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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7호] ‘버냉키 너마저’ 외침의 비적대적 모순
노정협   2013-07-01 22:32:39, 조회:1,975, 추천:102

‘버냉키 너마저’ 외침의 비적대적 모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버냉키 의장이 달러를 시중에 공급하는 양적완화(Quantitive Easing, QE)를 축소할 방침이라는 발표를 하자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일본 아베 경제의 위기에 이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경제까지 심각한 위기라는 발표가 나자 전 세계 증시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으로 전 세계 경제가 극심하게 혼돈 양상을 보이자 연준 관계자들이 잇달아 축소 계획을 번복하고 나섰다. 며칠 동안 폭락하던 증시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버냉키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계획과 여기에 따르는 금리인상 계획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선 이는 폴 크루그먼이었다.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칼럼에서 버냉키에 대해 극도의 배신감을 토로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2007-2009년까지 경기후퇴가 공식적으로 끝난 지 4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우리가 완전고용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사결과는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은 주로 취업 가능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요 노동연령(25세-54세)의 성인들 중에서 취업자 비율을 보면, 경기침체 기간 동안 80%에서 75%로 비율이 떨어졌고, 그 뒤에 겨우 76%로 회복됐을 뿐이다.
이것은 정말로 슬프고도 우울한 일이다. 우리 경제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불황에 빠져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너무나 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긴급한 임무임을 망각하고 맥락을 놓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준은 그렇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 같다. 벤, 너마저?(By PAUL KRUGMAN, Et Tu, Bernanke? The New York Times, June 23, 2013)


크루그먼은 케인즈주의 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학자다. 흔히들 크루그먼은 오바마 정권 경제정책의 이론적 대변인이라고 한다. 프린스턴 대학교수인 크루그먼은 버냉키가 교수 시절에 같은 대학에서 재직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개인적 친밀감도 높다. 버냉키는 오바마 정권 경제 정책의 실질적 총입안자로서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린다. 크루그먼은 인간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버냉키와 동지적 관계다. 크루그먼의 케인즈주의(또는 신케인즈주의) 사상은 오바마 정권에 의해 받아들여졌는데, 그 중 핵심적인 정책은 양적완화다. 미국은 극심한 경제공황의 탈출구를 재정확대 정책에서 찾았다.

미국은 2008년 11월 양적완화 1조 7,000억, 2010년 11월 6,000억, 2012년 9월부터는 매달 400억 규모로 무차별적으로 달러를 발행해왔다. 버냉키는 이제 미국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양적완화를 축소하겠다는 발표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버냉키의 발표에 대해 크루그먼은 아직도 미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계속 달러를 발행하여 경기를 부양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크루그먼과 같은 경제기조를 가지고 달러 살포에 앞장서 오던 버냉키가 양적완화를 갑자기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버냉키 너마저?(Et Tu, Bernanke?)”라고 외쳤던 것이다. 크루그먼은 마치 시저가 가장 믿었던 브루투스에게 원로원에서 암살당하면서 외쳤던,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에 빗대어 이런 식으로 당혹감과 분노를 표출했던 것이다.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판단과 양적완화 지속 여부에 대한 버냉키와 크루그먼의 논쟁은 단순히 개인 간의 논란이 아니다. 크루그먼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른바 ‘긴축론자’들은 국내총생산에 비해 국가부채 비율이 90%가 넘으면 성장률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며 크루그먼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크루그먼은 오히려 “경기침체 때문에 국가 빚이 늘어난다.”고 반박하면서 양적완화를 지속해서 침체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 케인즈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화폐발행에 대한 법적제한 때문에 화폐 추가 발행이 어렵게 되자 심지어는 1조 달러짜리 백금을 주조하자는 제안이 진지하게 검토되기도 했다. 여기에 크루그먼도 지지 서명을 하기도 했다. 기존 금화나 은화, 구리동전으로 된 화폐발행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백금으로 주조를 하면 법적 제한을 넘어서 마음 놓고 추가로 화폐발행을 할 수 있다는 근거 때문이다. 이러한 황당한 제안을 둘러싸고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의회 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찬반 논란을 벌이고 공화당은 백금 동전을 발행할 수 없도록 하는 법제정을 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미국경제 회복논란의 진실과 계급적 성격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발표한 것은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버냉키의 말대로 과연 미국 경제는 회복되고 있는가? 회복되고 있다면 그것의 숨겨진 진실과 계급적 성격은 무엇인가? 미국 경제 회복 여부에 대한 논란은 2009년 중반 경부터 2013년까지 4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 경제가 4년간이나 회복되고 있다면 지금은 이미 호황의 정점에 올라설 수도 있는 상황인데 여전히 경제 회복에 대해 팽팽한 반론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최소한 그 회복이 견고하지 못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가 경제 회복의 유력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실업자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부가 4월에 확고한 165,0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고 다행히 실업률은 4년 동안 가장 낮은 7.5%로 떨어진 것으로 발표했다고 금요일 뉴스는 보도했다.
… 미국 경제는 2011년과 2012년에 월 평균 179,000개 일자리가 늘어나다가 올해는 한 달에 196,000개 일자리가 늘어났다.(By PAUL WISEMAN, Why the US economy is taking so long to recover, YAHOO! FINANCE, Sat, May 4, 2013)


‘왜 미국 경제는 회복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는가?’라는 이 기사 제목이 참으로 시사적인데, 여기서는 미국 노동부의 일자리 증가 통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회복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최근 몇 년의 성장률 역시 미미하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2007년 12월 대불황(Great Recession)이 시작됐던 때에 비해 여전히 260만개나 일자리가 적다. 지금의 고용 추세대로라면, 미국 총 일자리는 침체 이전 해의 138백만 개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일자리는 다음과 같이 더욱 줄어들었다: 자유경제정책연구소 경제학자인, 하이디 샤이어홀츠(Heidi Shierholz)는 인구 증가를 따라잡기 위해서 미국 경제는 260만개가 아니라 860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실업률은 2009년 10월에 10%로 최고를 기록한 이래 극적으로 개선됐다. 그러나 어떤 보통 표준에 의하면, 4월 7.5%의 실업률은 여전히 침체 수준의 수치인데, 예를 들어, 그 수치는 2001년 짧은 침체기 이전 보다 높다. 연준은 실업률이 2015년 이전에 결코 - 6%나 그 보다 더 낮은 - 적정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 지난 3년 반 동안 떨어진 실업률의 상당 부분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 인구의 63.3%만이 지난달과 3월에 일을 하고 있거나 구직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197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가장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이다.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실업자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만일 참가율이 침체 이전의 66% 수준이라면, 지난 달 실업률은 11.3%에 달할 수도 있다.
… 미국 경제는 2010년 겨우 2.4%, 2011년 1.8%, 2012년에는 2.2% 성장했을 따름이다. 올해 1월부터 3월 1사분기에는 연례로 2.5% 성장했다.
... 정부 긴축 조치로 인한 피해는 연준에 의해 어느 정도는 벌충됐다. 그런데 그것은 2008년 말 이후 지금까지 거의 0에 가까운 이자율을 유지해오고 채권을 구입하는데 한 달에 8백5십억 달러나 정부 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 낮은 주택담보 대출 이자율로 부양된, 주택 시장은 회복됐다. 3월에 신규 주택 판매는 지난해에 비해 18.5%로 올랐다. 이전에 차압된 주택 판매는 10.3%올랐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주택 건설업자들은 계절적 요인을 고려한 연간 비율로 3월에 1백만 채 이상이나 공급하고 있다.(같은 기사)


위 기사는 비교적 차분하게 미국 경제의 실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경제는 2007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라는 형태로 부동산 과잉생산 위기가 발생한 이후 2008년부터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처럼 거대 금융자본과 GM 같은 거대자본이 파산하면서 급격한 공황 상태로 빠져들었다. 성장률은 추락하고 실업률이 급증했다. 미국 정부는 파산한 독점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달러를 쏟아 부었다. 막대하게 발행된 달러는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 시키는데 사용됐다. 주택시장의 회복은 무차별적으로 발행한 달러를 가지고 인위적으로 주택공급과 주택거래 시장을 부양한 덕분이었다. 몇 년 동안 금리를 계속 낮춘 결과 금리는 사실상 제로 수준에 가깝게 떨어졌다.

이러한 국가 개입의 효과로 2009년 중반부터는 회복 논란이 시작됐는데 이 기사처럼 2009년 10월까지 실업률이 최고조에 달한 뒤에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회복 논란 와중에서도 여전히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약간 떨어졌다고 하지만 성장률은 공황 발발 이전으로 높아지지 않고 있다. 실업률 통계에서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들은 제외함으로써 축소시켜 놓았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전히 극도로 저조하다. 물론 이전 실업 통계 역시 보통의 부르주아 국가 실업통계가 그러하듯, 구직포기자는 실업자 통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약간 늘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기에 약간 늘어난 일자리는 과연 어떤 일자리들인가?

2013년 6월 7일. 5월 발표된 종업원 총수 일자리 보고서는 오늘날 계속적으로 환상에 젖어 있다. 제조업 다른 4천 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상품 생산 일자리들은 줄었는데, 신 경제는 179,000의 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들은 대개 -수출할 수 없는 국내 서비스 일자리들로- 제3세계의 일자리들처럼 저임금 일자리들이다.
… 기업들에게 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실업 노동자가 대량으로 있는 나라들에서 값싼 노동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 실제 중간 소득은 줄어들면서, 왜 웨이트리스와 바텐더는 38,100명 많아졌는가? 내가 기억하는 한 매달 노동통계국 보고서는 장기간 실제의 중간 소득은 감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웨이트리스와 바텐더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다.(Another Phony Jobs Report From A Government That Lies About Everything –Paul Craig Roberts, June 7, 2013)


위 글에서는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새로 생긴 일자리의 내역들이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그 중에는 오락, 도박, 레크리에이션 일자리가 12,500개 늘어났고 임시 보조 서비스 일자리는 25,600개가 생겨났다. 이밖에 다른 일자리들은 대다수 서비스 보조 일자리였다. 이처럼 미국에서 늘어났다고 하는 일자리 대부분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인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다음과 같은 결론이 불가피하다: 대량학살무기, 싸담 후쎄인과 알카에다 연계, 이란핵, 기타 등등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또한 테러리즘이 미국 헌법이 무시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협적이고, 인신보호영장과 정당한 법적 절차가 없다면 미국이 더욱 안전하다고 속이는 것처럼 일자리, 실업률, 인플레이션, 모든 금융적 그리고 상품시장을 금융적 수단으로 조작한다.(Another Phony Jobs Report From A Government That Lies About Everything, -Paul Craig Roberts, June 7, 2013)

위 글 저자는 미국 정부의 일자리 보고서가 사기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력을 모르고 이 글만 보면 급진적인 이론가가 쓴 글로 착각할 수 있는데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극우적인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로 재직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최근에는 독립언론에도 자주 글을 기고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미국 정부가 통계조작을 하고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나는 공식적으로는 미약하게 회복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의심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축소하고 국내총생산은 과장하는 통계 조작 덕택에 연준과 시장은 보잘것없는 회복이 진행되고 있고 연준에 의한 전례 없는 화폐발행(money printing)이 최고조로 경제를 변화시키는데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The Rational Market Myth, -Paul Craig Roberts, June 20, 2013)

통계상으로 미미하게 회복이 됐다손 치더라도 그 회복은 실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자계급은 파산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는 대가로 대량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복지 후퇴를 당해야 했다. 심지어 미국 정부는 통계 조작도 서슴지 않으면서 미국 경제가 회복됐다는 것을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회복 자체의 현실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통계 조작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역시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조작하여 발표하거나 대선 전에는 정부에게 불리한 통계는 아예 발표하지 않기도 했다. 한국이나 미국 할 것 없이 부르주아 권력에서는 통계조차도 부르주아 체제나 정권 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일자리 증가를 가지고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사기 치는 오바마 정부나 고용률 70% 달성을 내세워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운운하며 비정규직 고용을 실업대책으로 내세우는 박근혜 정부나 사기적이고 반민중적인 모습은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이 미국과 공황만 동조화(synchronized) 현상을 보이는 게 아니라 반민중적 본질이나 통계조작까지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케인즈주의자와 긴축론자 사이 대립의 위선

다시 버냉키에게로 돌아와 보자! 버냉키의 발표는 ‘경제 회복이 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아서 이 조건이 충족되면 2013년 하반기부터 양적완화를 축소해가다가 2014년에 시중에 달러를 공급하는 것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버냉키는 ‘양적완화 중단의 조건’으로 실업률 6.5% 이하, 소비자물가 상승률 2.5% 이상을 제시했다. 이처럼 버냉키의 발표는 실제 양적완화 축소가 단행된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멈추겠다는 발표도 아니었는데도 세계 경제는 요동친 것이다. 버냉키 발표 직후에 세계 경제가 대혼란에 빠져 요동을 치자 연준 일부에서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번복하고 나서고 있는데, 이미 당시에도 버냉키가 쉽게 양적완화 축소를 단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발표 이후에 벌어진 국제적인 혼란과 대소동은 몇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먼저, 독점자본주의 국가가 취하는 유력한 공황대책이 화폐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대는 양적완화 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는 것이다. 극우적인 일본 아베 정부나 프랑스 사회당 정부,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 오바마 정부나 할 것 없이 자본주의 정부의 노선상의 차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차이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버냉키의 발표로부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정부의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 보다는 미국이 더 이상 이러한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 정책이 중단된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저들이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공황 탈출구 중 하나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계획에 대해 공포감에 빠져들면서도 부르주아 일각에서는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가 경제회복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마침표를 찍는 출구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버냉키 발표 이후에 벌어졌던 대혼란은 그 출구로 한발자국을 내딛게 되는 순간 그 출구가 천길 만길 낭떠러지가 될 수도 있다는 섬뜩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미국 재정적자는 2013년 3월 기준으로 16조 7,367억 달러(2013.03.23일자 환율 기준 한화 약 1경 8711조 6,448억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천문학적인 정부 재정적자를 제한하기 위해 정부 부채가 일정 선을 넘지 않는 법적 제한선을 두었다. 이로 인해 2013년 1월부터는 더 이상 재정확대 정책을 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절벽에서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재정절벽(fiscal cliff)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사실을 기억해 보라!

저들이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공황 탈출구 중 하나인 양적완화가 공황의 파급력을 부분적으로 누그러뜨리고 공황의 심화를 일시적으로 유예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탈출구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양적완화 정책이 각국에서 부채위기를 초래함으로써 국가독점자본주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부르주아 체제를 더욱 더 진퇴양난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주로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 시키는 채권구매에 사용되거나 주식시장을 부양하는데 사용됨으로써 자본주의의 기생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르주아 각국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구제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재정확대 정책으로 인해 부채위기가 심각해지자 반동적인 부르주아 국가는 노동자 민중에게는 긴축정책을 사용하여 재정적자를 메우고 있다. 앞서 말한 미국의 재정절벽 논란에 대한 대비책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인데 그것은 노동자 민중에게는 긴축정책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2013년 3월 1일부터 시퀘스터 컷(Sequester cut)이라고 해서 정부 부채가 법적 한도를 넘으면 자동으로 예산을 삭감하는 제도를 실시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말로는 부자 증세를 말하면서도 행동으로는 교육, 공공보건 비용을 대거 줄여서 노동자 민중을 공격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3년 들어 미국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들을 전개하고 있다.

독점 자본에게는 부양을! 노동자 민중에게는 긴축을! 이것은 대공황기에 부르주아가 국제적으로 외치는 구호가 되었다. 케인즈주의자와 긴축론자들의 대립과 투쟁은 실상은 상당부분 거짓에 기초한 위선적 전쟁이다. 케인즈가 러시아 혁명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케인즈주의 노선을 수립한 것처럼, 크루그먼은 미국 독점자본주의의 수호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버냉키 너마저”라는 다급한 외침에 속지 말아야 한다. 크루그먼이 격렬하고 다급하게 이렇게 외치는 이유는 자신이 공황의 탈출구라고 여기는 양적완화를 버냉키가 중단했을 때, 미국 자본주의의는 물론이고 전 세계자본주의 위기가 극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저들이 부분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적대적 모순인 셈이다.

앞에서 크루그먼이 양적완화를 반대하는 ‘긴축론자’를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크루그먼은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은폐하고 자본주의에서도 양적완화 정책으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거짓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크루그먼이 받은 노벨경제학상은 계급투쟁을 억제하고 계급모순을 은폐한 대가로 주어지는 국제 부르주아의 보상에 불과한 것이다.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서는 오바마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한 것처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의 회복 가능성은 상당부분 현실의 모순과 적대를 은폐하기 위해 저들이 유포하는 환상의 일환이거나 이데올로기 공세의 일환이다. 그러나 저들이 공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취하는 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노동자계급은 과학적 변혁적 인식으로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자본주의의 반동적 현실을 정면 돌파해나가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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