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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005년 송년토론회 발제문 - 2005년 투쟁과 노동자계급의 임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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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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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19:47:05, 조회:2,631, 추천: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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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투쟁과 노동자계급의 임무
- 대공장의 조합주의적 타락과 비정규직의 고립된 투쟁을 뚫고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
1. 왜 평가를 하는가?
1년 이상 끌어왔던 자본과 정권의 비정규법안 개악 공세가 12월 임시국회 상정으로 바로 우리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자본과 정권은 내친 김에 조직된 노동자계급 운동의 파멸을 의미하는 노사관계 로드맵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남한 노동자계급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국회 앞 농성과 집회,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지만 자본과 정권은 이를 조롱하듯 시시각각 노동자계급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노총의 뒤늦은 총파업 선언은 중심 사업장들이 빠진 상태에서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실력이 일천하지만 아직 총파업투쟁은 끝나지 않고 곧이어 격돌을 앞두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엄중한 투쟁의 한 가운데에서 2005년 투쟁을 평가하고 남한 노동자계급운동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토론하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현재의 비정규법안개악 저지 투쟁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함은 아니다. 지금 현재 전개되고 있는 총파업투쟁 전선이 왜, 어떻게 약화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함으로써만 현재의 투쟁전선도 강화하고 연이은 자본의 공격에 제대로 방어전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자본의 공세와 각 국면마다의 투쟁
2005년 3월 14일 경총은 ‘임금조정 방안’을 내놨다. 연초에 제출한 경총의 임금조정 방안에는 자본가계급이 올 한해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핵심적인 목표와 전술이 담겨져 있다. 경총 임금조정 방안은 “근로자들이 고용안정,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안정에 적극 협력한다는 전제 하에 경영계는 올해 새로운 일자리를 50만개 이상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를 위해 ‘임금피크제, 직무급제 등 성과주의 임금체계 확산, 정기승급 제도의 점진적 폐지, 고용형태 다양화를 통한 인력관리 유연성 제고’를 구체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해 경총의 목표와 거의 다르지 않다. 이는 경총이 일관되게 대노동자 공세로 가져가려 하는 중심 목표인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자본의 핵심적인 구호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자본의 경쟁력이 확보되어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경총의 이러한 방침은 임금인상 저지, 성과급제 확대를 통한 노동자 대오 내부의 경쟁의 격화와 이를 통한 총액임금의 삭감, 고용형태의 유연성 - 파트타이머, 임시직, 아웃소싱, 계약직, 파견직 등 - 을 통한 비정규직의 대대적인 확대, 고령 노동자의 불안정한 형태로의 고용연장을 빌미로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퇴직연금제의 도입을 통한 복지성 임금의 삭감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총체적인 노동자 공격방향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취업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허울 아래 임금과 각종 후생복리를 낮추고, 비정규직을 대대적으로 확산하겠다는 말인 것이다. 경총의 이러한 목표는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2년 이상 파견계약 뒤 정규직화 한다는 현재의 파견법이 현장에 적용된 결과는 2년 파견계약 뒤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이 15.2%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84.8%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계약해지를 당했다. 통계청의 통계로도 2005년 8월 현재 840만의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56%에 달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기간제(임시직) 평균 근속은 2년 근무 뒤 정규직화라는 현행법을 피해가기 위해 1.8년에 머물렀다. 근속 2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는 73.9%에 달하고 있다. 임금인상에 있어서도 2005년 8월 31일 현재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협약임금 인상률은 지난 해 5.5%에 비해 0.9% 낮은 4.6%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를 공격하는 대가로 만들어진 새로운 일자리는 불완전 실업자인 비정규직으로 가득 차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는 계약해지라는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도 노동조건 하락과 구조조정 공격으로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일자리가 채워지고 있지만 완전 실업자와 불완전 실업자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공식 실업률은 3.5%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은 1주 이상 구직활동을 하는 자를 실업자로 한다는 통계기준을 4주 이상 구직 활동으로 엄격하게 바꾸면서 실질 실업률을 은폐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통계는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계급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착취의 도구로 전락했다. 자본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통계수치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노동자계급의 삶의 조건은 일방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경총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가집단의 일방통행 식의 공세가 가능한 이유는 자본과 정권의 힘이 특별히 강력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투쟁역량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비록 관료들의 개입과 타협, 백기항복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2004년에는 코오롱, 칼텍스, 궤도, 보건의료노조 등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긴장감으로 몰아넣은 굵직굵직한 투쟁이 전개됐다. 그러나 2005년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중심 사업장의 투쟁은 거의 전개되지 못했다. 이는 객관적인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2005년 10월 20일 현재 한국노동연구원 통계를 보면 분규발생건수는 258건, 분규참가자수는 112,715명, 근로손실일수는 731,329일로 각각 전년 같은 기간 수치인 443건, 181,852명, 1,101,653일보다 크게 감소하고 있다.
이 수치는 12월 비정규개악법안 저지 투쟁으로 약간 올라가겠지만 올해는 작년의 패배보다 참혹하게 전선이 무너졌다. 대공장 중심 사업장들은 직권중재에 무릎 꿇고 긴급조정권에 손을 들으면서 또는 조합주의적 수준으로 예정된 일정에 따라 타협적이고 형식적인 투쟁을 치렀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폭력, 구속, 수배, 손배가압류, 각종 가처분신청서의 탄압 앞에서 점거, 단식, 농성 등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으로 2005년 투쟁전선은 그나마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이를 각 국면마다의 투쟁으로 나눠서 살펴보자!
가. 내부투쟁의 시기
사회적 합의주의를 둘러싼 논란은 해를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민주노총은 지난 해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이후에도 자본과 정권의 보건의료노조에 대한 직권중재 발표, LG칼텍스정유노조에 대한 공권력 투입, 궤도 파업에 대한 직권중재 공권력 투입 협박 등의 공세로 인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나와야 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관료들은 여전히 사회적 교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비정규법안 개악이 연기된 것이 사회적 교섭의 성과임을 강변하면서 1월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승인 받으려 했다.
1월 대의원대회에서의 사회적 교섭 복귀 시도는 이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의 유회전술로 무산 됐다. 그러자 민주노총 관료들은 2월 1일 대의원대회에서 또 다시 이 안건을 밀어붙이려고 했다. 1월 대의원대회가 대의원들만의 공방이었다면 2월 1일 대의원대회는 전노투를 중심으로 사회적 교섭복귀에 반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자, 선진 활동가 등 수백여 명의 노동자들이 집결하여 사전집회, 피케팅을 갖는 등 민주노총 관료들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시작됐다. 이수호 집행부의 일방적인 표결처리와 사회적 교섭에 찬성하는 참관자(민주택시연맹)들의 욕설과 폭행 등으로 촉발된 연단점거 투쟁은 이수호 집행부가 구사대(?)까지 동원하는 것에 항의하여 소화기 살포, 소방호스까지 나오면서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이 날 대의원대회는 무산됐다. 하지만 민주노총 관료들은 3월 15일에 또 다시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이 날의 대의원대회에는 완장을 찬 질서유지대까지 동원됐다.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은 이번에는 4백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대의원대회장 진입투쟁을 전개하고 대의원석을 완전점거하고 연단을 미리 봉쇄하여 대의원대회를 원천봉쇄했다. 이날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에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폭력에 굴하지 않고 사회적 교섭을 재개할 것입니다”라며 사회적 교섭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여 투쟁한 전노투의 한 동지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두 차례의 대의원대회 결사 저지 이후에 자본과 정권, 부르주아 언론은 전노투를 비롯한 사회적 합의주의 저지 세력에 대해 ‘좌경맹동주의자’, ‘폭력세력’, ‘민주주의의 파괴자’, ‘꼴통’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사를 사용해서 악선동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이목희는 “극좌 맹동주의자들과 결별하고 온건,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통해 새 길을 가야 한다”고 노동운동 재편방향까지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의 악선동을 등에 업고 민주노총 관료들은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자행했다.
사회적 합의주의 찬성이냐 반대냐는 대의원대회 연단점거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둘러싼 격론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도 전진과 새흐름 같은 기회주의 세력들은 사회적 합의주의는 반대하지만 연단점거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중도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이들이 우익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했다면 정반대 편에서는 “대의원대회라는 상층에서의 투쟁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대의원대회 연단점거를 반대하며 좌익 기회주의 진영을 형성했다. 좌익 기회주의 진영은 대의원대회 연단점거 투쟁이 각 현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맞선 개별투쟁들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서로 대립적으로 사고하고, 현장투쟁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이수호 집행부를 비롯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에 대한 폭로를 방기했다. 실례로 격렬한 내부 투쟁의 한 가운데서 사회적 합의주의도 반대하고 연단점거 세력도 싸잡아 비판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한 대의원은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노사정위복귀 세력들의 박수를 받았다.
첨예한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중도의 길은 있을 수 없다. 대의원대회에서 격렬하게 반대투쟁을 한 중심 세력들 중 그 누구도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해서 이 투쟁을 가로막는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 같은 관료주의 세력에 대한 실질적인 폭로가 같이 조직됐어야 했다. 좌익 기회주의자들은 현장 내에서의 비정규직 투쟁에 집중하자고 하면서 연단점거를 상층사업으로 비난했지만 연단점거의 중심에 선 동지들은 바로 그들이 말하는 현장에서 투쟁하는 각성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또한 단사 내에서 정규직 노조의 관료주의와 투쟁회피에 맞서 선두에 서서 투쟁하던 정규직 선진 활동가들과 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된 정리해고제에 의해 쓰디쓴 맛을 경험한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자들이었다.
우리는 3월 15일 대의원대회에서 “주눅 들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하고 투쟁하자!”고 주장하고 실천했다. 우리는 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모든 것이 아니지만 그 심장이기 때문에 그 심장에 파열구를 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관료들은 대의원대회에서의 두 차례의 노사정위원회 복귀 결사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정권 노동운동 내부의 기회주의자들의 주장과 힘을 등에 업고 이후 3월 24일 중앙위원회에서 ‘위원장의 책임 하에’라는 이름으로 직권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로 다시 기어들어갔다. “사회적 교섭 안건을 이번에 처리하는 것에도 반대하지만 단상점거 등 폭력도 반대한다”는 전진 류의 기회주의, 중도주의자들은 이러한 복귀를 사실상 추인하면서 사회적 합의주의의 꽁무니 세력임을 증명했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치열한 대립과 갈등은 실질적인 노동자민주주의와 절차적 민주주의, 폭력의 계급적 의미,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각 정치집단들의 입장 차이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자본과 정권이 유포하고 노동자계급 대오 내부의 기회주의자들이 수용한 사회적 합의주의는 결국 자본의 이데올로기이고, 이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자본과 정권의 물리적인 폭력이고 여기에 협조한 대가는 투쟁의 패배와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의 박탈이라는 것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확인됐다.
2005년 1, 2, 3월이 주요하게 내부 투쟁의 시기였다면 이 투쟁의 시기에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대자본의 구사대 폭력에 처절하게 깨지면서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월 22일에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최남선 동지가 현대자본의 폭력과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한 것에 항의해서 분신을 시도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17대 박홍귀 집행부가 채용비리로 인해서 사퇴하고 1월 24일 비대위 체제가 꾸려진 가운데 기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겨울의 추위를 뚫고 천막농성으로 보성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월 16일에는 비정규직 하루 총파업이 전개되고 이어서 비정규직 결의대회와 상경투쟁이 조직됐다. 이어서 4월에는 꽃샘추위를 뚫고 한원CC, 하이닉스, 울산플랜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됐다.
노동운동 내부의 격렬한 투쟁 속에서도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중심으로 미약하지만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투쟁 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나. 전선의 버팀목인 비정규직 투쟁, 그 한계와 과제
5월 1일 서울에서의 노동절은 덤프연대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2006년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 아래 평화적으로 치러졌다. 울산건설플랜트 동지들만이 공식 집회 바깥에서 크레인 점거와 SK본사 타격 등으로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을 뿐이다. 하지만 청주에서 하이닉스 투쟁을 엄호하던 지역 노동자들은 주유소를 점거하여 거점으로 삼으면서 경찰과의 목숨을 건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이 투쟁은 밤늦게 까지 계속됐다. 서울에서의 평온한 노동절을 보내던 전국의 노동자들은 하이닉스 동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청주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서 고무됐다. 충북지역본부는 하이닉스 비정규직 투쟁을 지역차원의 투쟁으로 확산시켰다.
한편 3월 27일 총파업 선언 이후 지속적으로 투쟁을 전개하던 울산건설플랜트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투쟁의 과정에서 6명의 현장 활동가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850명 파업 대오 전원에 대한 폭력적 연행과 11명 구속 등 정권의 폭력적 탄압에 항의해서 5월 6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격렬한 가두투쟁을 전개했다. 이 투쟁은 청주에서의 투쟁과 더불어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 그러나 5월 27일 노동자대회는 달아오른 전국 투쟁전선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은 무장투쟁을 각오하면서 울산으로 총집결했다. 하지만 이 날의 노동자대회는 이미 합의타결이 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문화공연 중심의 맥 빠진 집회로 전락했다. 전국노동자대회를 단지 압박용으로 배치하여 합의된 안은 핵심적인 쟁점이었던 집단교섭이 빠지고 1일 8시간 노동보장과 4대 보험 적용, 불법 다단계 하도급 규제, 조합원 채용 시 불이익 금지 등 몇 개의 처우개선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이후 실무협의에서 논의한다는 정도로 해서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후 합의는 다자간 교섭 틀로 한다”였으나 이후 이러한 합의는 200여개가 넘는 사업장 중에서 단 2개 사업장만이 참여함으로써 실효성이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폭력사태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담아 투쟁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케 하였다.
한편 6월 14일에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쟁취를 걸고 투쟁하던 한국노총 충주지역지부장인 김태환 열사가 레미콘 대체인력 차량에 의해 타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노총은 '김태환 열사 살인 만행 규탄, 특수고용직 노동3권 쟁취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등 투쟁하는 시늉을 냈으나 결국 이 투쟁은 한국노총 관료들에 의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6월 집중집회를 하면서 금강화섬 동지들이 끝도 보이지 않는 폐업투쟁을 하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6월부터 본격적으로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6월 4일에는 투쟁하는 업체 중심으로 현장투쟁단을 꾸려 활동하던 기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지회로 전환하는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는 정규직노조, 대의원들과 함께 대대적인 조직 확대 사업을 전개했다. 현대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 GM창원,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각각 수백 명에서 2천여 명에 달하는 조합으로 조직력이 확대되면서 선도투쟁에서 대중투쟁으로 나아갈 조건을 확보했다.
8월 26일 금속산업연맹은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요구를 내걸고 원하청 공동파업을 조직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정규직노조가 정치총파업에 불참한 가운에 비정규직지회가 독자파업을 통해 화성공장 전체를 세우는 대중파업을 전개했다. 이 날의 대중파업을 두고 기아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중파업 원년’이라는 정치적 의의를 부여하고, “정규직이 못한 파업을 우리가 해냈다”는 자신감과 감격을 표시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3사와 GM창원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분파업과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집회를 만들어냈다. 단식, 점거, 거점농성 등으로 핵심간부와 조합원들만이 참여하는 선도투쟁이 이제는 대중투쟁, 대중파업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정규직노조는 노조사무실, 단협, 원청과의 교섭 등 노조활동을 위한 초보적인 권리조차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 3차로의 비정규직 내부 분열과 계약해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이 지속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급기야 9월 4일에는 현대자동차 류기혁 동지가 노조 옥상에서 자결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핵심 활동가들은 곧바로 다음 날 철탑을 점거하고 결사투쟁을 전개했다. 태풍이 몰아치고 저체온으로 탈진한 상태로 인해 목숨을 건 철탑점거 투쟁은 눈물을 머금고 중단돼야 했다. 현자비정규직노조는 결국 류기혁 열사 투쟁을 불법파견 투쟁과 연결시켜서 독립적인 대중투쟁으로까지 끌어올리지 못했다.
10월 7일 원청 자본과의 불법파견 관련 특별교섭에서도 현자자본은 “비정규직 문제는 현대자동차(주)와 현자노조간의 문제이지 비정규직노조와 현대자동차(주)와의 관계가 아니다. … 현대자동차(주) 노사간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교섭 자리에 비정규직노조가 함께 온 것 정도로 이해한다”면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심지어 “우리는 교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정규직노조가 있음으로 인해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비정규직노조가 빠져줄 생각은 없는가?”라고 모욕적인 발언까지 했다. 결국 정규직 임단협 합의로 만들어진 원청 자본과의 특별교섭국면에서도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는 불법파견 철폐투쟁을 전면화 시켜내지 못하고 있다.
한편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 선진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연대 속에서 8월 26일의 독자파업에 이어 주 2회의 독자파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기아 원청 자본은 기아비정규직지회의 파업이 전체 생산라인의 가동을 멈추는 위력적인 투쟁으로 계속되자 10월 31일 투쟁의 구심인 신성과 나머지 7개 업체를 계약해지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기아비정규직지회는 신성의 계약해지일을 며칠 앞둔 10월 25일 기습적으로 조립라인 점거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비정규직지회는 계약해지협박에 굴복한 조합원들의 대거 이탈, 정규직노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3일간의 라인점거 파업을 중단하고 신성업체 분사를 수용했다.
GM창원비정규직지회는 김학철 정규직 집행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전면파업, 부분파업 등 대중적인 투쟁을 조직해냈으나 지회 조직력의 근간이 되는 (주)대정 업체가 계약해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지회는 부분파업과 정규직 창원지부와 함께 공동 잔업거부 투쟁을 전개했으나 결국 72명의 지회 조합원들이 계약해지를 당했다.
현대자동차 5공장, 기아 신성, GM대우창원 (주)대정 등 자본은 투쟁의 주력인 핵심 업체들을 계약해지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조직력을 와해시킨다. 계약해지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진할 수 없다. 정규직노조의 강력한 연대가 없이 현재 비정규직노조의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원청 자본의 탄압을 뚫고 나가기 어렵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의 대공장 정규직노조는 조합주의에 사로잡혀서 비정규직 투쟁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연대는 비정규직의 독자적 행동과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대공장 내에 만들어진 원하청연대회의 같은 기구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을 강화시키고 계급적 단결을 높이는 기구가 아니라 정규직노조의 패권으로 투쟁을 가로막는 기구가 돼버렸다. 현재 대공장 내의 원하청연대회의는 조합주의적인 정규직노조에 의해 계급적 단결을 실질적으로는 외면하면서도 원하청연대회의의 형식적 운영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겉치레 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원하청연대회의는 없어져야 할 기구인가? 조합주의 정규직노조가 어용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겉치레로 연대기구를 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원하청연대회의가 진정으로 계급적 대단결의 기구가 될 수 있도록 투쟁하는 것이 앞으로 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의 과제이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의 임무이듯 정규직과의 연대는 비정규직 노조 스스로 자주성과 능동성을 높여낼 때 쟁취되는 비정규직 자신의 임무이다.
철도에서는 본조가 외면한 가운데 서지본과 현장조직 차원의 연대로 홍익매점, 새마을호 ‘여승무원’ 비정규직 투쟁이 전개됐다. 하지만 서지본은 철도 내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촉발시키고 알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에 있어서 핵심 투쟁주체를 발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서지본은 “새마을호 계약직 여승무원은 기관사 1인 승무를 시행하지 않음에 따른 인력 충원 시 정규직원으로 전환한다.ꡓ는 청과 노조의 4.20 합의를 근거로 정규직화 요구를 하지 않았다. 단지 ‘계약연장’으로 투쟁 요구를 제한하고 정규직화 투쟁은 장기적 투쟁과제로 잡았다. 서지본이 비정규직 투쟁을 전면화 시키려 했다면 4.20합의를 파기한 청에 맞서서 정규직화 요구를 걸고 당시 합의의 당사자였던 철도노조 본조가 투쟁의 전면에 나서도록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본조가 이 투쟁을 외면한다면 이에 대한 대대적인 폭로작업 또한 수행했어야 했다.
결국 새마을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쟁을 자신들의 임무로 받아 안지 못했고, 서지본은 주체 역량의 능동성과 자주성을 높여내지 못하고 의존적으로 만들었다. 새마을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지본의 투쟁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두고 있다가 마지막에는 개별적으로 공채시험에 응하는 것으로 투쟁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철도 내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좀더 대중적으로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성과로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투쟁은 KTX 여승무원투쟁을 촉발시켰다.
대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단협 인정, 노조 인정을 내걸고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하던 9월 10일에는 화물연대 김동윤 동지가 유류세 인상과 유류보조비 압류에 항의해 분신을 하고 3일 뒤에 숨졌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열사를 보낸 분노와 더 이상 뒤로 밀릴 데 없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 즉각 파업을 요구하던 조합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11월 민주노총 투쟁 일정 뒤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화물연대 지도부는 투쟁본부회의에서 정부와의 교섭에만 몰두하다가 김동윤 열사가 분신한지 1달 만에 장례식을 치렀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김동윤 열사를 이렇게 보내려고 30일 동안 차가운 냉장고에 넣어놓았냐”며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는 현재까지도 일하고 있는 화물노동자들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정부안을 받아놓고 도대체 총파업은 언제 할 것이냐”며 투쟁의지가 없는 지도부를 성토했다.
10월 13일 덤프연대가 5월에 이어 재차 파업에 돌입하고 레미콘 노동자들이 10월 21일 부분파업에 돌입하면서 덤프연대와 공동집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화물연대는 끝끝내 이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요구를 전면에 내걸지 않고 유류세 인상과 유류보조비 압류해제로 요구를 축소시켰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이들이 개인사업주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유류세를 인하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화물연대의 경유세 보조금과 유류세 인하 문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노동3권 쟁취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제기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화물연대 지도부는 2003년도의 패기와 투쟁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정권과의 투쟁에 부담을 느껴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가라앉히는 관료주의 지도부로 변해버렸다. 노조를 만든 지 고작 몇 년이 되지 않아 안정적인 노조운영 자체가 힘든 비정규직 노조 내부에도 노동운동 내부의 관료주의적 흐름이 노조 지도부 사이로 파고들고 있다.
10월 23일에는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120명의 해고자 중 61명이 업체 폐업에 맞서 크레인점거 농성을 전개하면서 공장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하이스코 자본은 식수와 음식물반입을 금지시키고 경찰은 강제진압을 준비하며 압박했다. 점거 다음 날 순천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전남 지역의 노동자 5천여 명은 전경차 3대를 전소시키면서 공장진입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했다. 그러나 울산플랜트노조에 이어 하반기 투쟁전선을 달구었던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11월 3일 확약서 체결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확약서는 “신규채용 및 4조 3교대 도입 등을 통해서 기능과 경영여건 등을 고려하여 사내하청 업체 폐업 등으로 인한 실직자들이 우선 취업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는 구체적인 실효성이 없는 확약서였다. 민형사의 문제는 “최소화되도록 건의한다”에 그쳤고 이번 점거 사태에 대해서 지회는 유감표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확약서에 담아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확약서에도 불구하고 구속자가 발생하고 복직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화물연대, 울산건설플랜트노조의 투쟁에서 보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반적으로 자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하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계약해지, 관리자의 비인간적 폭력과 욕설로 가슴 속의 분노를 투쟁으로 촉발해내지만 계약해지의 협박 앞에서 금방 투쟁의지를 상실한다. 또한 조합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다 보니까 노조지도부가 기만적인 내용으로 합의해도 부결투쟁 한번 조직하지 못하고 투쟁을 마무리하고 만다. 비정규직노조 내부에도 의식적인 정치가 보급되고 활동가 층이 넓어져야 한다. 비정규직 투쟁이 자생적인 분노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 의식적인 계급적 전망을 안고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부가 관료주의에 빠져있는 비정규직 사업장에서는 내부 투쟁을 조직하고 대체 지도부를 형성할 수 있는 의식적인 투쟁세력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다. 조합주의에 사로잡힌 대공장노조와 투쟁의 전망
2005년 계급투쟁의 패배는 대공장 사업장들의 침체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에 대비되는 정규직노조의 투쟁회피와 조합주의적 타결은 투쟁에서도 양극화를 가져오고 있다. 2004년 투쟁에서 대공장 사업장들의 투쟁이 백기항복으로 패배했다면 2005년에는 아예 깃발을 펼치지도 못했다. 7월 아시아나 조종사노조의 파업에 정부는 역대 정부 하에서 두 번밖에 없었던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12월의 대한한공조종사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두 항공사노조는 정부의 긴급조정권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7월 20일 산별총파업에 돌입했던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에 이어서 또 다시 직권중재에 굴복하면서 중노위의 중재재정 일부를 수용하면서 파업을 철회했다.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의 산별노조 중앙교섭과 집중투쟁은 단기간에 마무리되면서 자본에 거의 타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 산별중앙교섭이 마무리됐지만 비정규직, 구조조정 등 내부 문제는 단사별로 그대로 살아있다. 자본은 산별 차원의 중앙교섭을 이유로 내부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해태하고 있다.
도시철도에서는 올해 임원선거에서 지난 해 궤도파업의 패배 이후에 투쟁의 전망을 상실한 조합원들이 어용을 선택했다. 도시철도 내 활동가들 중 누구도 어용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의 충격은 컸다. 서울지하철에서는 역으로 배일도와 배일도의 후예들 중심으로 남아 있는 어용들에 대한 반어용 전선으로 지난 해 궤도파업에서 직무대행을 맡았던 김종식이 민주파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서울지하철의 김종식은 평양지하철과 교류한다는 이유로 공사 관리자와 몰래 평양을 방문하는 ‘기획방북 사건’으로 협조주의적 작태를 보이고 현장을 뒤집어 놓았다. 또한 노사공동 주5일제 연구용역에 참여하여 단사 판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구하였으나 그 결과는 최종 용역진단이 공사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구조조정안으로 확정되는 것이었다. 발전노조는 민주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집행 2년 동안 연속 무쟁의를 했다. 사회보험노조는 ‘합법적 쟁의 공간’ 운운하면서 일방적인 패배와 양보를 거듭하면서 114명의 원거리전보 수용, 해고자 양산, 단협 후퇴를 수용했다. 이 결과 이후 선거에서 어용이 집행부를 장악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최고의 호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전반적으로 임단협 일정이 미뤄지면서 예전에 휴가 전 타결에서 올해는 추석 전 타결이라는 짜여진 공식으로 움직이다가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한 채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특히 이상욱 집행부는 류기혁 열사를 열사로도 인정하지 않는 초반동적 입장을 보이다가 현대자동차 열사회나 현장 활동가들, 심지어는 우파나 시민단체들로부터 대대적인 비판을 받았다. 기아자동차 남택규 집행부는 비정규직지회의 독자파업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면서 마찬가지로 정규직만의 요구를 중심으로 임협을 마무리했다. 정규직노조가 추석 전에 임협을 마무리하고 찬반투표가 가결된 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아 기아자본은 기다렸다는 듯이 구사대 수백 명을 동원하여 살수차를 동원하고 차량돌진을 하는 등 비정규직 투쟁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이처럼 대공장노조는 전반적으로 합법주의와 투항주의, 조합주의에 사로잡혀 자본과의 일전을 회피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공장 노동운동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이러한 대공장 운동의 침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진단이 나오고 있다. 관료들은 조합원들의 보수주의와 실리주의가 대공장 침체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들은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연대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에 제대로 연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노조는 9월 28일 비정규직 투쟁에 용역깡패가 현장에 투입되어 난동을 부린 다음 달 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대의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총회결정을 내렸다. 결국 시기적으로도 9일이나 지나서 조합원들의 분노가 가라앉고 부결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정규직노조는 10월 7일 ‘노동탄압분쇄와 원하청 공동투쟁 승리를 위한 조합원 총회’를 개최했다. 결국 이 ‘자살총회’는 38.5%만 찬성한 채 ‘부결’로 결론 났다. 이러한 내막을 은폐한 채 관료들은 기아자동차의 총회부결 수치인 6 : 4를 정규직 조합원의 비정규직 연대를 외면하는 수치로 악용하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의 정서가 설사 자본이 조장한 계급분열과 고용불안 협박으로 후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회피하는 근거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후진적인 정서에 영합하는 것은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아나 현자에서 보듯 조합주의 집행부는 자신들이 조성한 조합원들의 정서 뒤에 숨어서 조합주의를 정당화한다.
정규직 대공장의 침체는 이밖에도 자본과 정권, 그리고 자본의 나팔수인 부르주아 언론이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넘어간 결과이기도 하다. 부르주아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계급분열을 조장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뼛속 깊이 심어놓는다. 총자본은 지난해에 이어서 정규직 고임금론, 노동귀족론을 강력하게 유포하여 정규직의 임금삭감과 파업을 파괴하는 술책을 사용한다.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는 비정규직의 열악한 상태나 저임금을 근거로 정규직 고임금론, 노동귀족론으로 맞섰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에는 실업문제, 일자리 창출을 근거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했다. 노무현은 노동자계급 대오 내부의 조직화되지 못한 후진대오로 하여금 자신의 열악한 삶에 대한 비관, 상실감, 불만을 내부의 문제로 돌리게 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 대오를 비난케 하는 통치전술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자본에 매수된 노동관료들의 비리문제로 인하여 더욱 더 정당성을 확보했다. 자본의 막대한 이윤과 부의 축적을 정규직노동자와의 임금차이로 비교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조직된 힘으로 쏟아내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더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잘 먹히지 않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축적의 일반적 법칙은 생산과정의 기술적 변혁이나 새로운 생산수단의 도입이 노동력의 고용보다 더욱 더 빨리 이루어지면서 산업예비군(실업자)을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본은 이 산업예비군을 근거로 노동자간 분열을 꾀하고 취업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서 임금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남한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를 통한 잉여가치는 정규직노동자에게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자본은 비정규직 투쟁을 파괴하고 정규직의 연대를 가로막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정규직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지만 보통 비정규직의 확산과 저임금은 정규직의 임금인하와 노동조건 하락의 물질적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 남한의 정규직노동자들 조차도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실리주의나 보수주의는 물질적 근거가 취약하다. 그럼에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수주의에 사로잡히는 것은 “실업자들과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는데 짤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게 어딘가? 비정규직에 비해서 이 정도의 임금만이라도 받는 게 어딘가?”라는 상대적 만족감의 표현이다. 이 상대적 만족감은 자본으로 하여금 노동자의 요구를 낮추게 하고 구조조정을 하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상대적 만족감은 현재와 미래의 고용불안 등으로 인해서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는 돌멩이처럼 정규직노동자들의 삶을 위태롭게 몰아가고 있다.
파업의 패배로 인한 패배의식과 노조에 대한 불신, 현 조합주의 집행부를 대체할만한 세력의 부재 등의 주체 역량 문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기대치를 낮추는데 한몫하고 있다. 자본은 이러한 상대적 조건, 상대적 만족감을 비정규직 노동자 내부에도 조성하고 있다. 자본은 비정규직 대오 내부에서 대공장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내부의 2, 3차 분할로 인한 비정규직 대오 내부의 상대적인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분열의 요소로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남한에서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확산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하락하고 조직화를 파괴하는 근거로도 활용되고 있다.
결국 자본의 이러한 분할공세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들이 강력하게 조직되어 정규직 노동자와 계급적 단결로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수밖에 없다. 정규직노동자들의 상대적인 노동조건, 임금, 고용안정 조건이 위협당한다면 정규직노동자들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본이 이것을 조장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어용 배일도를 낙선시키고 김종식 집행부의 용역구조조정에 대해서 불만을 보이는 것, 도철에서 지난 해 궤도파업의 패배 이후에 어용을 찍었지만 곧바로 승무에서 비공인 파업이 벌어진 것, 철도에서 협조주의 집행부가 벌이는 몇 차례의 파업철회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70%가 넘는 높은 파업찬성률과 수천 명의 집회참석으로 나타난 것들이 그것이다. 물론 협조주의 집행부는 이러한 불만을 내년 2월 투쟁으로 연기함으로써 또 다시 배신행위를 저질렀지만… 이러한 정규직 조합원들의 상태는 대규모 자동차 사업장이나 조선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대공장 내부의 협조주의자나 어용들도 자신들의 관료적 지위를 유지하는데 쉽사리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전투적 활동가들이 대안세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대공장 내에서 어용과 협조주의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집권하고 있을 뿐이다. 대공장 노조 내부에는 아직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가 괴멸되지 않고 살아 있다. 노동자들의 잠재된 힘도 완전히 죽지 않았다.
자본의 비정규직 확산과 제도화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의 해체를 통해 착취강화와 이윤확대를 도모하여 안정적인 축적을 하는 데에 있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남한 자본가 국가는 이 요구에 화답하여 비정규법안 개악에 이어 노사관계 로드맵 공세를 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법안 개악은 비정규직의 문제이고, 로드맵은 정규직의 문제라는 인식은 위험천만하다. 비정규직 수준으로 삶이 후퇴하여 하향평준화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권의 보장과 인간다운 물질적 풍요와 안정된 일터, 높은 수준의 문화향유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욕구를 높여야 한다. 이 사회적 욕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욕구 속에서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3. 왜 비정규법안 개악 전선은 이토록 참혹하게 무너졌는가?
기아자동차 남택규 집행부는 “하반기 투쟁목표는 권리보장입법 쟁취이다”라면서 조합원들한테 선전하면서 몇 차례 출근투쟁을 했다. 그러나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는 부결됐다. 기아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할 때 철저하게 방관하고 외면해놓고 비정규법안 개악에 맞서 투쟁한다고 하면 그 진실성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화물통합준비위원회 김종인 의장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와 함께 특수고용 노동자의 기본권도 반드시 쟁취되어야 한다”고 최근의 비정규법안 개악 저지 집회에서 발언했다. 당장 조합원이 분신하고 조합원들이 즉각적인 총파업을 요구하는데도 파업을 회피해 놓고 총파업이 될 리가 있는가?
자본의 비정규법안 개악 공세 이전에도 이미 전국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은 계약해지, 불법파견에 맞서 처절하게 투쟁했다. 그런데 사업장 내에서 직접적인 투쟁이 벌어질 때조차도 연대가 조직되지 않는데 비정규법안 개악에 맞서는 정치총파업이 조직될 리는 만무하다. “여기가 싸울 곳이다. 여기서 싸워라!” 비정규법안 개악 저지 전선이 이처럼 무너진 것은 2005년 투쟁의 패배와 조합주의적 마무리의 반영이다.
자본과 정권은 이미 1년 전부터 비정규법안 개악과 로드맵 도입 의사를 밝히고 추진해왔다. 그런데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 운운하면서 ‘협상과 투쟁’을 병행한다며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들락 거렸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은 이수호 집행부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노동자계급에 대한 폭압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총파업은 조직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유실됐다. 그러니 황우석의 사기처럼, 사퇴한 이수호 집행부가 2006년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을 하겠다는 것이 1천5백만 노동자들을 상대로 벌인 얼마나 엄청난 사기인가?
이수호 집행부가 강승규의 비리로 사퇴하고 비대위가 꾸려진 가운데 임박한 비정규 법안 개악 저지 투쟁은 이수호 집행부가 벌여놓은 양보교섭과 사회적 합의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수호 집행부는 어용 한국노총과 노사정대표자회의 내에서의 공조를 중심으로 협상에 무게를 두었다. 민주노총 비대위는 ‘최대한 교섭 통한 합의 도출’이라고 하면서 “지난 4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주재한 노사정 협상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출발한다”고 했다. 이 내용은 이른바 1+1로 1년은 사용제한 없는 무제한적 사용 후 1년 뒤는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계속 사용 시에는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노총도 실력만 있다면 전비연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정규직을 통째로 철폐하거나 처음부터 사용사유를 제한하거나 파견법을 철폐하고 싶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두 마리를 다 잡겠다고 하다간 두 마리를 다 놓치는 형국이 아닌가?”라는 논리로 민주노총과의 공조를 깨고 사유제한을 포기하는 양보안을 제출했다. 한국노총의 이 논리는 절대악 보다는 사회적 교섭으로 차악을 만들어내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 논리는 그 동안 민주노총 관료들이 한국노총과 공조하면서 끊임없이 유포한 사회적 합의주의의 논리와 동일하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비정규법안 개악 저지가 아니라 연내입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연내 입법화 주장만 하지 말고 어떻게 연내입법화를 해낼지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저지를 넘어서 쟁취로’라는 슬로건을 외쳐왔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개악안 저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권리보장입법안을 쟁취하려고 하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연내입법화 주장은, 경총안+정부안+한국노총의 안을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안과 뒤섞어서 최악의 안보다 덜 나쁜 차악의 안으로 만들고 이를 의회주의의 성과로 가져가서 장기적으로 다수의석 확보와 집권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회주의의 전망 하에 배치된 것이다. 실제 이러한 의회주의 전망 하에서 민노당은 기간제 사용 사유제한 대신에 사용범위를 넓히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여기에 사용사유 제한에 있어서도 “수출주문의 예외적 급증이 발생한 경우”와 “기업의 일시적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 “그 밖에 일시적 ․ 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포함한 10가지를 제시했다.
이러한 민노당의 제한사유는 바로 자본이 파견노동자를 확대하려는 사유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고 이 사유대로라면 자본은 별다른 제동 장치 없이 파견노동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제한 사유를 제시하면서 범위를 넓혀놓았기 때문에 민노당의 안은 사실상 파견노동자 확대법안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연내 입법화라고 하면서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문제는 이번 입법화에서 빠져 있다. 이 조차도 경총 안, 정부 안, 한국노총 안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정, 절충의 과정으로 더 개악될 소지가 크다. 경총은 “미흡하지만 정부의 안이 마지노선이다”라면서 한발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전비연에서 폭로하듯 정부와 사전에 자신의 안을 조율하고서는 짐짓 자신들도 정부안으로 양보하는 듯한 기만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자본은 이렇게 비타협적으로 원칙을 사수하고 있다. 경총 부회장인 김영배는 KBS토론에 나와서 자신들의 입장이 통과되지 않으면 차라리 연내입법하지 말까?라며 민노당과 민주노총의 연내입법화 입장을 비웃고 있다. 과연 자본의 내심이 그런가?
민노당은 12월 8일 권영길 주선으로 양대노총 위원장과 단병호의원이 참여한 가운데 연내 입법화와 사용제한의 기본적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사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가지고 양대노총 공조 복원을 주선했다. 민노당은 이를 근거로 정부와 여당에 대해서 ‘정치적 대타결의 장으로 나올 것을 촉구’하면서 이것이 “‘노동자를 위한 대타협의 단계적 접근’을 실현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민노당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국회 앞에서 농성투쟁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철폐 현장투쟁단’은 “기간제 사용사유 확대안은 철회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비철현투단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전진은 전진 소속인 단병호 의원과 전재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이 추진하는 양보안인 것을 은폐하고 있다. 해방연대는 “‘비정규직 철폐’의 대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수정안을 제출한 권영길 의원과 단병호의원은 수정안을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당은 어떠한 비정규직법 개악시도도 온몸으로 막겠다는 각오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방연대는 민노당이 제출한 개악안을 비판하면서도 민노당이 원칙을 분명히 하고 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해방연대는 지독하게도 민노당에 대한 환상과 주관적 바람에 사로잡혀 있다.
민노당의 한국노총과의 공조를 복원하기 위한 양보안 제출은 오로지 표를 더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량주의 정당의 본질적 속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민노당은 심지어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산물 협상에서 “정부는 우리경제에 족쇄를 채우지 말고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라”면서 소부르주아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기조차 하고 있다.
법률은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피지배계급과의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의해 지배계급이 양보하면서 타협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한 전진적인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보통선거권, 노동조합법, 집회와 사상의 자유 등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의해 자본이 양보한 법률이다. 자본은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힘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률을 개악하려 한다.
지금 남한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계급의 힘이 약화됐다고 보고 마음껏 착취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개악된 법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자본은 일방적으로 법을 통과시켰을 때 96년 노동법개악 저지 총파업투쟁 같은 노동자계급의 대대적인 반란과 저항이 조직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안정적인 착취강화를 위한 법률제정을 하면서도 부르주아 지배의 정당성과 안정성의 토대를 위협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은 노동운동에 일정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본과 협조적인, 타협적인 기회주의자들과의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자본은 노동운동 상층의 기회주의자들과의 토론, 합의와 동의라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합법적, 합리적 형태의 입법제정의 모양새를 취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자본의 이해가 100%는 아니더라도 7, 80% 정도는 관철된다. 자본으로서는 이 정도면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최소화 하는 대신에 얻는 성과로는 만족할만하지 않는가? 현재 민노당의 개량주의자들은 민주노총 비대위 관료들과 손을 잡고서 의회 내에서 자본의 들러리, 계급투쟁의 완충장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관료들과 민주노동당 의회 관료들의 개량주의적 책동을 분쇄하지 않는다면 총파업투쟁 전선은 제대로 형성될 수 없다. 적들의 비정규 법안 개악과 로드맵 공세 앞에서 대적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위급한 국면에서도 내부의 기회주의자들에 대한 폭로가 조직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4. 폭발하고 있는 대중들의 불만을 어디로 조직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은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이다. 그러나 독점자본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한 줌도 안 되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은 노동자계급의 후진적인 부위와 소부르주아들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해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시민단체, 과거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을 해왔던 소부르주아, 한겨레신문 같은 소부르주아 언론은 노무현정권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면서도 소부르주아를 자신들의 지지층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딜레마 때문에 노무현 정권은 개혁과 민주주의의 환상을 끊임없이 유포하고 있다. 부패청산, 역사청산, 재벌개혁, 국가보안법 개정, 부동산 개혁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소부르주아적 개혁성은 현실에서는 하나도 온전하게 만들어지지 못하고 좌초되고 오직 독점자본만의 정책으로 귀결됐다. 왜냐하면 소부르주아적 개혁정책 내에도 실은 총자본의 이해가 숨어있고 독점자본의 요구와 압력에 의해 소부르주아 개혁성의 껍데기마저도 벗어던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는 소부르주아는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노무현 정권에 의해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소부르주아적 평화에 대한 환상은 이라크파병으로 좌초됐다. 소부르주아의 부패청산에 대한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무현정권의 권력부패는 계속됐다. 부패청산은 독점자본의 요구이기도 하다. 독점자본은 지난 아펙에서 반부패선언을 한 것처럼, 부패와 매수가 자신들이 힘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비용이 들어가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왜곡하기도 하기 때문에 한편에서는 부패청산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패와 비리는 독점자본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원천적인 힘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는 청산될 수 없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는 노무현 정권은 2005년 한 해에만 3번씩이나 거듭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부동산가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또 다시 8.31부동산 정책 2단계를 마련해서 내년에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으려고 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전월세 주택가격 안정 같은 소부르주아 정책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은 산업자본의 생산수단 중의 하나인 토지가를 낮추고 부동산 투기를 막아서 생산적인 부분으로 자본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개혁도시, 행정도시, 혁신도시 등 각종 개발정책에 의해서 땅값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정책을 이율배반적으로 만들었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각종 세금부과는 실질적인 부동산 소유자들인 독점자본의 반발에 의해서 약화되고 있고 세금을 매긴다 하더라도 토지소유로 인한 이익보다 낮기 때문에 정책의 약발이 먹힐 리가 없다. 또한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독점자본은 업무용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중과세를 면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부르주아가 토지를 내놓게 되면서 토지의 독점화를 부추기기도 한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독점자본의 이해를 위해서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농민들의 생존권을 철저하게 박탈하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농민들은 노무현정권의 폭력에 의해서 타살당하고 있다. 소부르주아의 지위의 박탈, 노동자계급의 절대적, 상대적 빈곤의 증대로 인해 이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80 대 20의 사회는 점점 더 90 대 10의 사회로 최근에는 95 대 5의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부르주아 언론과 정권에서조차 인정하고 있고, 객관적 사실과 각종 부르주아 연구기관의 통계로도 증명되고 있다.
2005년 8월 중 취업시간대별 취업자 중 36시간미만 취업자는 3,846천명 전년 동월대비 1,112천명인 40.7%로 대폭 증가해서 반실업, 준실업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반해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8,330천명으로 766천명으로 4.0% 감소했다. 남한 자본주의의 공황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던 97년 노동소득분배율이 63%인데 2003년은 59.7%로 떨어지고 이러한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1982년 통계조사 이후 24년 만에 최악의 소득불균형을 보이면서 빈곤층은 716만 명에 달하고 있다. 생계형 자살은 년 1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소득불균형보다 금융자산은 이 보다 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상위 1%가 51.5%의 부동산을, 5%가 82.7%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 해 개인소득 증가율이 2.6%인데 반해 기업소득 증가율은 38.7%에 달하고 있다.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97년 상반기 15.2%에서 04년 상반기 8.2%로 급락하고 있다. 기업이익은 최대수준에 달하고 있다. 매출액 경상이익률(경상이익/매출액)은 97년 상반기 1.4%에서 IMF 직후 -0.4%로 하락했다가 2004년 상반기는 12.8%에 달하고 있다. 특히 5대 재벌은 19%로 한국경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이렇듯 양극화를 인정하지만 이 양극화가 착취의 증대의 결과임을 은폐한다. 그렇기 때문에 분배의 문제로 접근하여 세금과 정책으로 해결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자본주의는 자본을 위해 법인세를 낮춰주고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를 올리고 있고, 노동자계급한테는 국민연금을 개악하고, 각종 사회보장성 비용을 낮추면서 이 분배의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한다.
생산은 점점 더 사회화되는데 그 생산의 결과는 한 줌도 안되는 자본가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바로 양극화이다. 이러한 모순에 의해서 노자간의 적대적 대립은 심화되고 근로인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이 양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자본의 성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실업문제의 해결과정이 비정규직의 확대 같은 반실업 상태에 놓인 노동자의 증가를 낳듯이 자본주의적 문제 해결 과정은 철저하게 폭력적으로 진행되면서 계급모순을 심화시킨다. 자본은 소비의 감소가 상품의 과잉생산을 더욱 더 해소하지 못하게 하고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적대적 모순을 심화시키는 줄을 알면서도 그 길을 폭력적으로 가고 있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투쟁만이 자본주의체제가 자행하는 억압과 착취, 생존권의 말살로부터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을 구해낼 수 있다. 남한의 노동자계급운동이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전체 근로인민을 이끌어가는 역사발전의 추진력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 내에 만연한 반연대성, 계급적 단결의 저해, 노사타협주의를 의미하는 조합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현재 남한의 대공장운동이 활력을 잃어버리면서 비정규직 투쟁이 운동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운동은 부문주의 운동이 아니라 계급운동의 일부이고 계급운동을 전투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한다.
비정규직 확대는 축적위기에 빠진 자본이 타자본과의 경쟁에서 초과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핵심적인 전략이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으로 조합주의에 사로잡혀 투쟁을 회피하는 대공장의 조합주의 집행부의 반노동자성을 폭로하게 만들고 있다. 자본이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써 추구하는 비정규직 확대가 ‘역사의 복수’가 되어 자본을 매장하는 무덤이 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독점자본과 남한 자본주의에 실질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중심적인 힘은 대공장에 있다. 관료들이 말하는 혁신이 아니라 대공장이 진정 노동자계급 해방의 진지가 되기 위해서 대공장 의 선진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는 정규직노조의 조합주의나 반연대성, 패권주의를 폭로해내야 한다. 더 이상 조합주의적 시야를 안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나 이 땅의 노동자들 중 가장 극악한 탄압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 안을 수 없다.
조합주의는 노동자의 사상이 아니라 자본의 이데올로기이다. 조합주의는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을 상실한 패배자들의 낡은 사상이다. 조합주의 사상을 가지고 노동력의 고용보다는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으로 늘어나게 될 완전 실업자, 반실업노동자와의 계급적 단결은 요원해질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과 조직화를 막고 초과착취를 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확대하려는 마당에 더 이상 인종주의적 차별과 편견, 배타적 국가주의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또한 자본주의적 세계화로 생존권을 파괴당하고 늘어나게 될 농업노동자와의 계급적 단결을 추구할 수는 없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외침은 상투적인 외침이 아니라 이제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대노동자 분열공세를 뚫고 생존하기 위한 절실한 요구가 되어 버렸다. 자본의 해외현지 생산 강화와 부품의 역수입, 자동차 자본 간의 인수합병이 본격화되면서 자동차산업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비정규직과의 계급적 단결과 해외 노동자들과의 국제주의적 단결 속에서만 추구할 수 있는 현실의 요구가 되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불안 앞에서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 해외공장 폐쇄 같은 협소한 조합주의와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빠져버린다면 자본은 이러한 노동자계급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여 약한 고리를 먼저 치고 중심부에 있는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해 들어올 것이다. 노동자국제주의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국제주의 사상을 견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계급적 단결을 외면하겠는가?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들의 생존권의 박탈로 인한 불만과 분노가 자본주의 체제를 향해서 폭발되도록 해야 한다. 만약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위가 대중들의 생존권의 위기가 자본주의체제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하게 인식시키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대중들의 분노는 파시즘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첨예한 위기상황에서 금융자본의 이해를 폭력적이고 극우적으로 대변한다. 그러면서도 파시즘은 생존권의 위기 등으로 불만에 사로잡힌 소부르주아와 노동자계급 내부의 후진적인 부위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현재 남한에서 파시즘적 강령을 내걸고 등장한 정치세력들은 아직 없지만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 자본은 자본주의에 대해 쌓여가는 대중들의 불만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자본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복종심을 높이기 위해서 국가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대중들은 각종 언론기구, 문화기구, 종교, 교육 등 부르주아가 가진 강력한 힘으로 유포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맹목적 애국주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대한 극단적 비난, 감각적 쾌락주의, 이성의 상실, 정치적 무관심과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이는 노동자계급이 강력하게 조직되어 이들에게 정치적 전망을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경쟁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 내부에 개인주의를 심고 집단적 연대성을 말살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위가 하루 빨리 당으로 조직되어 노동자계급 의식을 일깨우고 단결과 연대의식으로 무장하여 자본가 독재에 맞서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해방은 전체 근로인민들의 해방의 지렛대이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농민 수탈 정책으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농민과 자본의 폭력에 의해 하루아침에 주거권을 상실한 철거민, 생계의 마지막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나야 하는 노점상 등 근로인민들의 해방은 노동자계급과 함께 하는 투쟁 속에서만 쟁취될 수 있다.
전쟁의 광기와 인간성 상실, 삶의 전면적인 후퇴와 파괴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쌓여가는 고통과 불만을 인류의 삶을 전진시키는 노동자계급의 해방으로 조직할 것인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다. 각성한 노동자계급만이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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