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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본주의 파국과 사회혁명의 전조! 실업과 '고용 없는 성장'(2)
노정협   2005-01-13 18:09:08, 조회:2,006, 추천:234
관련링크 준비5호




<기고(연재2)>




자본주의 파국과 사회혁명의 전조!

실업과 ‘고용 없는 성장’(2)




4. 왜 자본주의적 실업대책은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가?


자본주의 사회는 문제자체가 문제해결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수단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는 모순투성이 사회이다. 일례로 공황은 자본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모순이지만 대중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는 공황을 기점으로 수많은 자본이 파산하고 기존 자본의 가치 하락이 이루어지면서 불변자본의 비율이 줄어들 수 있다. 인류문명의 엄청난 파괴와 참혹한 대량학살을 가져오는 전쟁도 과잉생산을 해소하여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역으로 경제에서 살아남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 같은 자본의 위기 탈출노력들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궁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산업의 공동화 현상으로 성장의 활력감퇴와 경제양극화, 고용 없는 성장 등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경쟁력 없는 기업 퇴출, 산업구조조정, 고도 기술 산업의 유연성 강화, 경제 자유화와 개방화 촉진, 고비용 구조개혁 등이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한다”(조선일보, 4월 7일)고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병의 처방전이 온통 병을 악화시키는 독초로 가득 차있다. 올해 남한 정부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만들기 사회 협약’(이하 협약)을 제안하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는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면 비정규직 형태라도 상관이 없다”고 공언하였다. 실제 미국에서도 “지난 해 4월 이래 민간부문에서 신규 창출된 29만 명의 일자리 중 21만 5000명이 임시직이다.… 경영진들이 현재 경기가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확신이 없기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쉽게 해고하기 위해서라고 신문(파이낸셜 타임즈)은 전했다.” (한겨레, 3월 11일)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자본의 실업대책은 비정규직을 더욱 더 급격하게 확신시키고, 외주․하청화 등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결국 정부의 실업 해법은 불완전 실업을 확산시키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3월 18일 경총이 발표한 「2004년 경영계 임금조정 기본 방향을 보면, 300인 이상 대기업 임금의 동결과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3.8%범위 내에서의 임금 인상, 단체협상, 취업규칙의 개정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개악된 노동법에 적용, 임금 피크제, 직무급제 등 성과주의 임금체계의 확산, 정기승급제의 점진적 폐지, 고정 상여금의 비중 축소 등 노동자에 대한 가공할 만한 공격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자본의 노동자 공격은 불변자본에 대한 가변자본의 비율을 더욱 더 줄여 실업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새로운 기술개발과 발전한 기계의 사용은 개별자본에게는 특별잉여가치를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생산력의 발전이 보편화되면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증대를 위해서 이윤율(총 투하 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을 하락시킨다. (새 기계의 사용 등 생산력의 발전이 기계의 가치를 하락시키기는 하지만 절약되는 가치에 비해 생산수단의 비율을 훨씬 더 높이기 때문에 이윤율 하락 경향을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력과는 달리 생산수단, 원료 등은 새로운 상품으로 가치를 부분적, 전면적으로 이전시키기는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변자본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이러한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여 노동시간 연장, 노동 강도, 노동통제 강화 등으로 착취율을 높이려고 한다. 또한 이윤율의 하락에 대해 상품을 더욱 더 대량으로 공급함으로써 이윤량으로 만회하려고 시도한다. 박리다매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과잉생산을 야기하여 자본주의 위기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혼란과 불안정성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협약’의 실업대책의 전반적 기조는, 투자의욕 고취 → 투자활성화 → 생산 확대와 생산성 향상 → 고용확대로 표현할 수 있다. 투자의욕 고취는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임금삭감과 노동력의 유연한 이용 같은 착취조건의 형성과 법인세 인하 등 투자환경 조성에 의해서 생겨난다. 생산성의 향상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산수단의 비율을 높이고 상품 공급을 늘리게 된다. 결국 이번에도 자본의 돌파구는 다른 한편에서 늘어난 상품공급의 반대편에 서 있는 다수 수요자인 노동자의 임금삭감과 비정규직의 확대 등으로 인해 구매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런데 상품의 판매, 상품자본 따라서 또 잉여가치의 실현은 사회일반의 소비욕망에 의해서 제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항상 가난하고 또 항상 가난한 채로 있지 않을 수 없는 사회의 소비수요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론 2권, 비봉출판사)

자본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상품공급은 맞은편에 수요자를 만들어 내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일단 많이 만들어내면 많은 수요가 생기기 때문에 경제는 성장을 할 것이고, 이 성장의 과실을 노동자들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선성장, 후분배 이데올로기가 함축돼있다.

“공급은 스스로의 수요를 만들어낸다.”

“누구나 소비하거나 또는 팔기 위해서 생산한다. 그는 자신에게 유용하거나 또는 미래의 생산에 도움이 되는 어떤 다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만 판매할 뿐이다.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그는 자신의 물건에 대한 소비자가 되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물건에 대한 구매자가 되고 소비자가 된다.” (이정전, 두 경제학의 이야기에서 재인용)

그러나 현실에서도 투자와 소비, 공급과 수요는 일치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이 오래된 이데올로기의 근원인 리카아도, 세이, J.밀 등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낱낱이 논박하였다.

“첫째로는, 상품유통과 직접적인 생산물 교환 사이의 차이점을 전혀 도외시함으로써 이 양자를 동일시하는 것. 둘째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생산 당사자들의 관계를 상품유통에서 발생하는 단순한 관계로 해소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모순을 부정하려는 시도.” (마르크스, 자본론 1권, 비봉출판사)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과잉생산과 공황 같은 자본주의적 모순에 의하여 완전히 부정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생산자 간의 생산물 교환이 시간적․공간적으로 직접 일치하는 물물교환이 성행하고, 생산과 교환의 목적이 생산물 소비인 전자본주의 사회에만 해당될 수 있다. 전 자본주의 사회는 대부분 자신이 직접 생산물을 만들어 소비했으므로 잉여생산물의 교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과잉공급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생산을 위한 생산, 즉 잉여가치 추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일치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량생산과 무정부적인 계획에 비한 소비의 제한은 상품의 공급과잉을 더욱 더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본은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비생산적 소비인 광고산업을 발전시키고, 할부판매와 신용카드 발행을 남발하게 된다. 최근 LG카드의 부도사태에서 봤듯이 자본의 이러한 노력도 결국은 개인 신용, 기업신용의 부실을 양산하고 신용제도 자체를 급격히 뒤흔들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재촉한다. 결국 여기에서도 자본의 선성장 논리의 비현실성과 모순 해결의 불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5. 케인즈주의적인 대안은 실업대책의 약이 될 수 있는가?


과잉생산과 유효 수요의 부족이 소비를 줄이고 상품의 과잉공급을 낳는다면, 노동자의 임금인상과 복지비용을 늘림으로써 구매력을 높여 과잉생산을 해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상품이 원활하게 판매되고 생산이 확대되어 고용을 늘릴 수 있지 않겠는가?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과잉생산에 대하여 이런 처방을 내놓고 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하는 1950년 이후부터 1973년경까지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는 이러한 케인즈주의적 대안을 사용했다. 그러나 임금인상과 복지증대로 구매력을 증가시키면 과잉 생산된 생산품을 부분적으로는 해소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과잉생산이 기하급수적이라면 임금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본 간의 극심한 경쟁과 이윤율의 하락은 과잉생산을 거세게 밀어부치지만 임금인상은 자본의 이윤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수준 이상으로 침해해서는 안되는 자본에게는 불가침의 제한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의 황금기 동안에 국가의 케인즈 주의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개별 자본들은 임금인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이 기간을 사회적 합의의 시대라고 하지만 실은 노자간의 충돌이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자본이 호황으로 인해 지불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투쟁의 결과로 임금인상과 복지의 확대가 가능했던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새로운 기계의 도입과 생산성 향상은 가변자본의 비율을 줄이고, 생산수단의 가치를 하락시켜 임금은 인하시키는 경향이 있다. 자본이 단일 자본으로 형성돼 있다면 사회의 수요에 맞는 적정수준의 상품을 공급하고 이를 처분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인상으로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자본주의에서 이는 불가능하다.
선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1973년의 마지막 호황에서 1974년 갑자기 찾아온 거대한 공황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1974년과 1975년에 이윤율은 그 이전의 5년 동안의 이윤율 하락폭과 유사한 크기로 하락했다. 1975년의 이윤율은 1968년 수준의 60%에 불과했다.”

“1968~1973년에 선진국 전체의 이윤율은 전산업과 제조업에서 1/5정도 하락했다. 1973년에 전산업과 제조업의 이윤율은 각 블록에서 이전의 최고 수준에 비해 1/3정도 하락했다.” (필립 암스트롱 外,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이렇듯 1974년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공황은 몇 해에 걸친 과잉축적과 이윤율의 하락으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의 석유위기는 수년 동안 누적된 과잉축적과 이윤율 하락이라는 자본주의 위기를 한층 더 폭발적으로 분출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비용가격의 급격한 인상은 불변자본(이중에서 특히 원료 등의 유동자본)의 비율을 높이면서 이것을 시장가격으로 이전시키지 못하면 이윤율을 하락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말 그대로 불난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된 것이다.
1974년 공황 이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 위기의 원인을 케인즈주의로 돌리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공급 중심의 경제정책을 도입했다. 이것이 1980년도에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으로 나타났다. 탄핵 이후에 노무현이 ‘마가렛 대처’를 읽고 있는 것을 볼 때,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한 노무현 정권이 ‘협약’, 노사관계법 개악으로 노동자 계급에게 휘두를 칼을 갈고 있는 것을 섬뜩하게 느끼게 한다.
현재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민주의 정권조차도) 자본의 경쟁력 강화와 축적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긴축재정과 복지삭감, 사유화, 규제완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쓰고 있다. 현재의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은 케인즈 주의의 실패에 따르는 반작용의 결과이다. 따라서 국가는 고용창출을 위해 임금인상을 유도하고 복지 향상 정책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국가가 유효 수요 확대 정책을 쓰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증가와 국가소유 기업의 고용확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각국의 정부는 ‘작은 정부’(이것은 국가의 역할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본은 자신들한테는 규제완화를 노동계급에게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원한다)를 지행하면서 정부기구를 구조조정하고 공기업 민영화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 지출 확대를 위한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세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정부의 지출 확대가 세금인상으로 인해 상쇄되기 때문에 유효수요의 창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각국 정부는 법인세를 인하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자본으로부터 재원마련도 쉽지 않다. 누진적 직접세의 확대는 자본의 반발을 부르고 부가가치세 확대는 물가인상과 대중의 반발은 산다. 결국 실업의 문제 앞에서 출구 없는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에 대한 수탈강화와 전쟁 등으로 탈출구를 찾는다. 이것이 제국주의의 이라크 침공과 파병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중간에 인권을 내세워 공정한 무역을 주장하며 벌이는 갈등과 힘겨루기, 한․중․일 간의 독도 영유권, 고구려사 편입문제, 센카쿠열도 영토 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등 민족주의적 갈등의 배후에는 위기 심화와 갈등 격화가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간의 불균등 발전으로 인해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선진 제국주의 국가 간의 갈등이 가까운 장래에는 후발 자본주의 국가인 중국, 러시아 등의 결합으로 더욱 복잡해지고, 극심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어 뒤엉켜 싸우게 될 것이다.”




6. 실업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실업과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주의 파국의 전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파국의 전조가 어느 계급의 파국으로 끝날 것인가? 자본주의의 위기심화로 야기되는 파국은 모든 계급의 파국이 아니라 격렬한 계급투쟁의 결과에 따르는 한 계급이 맞게 되는 파국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자신의 위기를 노동계급의 생존권의 위기로 전가시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반동화된 자본주의에 맞선 사회혁명만이 파국으로부터 노동자 계급을 온전하게 구출할 것이다. 반면에 노자 간에 놓인 파국 앞에서 패배한다면 노동계급은 실업의 확대로 기아, 빈곤, 질병 등 끔찍한 참상을 겪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체제의 온갖 모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이데올로기를 구사한다. 신용불량자의 문제는 개인의 낭비벽과 경제 마인드의 부족, 무절제 등 도덕적 해이로 돌려진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개인의 취업운의 부족, 기술 능력의 부족, 학벌미달, 무능력 등으로 책임을 돌린다. 하지만 계급적 지위 유지의 수단인 학벌만 보더라도 계급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개인의 능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과연 자본가 계급의 자식이 능력이 출중해서 천문학적인 부와 지위를 움켜쥐는가? 부와 지위의 상속, 주식사기 등이 계급적 지위를 범죄적으로 재생산하는 수단이 아닌가? 대표적으로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을 보라!
실업에 있어서도 자본주의는 사회적 모순을 한 개인이 짊어지게 한다. 사회가 개인의 어깨에 부과하는 엄청난 고통은 실업자를 절망과 자기혐오에 빠뜨리게 하고, 이 삶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개인을 폭력, 범죄와 죽음으로까지 몰아간다. 자본은 이러한 모순을 은폐하기 위해 실업이 일시적이고 경기가 살아난다면 취업이 될 것이라고 속삭인다. 마치 종교가 현세의 고통이 일시적이고 내세에 간다면 영원불멸의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하지만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실업기간의 개인과 그 가족의 고통스런 삶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또한 재취업 자리에 해고당한 바로 그 실업자가 고용된다는 보장은 있는가? 설사 재취업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수준으로 취업할 수 있는가? 심지어 자본은 고작 몇 개월의 실업수당마저도 근로의욕 감퇴 같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고 줄일 것을 선동하고 있다. 자본은 2001년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대량 정리해고 이후에 ‘희망센터’를 만들어 취업 정보제공과 재교육을 실시했다. 기아자동차 광주지부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계약해지 시켜놓고, 100여 만원의 위로금을 얹어주면서 ‘취업센터’를 알선해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마땅히 취업할 곳이 있는가?’이다. 재교육의 일환인 창업교육도 창업 지식의 문제보다는 ‘창업할 여유자금이 있는가?’의 문제이다. 10년, 20년을 라인을 타던 ‘단순 조립공’노동자에게 재교육은 얼마나 충실할 것이고, 짧은 기간에 얼마나 고도의 기능을 습득하게 할 것인가? ‘희망센터’는 노가다 판에 나가는 노동자들을 재취업 명단에 집어넣고 수치를 조작하는 등 온갖 기만을 통해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에게 ‘절망센터’로 불려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취업센터가 해결하는 게 아니라 계약해지에 맞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할 때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의 기만을 뚫고 실업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실업을 가져오는 기계의 사용을 거부할 것인가? 똑같은 것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듯이 기계이용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계의 자본주의적 이용이 문제인 것이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 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마르크스, 자본론 1권, 비봉출판사)

우리는 잘못된 사회가 자신을 면죄하고자 개인의 어깨에 부과하는 가혹한 씨지푸스의 형벌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실업을 만들어 내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향해 정당한 총구를 돌려야 한다. 실업자는 또 다른 불완전 실업자인 비정규직노동자와 국적을 빌미로 불완전 실업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굳건하게 손잡고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동맹을 호소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자본이 산업예비군을 활용하여 노동계급 내부를 분열시키고 취업노동자에게 노예적 굴종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자본은 국적, 성, 고용형태, 업종, 나이, 임금격차 등 현실의 분영요소들을 철저하게 활용한다. 정규직 노동자는 상대적 우월의식과 안도감에서 벗어나 실업,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자신의 고유한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같은 노동계급으로서의 도덕적, 윤리적 호소가 아니라 그들의 이해와 나의 요구가 같기 때문이다. 고용이 불안한 현실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내일의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실업자들은 산업이나 업종에 묶여있지 않고 개별화되어 있다. 투쟁경험도 전무하다. 결국 실업자들의 조직화에 있어서도 투쟁경험이 많고 조직된 노동자들이 중심에 서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 내에서 ‘고용안정센터’가 있지만 상담, 법률지원, 고용알선 등 온순한 노동부 산하 기관의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고용안정센터는 중앙과 지역별로 확대 재편되어 실업자 투쟁을 조직하는 중심기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노총 내외의 전해투, 이주노동자 조직,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 등과 같이 상설공투체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실업반대! 비정규직 철폐! 이주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영주이주권 옹호! 정규직 해고와 임금삭감 반대! 구조조정 반대! 이 모든 요구는 자본주의라는 과녁을 겨누는 하나의 총구에 장전된 탄환이 되어 자본주의 체제의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장기간 결사투쟁을 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박일수 열사의 투쟁을 중심으로 자본에 항거하고 있다. 이 대열에 장기투쟁사업장과 개별화되어있는 실업자들이 대거 결집해야 한다. 신규 실업자들의 조직화는 민주적 청년단체나 대학 총학생회, 대학 내 좌파기구와 결합해 사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업자들은 소부르주아적 촛불시위에서, 허구적 민주주의의 수호를 외치는 대오에서 자신의 요구와 동맹군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2004년 임단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2004년 조직된 노동자들의 임단투는 대대적 임금삭감과 유연화된 노동력을 강요하는 ‘협약’, 노사관계법 개악과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개악된 노동법을 통한 단협 개악 등 물밀 듯이 밀려오는 총자본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총자본은 다수 의석을 확보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구심력을 확보한 노무현 정권을 내세워 자본의 전위대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남한의 민주노조 운동은 편협한 민족주의, 조합주의, 관료주의, 노사협조주의의 낡은 깃발을 가지고는 총자본의 공세에 맞서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국제주의, 계급적 대동단결주의, 전투적 반자본주의 사상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반동적인 자본주의의 현실 앞에서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움켜쥐어야 하는 노동자 계급의 무기이다. 이는 먼 미래의 노동자 계급 해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당장 2004년 코앞에 닥친 자본의 공격에 맞서 자신들을 방어하고 절멸하지 않기 위한 지극히 이해 타산적이고 냉정한 현실의 구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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