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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노동자정치신문70호목차/리영희선생 타계에 부쳐 - 우상의 지속과 우상숭배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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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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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8 01:53:11, 조회:4,072, 추천: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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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 타계에 부쳐
- 한국사회 우상의 지속과 우상숭배자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리영희, 「우상과 이성」 서문 중에서).
리영희 선생의 타개 이후에 한나라당을 제외하고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정치세력들은 물론이고 이른바 ‘386세력’, ‘진보 지식인’ 등 입을 가진 자들은 하나 같이 ‘사상의 은사’를 애도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리영희 선생이 저들의 ‘사상의 은사’라면 저들은 선생의 ‘사상의 제자’를 자처하는 셈인데 ‘구관이 명관’이어서 그런지 제자를 자처하는 그 누구도 리영희선생의 진보적 사상과 치열한 삶의 발뒤꿈치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보지식인과 사이비 좌파’의 우상숭배
분단 상황이 강요하는 폭력적, 야만적 통제의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정권의 유신통치가 끝을 다해가는 시절, 하지만 일제시대 말처럼 그 통치가 당시에는 영원이 지속될 것처럼 보이는 시대, 따라서 지식인들의 투항과 변절이 절정에 이르는 시대를 짓누르는 암울한 어둠의 시대에 리영희선생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수차례의 언론사 해고와 교수직 박탈에도 굴하지 않고 그 시대의 ‘우상’에 맞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투쟁했다. 리영희 선생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반동적 폭력과 저열한 인식이 판치는 사회에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과 공기를 가져다주려고 투쟁했다.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속에 갇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를 궁리하”는 노신의 고민을 인용하여 그에 대한 헌사에 대신했던 것이다. 내가 이 나라의 한 시대를 사는 ‘반의식’의 철통 속에 사는 학생들에게 어느 만큼의 신선한 공기와 빛을 넣어주었는지는 나도 계량할 수 없다. 하지만 권력을 쥔 쪽에서 말끝마다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호통을 치는 것으로 미루어 헛수고만은 아니었었다고 자위한다(리영희, 「우상과 이성의 일대기」, 『역설의 변증』, 두레, p.285-286).
리영희 선생은 반공독재의 서슬에 맞서 ‘이성’이라는 진실을 말한 대가로 반공법의 굴레에 빠져 검사 앞에서 죄수복을 입고 포승과 수갑을 찬 채 심문을 받고 있는 자신을 인류에게 불과 광명을 가져다주고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로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몽매무지하고 뻔뻔한 ‘진보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은 선생이 시대의 벽에 구멍을 뚫어서라도 넣어 주려했던 ‘신선한 공기와 빛’을 스스로 차단하고 다시 자본주의에 대한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한국의 베른슈타인이 되고자 하는 주대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렇게 본다. 반공주의만이 유일하게 허용된 사상으로 청년들의 머리를 지배할 때, '사상의 은사'는 반공주의의 우상을 깨트렸다. 그리고 80년대 말 동유럽이 무너지고 75년간 계속된 인류사의 대실험이 종료되었을 때, 그는 공산주의 우상을 깨트리고 사회민주주의를 말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선생의 정직한 고백에 힘입고 용기를 내어 사회민주주의자로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고, 사회민주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먼 훗날 이 땅에 꽃피울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리영희 선생에게 크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 만약, 선생이 건강하셨다면 21세기 초에 나타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건설에 나선 젊은 지식인들을 격려하시고 큰 도움을 주셨을 것이다. 오호 애재라!(주대환, 「'사상의 은사'는 사민주의자였다!」, 프레시안, 2010-12-14)
주대환은 리영희 선생의 치열한 삶과 사상을 ‘사민주의’ 한 마디로 규정하며 고인을 마구잡이로 짓밟고 난도질하고 있다. 쏘련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 ‘신노선’이라는 청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92년 한국사회주의노동자당이 안기부에 ‘탄원서’를 올리고 합법주의와 청산주의를 구걸했던 주대환 같은 작자들이 서슬 푸른 군사 파쇼 정권의 야만적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갖은 고난을 겪었던 리영희 선생의 사상의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구속자들에 대해서 현행 헌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고 조선일보와 우익신문에 반북, 반공주의를 내세워서 기고하는 주대환이 더러운 입으로 리영희선생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리영희선생이 분단모순과 제국주의 모순 하에서 한국자본주의의 파쇼 군사독재 정권의 ‘우상’과 맞서 싸워왔다면 주대환에게 ‘우상’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건 ‘구좌파’ 공산주의의 ‘우상’이고 사회민주주의는 우상에 맞서는 ‘이성’이다. 주대환은 파렴치하게도 자신들이 내건 청산주의와 합법주의 투항노선과 반북, 반공주의 노선을 리영희선생의 추모를 핑계로 합리화하고 있다. 오호 애재라! 반북, 반공 개량주의자들이 판치는 한국사회 정치현실이 얼마나 슬픈가! 주대환만이 아니다. 북의 권력변화에 대해 북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좌파들이 앞장서야 한다면서 우익들과 동조했던 손호철의 “선생님은 가셨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글은 피로 쓰는 것이다"(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내 유일한 사치는 만년필…글은 피로 쓰는 것」, 프레시안, 2010-12-06)의 좌파연하는 태도는 위선적이다 못해 구역질이 난다. 이렇게 몰역사 의식과 몰계급 의식, 반공, 반북주의의 ‘조건반사의 토끼’들이 고인을 기만하고 사기치고 있다.
우리들의 인식론적 기능은 냉전 사상과 체제 속에서 조건반사(條件反射)의 토끼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예로 ‘중공’이라는 용어는 즉각적으로 ‘기아’ ‘괴뢰’ ‘피골상접’ ‘야만’ ‘무과학’ ‘반란’ ‘정권타도’ ‘침략’ ‘호전’.... 등 냉전용어와 그것이 담고 있는 그와 같은 관념을 우리에게 일으켜왔다. 우리는 강요된 조건반사의 토끼가 되어 있다(리영희, 「조건반사의 토끼」, 『전환시대의 논리』, 창작과 비평사, P.165-166).
교수라는 직위에 안주하며 ‘진보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작자들이 과연 ‘글은 피로 쓰는 것’이라며 한 평생을 독재정권과 싸우면서 굴복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던 고인의 정신을 백만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른바 몰지각한 ‘진보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급진좌파라고 자처하는 국가자본주의 사회주의 세력들도 북 핵개발에 대해 반북, 반공주의적인 양비론을 늘어놓으며 ‘조건반사의 토끼’가 되어 북과 사회주의를 ‘타도해야할 착취체제, 반동체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리영희선생은 북의 핵문제의 본질에 대해 단면적 시야로 보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일갈하고 있다.
반세기에 걸쳤던 비이성적인 냉전사상과 광적인 남한식 반공주의에 순치된 한국인의 의식형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 ‘단안(單眼)’적 사물판단이다. 국제사회의 제반문제를 오로지 반공주의라는 하나의 시각으로 관찰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개개의 사물, 현상, 관계를 평면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그리고 비(非)원근법적인 단면적 시각으로 관찰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 남한의 지식인들에게 이 같은 인식능력의 결핍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이 남북문제이며, 그 중에서도 핵문제를 둘러싼 왈가왈부이다. 지난 얼마 동안의 시기에 걸쳐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북한 핵’과 이를 둘러싼 제반 문제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북한문제인 만큼 남한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남한의 문제인 만큼 미국의 문제이고 세계 각국의 문제이다.(리영희, 「한반도의 비핵화 · 군축 · 그리고 통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두레, P.58-59)
연평도 포격사건을 두고 북의 야만성을 규탄하는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의 경박함에 대해 리영희선생은 뭐라고 했을까?
단일 기동훈련에 세계최대급 핵항공모함 두 척이 중심이 된 ‘팀스피리트’는 북한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대북한 핵공격 전쟁연습으로 비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준전시 체제’로 대응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령 소련의 (또는 중국의) 최강 핵군사력과 북한군이 합동한 27만 명의 ‘소련-북한판 팀스피리트’ 훈련 상륙작전이 휴전선 바로 북쪽 해주(海州)에서 또는 고성(高城)에서 해마다 전개된다면 남한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군사력에서 ‘공격’용이냐 ‘방위용’이냐의 언쟁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리고 다분히 자의적 주장이고 흔히는 속임수다. 방어용만으로 제조된 탱크나 대포는 없다(같은 책, P.66).
93년 9월에 쓴 리영희선생의 주장이 2010년 천안함 사고와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 서해에서 전개되는 작금의 정세를 염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리영희 선생의 사상과 삶
리영희 선생이 ‘사상의 은사’라면 선생의 사상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인가? 리영희 선생은 ‘경제학 · 철학 초고’나 ‘독일 이데올로기’ 등 맑스의 저작들에서 가장 많은 정치적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바 있다. 그러나 리영희선생을 맑스주의자라는 한 마디로 규정하기도 어렵고 스스로도 맑스-레닌주의자임을 부정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리영희선생이 마오주의자였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다르게 선생은 중국사회주의 현실에 대해 폭넓게 연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중국사회주의 현실을 통해 한국사회의 반동성을 폭로하고자 하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이를 근거로 마오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다.
리영희선생은 맑스주의의 영향 속에서 러시아 혁명의 거대한 영향과 이후 중국혁명을 통해 중국사회주의와 마오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은 사실이다. 쏘련 사회주의의 현실에 대해서는 선생 스스로가 러시아어를 배우다가 포기한 사례를 말하곤 했는데 중국사회주의에 대한 통찰력에 비해서 쏘련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왜곡된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했고, 전면적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다. 특히 쏘련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는 자신을 ‘중도 좌파’로 자처하며 사민주의가 대안이 아닌가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쏘련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인 1994년 나온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가지고 리영희 선생의 변절로 이해하는 젊은 맑스-레닌주의자들도 있었다. 또 이를 근거로 주대환은 리영희선생의 사상은 사민주의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도 여러분이 고민했을 그런 지적 · 사상적 고민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 아직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도 못했고, 나의 두뇌로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릴 자격도 없다. 다만,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그 주제에 관해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간청 때문에 마지못해서 그 동안에 나도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괴로워하는 심정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과 나누게 되었다. 이론이나 확신이라기보다는 나의 근래의 심경에 불과하다. 지적고민의 고백으로 들어주면 된다”(「사회주의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두레, P. )
이것은 지적 겸손함의 표현일 수도 있고, 지적 솔직함의 표현일 수도 있다. 리영희선생은 쏘련 사회주의 붕괴와 중국 사회주의의 자본주의화 이후에 대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고민하고 갈등했다. 하지만 리영희 선생은 이를 ‘이론이나 확신’ 보다는 ‘근래의 심경’ 수준으로 이야기 하였다. 리영희선생은 전위조직과 노동자계급 속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전위적 이론가나 혁명가는 아니었다. 리영희선생은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해 “결국 공산주의자 이룩하고자 한 이상향이나 그것이 동원하려 했던 수단과 방식은 인간 개개인의 본질적인 인간성이라 할 수 있는 자유의 추구, 개인의 소유욕의 표현인 무한한 물질적 생산과 부의 축적 본능에게 패배하고 만다.”고 평가하고 있다.
리영희선생은 쏘련 및 사회주의의 근본적인 붕괴 원인이 인간 내면의 소유본성의 문제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중국 사회주의 내에서 마오에 의해 추진되었던 문화대혁명의 영향도 있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제국주의의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공세의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으로는 자본주의 소유욕을 강화시켰던 화폐-시장관계 같은 사회주의 내부의 수정주의의 문제 등인데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인간본성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몰역사적, 몰계급적, 몰과학적인 국가자본주의 세력을 제외하면 공산당 진영에서도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에 대한 충격으로 사회주의 변혁을 청산하는가 하면 그리스 공산당을 비롯한 다른 공산주의 세력들은 쏘련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과학적, 혁명적 인식을 통해 맑스-레닌주의를 다시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거대한 역사적 격변에 대해서 리영희선생 조차도 사회주의 붕괴원인을 이론화 하고 확신할 수 없는 지식인 개인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붕괴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평가는 개인 지식인이 혼자서, 단시일 내에 감당할 수 없는 집단적, 총체적 이고 장구한 과정이어야 한다. 이점에서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리영희선생의 사민주의 주장은 역사적, 조건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리영희선생은 한 사람의 지식인에 불과했고, 맑스레닌주의의 기치 아래 또는 마오주의의 기치 아래 전위정당 활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하려고 해도 당시의 정치상황에서는 그러한 활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리영희선생은 개인의 각고의 지적 노력과 탐구정신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홀로 넓혀나갔다. 외할아버지가 지주 출신이고, 그 외할아버지가 자신의 머슴 출신인 독립군에게 타살당하고 어머니의 분노와 원망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리영희선생은 가족주의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독립군을 흠모하였다.
해방 이후 월남한 가족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반공주의와 한국전쟁에서 통역장교로 복무하며 7년을 군대생활을 하고 그 과정에서 빨치산과 죽고 죽이는 전투를 벌여야 했던 리영희선생은 그러한 체험을 통해 반공주의 투사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의 참상과 인간성의 말살, 소속 연대의 민간인 대량학살에 대한 분노, 분단모순을 온 몸으로 각성하고 진보정신으로 무장하게 되는 기초를 세웠다. 리영희 선생은 진정한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인식의 부재에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정치의식을 자각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리영희선생은 지리산에서 국방군 장교로서 지리산 토벌대로 나선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나는 해방 직후 지리산의 산령과 계곡에 흐른 피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었다. 얼마나 많은 피가 지리산 계곡을 흘러내렸으며, 얼마나 많은 원혼과 가슴이 지리산 주위 8백 리에서 찢기고 울부짓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 지리산 주변지역의 가진 것이라고는 땅 파먹는 재주밖에 모르는 아무 것도 없는 선량한, 선량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시달리는 농민들의 아픔을 나는 몰랐었다. 시대 상황에 대한 무지, 정치의식의 마비, 사회적 현실 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단순히 ‘미숙(未熟)’으로 용납되어서는 안될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 지리산에서이다(리영희, 「전장과 인간」, 『分斷을 넘어서』, 한길사, P.25-255).
리영희선생은 베트남과 중국의 현실에 빗대어 한국사회의 무지와 몽매, 반공주의의 우상에 맞서 투쟁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리영희선생은 맑스-레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한국사회의 반동적인 지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 내에서 그러한 질곡을 뚫고 가장 멀리, 가장 높이 올라간 거대한 ‘사상의 은사’였다.
이러한 역사적 한계와 개인적 한계 속에서도 역사의 질곡을 최대치로 뚫고 나가려 했던 리영희선생의 지적노력과 행동, 분투를 보지 못하고 선생의 변절 운운하는 것도 역사성을 상실한 경박함의 표현일 것이다. 반대편에서 반공, 반북주의 ‘좌파’인 주대환이 한국 자본주의 반공체제와 분단모순, 이것을 강요한 미제국주의, 일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면서 한 치도 타협하지 않았던 선생에 대해 사민주의자 정신 계승 운운하는 것은 더더욱 가소롭기 짝이 없는 천박한 몰계급성과 지적무지, 반동성의 표현에 불과하다.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 군사파쇼의 유신철권 통치가 막바지로 향해가는 그래서 그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더 단발마적 발악을 하던 시절인 1977년에 ‘우상과 이성’, ‘8억인 과의 대화’를 쓰고 반공법으로 구속되어 2년의 구속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것은 박정희군사독재와 미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자본주의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상에 도전한 대가로 선생은 미리 예언하고 각오한 바대로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리영희선생은 베트남과 중국사회주의의 역사와 실상을 통해 사회주의의 현실을 말하려 했고, 한국사회의 반공주의와 반동성을 우회적으로 폭로하려 했다. 100년에 걸쳐 프랑스 식민지 통치를 받고, 식민지 해방 이후에 북베트남은 사회주의로 남베트남은 자본주의로 분단된 사회, 북베트남의 지도자는 식민지 해방에 앞장서 싸우던 투사들이었고, 식민지 잔재의 청산과 진보적 개혁정책을 실시하고, 남베트남은 고 딘 디엠 정부처럼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탄압정책에 앞장서 왔던 반동세력들이 통치했다. 베트남의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프랑스 제국주의를 대신해 베트남에 개입해 들어온 미제의 개입으로 베트남 내전이 벌어졌다. 이러한 베트남의 현실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미제국주의에 의한 남북 분단과 영구화 책동이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 그 자체였다.
중국사회주의에 대한 분석은 사회주의가 폭정과 억압의 전초기지로 세뇌하고 있던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통렬한 폭로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제국주의는 북베트남 사회주의를 침략하고 분쇄하기 위해 1964년 8월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 이 사건은 이후 미국무성 내의 양심적인 인사에 의해 폭로되어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 실리면서 미제국주의의 베트남 참전의 명분이 철저하게 조작된 것으로 만천하에 알려졌다. 미제국주의는 이러한 침략의 역사를 수십 년이 지난 이라크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를 파괴한다는 목적으로 침략을 강행했다.
한국사회 우상의 지속과 우상극복의 길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리영희선생이 평생을 싸워 왔던 반공주의라는 철의 우상은 또 다시 한미일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군사 책동이 강화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아직 전모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안함 사건의 결정적 증거라고 알려진 1번 어뢰의 증거 능력의 결정적인 상실 등 ‘북 잠수함’의 어뢰공격이라는 주장에 대한 수십 개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구축함이 어뢰정 3척의 공격을 받고 이를 근거로 북베트남을 침공한 통킹만 사건의 재판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이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해서 이명박 정권은 미제와 함께 수 십 만이 동원되고 항공모함과 항공기가 동원된 최첨단 무기로 전쟁책동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것이 북의 연평도 포격으로 나타났고, 한반도를 전쟁직전의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리영희 선생은 한국사회를 뒤덮은 반공법의 서슬 하에서 ‘노예의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발표 당시, 편집자의 요청으로 용어를 시대적 도그머와 타협한 것도 있다. 한 예로 ‘괴(傀)’자와 같은 비과학적인 감성적. 정치적 목적의 용어이다...진정한 사회과학이 성립하기 힘든 제반 조건 속에서 나는 특히 중국문제에 관해서 해설자 이상을 자처해본 일이 없다”(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머리말 중에서)
리영희선생은 이 책이 치밀한 논리와 예증, 역사적 탐구로 가득 찬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면서도 당시 중세 교회권력의 탄압을 받고 지동설이라는 진실을 ‘가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코페르니쿠스처럼, 가설이라고 했다.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도 누락시킬 수밖에 없었고 북을 ‘북괴’라고 해야 했다. 특히 중국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주장이 아니라 해설로 위장할 수밖에 없었다.
리영희선생이 77년 ‘우상과 이성’으로 반공법으로 구속되었을 때 검찰은 공소장에서 “농민 중심의 모택동의 공산혁명 사상을 은연중 찬양 고무하여 중국의 활동을 찬양고무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이러한 공소장을 토씨 한자 빼먹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8억인 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중국인민은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묘사를 가지고 반공법의 4조 2항인 고무·찬양·동조행위로 규정했다. 리영희선생은 상고이유서에서 당시 국가권력의 저열함에 대해 통렬하게 항의했다.
어떤 사람의 긴 생애에서 국민학교 때의 글짓기 연습장에서 ‘김’(金)자를, 중학교 때 물리 노트에서 일(日)자를, 고등학교 시절의 연애편지에서 성(成)자를 그리고 대학 졸업논문 속에서 만(萬)자 등으로 골라낸다. 그것을 이으면 ‘김일성 운운’이 될 것이다(리영희, 「상고이유서」, 『역설의 변증』, 두레, p374-375).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역사는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주의 ‘우상’은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고 이명박정권은 역사를 반동적으로 되돌리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가해지는 우익적 악선동과 국가보안법의 적용, 연평도 사건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호소했던 진보인사들에 대한 구속,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방북했다는 이유로, 가사도 없는 연주곡에 대해서조차 북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북을 ‘타도해야하는 착취사회, 반동사회’라고 규정한 사노련에 대해서조차 최근 검찰은 구형 7년을 선고하는 야만의 사회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탄압에 더해 우리는 노동자에게는 민사법을 이용해서 파업행위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손해배상 가압류 등으로 경제적으로 더 치밀하게 목을 죄는 반동의 시대에 살고 있다. 리영희선생이 중국사회주의 현실을 통해 은유적으로 한국사회와 북사회주의에 대해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북사회주의의 구체적인 현실 대신에 쿠바 사회주의를 말해야 한다. 북에 대해서 ‘북괴’라는 표현은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북에 대해서 말할 때는 자기검열을 해야 하고,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대신에 북이라는 좌표 상의 북쪽에 불과한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리영희 선생은 한국사회의 질곡을 사상적, 실천적으로 뚫고 나간 진정한 ‘사상의 은사’였다. 리영희선생의 한계는 역사적 한계였다. 리영희선생이 존경했던 중국의 사상가 노신은 서한집에서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라고 말했다.
노신은 중국의 젊은 청년들에게 자신을 사닥다리로 삼아 전진하고 한 사회의 진보를 위해 투쟁하라고 외쳤다. 노신의 외침은 노신을 가장 존경하던 리영희선생이 한국사회의 젊은이들,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는 남겨진 후예들에 대해 요청하는 외침이기도 하다. 리영희선생의 진실을 향한 각고의 노력, 반동의 질곡을 뚫고 진보적인 철학적 세계관, 역사관으로 무장하기 위한 분투, 개인사를 넘어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혜안, 지적 겸손함, 독재정권과 맞서 한 치도 흔들리지 않고 투쟁한 실천적 용기, 철저한 자료수집을 통해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인식하는 독수리 같은 혜안...
리영희 선생이 ‘사상의 은사’라면 이런 점에서 남겨진 우리는 선생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리영희 선생이 한 평생 각고의 투쟁을 전개했던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화폐 물신주의’ 우상은 더 새롭게, 더 고도로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억누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리영희선생의 역사적 한계를 넘어서 리영희선생을 딛고 더욱 치열하게 역사의 진보를 위한 깃발을 더 높게, 더 확고하게 치켜들어야 한다. 당시 리영희선생이 ‘진정한 사회과학이 성립하기 힘든 제반 조건’에서도 ‘우상’을 깨고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진실을 찾기 위해 투쟁했다면 이제 우리는 진정한 과학‘이성’인 맑스-레닌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한국사회 변혁과 진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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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
2011-01-01 |
20: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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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리영희 선생님의 성이 '리'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진짜 '리' 성이 남한에 있는 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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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프스키 |
2011-01-28 |
13: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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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의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에서 이미 한 번 작성한 것이지만 다수의 공산당들이 희랍/그리스의 예를 따라서 이전노선으로 속속 복귀(법고창신)중입니다. 다만 불란서/프랑스, 서반아/스페인/에스파냐, 이태리/이탈리아, 오지리/오스트리아, 가나대/캐나다, 일본 등등은 여전히 수정주의를 고수하고 있지요....
그러니 이들에서는 줄줄이 예전 노선으로의 법고창신을 하는 세력들의 분화도 발생하는 중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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