에 의해서 우경화된 영국사회의 정치지형을 기준으로 노동당의 정치를 펼치기 때문에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전제한 상태에서 대처보다 조금이라도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당’이라는 국민적 이미지를 벗고 ‘국민정당’으로 변신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제1야당이 되고 나아가서는 집권정당이 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시간표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반동이 강화되고 반동적 사회심리와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이 질서를 기준으로 자신들의 현실정치를 펼칠 수밖에 없다. 대중의 표에 살고 표에 죽는 것이 의회주의 정당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법의 개악과 국가권력의 공격으로 인한 노동자 피해의 최소화를 위하여 움직이는 것 뿐이다. 이 피해의 최소화는 반동적인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산별노조-의회주의 정당의 양날개는 노동자 해방의 양날개가 아니라 관료주의자와 의회주의자들의 개량의 날개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관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정규직 활동가들도 대부분이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 보다는 좋거나 어쩔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하고 있다. 나아가서는 비정규직 노조나 노동자들도 산별노조로의 조직형식전환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유리한 무엇인가를 기대하거나 자본의 탄압으로부터의 튼튼한 방패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이 글에서 말한 것처럼 객관적 기대나 현실이 아니라 주관적 기대와 부풀어진 현실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비정규직의 현재 처지에 비관적 색을 두툼하게 입히거나 정규직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뻥튀기해서는 안 된다. 현실은 너무 냉엄하다. 잔인하고 간교한 이해관계와 힘의 관계의 법칙이 거침없이 지배한다. 참혹한 슬픔과 끝없는 분노로 정규직과의 관계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내부적 힘이 없으면 그 어떤 외부적 조직이나 수단, 힘도 이용할 수 없다. 자신들의 목표와 바람은 자신들 내부의 것이지 외부의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화, 비정규직 문제를 위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 요구는 ‘현재’의 ‘주체적 측면’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것이지 정규직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실천적’ 측면에서는 외부적인 문제다. 이 비정규직, 정규직의 관계와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도덕적 문제나 추상적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냉정한 객관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역학관계의 문제이다. 비정규직의 힘과 투쟁력의 증가,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거침없는 압박을 통해서 이 역학관계는 변화할 수 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공동투쟁과 계급적 단결도 가능할 수 있다.
현재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 일반과의 단결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 내부의 단결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정규직과는 건강한 정규직 활동가와의 단결과 공동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무기로 현안문제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정규직 노조집행부에 압력을 넣고 도덕적 타격을 주어야 한다. 산별로의 조직형식 전환은 이런 현실을 확장된 조직형식과 중앙집중화된 조직운영을 통해서 고스란히 확대재생산 하고 왜곡, 은폐시킨다. 현재 상황에서는 기업지부에 가입하든 지역지부에 있든 그 가입형식으로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없다. 다만 그 조직형식이 비정규직의 독자적인 노조활동에 미치는 효과는 엄연하게 다르기 때문에, 즉 조직형식이 조직내용의 문제로 전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조직형식 문제는 중요한 실천적 문제이다. 둘 중의 어떤 조직형식이 비정규직의 독자적 조직화와 이를 통한 정규직과의 공동투쟁 압박에 유리한가라는 실천적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지난 비정규직의 조직형식 문제에 대한 글 ‘비정규직 조직편제! 왜 독자성인가?’ 에서 자세하고 분명하게 썼다. 비정규직 조직편제 문제는 현재 노동운동의 역학구도를 어떻게 보는지,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비정규직 투쟁의 임무와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비정규직 투쟁의 독자성을 훼손시키는 것, 나아가서는 포기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정규직의 시혜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고 정규직 중심주의라는 조합주의를 인정하고 무릎 꿇는 것이다. 이것은 확대된 조합주의다! 현재 정규직 조합주의가 주도하고 지배하는 산별노조, 현재의 산별노조는 냉정하게 말해서 정규직 노조이다.
정규직의 선거구 체계로 편제되는 것이나 부문위원회는 비정규직의 독자성에 대한 포기이자 정규직 조합주의에 대한 항복이다.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해있는 객관적인 계급위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조합주의를 뚫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새롭게 형성하고 자본의 구조조정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객관적인 과제를 비정규직 투쟁의 조직화를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체적인 요구와 과제로 삼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보았다. 비정규직 투쟁은 노동자 투쟁의 선봉에 서 있고 또 실제로 선봉의 역할을 해 왔다. 금속 대공장 노동자- 공공 대공장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으로 노동자 대중투쟁의 선봉은 이동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개별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에 머무르게 될 경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도 조합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투쟁과 전국적 전선의 주도적 형성, 건강한 정규직 활동가와 현장조직과의 연대, 투쟁하는 대공장을 비롯한 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촉구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투쟁의 한 순환을 마치고 있는 지금, 투쟁의 교훈을 내적으로 흡수하여 의식적으로 성장하고 조직적으로 단단해지고 연대가 확장 되어야 하는 때에 산별노조로의 조직형식 전환의 덫에 걸려서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와 과제를 훼손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행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비단 자동차 하청 노동자만의 상태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투쟁의 피로에 지쳐서 끝이 없어 보이는 투쟁의 막막함에 답답해서 정규직 나무의 그늘에서 쉬고 안정을 취하고 싶은 심리는 이해 하지만 그것은 안식이 아니라 더 큰 좌절과 답답함을 자초하는 길이다.
영국 노동운동에서 숙련 노동자의 특권주의에 대항하여 미숙련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와의 강한 연대를 통하여 노동운동의 급진화와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내었던 ‘신노조주의’가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노동해방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세력, 조합주의 반대와 계급적 노동운동의 형성과 계급적 현장조직의 건설을 실천하는 정규직 현장조직, 투쟁하는 현장이 하나로 결합되어 노동해방의 불씨가 되어야 한다. <노/정/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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