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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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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3 14:47:44, 조회:2,273, 추천: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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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일총선 이후 등장한 사민당과 기민당의 우경화된 대연정
독일에서 대연정이 성사되었다. 지난 9월 18일에 있었던 독일 총선 결과 두드러진 득표율 차를 내지 못했던 독일사민당과 기민-기사당연합이 결국 연합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지난 98년, 16년 간 지속되던 보수 연합의 콜 정권을 교체하며 야심만만하게 출범했던 사민당-녹색당 연합은 계속된 우경화 정책으로 꾸준히 지지자들을 이탈시켰고, 슈뢰더의 불신임과 조기총선이라는 소동을 벌이면서 결국 34.2%의 지지율을 얻으며 정국의 주도권을 내 놓게 된 것이다.
대연정의 결과 수상직은 기민당의 당수 메르켈이 맡기로 했다. 내무장관 등 6개의 부처를 기민당에서 맡기로 했고, 노동부 장관 등 8개의 장관직을 사민당에서 차지하였다. 형식적으로 정부 부처들을 나눠 먹는 데는 합의를 보았으나 내용적으로는 실업문제나 재정 문제를 주되게 해결하겠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합의 사항은 없다. 다만 사민당의 ‘아젠다 2010’의 기조를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는 등 경제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에는 합의를 보고 있다. 벌써 아우토반을 민영화하겠다는 이야기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예고된 대연정, 보수정당과의 화합
사실 집권 당시 사민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수십 년 간 사민당의 텃밭이던 지역에서조차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 사민당은 재집권에 대한 상당한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조기 총선의 결과와 대연정은 사민당의 입장에서는 의외의 선전이기도 하다. 기민당이 반노동자적 정책(백만장자든 택시 운전기사든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키르히호프 감세안)을 내놓아 지지율이 하락한 것의 덕을 본 측면도 있다. 심각한 지지하락으로 재집권마저 불안했던 사민당의 이번 대연정은 앞으로 사민당이 보다 노골적인 우경화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연정은 사민당의 일관된 우경화의 결과이다. 집권 이후 사민당의 신자유주의 노선은 다른 보수당들과의 차이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독일 판 제3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중도 노선은 ‘복지국가의 경쟁국가로의 재편’을 주요 내용으로 조세 개혁이나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해왔다. 구체적으로는 복지, 의료, 실업 연금 등을 감축하고 ‘노동 시장을 개혁’하겠다는 내용의 ‘아젠다 2010’을 내세웠으며, 2004년 초에는 실업 보조금과 실업 수당 등을 통합한다며 국가 보조금을 삭감하겠다는 ‘하르츠Ⅳ 법안’으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과거 보수-자유연정 때에도 감히 손대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복지에 대한 대대적인 ‘개악’을 사민당이 시행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복지국가로 점진적으로 해결해나가겠다는 의지조차 내버렸으니 이제는 독일사민당을 사민주의 정당이라 부르기도 무색하게 되었다.
물론 독일사민당의 우경화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집권이라는 조건에서 갑작스레 진행된 일도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노선이 지배하던 때부터 시작해서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계급정당임을 포기하고 국민정당으로 나아가면서 독일사민당은 계속되는 우경화의 길로 치달아왔다.
60년대 중반에 기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처음 집권능력을 보여주고 98년 녹색당과 연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집권하기까지 독일 사민당은 꾸준히 노동자계급을 배신해왔다. 그리고 이제 다시 보수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였다. 독일사민당의 우경화와 지금의 대연정은 개량주의 정당의 필연적 결과이며 미래인 것이다!
독일사민당이 부르주아국가를 대변하고 자본의 이해를 옹호하고 있다는 면에서 기민당 등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지만 그들 간의 정책들이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최근 기민당이 보다 급진적으로 우경화하였기 때문이다. 세금제도나, 대미관계, 터키의 유럽연합 참여 문제 등에 대해 사민당과 기민당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기에 앞으로의 연정이 탄탄대로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몇 가지 정책들에서 차이점을 내세우며 집안싸움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우경화 과정에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된 이상 그들은 보다 강력하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해 나가며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연정- 부르주아 국가의 수호를 위한 담합
“자본가들은…… 정부의 입지가 탄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1848년 이후로 수십 년 간 사용했던 방법, 노동계급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그들을 분열시키며 마침내 무력화시키는 방법에 의지했다. 즉, ‘연립내각’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부르주아와 사회주의 진영의 이탈자들로 구성되었다.”(레닌, 「혁명의 문제들」『세계를 뒤흔든 열흘에서 재인용』)
러시아 혁명기의 상황과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다르다 할지라도 연정은 부르주아 체제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언제든 부르주아 정당 간 연합이 가능함을 입증해주는 정부 구성 방식이다. 선거 기간 동안 아무리 차별성을 부각하고 온갖 대중들에게 투표를 호소하더라도 그들은 부르주아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공통된 계급적 이해를 갖고 있으며 연정이라는 방식을 통해 언제든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경제위기, 자본의 위기가 부각되는 시기에 연정은 더더욱 그들이 단결된 힘으로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이는 사민주의 정당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독일 사민당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 그들이 어떤 야심만만한 기획을 갖고 독자 집권까지 가더라도 전 세계적 경제위기와 압박은 그들의 ‘사민주의적’목표조차 흐릿하게 만든다. 결국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대연정을 통해 보수정당과의 담합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독일의 수상으로 내정된 기민당의 메르켈은 ‘독일의 대처’라고 칭해질 만큼 반동적인 정치노선을 갖고 있다. 또한 ‘콜의 소녀’라고 불릴 만큼 기민당 내에서의 안정된 기반과 정치적 수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연정 내에서의 메르켈은 단순히 ‘얼굴’정도의 역할만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몇 가지 정책면에서 사민당과 기민당은 아옹다옹하다 가도 전반적으로는 메르켈과 기민당의 내용에 끌려가는 모습을 취할 것이다. 이미 보수정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민당은 기민당의 정책적 제안들을 거부할 의사도 없고, 거부할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문제에서 그들은 국가 경쟁력 강화와 실업 문제 해결을 핑계 삼으며 노동자계급에 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전망을 상실한 독일노총
7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경제 위기로 독일의 실업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1970년에는 0.5%에 불과하던 실업률이 80년대는 2.7%, 90년대는 4.8% 까지 증가하다가 2000년대부터는 10%에 달하였다. 실업률이 계속 증가하는 과정에서 독일노총(GDB)은 노동시간 연장, 실업급여 축소 등 후퇴된 내용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이 분명 노동자계급에 반하는 노선을 갖고 노동자들에 대한 배신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독일노총은 사민당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독일 사민당의 집권 이전부터 집권 이후 ‘아젠다 2010’ 등으로 대표되는 정책들에 이르기까지 자본의 공세적 공격을 엄호해주는 사민당의 태도에 독일노총은 순응적이었다. 결과 70년대 이후 임금인상률은 꾸준히 하락해 왔으며 노동조건은 악화되고 일자리는 불안정해 졌다.
독일노총의 협조적인 태도는 독일 판 노사정위원회라 할 수 있는 보수당 정권에서의 ‘노동을 위한 동맹‘과 슈뢰더 정권에서의 ‘노동 직업훈련 및 경쟁력을 위한 동맹’에의 참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동맹의 목표들은 꽤나 심각했다. 사회보험의 구조개혁, 고용촉진을 위한 일자리 분배 및 노동시간 유연화, 기업 세제개혁, 유연한 조기퇴직제도 등 동맹의 목표들은 대화로 풀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의 주체들이 참가한 기구는 역시나 별 다른 성과나 내용 없이 지지부진해졌다. 조합주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전통을 고수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불만을 공세적 투쟁으로 조직하지 못했던 독일노총은 ‘노동을 위한 동맹’같은 기구들을 통해 해결을 보려 했지만 이는 애초에 성공할 기획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속적 우경화와 보수정당과의 연정으로 망조가 깃든 독일사민당이 노동자들의 정치적 전망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독일 노총의 협조주의적 태도 또한 자본의 공격을 역전시킬 어떤 투쟁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사민당에 대한 지지 이탈은 노동자들에게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독일의 상황은 독일사민당이나 기민당 그 어느 정치세력도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민당에서 나온 이들과 독일민주사회당(PDS)이 주축이 된 ‘좌파연합당’이 녹색당(8.1%)을 넘어서는 8.7%라는 상당한 지지율을 얻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사민당의 우경화에 대한 비판에 머무르는 의회주의 정당이기에 근본적이 대안이 될 수 없다. 그 어느 정당도 독일 노동자 계급에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독일 노동자들은 보다 확고하고 급진적인 정치적 대안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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