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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간9호]투쟁으로 꽃 피는 장미를 위하여-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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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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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2 16:33:51, 조회:2,625, 추천: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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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투쟁으로 꽃 피는 장미를 위하여-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너희들이 무엇을 잃게 될지는 두렵지 않아,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예고하는 가사의 노래로 영화는 시작된다. 빵과 장미는 미국 LA 거대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승리를 다룬 영화이다. 멕시코에서 밀입국한 마야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들이 조직되고 자신감을 갖고 투쟁하게 되는 과정을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야는 갖은 고초를 겪으며 언니가 살고 있는 LA로 들어오고 언니가 청소하는 빌딩에서 함께 일하게 된다. 그곳에는 모욕과 착취를 참아낼 수밖에 없는 갖가지 사연의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의료보험도 없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활동가 샘을 만나고, 17년 전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어이없는 해고 통보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현실을 단결된 행동으로 바꿔 보자는 모의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이들이 서로를 통해 점차 자신감을 얻고 투쟁에 나선다. 건물주에 대한 집단행동으로 해고를 당하기도 하지만 건물 로비 점거 등 끈질긴 행동으로 복직과 의료보험을 쟁취한다. 여기서 영화는 끝을 맺지만 그들은 투쟁의 경험과 단결의 자신감으로 앞으로 더 많은 과제들을 이뤄나가야 함을 암시해준다.
하지만 싸움은 그리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간 관리자는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했고, 생계에 대한 위협을 이기지 못한 노동자들이 결국 떨어져 나가거나 배신하기도 하였다. 마야의 언니 로사는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동지를 밀고하고 해고당하게 만든다. 마야는 언니를 원망하고 비난하려 했지만 가족을 위해 밑바닥 부터 시작해 성매매까지 해야 했던 언니의 사연을 듣고 결국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로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는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다움마저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고 있지 않는가? 로사의 현실은 비참함을 더해줄 뿐이었다.
영화 속 청소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용역업체의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엔젤’이다. 엔젤은 이주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악랄한 착취로 국내 제일의 용역 업체로 성장한다. 그런데 영화는 엔젤보다 건물주에 대한 저항을 주로 부각하였다. 건물주가 식사하는 자리를 쳐들어가거나 건물주이면서 위선적 변호사들의 파티를 습격해 요구 사항을 외치기도 한다. 자신들은 용역 노동자들과 무관하다고 발뺌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흔히 보는 원청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식사를 방해받고 먹던 음식 좀 뺏어먹었다고 발끈하는 건물주의 모습은 이윤과 지위를 유지하려는 자본의 탐욕을 보여주는 듯했다.
영화는 야비한 중간 관리자 ‘페레즈’를 통해 자본의 탄압을 대리해서 묘사하고는 있지만 투쟁에 대한 자본의 탄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건물주의 자리를 습격하는 장면들이 나오기는 해도 그들과의 관계나 그들의 집요한 탄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영화보다 현실은 더욱 지독하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권력 투입, 손배가압류, 온갖 가처분 신청 등 더욱 체계적인 탄압에 맞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영화는 주인공들의 승리를 통해 투쟁의 정당성과 희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들은 복직과 의료보험을 얻어내고 승리하지만 그 승리는 반쪽의 기쁨으로 누릴 수밖에 없었다. 해고당한 동지의 대학 입학을 위해 절도한 것이 들통 나 마야가 추방당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내걸었던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라는 슬로건은 생존권뿐만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며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승리를 통해 장미의 봉오리를 발견한다. 하지만 마야가 강제 추방당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체제는 노동자에게 온전한 장미를 선사해주지 않는다. 주체적 투쟁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만이 노동자의 장미를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유니폼은 우리를 투명하게 해 주는 것 같아”
마야가 처음 일을 시작 할 때 마야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동료가 마야에게 한 말이다. 청소복을 입고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누구도 그들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고 마치 그들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마야는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엘리베이터의 전 층을 눌러 건물 사용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런 에피소드를 벌여봐야 그들이 침묵 속에서 일을 하는 한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착취 속에서 건물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묵묵히 있는 한 그들은 있어도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단결하고 저항했을 때, 누군가들은 당황했고 노동자들의 존재는 드러나는 듯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 속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처절했지만 생기발랄했다. 빼앗긴 것을 되찾겠다는 정당성에 대한 확신, 그리고 지친 노동의 삶 속에서 발견한 변화의 희망이 그들을 즐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착취와 억압을 뚫고 투쟁하는 노동자만이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전국 이곳저곳에서 분신하고 투신하며 스스로 노동자임을 절규하고 있음에도 한 쪽에서는 ‘대화’ 운운하면서 투쟁의 확산을 두려워하고 있다. 단결과 투쟁으로 노동자임을 증명하고 진군해야하는 이 때에 목숨을 건 처절한 항거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먹던 음식 좀 빼앗겼다고 길길이 날뛰던 영화 속 건물주처럼 자본은 자신의 계급적 지위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순순히 스스로를 양보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투쟁 없이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굴종과 착취뿐이다! 계급적 단결과 단호한 투쟁이 노동자를 승리를 향해 진격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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