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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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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5 17:25:04, 조회:2,391, 추천: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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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7월 14일 영등포 근로복지공단본부 앞에서는 ‘산재보험 공공성확보, 제도개악폐기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노동자, 노동자 건강 단체 활동가, 학생동지 등 1000여명이 이날 투쟁에 함께 했는데, 노동자 ‘건강권’ 문제로 이 정도 규모의 대중집회가 열린 것은 아마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 ‘건강권’ 문제가 주요하게 제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금호타이어 한 노동자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알려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상태가 이러한데, 조직되지 않은 대다수의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상태는 어떻겠는가? ‘건강권’ 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하고 있다. ‘건강권’은 노동자들의 목숨과 직결된 만큼 중요한 문제이고, 투쟁이 중요한 만큼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의 문제는 심도 깊게 고민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그에 앞서 ‘건강권’이란 표현은 그 속에 ‘계급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기본권’, 즉 ‘인권’ 또는 ‘복지’의 이미지를 품고 있어서 그다지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서 다치고 죽는 것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그만큼 강도 높게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것도 노동자들이 피 흘리면서 느끼는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노동하면서 죽고 다치는 문제는 ‘계급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며, 그 이외의 어떠한 관점도 허락되지 않는다. 비록 ‘건강권’이란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대중적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다만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건강권’의 문제는 ‘계급적 문제’라는 것만을 명확히 하도록 하자.
민주노총이 그 날 대규모 대중동력으로 근로복지공단 규탄투쟁을 전개한 것은 그 날 하루의 일회적 투쟁은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7월 4일부터 △각종 근로복지공단 개악지침 폐기 △하이텍 집단정신질환 산업재해 인정 △반 노동자 정책수립․민원인 폭행 방용석 이사장 퇴진 △근로복지공단 산재보험 심사기능 독립화 등 산재보험법 전면개정 등을 요구하며 각 지역 근로복지공단을 거점으로 투쟁을 전개해 왔다. 지금 민주노총이 근로복지공단 투쟁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다. 첫째, 올해 40년 동안 답보상태에 있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정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3개 부분(노동부 2개,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회 1개)에서 개정 입법을 추진 중이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도 단병호의원을 중심으로 ‘산재보험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둘째, 근로복지공단이 2004년 말부터 시행하고 있는 각종 ‘내부지침’ 때문이다. 공단은 2004년 11월 30일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 2004년 12월 1일 ‘요양업무처리 관리규정’ 2005년 5월 9일 ‘과격집단민원대응요령’등의 ‘내부지침’을 만들어서 각 지역 지사로 하달하고 있다.
산재보험보상법 개정과 공단의 각종 내부지침은 IMF이후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과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심장마비, 뇌졸중 등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파괴를 왜곡, 은폐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반노동자적 정책의 일환이다. 자본과 정권은 산재보험기금의 고갈을 ‘나이롱 산재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고 왜곡하면서 보험제도의 비효율성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산재인정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하여 산재발생률을 조작하고, 요양중인 노동자들을 ‘요양강제종결’ 시켜서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이에 항의하여, 민원을 제기하는 노동자들은 ‘과격집단’으로 분류된다. 공단은 ‘과격집단’을 효과적으로 퇴치하기 위해 날마다 폭력경찰과 함께 작전회의 중이다. 따라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공단의 악질적인 내부지침을 박살내고, 산재보험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전계급적인 대중투쟁으로 현시기 제도개선 투쟁을 넘어서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투쟁에 있어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지점은 그들의 투쟁이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를 ‘제도개선’의 문제로 지극히 협소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건강권’ 문제는 ‘계급적 문제’라고 했다. ‘건강권’의 파괴는 자본의 노동 유연화와 살인적인 구조조정의 필연적 산물이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건강권’의 문제를 전체 자본과 노동관계 속에서 바라보지 않고 몇 가지 독립적으로 분리된 제도의 문제로 협소화 시키고 있다. 하이텍노동자들이 ‘전원산재불승인’ 판정을 받은 것은 그들에게 산재승인 받을 법적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명백한 법적 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노동자들의 눈앞에서 노동자들을 철저히 기만했던 것이다. 최근 ‘부천 두산중공업 건설현장의 산재사망사건 은폐의혹’을 보면 법/제도란 것이 얼마나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법/제도가 무용지물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산재를 당해서 공식적인 승인을 받고, 손실된 노동력에 대해서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요양기간 동안 요양할 수 있는 것은 개별 노동자들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 제도들이 더욱 더 늘어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법/제도 개선투쟁일 수 없으며, ‘건강권’을 전체 자본이 노동계급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시기 ‘건강권’ 투쟁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를 현장 내에서 공세적으로 제기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안정적이니까 우선 급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위에서도 금호타이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는 업종과 직종,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뛰어넘어 전 노동자 계급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권’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해야 하는 것은 지금 시기 자본이 이윤을 창출함에 있어서 ‘비정규직 양산’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정규직 투쟁이 지금 계급투쟁 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이 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자본이 자신의 이윤창출을 위해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 가운데 핵심은 비정규직 양산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비정규직 투쟁에 집중하는 것이다.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 역시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투쟁과 연동되어서 생각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로 투쟁을 조직하고 이것이 단순히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격임을 전체 노동계급이 함께 공유해 나가야 한다.
지난 울산 건설플랜트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서 ‘화장실도 없는 노동자’, ‘식당도 없는 노동자’, ‘근로기준법도 없는 노동자’ 등 매우 ‘불쌍한 이미지’가 언론에 부각되면서 마치 그들만의 지극히 특수한 문제로 비정규직 문제가 왜곡되었었다. 플랜트 노동자들이 압축적으로 겪고 있었던 노동기본권의 말살은 ‘임금’ 따로, ‘노동조건’ 따로, ‘노동시간’ 따로, ‘건강권’ 따로 분리된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세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법/제도 개선을 중심에 놓는 투쟁에 있어서 너무 쉽게 간과되는 부분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도대체 투쟁의 주체가 누구인가? 자본가들의 독재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제도를 바꿀 수 있는 집단은 매우 제한적이다. 거의 대부분의 권한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꾼들에게 독점되어 있고, 기껏해야 시민단체 정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대중집회에 가면 “뜻을 함께 하는 모든 시민사회세력들과 함께 하겠다”는 말이 자주 나오나보다. 법/제도 개선투쟁의 주체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수의 대중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고작해야 ‘시위에 동원’되는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하다. 이는 대중투쟁에 대한 명백한 ‘사형선고’이다.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대중투쟁의 ‘사형선고’가 노동자 ‘건강권’ 투쟁 등 몇 가지 사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노동운동 상층 관료집단과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이 말하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중심의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 전반에 걸쳐서 똑같이 나타난다.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연구한 법과 제도로 만든 세상에서 대중들이 행복하게 안심하고 뛰어 놀기를 바라지만 그 과정은 대중들에 대한 철저한 대상화에 불과하다.
다시 정리하면,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은 전체 비정규직 투쟁과 함께 전진해야 한다.. 일부 노동운동 상층의 ‘법/제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대중투쟁을 철저히 무기력하게 만든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면서 전체 노동자 계급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총자본의 공세를 노동계급의 총단결로 돌파하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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