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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리베라호텔노동조합 유성지부장 박홍규 동지를 만나서
노정신   2004-11-25 20:59:31, 조회:1,990, 추천: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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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리베라호텔노동조합 유성지부장 박홍규 동지를 만나서



1.  리베라 투쟁의 경과를 간단히 투쟁의 배경과 투쟁 요구안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시기와 규모 포함한 리베라 노조(조합원 등 특성) 소개도 해주시지요.


우리 리베라호텔 노동조합은 서울 본조와 유성 지부로 민간서비스연맹에 가입되어 있었고 투쟁이 시작될 때 서울 조합원은 132명, 유성은 198명으로 총320명이 시작했습니다. 2003년 1월 21일부터 이번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002년 임금교섭 때에는 2001년 파업까지 갔던 노사갈등의 문제들을 해결해가기 위해서 2003년 2월1일부터 시작되는 임금교섭과 단체협약을 함께 하기로 노사합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단협 유효기간이 2002년 11월에 종료되는 것을 노조가 유효기간을 체결일까지 연장하자고 요구하자, 회사는 1차 교섭에서부터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 때부터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4월 25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안도 사측이 거부하여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었고 5월 17일 부분파업이 진행되면서 노동조합이 해결할 의지를 보였음에도 사측은 오히려 부당노동행위를 더 자행하면서 파업을 유도했습니다.

8월 3일 조합간부를 한 업장에 인사이동 시키고 직장폐쇄하면서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탄압했고 이에 오후에 즉각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부당노동행위 내용은 '전임해지 후 현장복귀 명령(3월 15일), 부당강등 및 부당 노동행위(정기인사 취소, 불법적인 인사이동), 구조조정의 사측문건을 유출시키고 공식화' 하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투쟁 요구안으로 '임금 7%, 비정규직 정규직화, 단협 개악(정년57세 에서 55세, 장기근속표창 및 포상 폐지, 전임자 축소, 퇴직금 누진제 폐지, 근속수당 폐지) 중단' 등을 제시했습니다.



2.  리베라 투쟁을 통해서 무얼 얻으셨습니까? 뭐 합의안의 특징도 소개해주시구요.

단결이 가장 힘이 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자주적, 민주적 조직인 노동조합의 소중함을 뼈져리게 느꼈던 투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긴 싸움을 통해서 느꼈던 뜨거운 동지애를 체험했던 것이 수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유성의 분리교섭으로 조직이 이원화되는 어려움을 겪으며 반쪽짜리 합의안이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가슴 아픕니다. 물론 유성지부는 이미 잠정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본조가 합의가 안되어서 아직도 정식으로 총회를 통한 체결을 연기해놓은 상태입니다.

유성지부의 노사 잠정합의안은 '손배 가압류와 각종 고소, 고발 철회, 계약직의 정규직화, 구조조정 시 노동조합과 합의, 전임자 수와 임금은 2004년 2월 28일까지 교섭 후 합의' 등 입니다. 하지만 본조가 합의되지 못한 채 지부만 합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3. 이번 투쟁 과정에서 잃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서울 본조와 과 유성지부의 교섭이 분리되어 진행되면서 끝까지 단일조직의 내용으로 가질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서울 조합원들은 투쟁하고 있습니다.

투쟁 중에 서울 조합원들 중 대다수가 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속속 복귀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단일교섭의 창구를 고집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유성지부 조합원 2명이 파업 중 복귀한 것, 그리고 약 4개월 파업에 대한 무노동무임금이 적용된 점 등도 아쉽습니다.




4. 파업 투쟁의 프로그램이나 내부 단결력을 높이고 파업의 의미를 강화해갔던 사업 등은 무엇이었습니까?

  조합원 교육을 집중적으로 배치했습니다. 강의와 내부토론 등, 내외부 강사의 교육과 지역 활동가들의 교육지원 등으로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투쟁과정 중 적절한 교육을 배치했다고 봅니다.

투쟁조를 9개조로 편성하고 별도로 사수대를 결성하여 투쟁하면서 투쟁조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투쟁 문화라고 칭하여 조합원 전체가 참여하는 2차례의 투쟁문화제, 3회의 등반문화와 2차례의 체육문화 행사 등을 적절히 투쟁조별로 운영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투쟁 조별로 점심식사, 분임토의, 철야농성 등 행동을 같이 했고 주5일 투쟁으로 지루함을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파업동지회를 만들어서 투쟁조별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습니다.



  5.  파업 투쟁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자발성이 어떻게 발현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원들이 많지 않아 2001년도에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핵심 사업으로 해서 11명을 정규직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2001년 투쟁을 비정규직까지 참여시켜서 모든 조합원이 동참하여 총파업 7일 만에 완벽한 승리를 쟁취한 경험, 즉 단결하면 승리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알고 있었기에 이번 투쟁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6.  목적의식적인 지역연대투쟁 등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특히 서울과도 조금 다른 양태였던 거 같은데,
이런 연대투쟁이 제기되고 조직된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그전과 비교도 가능하구요.


지역본부가 2001년 대전, 충남에서 대전으로 분리되면서 대전지역본부는 제조업보다는 공공부문과 화학섬유 부문 등이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투쟁 연대에서 있어서 실질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2002년 신설조직을 만들고 대정부 투쟁 등 지역투쟁을 열심히 했지만 조직을 사수하지 못하면서 지역동지들의 조직별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었던 시기에 리베라 조직이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많은 열사들이 속출하면서 열사정국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현장에서 볼 때에도 리베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꼭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지역 동지들이 실천적 연대를 통해서 사수한 조직이고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쟁시점에서 저희 리베라 한 곳만 전면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던 점에서 지역의 동지들이 한 곳으로 집중해주어서 저희들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작용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호텔 주차장에서 무려 800여명 동지들이 연대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섭권을 멀리 떨어져 있는 연맹 상층이 아닌 대전지역본부에 위임하면서 지역적인 연대는 한층 더 강화되었고 그것이 합의안 도출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연대가 실제 같이 싸우고 투쟁 쌀 모으기 등을 하면서 상당한 힘이 되었습니다.



7. 투쟁 마무리 과정의 특징과 조합원들의 현장토론 과정, 문제제기 등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물론 가장 크게는 서울 본조 투쟁이 두 달을 넘어서면서부터 조합원들 개개인의 가정경제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생계투쟁'이라 하여 '1일 생계투쟁'으로 파업대오에 불참할 때에는 5,000원씩 투쟁기금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잘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점은 그래도 조합원 개인들의 경제적인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할 때에도 2명만의 반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호텔이라는 곳이 정말 다양한 직종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투쟁 때문에 너무나 일에 목말라 하는 조합원들이 많아서 4개월 동안 비어두었던 일터에서 영업준비를 하겠다면서 조합원들이 잠정합의 이후 열심히 오픈 준비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복귀하기 전에 속리산 유스텔에서 숙박으로 긴 투쟁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현장 복귀 이후의 현장투쟁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토론 속에서 투쟁 중의 투쟁속보활동이 미비했던 점, 투쟁 전술은 너무 틀에 박혔었다는 지적들과 함께 생계투쟁에 대한 문제점, 투쟁조들과 투쟁 지도부간의 괴리감, 그리고 집행부가 초기에 강력한 투쟁을 배치하지 못한 점 등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문제제기 되었습니다.  




8.  투쟁 이후 현장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투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유성지부는 2월 28일까지 합의, 서울 본조의 투쟁) 보이지 않는 투쟁이 진행 중입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현장을 중심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파업동지회가 있지만 어렵기는 합니다. 회사가 맨투맨 식 회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측인지 모를 정도로 구별하기 힘든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파업동지회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못하고 있는 거구요. 실제로 활동하는 단위들이 모여서 얘길 하는 정도입니다. 따라서 저로서는 조합원들에게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파업 당시의 투쟁조들이 외부에서 사적인 모임들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 서울본조의 경우에는 회사에서 계속해서 '선복귀 후교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본조는 현재 14명이 남아있고, 투쟁동력을 세워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이에 우리 유성 조합원들도 서울 조합원들과 연락을 하면서 생계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12월까진 유성도 거의 업무가동이 안되었고 임금의 일부를 지급유예 시킨 점 등이 고려되면서, 아직까지는 일부 지원을 하는 상황입니다.




9.  기억에 남는 일,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들이 무엇입니까?

유성지부는 파업 99일차까지 단 한 명의 조합원들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파업 99일차에 회사측의 회유로 2명의 조합원이 복귀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굉장히 힘든 때였습니다. 2명이 복귀하면서 서울본조처럼 되는 거 아니겠냐는 우려들 때문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조합원 개개인들에 대해서 일일이 전화통화와 만남을 조직했습니다. 그 때가 가장 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지역의 동지들이 지역실천단이라고 해서, 말만 연대가 아닌 실천적 연대, 같이 밥도 끓여 먹고, 날도 샜던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서울과 이원화된 교섭상황, 지부장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서 결단한 것이지만 그 때 정말로 위원장님을 뵈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때 만약 분리교섭 안하고 했더라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 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유성지부만 살자는 식으로 비춰질 수 있었던 점에서요.




10.  서울리베라 투쟁이 주점 이후에 조금 소강상태인지, 어떤지, 연대하는 활동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그리고 내부 과제는 무엇인지요?


주점 이후 14명의 투쟁 동력이 제대로 서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서울에 올라가서 주문했지만 일단 동력이 다소 몇 사람이라도 있어야 연대단위가 붙을 거 아니냐는 거죠.

이에 반해서 회사는 지금도 계속해서 엄청난 공격을 합니다. 계속해서 천막도 다 걷어버리고 사무실도 봉쇄하고 출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등 엄청나게 불법적인 수법들을 자행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투쟁동력이 떨어져서 막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압류와 고소고발 문제 들이 거의 남아 있는 동지들한테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동지들이 약간만 기운을 차리면, 회사는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을 '쪽수'로 앞장세워서 위협하고 있거든요. 연대동지들도 남은 14명이 힘들어하므로 동지들에게 힘을 주는 연대활동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본부도 함께 최소한 주1회 정도 집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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