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정협
|
2006-10-29 07:36:19, 조회:2,302, 추천:315
|
![]() |
|
|
![]() |
‘21세기 자본주의의 위기’를 읽고
‘진보평론’ 2006년 가을 호 중에서 특집 ‘21세기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읽었다. 5명이 쓴 5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 특집은 지은이에 따라서 공황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불황을 인정한다는 것, 미국 경제가 공황의 문턱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 미국경제의 공황은 세계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 중에서 미국경제의 공황이 세계공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이 점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 하였다.
1.임박한 미국경제의 파국
정성진은 크루그만, 루비니, 드용, 팰리, 로우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예측 전문가들이 2006년 말 또는 2007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불황을 점치고 있다고 말한다. 2006년 말 혹은 2007년 불황이 닥칠 경우, 2001년 불황 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진단한다. 왜?
첫째, 미국의 재정적자가 이라크 군비지출, 부유층 감세 때문에 2006년 재정적자가 4230억 달러(GDP대비 3,3%)에 이르게 돼서 정부의 추가지출 증대가 어렵다.
둘째, 금리인하 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 높은 유가와 원자재 가격, 부채를 통한 부동산 투기거품 위험 때문에 금리 인하 정책의 여지가 없다.
셋째, 이번 불황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큰 데, 이것은 소비지출과 거시경제에 미칠 위축 효과는 2001년 주식시장 거품붕괴 보다 훨씬 크다.
넷째, 2001년 불황이 닷컴 기업 주가 폭락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수출 수요의 위축이 작았지만 이번에는 수출수요와 직결된 미국의 소비 위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세계경제에 미칠 효과가 훨씬 크다.
사실 미국 경제의 2001년 이후의 경기회복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와 저금리를 통한 부동산 가격거품과 소비지출 증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장시복은 특집에 쓴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의 발전과 대외불균형’에서 미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노동시간이 증가하여 자본의 이윤율 상승에 기여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소비를 줄이거나 정체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계급의 생활수준은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했다.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본주의는 투기를 통해서만 일시적인 경제성장과 이윤율 회복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것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더 큰 불황의 수렁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이런 미국 자본주의의 모습은 비단 미국 자본주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자본주의에 공통적인 모습이다. 미국경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자화상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재생산,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 임금동결을 통해 이윤율 하락에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는 노동자의 저항이 강화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노동자의 소비를 정체 또는 하락시킬 수 있는데 자본은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이윤율 하락과 자본의 경쟁심화)을 끄기 위해서 이것에 신경 쓸 여유를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를 투기를 통하여 촉진시키고 있다. 이것은 다시 거품을 강화해 자본의 위기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확대·심화시키고 있다.
그만큼 자본의 위기구조는 단단하고 거대하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강화되고 투기가 판을 쳐도 자본의 경제회복은 경미하고 짧다. 하지만 그것이 자본의 위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이것이 현재 세계자본주의의 모습이다.
2. 금융공황
곽노완은 ‘정치경제학 비판과 21세기 금융공황’에서 맑스 공황론의 확장을 제기한다. 맑스의 공황론은 신용제도와 경쟁을 체계적으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김수행도 특집에 실린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맑스도 한 말이고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신용제도와 완전한 경쟁을 맑스의 공황론에 체계적으로 결합시켜 체계화하는 것은 병렬적인 작업이 아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곽노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황의 원인을 하나의 근본원인으로 환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복합적인 요인들의 특정한 작용방식”으로 공황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곽노완은 생산자본과 금융자본의 질적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동등한 자본 대 자본의 관계로 설정한다. 이것은 곽노완이 불명한 형태로 물질적 노동과 비물질적 노동의 구분을 ‘소재적 물질론’의 잔재이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구별과 대립은 이 소재적 물질론의 영향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곽노완에게 ‘산업자본이냐 금융자본이냐’는 대립구도는 깨져야 할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총체적 관계로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자본을 중심으로 하지 않을 경우에 공황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즉, 공황자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은 곽노완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운동관계를 총체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현상들의 병렬적 나열이나 자의적인 원인 선택의 문제를 낳게 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곽노완이 모호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계급론에서 생산적 계급과 비생산적 계급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 곽노완이 지나치다고 비판하고 있는 네그리의 물질적 노동과 비물질적 노동의 구별파괴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왜냐하면 자본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관계, 공황론에는 계급적대의 잉여가치론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곽노완이 자본의 핵심적인 내용 또는 체계를 가치론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황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를 좀 흐릿한 강도로 제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수행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운동관계를 맑스가 이야기한 “내적인 의존성과 외적인 자립성”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특히 21세기에는 경제의 금융화가 진행됨에 따라 공황이 마치 금융시장이나 자본시장의 혼란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이고 그 배후에는 항상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내적 모순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장기불황과 마르크스 공황론)
곽노완의 입장은 정치학에서는 총체성의 개념으로 경제적 토대의 정치적 상부구조에 대한 규정성을 대신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규정하고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주장이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 듯이 자본의 운동에서 산업자본의 규정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금융자본의 외적 자립성이나 독자적인 금융공황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금융공황을 산업자본과 내적인 관련을 통해서 규명하는 것이고 금융공황이 산업자본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경제의 규정성 없는 총체성 개념은 몇 개 요소의 단순한 산술적 합 이상이 아니다. 도대체 무엇으로 그 통일성을 확보할 것인가! 맑스주의에서 생산의 일차적이고 규정적인 지위와 역할을 무시하면 이미 맑스주의는 맑스주의가 아니다.
곽노완의 글은 아주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심각한 문제의 여지를 갖고 있지만 공황을 금융부문으로 확장시켜서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높이 살만하다. 곽노완은 특히, 환율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1세기는 자본주의적 투기대상이 급속하게 확장되고 환율도 중요한 투기 대상의 하나가 된다. 환율과 외환·자본시장 자유화의 결합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켜 공황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달러지배체제의 패권국인 미국도 미달러화의 급락에서 초래되는 대대적인 금융공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변동환율제, 외환과 자본시장 자유화, 미달러화의 패권화에 기초하는 미국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축적방식이 제3세계뿐만 아니라 자국에서 대대적인 금융공황이 발발할 조건도 동시에 축적하고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과 21세기 금융공황)
2001년부터 2006년 5월까지 미국의 누적적자는 2조 6천억 달러이고 이것은 미국GDP의 20%수준이라고 한다. 이 정도 무역적자면 다른 국가는 이미 파산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자본주의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헤게모니 국가이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바로 경제위기로 나타나지 않는다. 세계외환시장에서 미국달러화는 60%를 차지하고 있고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무역과 회환보유고를 달러화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화를 단순히 찍어내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 장시복은 미국이 1990년 중후반의 경상수지 적자의 주범은 상품수지적자라고 통계를 통해 제시한다. 이것은 미국제조업의 경쟁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또 주요한 수입상품품은 중국에서 주로 수입된 값싼 소비재이고 이 값싼 소비재는 미국 최하층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와 생활수준 하락에 맞추어서 국내 상품을 값싼 외국상품으로 대체한 것이다. 미국은 소비재를 값싼 외국상품으로 대체하는 대신, 대체하는 정도나 그 이상의 가치를 다른 상품의 수출에서 확보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뉴스에서 나오고 있는 것처럼 미국자본주의는 성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이것은 미국자본주의의 공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달러체제의 위기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 약화가 계속되고 미국의 무역적자가 계속되고 이라크 전을 비롯한 군비지출과 부유세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가 계속된다면 달러는 급격하게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달러를 다른 화폐로 바꾸고 달러 보유고를 줄이고 미국에 투자된 민간과 각 국 정부의 투자자본이 빠져 나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은 정치적·군사적 수단을 다 동원해서 달러체제가 무너지는 것, 달러의 최대보유국가들(중국, 일본, 대만, 한국)이 달러를 다른 통화로 바꾸거나 새로운 통화를 만드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자국에서 투자된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것이다. 이 과정은 세계 자본주의의 정치적·군사적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달러체제의 위기는 미국만이 아니라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를 동반한다. 직접적으로는 미국에 투자된 자본과 달러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는 중국, 일본, 대만, 한국자본주의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달러체제의 위기는 미국헤게모니의 붕괴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이 달러체제의 위기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 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임박한 미국발 세계대공황을 통해서 달러체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거나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세계대공황과 달러체제의 위기는 결합되어 공황의 파괴력을 무섭게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3. 공황과 헤게모니 위기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작동결과 자본의 장기불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윤율의 하락을 이윤량의 증대로 상쇄하지 못하는 자본주의는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과 저이자 정책과 결합되어 자본주의 역사상 최장기간의 불황 즉 구조적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정성진에 따르면 뒤메닐, 레비, 파니치, 진딘, 글린, 샤이크, 페트라스 등 저명한 좌파경제학자들이 세계경제가 구조적 위기에서 벗어났는데 좌파는 여전히 위기론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해서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좌파들이 종말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성진은 이들이 ‘일시적인 이윤율의 반등’=‘구조적 위기 종식’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통계를 분석해서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쟁점은 통계나 통계분석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의 문제이다.
맑스주의는 ‘공황=혁명’의 등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황을 통해서 저절로 자본주의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 다시 말해서 계급투쟁 없이 자본주의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카우츠키를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생각일 뿐이다. 김수행은 특집에 실린 ‘현재의 장기불황과 마르크스의 공황론’에서 “공황은 경제영역에서만 고찰한다면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표출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해소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는 공황을 통해 ‘일시적’으로 모순을 해소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모순을 확대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해 자본 이윤율의 하락구조를 심화시킨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이윤율이 0이 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자본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이윤율 하락에 반발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율이 그냥 0으로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서 노동력 재생산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로 착취를 강화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이다!
자본은 위기는 계급투쟁의 지도능력, 계급투쟁의 조직화가 없으면 노동자의 생존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로 나타난다. 자본의 위기는 자본의 양보여지를 좁히고 비타협적으로 만든다. 노동자는 투쟁하려면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해고를 전제해야 한다. 해고를 전제하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현재의 투쟁과 고통이 노동자의 내일을 잉태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의 위기’는 ‘사회전체의 위기’이고 사회전체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이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본의 의지가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전체에 관철된다. 자본의 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 고통분담론 등 자본의 반동적 공세가 사회전체를 위한 구원의 행위로 미화된다.
경제위기 없이 사회혁명은 없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의 위기로 나타나지 않으면 경제위기는 혁명의 발판이 아니라 반동의 발판이 된다. 경제위기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위기로 발전시키는 것,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창출로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성진이 비판하고 있는 케인즈주의로 전향한 저명한 좌파경제 학자들은 자본주의경제를 계급관계로 보지 않고 경제자체로 보았다. 그래서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화되는 현실에 절망하고 일시적인 이윤율 반등에 대해서 ‘구조적 위기 종식’의 이름표를 붙이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단으로 케인즈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노/정/협>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