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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4호]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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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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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9 10:05:38, 조회:2,115, 추천: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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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의 시대’에서 자본의 위기와 ‘무쟁의의 파도’로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을 만들어냈듯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자본이 독점화되고 노동자들도 모이면서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노동자들의 투쟁도 발전했다. ‘87년 대투쟁’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전국적인 파업의 물결’은 각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한 노조 결성 투쟁, 노조 민주화 투쟁으로 나타났다.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과 전노협의 전국 총파업, 89년, 94년과 99년의 지하철노조 파업, 95년 한국통신 노조의 파업, 정리해고에 맞선 98년 현대자동차와 만도기계의 공장점거 파업, 99년 한라중공업의 공장점거 파업, 2000년 대우자동차 파업, 계속되는 이랜드 노동자투쟁, 한국통신 정규직 관료들에게 외면당하면서 홀로 500여일을 싸운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 2002년 발전노동자들의 산개파업과 이를 지지연대하기 위해 조직된 총파업 시도 등이 ‘파업의 시대’를 대표하는 투쟁이다.
하지만 산개파업 과정에서 상층관료들에 의해 종료된 발전노동자 파업이나 매년 파업은 하지만 곧바로 백기항복 해온 철도노조의 파업 실패, 서울지하철의 현장복귀 선언 등을 통해서 파업은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파업의 목적과 기조, 그리고 파업의 마무리는 더욱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뒤는 노사화합과 대립, 무쟁의와 쟁의가 공존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자본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위기 타개책으로 급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섰다. 그 반대편에서는 많은 대공장 정규직 노조들이 무쟁의 혹은 노사화합을 위한 생산협조로 투쟁을 정리해가고 있다. 실패하는 투쟁보다는 조합원들도 파업만 해서 피곤해하니 평화롭게 실리를 얻자며 투쟁을 엄포하지만 뻥카일 뿐이다.
물론 노동자들의 파업이 모두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인 승리 뒤에는 수많은 패배가 겹쳐있다. 투쟁의 목표와 투쟁 전술에서 동요와 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투쟁이 패배하는 경우 대부분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현장에서는 패배주의가 확산된다. 즉 갈수록 패배하기 십상인 파업이 노동자계급의 전진을 위한 영양분이 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투쟁을 할수록 손배와 가압류, 무노동 무임금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더불어 집행부가 양보나 백기항복하여 아무런 성과도 없이 투쟁을 정리해서 투쟁을 결의했던 의지도 꺾이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더욱 어려운 조건에서 어렵게 투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더 큰 타격일 수 있다. 우리가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동안 자본과 국가는 노동자들이 다시 파업에 나서지 못하도록 임금을 깎고 서약서를 쓰게 하는 등 현장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노동자들을 몰아 부친다. 하지만 자본이 공격을 계속해도 노동자들이 더 이상 밀릴 것이 없는 처지라는 것은 변치 않기 때문에 단결해서 다시 투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전열을 가다듬고 준비해야 밀려도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위기로 깊게 파고들어 갈수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면화된다. 정규직 대공장 노동운동이 우경화 되는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절한 투쟁이 대신하고 있다. 비정규직 파업이 전체 노동자 계급투쟁으로서의 파업 일반을 대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현 시기의 노동자 파업,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그 의미와 과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어떻게 조직되는가?
파업에 따른 어려움과 고통을 알고 있기에 노동자들도 파업을 달가워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 피로, 충돌과 폭력에 따른 부상, 경찰의 탄압과 수배 연행, 구속의 위협 등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같은 강도의 이런 탄압과 협박들도 더 큰 충격과 고통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몫을 이미 빼앗기던 데에서 더 많이 빼앗기기를 거부하는 순간 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몬다. 자본가들이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더욱 그러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 독점자본과 하청 자본,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에 둘러싸여 이중 삼중으로 눈치를 보고 착취와 억압을 당해왔다.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 받고 착취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게 당하는 것도 참아야 죽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살았다. 자본이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을 만큼 더 쥐어짜는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살고 싶다고 몸부림을 친다. 바로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러나 하청 자본은 횡포를 휘두른다. 그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렵게 시작한 만큼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그리고 원청 자본이 비정규직 투쟁의 시작부터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원청 자본의 사용자성에 대해서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업체의 체불임금과 차별에 항의한 행동은 결국 원청 자본을 향한 투쟁으로 모아지게 된다.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항의 면담도 하고, 잔업 특근을 거부하고 천막농성 등을 통해서 낮은 수위에서 모이는 것을 보여주지만 자본은 그 정도에는 꿈쩍하지 않는다. 이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처지에서도 스스로의 임금손실을 감수하면서 파업을 검토한다.
파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결의)를 조직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실제 여러 가지 실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상태, 요구를 조직하고 그것이 투쟁의 불가피함으로 연결되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또한 파업 자체를 결의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노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에 대해서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 (1) 공동투쟁의 중요성 (2) 그러나 이를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스스로 일어서는 독자성이 더 중요하고 일차적이라는 것.
파업의 실제적인 준비는 파업기금 확보와 파업 지도부 및 체계 정비, 선봉대와 쟁대위 구성 및 구체적인 파업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투쟁전술을 확정하는 것이다. 파업은 그냥 시작만 하면 저절로 ‘노동자의 학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파업의 의미, 공격에 대한 대응 토론과 결의, 실천 등에서 노동자들은 집단적으로 스스로 배우고 훈련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이끄는 목적의식적인 지도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정세와 조건이 너무 안 좋아서 패배가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파업투쟁에 돌입하는 경우도 있다. 거의 패배가 확실할지라도 싸울 것인가, 싸워보지도 않고 굴복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상황도 있다. 그것이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상황이라고 본다.
싸워보지도 않고 굴복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사기 저하와 함께 굴욕적인 패배감으로 지도력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투쟁과 조직 자체에 대해서도 불신하게 한다. 투쟁하지도 않고 굴복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투쟁하다가 깨지거나 지도부를 상실하고 조직적인 손실을 입는 것에 비해서 훨씬 더 치명적이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력이 열악하다는 것이 분명해서 투쟁을 유보하거나 우회로를 선택하는 휴전 상황이 필요할지라도 단순하게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저항을 조직하면서, 도발하면 사생결단하여 싸운다는 투쟁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비정규직 파업과 독자성
파업은 생산에 대한 타격으로 자본의 이윤 획득에 대응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드러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정말 죽을 각오로 파업에 돌입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투쟁에 나서지만 이 요구는 그들만의 요구가 아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규모에 상관없이 전체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파업을 회피하는 관료들은 흔히들 말한다. “조합원들이 이젠 파업에 대한 피로로 지쳐있다”, “파업을 하지 않고도 선언함으로써 자본에 압박이 될 수 있다면 더 좋은 거다”, 즉 파업을 안해도 실리를 얻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노자관계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대등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노사화합관계는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대등하지도 않은 노사관계,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노사상생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본질이라면서 어찌 파업투쟁을 하지 않겠다고 압박해서 노동자들의 요구가 쟁취되고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물론 매년 파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나 파업 이후의 경제적 고통, 물리적 법적인 위협들은 항상 있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없는 살림에 그나마 권리를 찾겠다고 나선 파업으로 더 많은 경제적 압박을 받는다. 파업과정에서는 파업에 참여하면 계약해지 하겠다, 해고하겠다는 직접적인 해고 협박과 더불어, 파업이 정리되어도 무노동 무임금, 파업참여자들에 대한 임금과 현장통제 공격들에 대해서 방어하는 투쟁이 또한 파업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고스란히 파업에 대한 기억, 영향으로 이후 패배주의로 가는가, 아니면 실패든 성공이든 이후 현장투쟁력과 주도권으로 가는가의 갈림길이 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자본의 공격과 법제도를 동원한 공권력 국가의 탄압에만 맞서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 더 전면화된 현장의 어용세력들은 구사대로 규모화 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파괴하는 행동에 나섰다. 예전에는 일부 관리자들과 원하청 경영진 수준에서의 구사대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응하고 거기에 용역깡패들을 동원한 폭력과 파업파괴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비정규직을 대리해서 교섭하고 책임져준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양보교섭을 강요하던 정규직 노조 관료들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파괴하는 자본의 주된 동력으로 자본을 대리하는 현장 우익들이 세력화되어 등장했다. 이들은 회사가 있어야 고용도 있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무너진 현장에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정규직 조합원들도 흔들어서 일부를 구사대로 합류시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고립시키려 했다.
기아차비정규직지회는 특히 정규직 노조 관료들에 의해서 직가입 공격을 받아가면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상반기 내내 투쟁했고, 이제 어렵게 들어간 거점 파업마저도 정규직 노조 관료들의 외면과 구사대 공격 속에서 결국 굴욕적인 조직통합을 합의했다.
이미 파업 전에 직가입해서 들어간 비정규직들 중에서는 뭔가 정규직 지부로 들어가면 고용이나 임금 등이 해결되는 걸로 알고 가입했는데 별로 해결되지도 않아서 비정규직지회에 미안해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파업 전 직가입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는 비지회가 전면파업에 돌입하자, 어떻게든 돕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는 직가입 조직통합, 업체별 차별 등의 공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되면서는 자본에 대한 공격으로 모아진다. 투쟁하지 않으면 무기력하고 이중 삼중으로 소외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생산에 타격을 가하는 순간 원하청 자본과 노조 내의 노사협조주의자들은 이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총동원되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 그리고 노동자들의 총단결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기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파업과정에서 뉴코아 이랜드 파업투쟁을 전국적 총파업으로 지지 엄호하기 위한 안건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산타격 파업투쟁은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들이나 코스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서로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단결의 필요성이 확인되는 만큼 그것이 실제로 총단결 총투쟁으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구사대의 공격에 맞서며 반동적 조합 지도부를 견제할 구체적인 힘을 비축하지 못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적들의 강한 공격에 더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재투쟁을 기약하면서 퇴각했다. 그리고 밀려서 합의한 굴욕적인 원/하청노조 조직통합은 그 마저도 이후 정규직 대의원대회에서 어용세력들의 조직된 반대에 의해 불승인되었다.
자본을 대리하는 어용세력들은 애초에는 파업의 무기를 가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두려워 자신들의 손아귀에 가두려고 조직통합 혹은 직가입 공세를 폈지만, 비정규직지회가 조직통합을 선언하는 순간은 다시 몰아쳐서 무장해제하고 모두 직가입 하든지 말든지 하라는 태도로 돌변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재조직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귀찮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이 굴욕적인 조직통합의 목적이 비정규직 파업 파괴에 있었다는 것은 정규직 지부 대의원대회에서의 불승인으로 다시 확인되었다. 그리고 정규직 지부에서 불승인 여부에 관계없이 이 굴욕적인 합의는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투쟁의 힘으로, 즉각 파기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부르주아 언론과 국가가 공격하는 것이 바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이기적인 투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그 도덕성에 대한 공격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까지 위협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막가파식 파업’이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자신들의 현장에서만 적용되는 요구가 결코 아니다. 구조조정 계약해지 등에 대해서는 고용과 단협 승계를 요구하고 임금과 노동조건 차별 철폐와 생존권 사수를 요구하는 것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원청 노동자들 역시 요구하는 것이며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동일한 요구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더더욱 개별 사업장의 특권적인 요구가 아니다!
그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그 투쟁의 독자성은 결국 계급적 요구와 계급적 투쟁의 의미를 갖고 오히려 공동투쟁을 촉발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파업은 자본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전투이기 때문에 힘 관계가 결국 사태를 좌우한다. 즉 비정규직 파업이 승리하려면 우리는 최대한 노동자들을 확고하게 단결시켜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원청 노동자들의 연대와 실천적인 지지를 끌어내지 못할 때, 비정규직 파업은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을 최근 기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 조직통합 논란에서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과 함께 비조합원이거나 정규직 노동자들일지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최대한 반동적인 태도가 아닌 우호적인 지지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라도 최소한 ‘중립’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파업 전에 최대한 이를 조직하되 잘 안되더라도 파업 과정에서도 이를 조직해야 한다. 한번 주도권을 상실하면 이후 투쟁이 훨씬 어려운 투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서 “정규직 임금은 ** 정도나 되는데 우리 비정규직은 형편없다”는 식의 논리와 요구는 정규직들의 지지도, 공동투쟁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도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데, 우리 비정규직들은 더욱더 마찬가지다’, ‘정규직도 구조조정에 고용이 불안하고, 우리 비정규직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단결해서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투쟁한다’는 식의 요구로 정규직들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반동적 어용들까지는 조직하지 못할지라도 어용들이 정규직 일반 조합원들을 조직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것은 비정규직 파업 투쟁 승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서, 현장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이다.
한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극하고, 힘이 된다.
첩첩산중으로 에워싼 반동적 정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기 어렵지만, 한 사업장에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강고하게 전개되는 것은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이 자동으로 투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스스로의 현장에서도 투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해당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노동자 주체들의 결사적이고 단호한 준비와 조직이 필요하다.
정규직 활동가들이 의식적으로 자신들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끌어내기 위해 노조 조직화도 지원하지만, 현장에서 비정규직 주체들 스스로의 각성과 결의가 없이는 노조가 조직되는 것도 어렵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해나가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것은 정규직 활동가들이나 노조가 어용이나 개량주의 세력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독자성은 공동투쟁을 끌어내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적 대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독자성이 일차적으로 정립되어야만 정규직 활동가들, 혹은 연대투쟁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경우를 보면 이것은 분명하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5년여 전부터 노동조합이 없을 때조차도 투쟁체를 꾸려서 현장에서 투쟁해왔고 자본은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2005년 노조 결성 직후부터 계속된 생산타격 파업은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의 공격으로 생사를 건 투쟁으로 전개되었다. 매년 계속되는 파업 투쟁 과정에서 자본의 공격이 거세질 때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노조를 탈퇴하면 편해질텐데, 차라리 정규직 노조의 말을 듣고 적당히 양보교섭 할까 하는 갈등들을 수없이 해왔다. 조합원 대다수가 노조 탈퇴서를 주머니에 넣고 현장 안에 숨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어려운 파업투쟁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주체가 스스로 나서서 투쟁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본이 힘이 없고, 투쟁을 회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다는 것, 국가 공권력이 결코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아차 정규직 지부의 눈치를 보느라 본조 권고안조차 무시하는 정규직지부를 징계하지 못하는 금속노조에 비해서 사무금융연맹은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하는 정규직 노조를 징계하기로 결정했다.
파업의 진정한 목표는 투쟁을 통해서 투쟁력을 강화하고 단결을 강화하며 노동자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업의 마무리 역시 이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특히 현시기의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한 사업장에서 전개되고 소수가 시작하는 파업일 가능성이 크지만, 파업의 일반적 목표와 같은 목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보다도 더더욱 요구안을 쟁취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파업이 현 시기에 요구를 얼마나 쟁취했는가의 기준만으로 파업의 승리냐를 판단할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비정규직 투쟁의 독자성을 발휘함으로써 전체 비정규직 운동에 어떤 과제를 남겨주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전체 노동자계급운동의 역할과 임무에 복무했는가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이러한 비정규직 파업의 과정에서 현 시기 산별노조의 관료주의, 조합주의의 반동성을 폭로하고 가능한 전체 노동자들의 각성으로 현장투쟁의 힘으로 견인하는 것이 비정규직 운동의 독자성의 의미이기도 하다. 관료적인 지도부들이 투쟁을, 특히 비정규직 파업을 통제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상생의 길로 향해가는 조합주의의 반동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요구안에서 많은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투쟁력과 단결, 비정규직의 독자성을 강화시킨다면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매우 가치 있는 파업이 될 것이다.
진정한 투쟁력, 독자성을 바탕으로 한 파업과 그 성과는 비록 당장은 파업 이후에 많은 전투력의 손실을 가져왔고 그것을 회복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투여되지만,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의지를 무디게 하고 패배주의로 투쟁력을 마비시키는 것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대차 이상욱 집행부가 파업을 하지 않고도 실리를 얻었다는 이번 임투에 대해서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자본의 일시적인 양보로 얻어낸 이번 성과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전진을 가로막는 덫이 될 것이다.
현 시기 사회적 합의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이를 견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철도 노조 엄길용 집행부와 같이 현장에서도 ‘밀려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용인하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공장 노동운동은 이를 견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합주의에 갇혀서 함께 반동화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울산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과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과정에서 조합주의 상급지도부가 현장판 사회적 합의주의를 통해서 투쟁을 잠재웠듯이 비정규직 파업과정에서 조합주의는 계급적 반동성으로 드러났다. 특히 작년과 올해 GM대우나 기아차 등의 자동차 사업장들에서 벌어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파업을 엄호하기는커녕 동의할 수 없다면서 파업을 파괴하려 한 정규직 노조 관료들의 반동화는 정규직과의 무원칙한 조직통합이나 정규직 노조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사1조직을 형식적 원칙이 아닌, 공동투쟁을 실현하기 위한 계급적 단결의 원칙으로써 받아들이고 오히려 현재의 조직통합과 직가입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무원칙한 조직통합 혹은 반동화 되는 조합주의자들이 추진하는 조직통합과 직가입의 목적은 분명히 비정규직 파업을 파괴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의 독자성을 말살 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전체 노동자운동의 계급적 전진을 가로막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의지할 것은 무엇인가? 오직 자신의 단결 스스로의 투쟁의 힘뿐이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들의 계급적 독자성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성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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