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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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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8 23:24:17, 조회:2,310, 추천: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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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사회주의’라는 ‘볼리바르 혁명’은 21세기 개량주의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좋은 기후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남미는 오랫동안 정치적 혼동과 가난 속에 있었다.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불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의해 남미의 농업 노동과 자원은 착취당해 왔다. 그래서 남미의 대부분에는 엄청난 빈부 격차가 존재하며 여전히 외채부담에 허덕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 남미 대중들에게는 반제국주의 감정, 반자본주의의 정서가 상당히 형성되어있다. 그런데 남미의 개량주의 세력들은 대중의 정서를 반미, 반신자유주의, 반 민족주의 등으로 협소화시키며 집권으로 나아가고 있다. 브라질의 룰라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같은 이들이 ‘반미, 반신자유주의’를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집권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난과 착취를 끝장내 남미에 진정한 해방을 가져 다 주겠다고 이야기하여 ‘좌파’라고 불린다. 그러나 룰라의 친미적 태도, 노동의 유연성 강화 등의 우경화 과정만 보더라도 이들의 철저하지 못한 태도는 세계 자본주의의 압박 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경계하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들도 대중들의 비난과 불만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99년 당선 이후 대통령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룰라와는 달리 강력한 국가 개입의 태도로 재집권, 총선 승리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또 다른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스로 ‘볼리바르 혁명’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지금까지는 보다 분명하게 반미, 반신자유주의, 국유화정책을 이야기 해왔다. 그리고 지난 해 12월 볼리비아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와 더불어 ‘볼리바르 혁명’을 계승한다는 모랄레스가 당선되면서 볼리바르 열풍은 개량주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볼리비아 대선과 모랄레스의 당선
작년 12월 모랄레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볼리비아에는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는 격렬한 대중투쟁이 전개되어 왔다. 2000년에는 베텔사가 수도 사업을 소유하는 것에 맞서는 ‘물 전쟁’, 03년 ‘가스 전쟁’과 대통령 몰아내기 과정에서 총파업과 기관 점거 등의 투쟁이 벌어졌고 이에 맞서 ‘엘알토 학살’(민간인 발포 사건)이 있을 정도로 강한 공권력 진압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힘으로 두 차례 대통령을 끌어 내리고 모랄레스가 ‘볼리바르 혁명’을 계승한다며 당선된 것이다.
대중의 요구와 분노가 치솟아 있는 분위기 속에서 당선된 토착농민 출신의 모랄레스는 MAS(사회주의를 향한 운동)를 만들고, 특히 미국에 맞서 코카 재배를 합법화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그런데 05년 가스 산업 국유화 투쟁 이전까지는 국유화조차 지지하지 않았고 03년 투쟁에서도 다른 정당들과 더불어 석유회사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합의안을 받아들이며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려 하는 등의 모호하고 배신적인 태도를 취해오기도 했다. 또, 이번 당선 후에는 “혁명이 더 진행된다면 미국의 개입이 들어 올 것이다”, “우리의 정부는 사유 재산을 박탈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자본의 눈치를 보며 자국에서 자본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다.
모랄레스의 당선을 두고 볼리바르 혁명의 확산, 남미의 좌파 열풍이라고 흥분하고 있지만 사실 모랄레스는 저항의 주요 내용이던 ‘국유화’에서 조차도 모호한 태도를 취해왔으며, 본질적으로는 자본의 이해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볼리바르 혁명
99년 선거로 집권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남미에서 볼리바르 혁명의 확고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집권 후 미국 자본, 친미 자본가들에 도전적인 정책을 추진하던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자본과 미국의 후원을 받은 우익 쿠데타와 어용노조의 총파업을 겪으면서 계속 집권하고 총선에서 다시 지지를 받으면서 ‘볼리바르 혁명’을 지키고 있다.
차베스는 미국이나 우익들에게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집권 후 제헌의회를 구성하여 제국주의에 맞서 경제자립을 이루고 부패를 없애겠다는 내용과 장기집권 보장을 위한 대통령 연임제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볼리바르 헌법’을 제정하였다. 볼리바르 혁명의 핵심 요구안이라 할 수 있는 토지개혁과 국유화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대중의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우익 쿠데타를 감행했던 완전 어용 노조인 CTV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노조 UNT를 건설하기도 했다. 그리고 'Mission(미션)'이라는 정책을 추진하며 빈민에 대한 무상 교육으로 문맹을 퇴치하고 보건 의료를 개혁하고 생필품의 가격을 낮추어 대중의 지지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급진적인 듯한 언사나 이미지들과는 달리 그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과제는 국가 주도도, 신자유주의도 아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국가의 손과 조화를 이룰 것이고, 국가가 필요한 만큼 시장도 필요하다”라는 태도는 결국 베네수엘라 자본의 발전과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신자유주의를 펼치고 있는 브라질 및 우익 콜롬비아와 함께 정유사업에 공동 투자하는 등, 정치무대에서는 그가 비난하던 국가와도 긴밀한 경제관계를 맺으며 공동의 이해관계를 다지고 있다.
2001년 미국의 후원과 지지를 받는 베네수엘라 부르주아지들의 저항과 쿠데타를 몰고 온 ‘49개 사회주의적 개혁입법’은 이름 그대로 ‘개혁입법’일 뿐이었다. 핵심 내용은 토지 개혁, 가스관련 외국 자본에 대한 세금 인상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토지개혁은 철저한 몰수가 아니라 불법 소유지, 유휴지의 몰수이고 세금인상 또한 기본적으로 자본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한에서 외국 자본으로의 이윤 유출을 견제하려는 시도일 뿐이었다.
이렇듯 차베스의 모호하고 이중적인 태도들은 ‘볼리바르 혁명’의 개량주의적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볼리바르 혁명?
‘볼리바르 혁명’은 19세기 스페인 식민 하에 있던 지금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을 해방시키는데 영웅적으로 기여한 장군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의 ‘빈곤으로부터의 해방과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핵심적 정신을 계승한다며 새롭게 볼리바르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처럼 식민지 직접 통치 하에서의 독립운동과는 다르다는 점 등에서 시몬 볼리바르 혁명과 차베스의 개혁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제국주의로 인한 민중의 가난을 종식시키고 반미전선을 마련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그런 점에서 차베스가 시몬 볼리바르의 영웅적 인상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볼리바르 혁명을 말하고 있는 차베스나 모랄레스, 이들은 핵심적 구호로 ‘국유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국유화는 노동자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자본의 종식을 위한 국유화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국유화는 유망한 사업의 국가 관리, 즉 국가 주도의 자본을 형성하겠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그들이 국유화를 추진하는 부분도 국가의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유, 가스 등의 천연 자원 사업 등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레닌이 임박한 파국에서 말한 노동자 혁명의 과정으로서의 국유화와 볼리바르 혁명에서의 국유화는 분명 다르다. 혁명의 시기에 노동자 계급의 자본가 생산수단에 대한 몰수와 국유화는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고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도록 하는 수단이고 과정이다. 국가라는 권력기구를 누가 장악 하는가 라는 점에서 국유화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볼리바르 혁명에서의 국유화는 기존의 자본가 국가를 그대로 이용하고, 그 국가를 유지해 나가기 위한 국유화라는 점에서 개량주의에 불과하다.
지금 남미에서 진행되고 있는 볼리바르 ‘혁명’은 자본주의를 타도할, 자본주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건설할 의지나 관점이 없다. 빈민을 구제한다는 의미에서 진행되는 ‘미션'같은 프로그램 등에 상당한 돈을 투자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 진행되는 한, 그것이 국가 주도의 자본이든 민간주도의 자본을 위한 것이든 미션에서의 교육과 복지는 결국 노동 착취를 위한 생산력 향상 교육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개량주의자들의 과도한 기대들
물론 차베스가 당선 후에 내 놓은 개혁책은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부르주아지의 엄청난 반발을 샀다. 부르주아지의 반발에 맞서 차베스는 제헌의회까지 구성하며 그의 ‘혁명’정신을 담은 ‘볼리바르 헌법’을 제정하는 등의 강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개량주의 일부에서는 차베스를 두고 “차베스는 70년대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보수적 의회에 발목 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피노체트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실패한 점을 잘 알고 있다. 차베스는 선거에 참여하면서 지속적으로 제헌의회 전술을 강하게 주장해왔고 대선에 당선된 후에 그것을 실행함으로서 선거를 통한 제헌의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라고 말하며 제헌의회를 ‘국가기관을 한꺼번에 접수’한 사례로 분석하고 민노당에 차베스의 제헌의회 전술을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민주노동당,「이론과 실천」, 2005년 11월)
그렇다. 아옌데가 선거를 통한 평화로운 집권 과정 때문에 반혁명 세력에 패배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베스가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차베스의 제헌의회는 부르주아의 참여와 이해를 철저하게 배제한, 노동자 계급의 독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기존의 선거 제도를 통해 차베스 세력이 대중의 지지를 얻어 내고 의회를 장악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들은 여전히 활개하고 있다. 부르주아의 참정권이 여전히 보장된 의회제도,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소환권이 마련되어 있는 지금의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부르주아지들은 호시탐탐 의회의 장악을 노리고 대통령 소환을 시도하고 있다.
볼리바르 혁명의 개량주의적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집권하게 된 과정이다. 부르주아 선거 제도로서 집권한 정당은 법, 군대, 경찰 등 여전히 부르주아 제도들에 사로잡혀 있기에 결국 부르주아의 반발과 저항을 이겨낼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로써 당선된 그들이 아무리 좋은 정책, 카리스마적인 정책들을 내 놓으며 환상을 심어주고 한편으론 자본가들을 달래고 있더라도 자본의 사정에 따라, 침체와 성장의 국면에 따라 얼마든지 그들의 정책은 노동자 대중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도록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볼리바르 혁명을 바라보는 개량주의자들은 차베스가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 제도를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사회주의적’인 조치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심지어 차베스의 단호하고 카리스마적 정책들을 두고 ‘기회주의와 타협 없는 민중독재’라며 그것을 노동자 계급의 독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본가들의 쿠데타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유지하며 강력한 국가 주도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이런 분석을 낳은 듯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한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남미 국가의 부의 대부분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IMF 외채 위기’를 겪으며 빈부격차의 심화와 더불어 사회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위기들을 모면할 개량적 시도들로 등장한 볼리바르 혁명은 또 다시 대중의 불만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순히 복지 정책을 강화하거나 국유화 등을 통해 국가의 부를 단속하는 방식으로는 민중의 삶을 일시적으로 나아지게 할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방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호한 반미가 아닌 계급적 반제국주의가 필요하다.
차베스가 미국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취할 수 있고, 국가의 주요 산업인 석유 가스등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자원 및 고유가 상황이라는 배경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몬 볼리바르가 독립된 남미의 통합을 꿈꿨던 것을 차베스는 ‘남미 경제의 자립과 통합’을 이룩하는 것으로 계승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베네수엘라가 남미 경제의 맹주가 될 것을 바라보고 있다. 그 과정이 FTAA(미주자유무역지역)에 반대하는 남미경제연합체(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 대안 - ALBA)를 건설하는 것이고 결국은 미국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이고 당당한 자본주의 남미를 건설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볼리비안 혁명이 말하는 반제국주의의 한계이다.
얼마 전 차베스가 자신의 개혁을 ‘21세기 사회주의’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발언과 태도에서 알 수 있듯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21세기 개량주의에 불과하다. 강력한 국가개입의 태도와 미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그것은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를 등에 업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볼리바르의 개혁적 정책들이 경제적 위기 상황 또는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와 요구 앞에서 어떠한 태도로 변화할 것인지는 예상 가능하다. 지금은 고유가 호황을 배경으로 개량주의적 정책들을 취해 나갈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부르주아 국가를 계승받아 자본의 이해와 결별할 수 없는 이들은 결국 노동자 민중의 기대와 요구를 저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미에서의 투쟁과 격렬한 저항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를 선거로 가둬버리는 볼리바르 개혁 국가들은 이러한 분노를 해소해 줄 수 없다. 그리고 남미 투쟁의 핵심인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미국에 맞서는 ‘힘 있는 남미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미국과 남미의 자본가 계급, 나아가 전 세계의 자본에 대한 대립을 분명히 하는 계급 정치와 대중 투쟁의 혁명적 만남이 부르주아적 착취를 끊고 제국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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