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Category |
 |
![]() |
 |
![]() |
제목 : [19호] 한국전쟁은 ‘시작이 아니라 대단원’,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었다. |
![]() |
 |
![]() |
 |
|
노정협
|
2006-08-28 20:24:50, 조회:2,679, 추천:585
|
![]() |
|
|
![]() |
광복 직후 펼쳐진 혁명적 정세와 남측 주체역량에 대한 판단 오류,
한국전쟁은 ‘시작이 아니라 대단원’,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었다.
들어가면서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당시 국내외 정세와 결부되어 또 다른 계급투쟁을 낳게 했다. 당시 전승국이자 같은 연합국 측이었던 미, 소 양국의 세계 전략은 중국혁명에 의한 공산화 등의 상황과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38선을 중심으로 모아졌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국내 정치세력간의 투쟁과 결부되어 폭발적인 대중투쟁과 빨치산 투쟁이라는 양상을 가진 내전으로 발전했고, 결국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자본주의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급작스러운) 남침으로 해석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남한 내에서 혁명역량들을 절멸시키게 된 계기가 된 한국전쟁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남한에서는 반공주의자들의 남침설에 대해 북침이라는 논리로 맞대응하고 있지만, 단순히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는 군사학적인 전쟁시점 판단문제가 아니라 당시 해방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제국주의의 역할, 내전의 성격 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해방사나 남한의 역사들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우파들 중심의 관점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펼쳐진 제국주의의 침략전쟁, 계급투쟁 등이 남한에서만 유독 독특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이런 일반적인 국제 정세가 남한에서 집중되어서 표현되었음을 명확히 한다면, 해방 이후의 남한의 역사는 철저하게 계급적인 시각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민족 간의 전쟁을 야만적이고 잔학한 것으로 늘 비판해 왔다. 그러나 전쟁이란 수세기 동안의 역사 속에서 늘 일어난 것이므로, 마르크스주의자의 임무는 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을 규명하고 전쟁의 성격을 밝혀주며 노동자 계급과 전 근로대중이 제국주의와 투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1. 해방정국
8.15 해방은 구식민지 사회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조선 자체의 실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적 요인이었던 연합국에 의해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의 주체적인 결정보다 외부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당시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선의 정치세력들은 일본의 패전이 기정 사실화되기 시작하면서 반도 진공계획 등 나름대로의 건국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계획으로만 그쳤을 뿐, 결국 해방정국은 미소 양국의 분할점령으로 시작되었다. 미군이 점령한 38선 이남 지역에서는 폭력적인 점령정책으로 일관했던 미군정에 의한 민족모순으로 불거졌지만, 한반도 남부지역의 민족해방투쟁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이미 한편에 자리를 잡았던 사회주의 대중국가 건설을 대안으로 얼마나 대중을 조직하는가가 최대의 관건이 되었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 속에서 미군정 시기 내내 인민항쟁이 촉발되면서 혁명적 정세가 지속되었다.
가. 해방 직후 근로인민들의 정치적 진출
8.15 해방 직후이자 미군이 점령하기 이전,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 치하의 억압적인 통제가 사라지면서, 그 이전까지 쌓였던 각종 수탈과 억압에 대한 반발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여운형이 해방을 준비하며 사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건국동맹을 근간으로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이는 해방 후 한 달이 채 못 되어 대중들의 광범위하고 자발적인 지지를 업고 전국의 각급 행정단위마다 그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당시 건준위는 주요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일본인과 민족 반역자의 토지를 ‘무상몰수’하여 ‘무상분배’한다는 기본적인 정강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지방의 건준위는 각 지역별 인민위원회로 전환하여 대부분 실질적인 행정력을 장악했다.
나. 미군정의 실시와 피폐해진 사회경제적 상황
새로운 국가권력의 맹아였던 인민위원회는 미군이 38선 이남 지역을 점령해 들어오면서 무력에 의해 파괴되었다. 미군이 한반도 남측에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은 바로 인민위원회를 무력으로 분쇄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한 지역의 점령을 통해 인민위원회를 파괴한 미군은 우선 일제에 복무했던 자들을 중심으로 군대, 경찰, 관료조직을 정비하면서 국가기구의 모습을 완성시켜 갔다. 미군정은 이러한 국가기구를 기반으로 하여 토지 및 적산처리에 관한 경제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당시 대중들의 요구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즉 해방과 동시에 일본 등으로 도망갔던 친일 지주와 자본들의 재산권을 인정하면서, 이들로부터 수탈당해왔던 노동자, 농민은 과거와 마찬가지의 삶을 강요한 것이다. 점령군만 일제에서 미군정으로 바뀌었지, 실제 생활에서는 변화가 없는 상황이었다.
해방 후 가장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는 토지개혁이었다. 해방은 되었지만 북한과는 달리 남한에서는 토지의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일본인과 친일세력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당시 토지개혁을 둘러싼 기본적 대립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인가 ‘유상몰수 유상분배’인가로 압축되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안은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안으로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원하는 것이었고, ‘유상몰수 유상분배’안은 미군정과 한민당의 안으로 지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동적인 해결방안이었다.
미군정은 기존 소작제를 유지하는 한편, 토지적산에 대해서는 미군정이 이를 직접 접수했다. 이후 미군정은 분배 대상 토지를 귀속 농지로만 제한했는데, 이러한 시책은 전면적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요구와 달리 어마어마했던 친일 지주들의 토지의 대부분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즉 골격은 그대로 두고 조그만 떡고물을 던지면서 이 무렵 맞물려 있던 남한 단독 선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한편 해방 후 노동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노동조합전국평의회로 조직되었고 전평은 공장자주관리운동을 벌여 나가면서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자주적인 인민 정권의 수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일본인 자본가들이 남겨 놓고 도망간 산업시설을 직접 접수하여 미국인 고문에게 이를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미군정과 한국인 경찰, 극우 테러 단체에 의해 잔인하게 파괴되어 갔다. 이와 동시에 공장 생산이 오히려 위축되면서 노동자들과 농민등의 대중들의 물자부족이 심각해 졌고, 반대로 미군정과 한민당에 밀착한 관리인들만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렇듯 미군정에 의한 공업생산의 파탄, 여전히 변화되지 않은 봉건적 소작관계로 인한 농업생산의 정체로 물자 부족이 심각한 가운데, 미군정은 통치 비용 조달을 위해 화폐를 무더기로 찍어냈고, 그 결과 악성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었다. 미군정의 비호를 받고 있던 과거 친일경력의 부패한 경찰과 자본가들이 미곡을 매점매석하여 물가상승을 조장하고 미군정 당국이 당시 주요하게 바라보았던 전략적 지역인 일본에 식량을 비밀리에 밀수출하기 위해 공출을 강화함에 따라 근로인민들의 삶은 이루 말 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의 남측 점령은 붕괴된 통치기구를 재건하고 미군정이 일제의 조선 총독부를 대체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 남쪽을 중심으로 단지 미국 제국주의로 대체된 상황에서 한반도에는 여전히 민족해방이라는 과제가 사회혁명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더불어 당시 노동자 농민들의 혁명적이었던 요구는 투쟁의 과제를 반제국주의 투쟁을 통한 사회주의 국가건설로 지도되었어야 했다.
<다. 인민항쟁
친일 경력을 가진 군정 관리들의 부패와 미군정의 미곡정책 실패로 인한 농민들에 대한 가혹한 쌀 수탈, 쌀값 폭등으로 인한 전 인민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갔다. 미군정에 대한 노동자 농민들의 불만은 날로 고조되어 갔다. 이러한 불만은 조선 공산당의 영향력이 급격하게 강화될 수 있는 상황을 낳았다.
1946년 9월 23일 부산의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9월 총파업의 막이 올랐다. 파업과 대중 시위의 물결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당시의 투쟁에 대해 특히 좌익 성향이 강했던 대구지역의 파업과 시위를 미군정 산하 경찰이 폭력적으로 대응했고, 이는 투쟁의 수위가 더욱 격렬해지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들은 경찰서를 공격하고, 스스로 무장을 하면서 폭동으로 발전하였다. 미군정은 미군을 직접 투입하여 시위를 진압하여야만 했다. 대구봉기는 일단 진압되었지만 그 여파는 경북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소작제에 반대하는 추수투쟁을 전개해 갔고 10월부터는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의 도시와 농촌으로 투쟁이 확대되었다. 9월 총파업부터 10월 인민항쟁까지 동원된 대중은 약 2백여만 명에 달했고, 그 중 사상자만 수천 명이 발생했다.
근로인민의 투쟁은 단지 생존권적 투쟁에 머무르지 않았다. 피폐해진 생존의 위기의 해소가 혁명적인 해결책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군정의 반혁명적 조치에 따라 해방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미군정 시기에 계속 터져 나온 인민항쟁은 당연히 반제국주의 투쟁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 반대투쟁인 2․7 구국투쟁으로부터 그 절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1947년 10월 17일 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계획적으로 결렬시킨 미국은 유엔을 통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계획을 일정에 올리려 하였다. 당시 미국의 계획은 이승만을 위시한 독립촉성계열(한독당)을 제외하고 좌파와 김구 등 중도우파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세력의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켰는데, 1948년 2.7 구국투쟁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2.7 구국투쟁은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총파업으로부터 시작되어 농민 등을 포함한 전 인민의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2월 7-9일 3일간에 걸쳐 전개된 이 투쟁은 참가한 인원이 150만 명에 달했고 1만여 명이 검거되었으며 57명이 사망하는 등 심각한 유혈 사태로 나타났다.
4월 3일 제주도에서도 단독선거, 단독정부에 반대하는 인민항쟁이 일어났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까지 벌어진 제주 4.3항쟁에서 전체 도민의 10% 이상이 미국과 이승만에 의해 학살당했다. 한편 제주도 도민을 진압하라는 미군정의 명령을 받은 여수, 순천 지역의 군인들이 미군정에 반대하여 무장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이후 지리산 등 산악지역으로 거점을 옮겨 빨치산 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2. 해방 후 자생적 대중투쟁의 파괴, 당 전술의 오류(주체역량의 측면)
가. 1945 ~ 48년 : 자생적 대중 투쟁 고양과 미군정에 의한 파괴, 좌익들의 오류
해방 직후에 전국적으로 건설되었던 인민위원회는 대중이 자생성으로 조직했던 것이다. 북한지역의 상당수가 여운형의 ‘건준’과 상관없이 스스로 인민위원회로 조직되었고, 남한의 일부 지역에서도 건준의 조직적 지도 없이 자생적으로 인민위원회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이들 인민위원회는 각 지역에서 실질적인 통치력을 확보해가면서 이론적인 배경 없이, 생활상에서 필요로 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 조치를 취했다. 이런 조치의 내용은 당시 지주, 자본가들에게 있어서는 인정할 수 없는 혁명적인 조치들로 나타났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인민위원회의 자주성을 인정한 반면, 남한 지역을 점령한 미군은 반대로 인민위원회를 무력으로 파괴해 갔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인민위원회간에 무장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지의 인민위원회는 한반도 남측 전체의 상황 속에서 집중적으로 각각의 지역 인민위원회를 탄압했던 미군정에게 각개격파로 파괴되어 갔다. 이는 당시 혁명적 정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차원에서의 미군정 타도와 대중국가 건설의 계획이 없었던 데에 그 까닭이 있다. 당시 미군정에 대한 남측 지역의 민족해방 투쟁을 계기로 노동자, 농민의 국가권력 장악 계획을 제출했어야 할 남한의 좌익세력들은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한 지역의 좌익 정치세력은 대표적으로 조선공산당이 있었는데, 이들은 남한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반혁명적 조치로 일관한 미국과의 대립을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국제정세와 조선공산당의 소련과의 관계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전후 식민지 처리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1920~30년대 스탈린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외 정책의 이론적 근거인‘일국사회주의론’의 연장선에 있었다. 일국사회주의론은 간명하게 얘기하면 제국주의 국가로부터의 소련방위가 일차적인 목적이었다. 소련은 심지어 그들의 국익이 외국의 혁명가들의 투쟁이 격화되어, 일정한 타협점을 찾고 있던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가 손상될 것을 우려하였다. 실제로 소련은 45년 미국과 영국이 혁명의 물결을 억제시킬 수 있도록 협조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소련의 대외정책은 한반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련은 한반도에서 미국과 충돌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전시에 카이로, 얄타 등에서 열린 국제회담에서 소련이 미국의 전후 한반도 정책에 수동적으로 동의하기만 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유였다. 분할 점령 후 미-소간에 한반도 처리 문제가 재론된 45년 12월 모스크바 외상 회담에 이르기까지 소련은 미국의 신탁통치 안에 대하여 그 방식과 기간 등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제안에 대부분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이와 같은 소련의 한반도 정책은 당시 코민테른의 입장과도 같은 것이었고 이는 조선공산당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공산당은 미국의 분명한 반공기조와 반혁명적인 한반도 정책에 대하여 전면적인 반대를 조직하려 하지 않았다. 1945년‘8월 테제’에서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 등에 있어서 국가권력에 대한 문제는 몰수와 무상분배로서만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미군정과 우익세력들이 물리력을 통해 폭력적으로 대중의 투쟁을 파괴하는 데 대해서도 여전히 국가권력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고 각급 지방에서의 토지문제에 대한 경제적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8월 테제’에서 정치투쟁과의 결합 방도를 제시했다고 하지만, 이는 선언적으로만 그쳤다. 오히려 조선공산당은 노동자들의 공장 자주관리 운동이나 소작농들의 소작제 철폐 요구 등을 위로부터 억누르고 그 투쟁을 임금인상 투쟁이나 소작율 인하 투쟁 등의 생존권적 투쟁에 머무르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의 정세, 주체와 동맹세력에 대한 판단 문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조선공산당은 당시 투쟁의 성격을 민족해방투쟁이라고 바라보고, 반제국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족해방투쟁과 반제투쟁을 단지 민족독립의 측면으로 바라본 한계가 있었다. 당시 조선공산당은 지주 및 자본가 계급 전체에 대해 친일 민족 반역세력이라고 규정했지만, “조공은 해외 망명 세력인 이승만이나 중경 임정 세력은 제한적으로나마 민족해방 운동에 참여해 왔고, 그들과 국내의 민족 반역자 집단과는 별다른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과의 통일 공작에는 적극적”이었다.(「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소나무 68p) 민족해방투쟁 이후에 사회주의 건설투쟁이라는 단계론적인 시각이었다. 그러나 이후 현실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듯이 당시 미군정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세력과 독립운동 세력 중 (자본가, 지주 등의)우익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면서 친미적으로 당시의 한반도를 재편하려 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조선공산당은 미군정과 우익세력을 다르게 본 한계가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이런 상황을 단계론적으로 판단하면서 당시 투쟁의 성격이 미군정에 대한 한민족의 민족해방 투쟁이기 때문에 주체설정 문제에서도 독립운동을 했던 우익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것이다.
조선공산당의 이러한 정치적 한계는 스스로 대중적 기반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방직후 3～4년간 대중의 자생성에 의해 만들어진 혁명적 정세와 미군정의 반혁명적 조치는 조선공산당의 정치적 지도력이 광범위한 대중 저변으로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조선공산당은 미군정에 의해 자신들의 대중적 기반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손 놓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여운형의 인민당과 백남운의 남조선 신민당은 지주 및 자본가 계급 일부 등 민족 자본가들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더욱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런 정세판단과 주체, 동맹세력의 한계는 당시 좌익들이 인민전선전술을 적용하려던 것으로 나타난다. 즉 사실상 가능성 없던 ‘좌우합작운동’을 진행하면서, 대중투쟁이 고조된 시기에, 지주와 자본가들에 대해 적극적인 연합전술을 취함으로써, 노동자, 농민에 대한 침탈에 의식적인 무장해제를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맹아이자 무장봉기의 기관이 되었어야 할 인민위원회가 미군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9월 총파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대중파업도 그 폭발력에 비해 한 곳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증기처럼 흩어져버렸다. 이는 광범위한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이나 정치적 확신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증기를 압축하고 그 폭발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실린더 역할을 했어야 할 당시의 조선공산당이 소련의 대외정책에 종속되어 혁명적 지도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오히려 대중의 혁명적 요구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대중투쟁의 자생적인 폭발과 침탈, 파괴로 대중적 역량이 무너져가는 시기가 바로 45년부터 48년까지의 객관적인 상황이었다. 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을 거치면서 각 정치조직들은 투쟁 패배에 대한 위기감을 갖게 된다. 특히 지주와 자본가 계급이 미군정과 함께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당시 지주와 자본가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제출했던 박헌영을 중심으로 하는 남로당으로 재편된다. 그러나 남로당 역시도 여전히 미군정과 우익들의 전면적인 대중역량 파괴에 대해 회피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다만 정권을 인민위원회로 넘기라는 요구가 당시의 미군정에 대한 정치 공세의 최대치였다. 좌익은 48년 1월에 들어서면서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미국을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런 흐름에서 2.7 구국투쟁이라는 큰 투쟁이 펼쳐진다.
나. 1948～1950년 : 대중파업의 파괴, 대중공간에서 분리된 무장투쟁
미국이 유엔 결의를 통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일정에 올리자 그 때서야 남로당은 공식적으로 미국을 제국주의세력으로 규정하고 반제국주의 투쟁을 공공연히 표방했다. 이 시기는 이미 인민위원회가 거의 파괴되고 미군정의 상부구조(경찰, 군대, 관료조직)가 완성됨에 따라 공장 등 생산거점에서의 통제력이 대부분 미군정으로 귀속된 시기이다. 국가권력과 각급 현장의 권력이 동시에 존재했던 ‘이중권력’의 시기를 지나가면서 미군정과 우익세력들에게 힘의 관계가 기울어 간 시기이다.
2.7 구국투쟁을 계기로 남로당은 각급 지방 당부별로 야산대 등의 무장조직을 구성하는 무장투쟁으로 전환한다. 3.22 총파업 1주년을 기념하는 총파업과 단독정부, 단독선거 반대 봉화, 삐라 살포, 기습시위, 학원 동맹휴업 등의 흐름은 제주도에서 4.3 봉기로 터져 나온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산악을 중심으로 게릴라 투쟁을 전개한다. 제주도 진압 명령에 대해 여수 순천에서 군대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키면서, 한반도 남측은 실질적인 내전의 상태에 들어간다.
이런 과정은 이미 해방 후 48년까지의 3년의 미군정 기간 동안 급속하게 터져 나왔던 대중의 자생적인 투쟁과 그 조직체인 인민위원회, 이 과정에서 지도력을 획득해 간 조선공산당은 국가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회피한 데 가장 큰 한계가 있었다.
“노동자대표 소비에트나 그와 유사한 제기관은 봉기의 기관, 혁명적 권력-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기관으로 보아야 한다. 봉기와 관련시키지 않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레닌, 몇 가지 테제, 1915)
당시 자생적으로 벌어졌던 공장자주화 및 산업합리화(전평), 토지개혁(농민) 등의 대중들의 혁명적 문제 해결 시도에 대해, 조선공산당, 남로당 등은 생존권 문제에만 국한된 경제적인 접근으로 한정지었다. 이 사이 미군정과 우익세력들은 국가권력을 강화하고, 폭력적인 대중역량 파괴를 자행하면서 이중권력의 상황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 시기 투쟁의 중요한 특징은, 대중파업의 공간에서 촉발되는 무장봉기가 아닌, 대중공간과 분리된 무장 투쟁이 따로 진행되면서 이후까지 게릴라전과 같은 군사적 형태로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남로당과 대중과의 간극을 벌이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전쟁은 그 이전까지 평화로운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침략으로 발발한 것이 아니라, 이런 남한 내의 대중투쟁에서 무장투쟁으로 내전 상황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38선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는 무력 충돌이 벌어진 가운데에 촉발된다.
3. 한국전쟁 이후, 남한 노동자 계급의 역량으로 남한을 변혁해야!
조선의 독립은 자력에 의한 해방은 아니었지만, 일제의 폭력적인 지배력이 일시에 통제력을 상실함에 따라 대중의 자생적인 조직과 투쟁이 분출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한반도 남쪽을 중심으로 미군정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 세력이 다시 점령을 하게 되면서, 여전히 ‘민족모순’이 당시 해결해야 할 주요한 모순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노동자계급은 솔선하여 자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해 봉기해야 한다.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노동자계급은 진정하게 조국을 사랑하는 계급이다. 제국주의에 대하여 사회주의 국가가 전쟁을 할 때에는 물론이지만, 민족해방투쟁을 할 때에도 조국옹호를 인정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본질과 정신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반면 제국주의 국가 간 전쟁과 관련해서는 조국옹호에 반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사회주의의 바로 전단계이고, 제국주의 전쟁은 먹이를 둘러싼 도적들의 전쟁이며, 어느 쪽의 연합국에도 ‘선진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있고, 어느 쪽의 연합국에도 사회주의 혁명의 계기가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같은 책)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당시의 민족해방 투쟁의 성격은 단지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로만 제한될 수가 없었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이미 노동자들은 공장을 배타적으로 점거하여 관리하고 있었고, 농민들은 토지의 전면적인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근로인민 대중의 혁명적 요구는 반제국주의 투쟁을 통한 연속혁명으로서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상정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투쟁 주체와 당시 민족해방투쟁을 계기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단계로서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은 미군정과 과거 친일 부역자 및 일부 친미 우익들이 가지고 있었지만, 노동자, 농민 등의 대중들이 독자적인 인민위원회 등으로 조직되면서 일시적으로 각종 공장, 토지 등에 대한 접수를 했고, 이로써 생산 현장에서의 권력은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남아 있었다.
당시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남과 북으로 영토상의 분단은 있었지만, 이런 분단이 완전히 이질적인 두 개의 국가로까지 확립되지 못한 인위적인 분단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북측의 조선인민공화국과 남측의 대중들이 미군정과 우익들과 대립하는 구도였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보아야 할 문제는 남쪽의 주체역량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개개의 그룹이나 당의 의지뿐 아니라, 각 계급의 의지와도 관계없는 이러한 객관적인 변화가 없으면, 혁명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객관적인 변화의 총체가, 바로 혁명적 정세라 불리는 것이다. …또한 혁명적 정세가 혁명으로 전화하는 데에는 이상에든 객관적 요인에 주체적인 요인이 추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같은 책)
한국전쟁을 통해서 입증되었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외피일 뿐이었던 UN이 개입함과 동시에 북측의 물리력은 한계가 곧장 드러났다. 결국 남측의 투쟁역량이 얼마나 있었고 그것과 북측이 얼마나 긴밀하게 통일되어 있는가가 당시 미완의 내전이 승리할 수 있는 주요한 판단 기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한 내부에서의 투쟁역량이 와해되는 가운데 정치적 지도력은 급속하게 확장되는 시기가 있었지만, 코민테른의 ‘인민민주주의 전선’의 적용인 ‘좌우합작운동’, 일국사회주의론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국에 대한 유화적 대응은 대중역량이 파괴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좌우합작운동은 투쟁 주체 및 동맹세력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면서 일관된 투쟁을 하는데 장애가 됐고 미군정에 대한 유화적 대응은 폭력적 탄압에 의해 대중투쟁 기관들은 무력화되면서도 국가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회피하면서 경제적 요구수준에 머물게 했다.
우리는 45년부터 48년까지의 기간동안 전개된 대중의 투쟁 고양 시기와 48년 이후 진행된 남로당의 무장투쟁, 한국전쟁 등의 시간적인 차이를 확인하게 된다. 그 결과 무장투쟁의 양상은 게릴라전의 형태로 대중투쟁과 분리되어서 나타나게 된다.
현재 남한 지배계급은 한국전쟁을 북한에 의한 남침으로만 거론하면서, 그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불완전한 광복, 미군정에 의한 남측 점령에 대한 ‘해방’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런 졸렬한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할 가치도 없다. “전쟁이란 단지 다른 수단을 이용할 뿐인 정치의 연장이고, 국가와 지배계급이 평상시 실시하는 정책과 그들이 수행하는 전쟁은 그 성격을 같이한다.”(같은 책)
다만 현재 남한운동 진영 중 우파들에 대해서는 거론해야 한다. 현재의 남한 내 우파들은 여전히 해방 직후의 혁명적 분출과 당시 하나의 국가가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기억’을 지금에도 적용하려 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이런 과거의 상황들이 단절되고, 변화되는 데 중요한 기점이었음을 애써 외면한다.
우리가 변증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항상 고정 불변의 상태가 아니라, 항상 변화하는 상황들을 전제로 한다. 즉 해방 직후의 다양한 상황, 관계들과 한국전쟁 이후의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브루스커밍스가 “한국전쟁은 시작이 아니라, 대단원”이라고 했던 것은 반만 맞는 얘기이다.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점까지를 바라보면서 한국전쟁은 이미 그 이전에 있던 내부의 상황, 관계들이 결정적으로 터졌다는 점에서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전쟁 이후에 달라진 상황과 변화된 관계들은 급격한 것이었다. 이 급격한 상황의 흐름은 그 이전에 폭발적으로 터졌지만 폭력적으로 파괴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던 대중투쟁의 침체 국면을 한층 더 급격한 침체로 몰아갔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체제에 대한 어떤 형태의 위협도 없이 자리를 확실하게 잡은 남한의 국가권력과 침체된 대중투쟁, 강화된 반공 이데올로기 공세 등으로 완전히 이질적인 사회라는 사회구조, 의식구조가 자리 잡았다. 한국전쟁은 그 이전 관계들의 대단원이었지만, 그 결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당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혁명적 정세와 일시적인 대중투쟁의 고양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체역량의 측면인 당의 대응에서는 중요한 국면에 있어서 오류들이 나타났다. 그 결과 48년 이후에서 한국전쟁까지 이르는 내전의 기간 동안 남한 측의 주체역량이 오히려 급속하게 붕괴되는 국면이었고, 전쟁 이후 남한 내부의 혁명 역량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파괴되는 결과를 가왔다.
분단의 출발은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 요인에 의한 형식적인 영토분단이었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은 실질적으로 우리 내부에 자리 잡았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관료적으로 타락하면서 당시에 가졌던 진보성을 상실하고, 현재에 있어서는 남한의 계급투쟁에 이론적, 실천적으로 해악이 되고 있다. 자민통 세력들은 노사협조주의를 외치고, 북한은 자본주의적 통일세력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하면서, 남한 내의 계급투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계급투쟁의 문제를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왜곡하고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을 민족주의의 포로가 되어 계급협조주의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자민통과 그들이 지지하는 해방직후의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진보성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변화된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민통은 여전히 남과 북을 통틀어 유일한 당으로 조선노동당을 얘기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변화된 상황 속에서 자민통 세력의 비과학적인 관점이 현실 운동에서 미치는 악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졌던 한국전쟁만 보아도 남한 내에서의 주체역량이 중요함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형식적으로만 분단된 상황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분단이 ‘고착’된 상황이다. 자민통은 이런 변화된 북한과 남한을 연결하기 위해서 ‘민족’을 얘기할 뿐이다.
우리는 당연히 남한 노동자 계급에 의한 남한 내의 변혁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에 있어서는 북한 인민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북한 노동자들의 투쟁성, 능동성, 역동성 복원을 통한 북한의 관료적 지배계급과 맞선 투쟁을 통해 변혁해야 한다. 남한의 노동자 계급과 북한의 노동자들의 계급적 통일이 진정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노/정/협>
|
|
|
![]() |
![]() |
 |
|
![]() |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150-898)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15-3 301호
노동자정치신문 Tel. 070-8254-1917 / E-mail labor04@jinbo.net
copyleft by 노정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