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단호한 전진을 위하여-노정협 반비판
노동해방연대   2006-02-27 22:04:38, 조회:1,061, 추천: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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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단호한 전진을 위하여
노동자정치협회의 비판을 반박하며


최근 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에서 발행하는 ≪노동자정치신문≫ 12호는 [현장조직운동은 어떻게 강화되어야 하는가?](이하 [강화])라는 글에서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의 소식지 44호에 실린 [노동해방 현장정치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하 [현장정치활동])라는 글을 비판했다.
  이 비판은 일부 지점에서는 우리 글의 객관적 의미에 대해 잘못 접근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노동해방 현장정치활동’의 전반적 윤곽과 관련해서 진지하게 검토할 만한 쟁점들을 담고 있었다. 이 쟁점들을 검토하는 것이 ‘노동해방연대의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핵심’(이 핵심은 점차 더욱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을 명확히 제시하는 데서 어느 정도 유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반비판에 착수한 이유다. 이후 우리는 노동해방연대의 노동해방 정치활동노선의 구체적 윤곽에 대해 안내하는 체계적인 글들을 제출할 것이다.

현장조직과 현장‘정치’조직

논의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썼던 [현장정치활동]의 성격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현장조직운동’에 대해 일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글은 아니다. 이 글은 ‘현장조직운동’의 실패에 신음하면서 ‘노동해방 활동’으로 도약해야만 현장 활동가 조직의 일관된 전진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현장 투사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글이다. 당시에 이 투사들은 통상적인 현장조직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현장조직을 뛰어넘는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을 건설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동지들이었다. 한마디로 이들은 노동해방 투사들의 수준에는 아직 확고히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노동해방 투사들로 전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동지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현장 활동가조직이 기존 현장조직 수준을 뛰어넘어 노동해방 투사조직의 수준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들 스스로의 오랜 현장투쟁 경험, 나아가서 현장조직의 경험들로부터 자주적으로 끌어내고 있는 훌륭한 동지들이었다. <현장정치활동> 글은 이 투사들의 당시 발전단계와 문제의식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었다. 따라서 이 글을 검토할 때는 이 글이 노동해방 투사로 도약하고자 하는 동지들에 대한 답변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현장조직과 현장‘정치’조직이라는 개념에 대해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노정신≫의 글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이 혼용되면서, 우리가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에 대해 언급한 것을 ‘현장조직’ 일반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왜곡되는 일이 왕왕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통상적인 현장조직이란 ‘노동해방 투사들의 조직’은 아니다. 심지어는 ‘노동해방 투사조직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조직’도 아니다. 통상적인 현장조직은 약간의 수식어만 제외한다면, ‘노동조합운동을 나름의 견해에 따라 전개하기 위한 현장 활동가들의 조직’이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각각의 현장조직의 ‘견해’와 ‘구성원들의 성격’에 따라 현장조직은 준어용적 조직에서 전투파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전투파 조직의 경우에도 여기에는 노동해방 투사들로부터 시작해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는 인자들, 그리고 무당파 인자들이 두루 포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로는 이 차이 때문에 현장조직이 붕괴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현장조직은 정치활동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 아니며, 대개의 경우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전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실천을 전개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활동이 전면에 부각된다면, 현장조직은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상당히 첨예한 정치적 대립과 차이가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정신≫의 생각과는 달리, 현장 활동가조직으로서 현장조직은 만약 현장조직의 성격이 노동조합운동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정치활동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정치적 성격이 전면에 부각된다면 바로 그 순간 분열을 피할 수가 없다. 민주노동당의 정치를 지지하는 당원들과 노동해방 정치를 지지하는 투사들이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는 활동가조직’에서 동거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장조직은 이 조직이 ‘노동조합운동’ 수준에만 머물러 있을 뿐 ‘정치운동’ 수준으로 도약하지 않은 단계 혹은 의도적으로 정치활동을 배제하고 노동조합운동 수준에만 자신의 활동을 제한하는 상황(즉 여러 정치조직 활동가들이 노동조합활동 차원에서 공동전선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현장‘정치’조직은 이와는 다른 조직이다. 이 조직은 ‘정치’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현장 안의 조직이며, 그것도 (우리 글에서 다룬 의미대로 한다면) ‘노동해방 정치활동’을 지향하는 현장 활동가들의 조직이다. 이 조직은 노동해방 정치조직의 공장(혹은 현장)위원회 또한 그러하듯이 현장 내 활동에서 통상적인 현장조직들의 활동과 중첩되는 지점(노조운동 개입)을 갖고 있지만, 통상적인 현장조직은 아니다. ‘정치활동’을 자기 정체성으로 갖고 있으며, 나름의 독자적인 정치노선인 노동해방 정치를 갖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글에서 다룬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은 노동해방 조직의 공장위원회와는 다르다. 이 노동해방 현장조직은 아직 어느 정치조직에도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은 채 현장 안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과연 그것이 지속적으로 가능할 것인가는 별도의 문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추상적 가능성으로 볼 때, 어느 정치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도 현장단위에서 형성된 노동해방 정치활동을 지향하는 현장정치조직이 존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그 글을 썼을 당시에는 한 대공장에서 소수의 현장투사들이 자기 조직을 노동해방 정치에 입각한 활동가조직으로 발돋움시키려 시도하고 있었다. 우리 글은 그들의 그러한 발걸음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노동해방 정치조직과의 연계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한 과실을 얻도록 돕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미래는 다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도약을 포기하고 통상적인 현장조직으로 정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퇴보를 뜻할 뿐만 아니라 그 소중한 활동가들이 당면의 퇴행적 흐름을 극복하면서 전진하지 못한 채 주저앉는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 확신에 입각해 그들이 전진하도록 돕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도약’에는 여러 갈래의 가능성이 있었고, 우리는 그 글에서 그것들 모두를 명시해놓았다. 하나는 노동해방 정치조직과 결합해서, ‘노동해방 조직의 공장위원회’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이때 노동해방 조직은 노동해방연대일 수도 있고 다른 조직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 동지들이 판단할 몫으로 우리는 남겨두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노동해방 정치조직과 결합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남느냐 결합하느냐는 그들이 선택할 문제라고 우리는 규정해두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조언을 수정할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하며, 절대 수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고, 전진의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맞닥뜨리겠지만 현장의 선진적 노동자 투사들, 그리고 그들이 구성한 활동가조직이 통상적인 현장조직 수준에 머물지 않고, 노동해방 투사의 수준으로 도약할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또한 반드시 도약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정협≫에게 말하고 싶다 : “현장의 선진적 노동자 투사들이 스스로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을 건설할 가능성을 불신하지 말라! 그 방향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투사들을 현장조직 수준에, 노동조합운동 수준에 묶어두려 하지 말라! 노동해방 정치조직과 아직 확고한 결합을 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수많은 투쟁과 경험 속에서 스스로 자기 조직을 노동해방 투사조직의 수준으로 도약시켜야 한다는 소중한 자각에 도달한 선진적 투사조직의 가능성을 불신하지 말자!”  

건강한 현장 활동가들을 내쫓는다?

≪노정협≫은 [강화] 글에서 ‘만약 현장정치조직 내에서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의 정치적 하부단위가 되기를 반대하는 인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결국 노동해방연대의 입장은 일종의 ‘최후통첩’이라는 규정을 내린다. 타 정파의 활동가들을 배제하거나 무당파 전투적 활동가들을 추방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건강한 현장 활동가들을 내쫓을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지적에 답하기 이전에 우선 분명히 해야 할 지점이 있다. [강화]는 “실제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혼동’이다. 우선 [현장정치활동]이란 글에서 우리가 다룬 현장정치조직은 실제 사례로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글에서 질문을 던진 동지가 제기한 현장‘정치’조직은 당시로서는 하나의 구상에 지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추진 중일 뿐 상당 수준에서 실현된 상태는 아니며, 만약 우리의 정보가 틀리지 않다면 우리는 의미 있는 현장정치조직이 다른 곳에서 존재하는 경우를 알지 못한다. 결국 ≪노정협≫은 그 부분에서 현장정치조직과 관련된 논의를 하다가 갑자기 통상적인 현장조직으로 ‘비약’하면서 양자를 섞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다양한 정파 활동가들과 현장 활동가들이 공동으로 꾸리고 있는 실재하는 사례들, 그것도 다양하게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례들은 다름 아닌 ‘현장조직’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다루고 있는 것이 현장조직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이러한 공동전선을 인위적으로 해치지 않으며, 결코 누구를 내쫓으려 하지 않을 것임은 너무나 분명하다(더군다나 대부분의 경우 내쫓을 만한 힘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만약 우리 노동해방연대 동지들과 현장조직운동에서 접촉하고 있는 ≪노정협≫ 동지들이 있다면 누구도 그러한 예를 들지 못할 것이고, 이 점을 승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현장조직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우라면, 우리는 어디에서도 그런 정책을 구사한 적이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장조직이란 ‘정치’조직이 아니며, 따라서 ‘정치적 규정’을 도입해서 성원을 선별하는 것은 현장조직의 질에 전혀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현재의 현장조직들과 관련해서는 그 점은 분명하다. 그 점에서 [강화]가 ‘노동해방연대는 공장세포가 아닌 현장조직 자체, 전체 조직원이 계급의식을 획득하여 정치조직이나 당 조직의 하부단위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지 않으며 추구하지도 않는 정책을 가지고 우리를 비판할 수는 없소.”라고 간단히 답할 것이다.
  나아가서 [현장정치활동] 글에서 우리는 통상적인 현장조직과 관련해서는 일정한 참여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다음으로 노동해방 현장정치조직은 자기 주위에 노동해방 정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선진적인 노동자들과의 폭넓은 연계망을 조직해야 합니다. 이것은 ··· 어느 정도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현장조직 속에 노동해방 현장조직 동지들이 참가해서 미치는 영향력으로 ···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현장정치활동], p.11)라고 우리는 지적해놓았다. ≪노정협≫과 우리의 차이점은 ≪노정협≫의 판단과는 달리 현장조직에 참여할 것인가 참여를 거부할 것인가, 현장조직에서 타 정파나 무당파 활동가들을 배제할 것인가 배제하지 않을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무조건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또한 “만약 현장조직에 참여하는 경우, 타 정파나 무당파 활동가들을 배제하겠다.”는 입장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차이점은 있다. ≪노정협≫은 현장조직에 참여하는 것을 노동조합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일종의 필수적인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필요에 따라 ‘조건부 참여’에 찬성한다. 이것이 진실한 쟁점이다.

현장조직의 역사와 전망

우리는 현장조직이란 한국의 선진노동자운동이 현장에서 아직 정치적으로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불행한 상황의 산물이라고 본다. 현장조직은 현장의 ‘선진 활동가들’의 조직이다. 만약 선진노동자운동이 정치적 수준으로까지 확고히 발전했다면, 선진노동자들의 조직은 비당적 성격을 띠고 있는, 최소한 비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는 현장조직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선진노동자운동이 정치적 수준으로까지, 특히 당적 수준으로까지 도약한 나라들에서는 현장의 선진노동자 조직은 당의 현장위원회 형태로 자리 잡고 있지, 한국의 현장조직 형태로 존재하고 있지 않다. 각각의 정당, 혹은 정치세력의 현장위원회들은 현장대중 앞에 정치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경쟁한다. 현장의 사안을 둘러싼 그들의 실천까지도 단지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특정 정당의 모습으로 심판받고 평가받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것은 현장에서 노동운동이 발생하고 투쟁경험 속에서 선진노동자들이 탄생했지만 이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한국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 낙후되었던 상황의 산물이다. 도약의 가능성은 80년대 말의 노동운동 내 정파운동으로 희미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대부분의 정치그룹들이 파산해 소멸해버리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이 등장했지만, 이 당은 의회정당으로서 급속히 노쇠하면서 당의 현장위원회들을 건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현장의 전투적 선진노동자들의 지지를 충분히 끌어낼 수도 없었다. 이러한 부조화는 비정치적, 비당적 현장조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노동해방연대는 이러한 부조화는 현장의 선진노동자들이 노동해방 정치를 향해 전진하고, 노동해방 그룹들이 현장에서 발판을 확대시키는 것과 나란히, 즉 노동자 정치운동의 발전과 함께 극복될 것이며, 그 결과 정치적, 당적, 당파적 선진노동자운동이 떠오를 것이고 또한 떠오르게 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의 현장조직은 비정치적, 비당적 모습을 벗어던지고 이후 정치적, 당적, 당파적 형태의 현장위원회들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노정협≫의 지적처럼 (아주 기계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현장조직 과도기론’에 서 있다.
  그러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말한다면, 우리는 당적, 정치적 운동이 현장에서 자리 잡은 뒤에도 현장조직이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핵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장조직의 성격은 질적으로 재편될 것이다. 정당 혹은 정치조직의 현장위원회들이 현장의 특정한 사안을 가지고 일시적으로 혹은 상당 기간 공동으로 수립하는 공동투쟁위원회(물론 이 경우에는 현장조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현장조직들이 사안별로 꾸리고 있는 공동투쟁위원회가 그 경우에 해당된다) 정도의 의미로 축소될 것이다.  
  물론 현장 활동가들의 정치적, 당적, 당파적 도약은 인위적으로 강제하거나 도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현장정치운동의 발전에 따라, 즉 선진노동자운동과 노동운동의 정치적 도약을 통해서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 시점까지는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현장조직이 존재할 것이고,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노동해방 세력이 모든 경우에 현장조직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만약 노동해방 조직의 현장위원회를 통해 현장운동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실제로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면, 현장조직에 참여하는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서도 그 현장에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길을 선택할 것이다. 단, 이 경우에도 현장의 구체적인 사안들 속에서는 현장조직들과 공동전선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처럼 노동해방 조직의 현장위원회를 독자적으로 건설하여 실천하면서도, 현장조직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때 우리의 참여조건은 “전투적이고 민주적인 현장조직이어야 하고, 독자적인 노동해방 정치활동을 가로막지 말아야 하며, 집행부 장악에 매몰되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평조합원 운동에 집중하는 조직이어야 하며, 대중을 배신한 전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는 현장의 구체적 상황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선택에서 대단히 진지한 토론을 통해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해방 현장위원회의 독립성과 독자적 정치활동노선을 수호하며, 현장조직 뒤에 숨어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은 공통적인 것이다. 현장조직에 대한 참여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는 노동해방 세력으로서 독자적으로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다. 이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뒤에서 체계적으로 다루겠다.

현장‘정치’조직의 전망

그렇다면 이제 현장‘정치’조직과 연결지어 문제를 검토해보자. 만약 [현장정치활동] 글에서 우리가 다룬 의미의 현장정치조직이 탄생한다면, 즉 자신을 노동해방 정치에 입각해 활동하는 현장의 투사조직으로 정확히 (주관적으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현장정치조직이 등장한다면, ‘내쫓는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검토해보자. 만약 그 현장정치조직이 독자적인 길을 선택한다면 ‘내쫓는 문제’는 애당초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배제한다. 단, 이 경우에도 노동해방연대는 이 현장정치조직과 정치적 토론 및 공동실천을 성실하게 지속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는 경우의 수는 우선 주도세력이 노동해방연대에 결합의사를 갖고 있고, 나머지 성원들은 지지하지만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은 거부하는 경우일 것이다. 만약 이 경우라면 우리는 가입 의사를 갖고 있는 동지들을 받아들일 것이고, 그들을 노동해방연대의 현장위원회로 통합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 현장위원회는 지지하되 가입은 꺼려하는 인자들과의 협동은 지속할 것이다. 이들은 지지자의 자격으로 현장위원회의 대부분의 활동에서 함께 협력하고 실천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지지하지 않는 인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과의 관계와 협력은 물론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의 현장정치조직 형태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노동해방연대의 현장위원회와의 협력 관계로 재편될 것이다. 이것이 소수라도 건강한 동지들을 ‘축출’하는 것인가? 만약 당적, 정치적 활동과 조직의 의미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축출’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의 의미에 대해 인정한다면, 그것은 발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분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물론 그것은 현장정치조직의 성원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몫이다.
  다음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현장정치조직이 두세 개의 노동해방 조직들에 대한 지지로 나뉘는 경우이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분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 현장정치조직은 구성원들의 정치적 판단력과 수준이 높아짐으로써 결국 자연스런 분화과정을 거치는 셈이고, 그것에 대해 딱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발전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분화를 ‘분열’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은 각각의 노동해방 조직에 속한 채, 공동실천을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구체적 사안에 따라서, 그리고 공동실천이 가능할 정도의 통일성이 있는 정치적 사안과 관련해서, 다양한 공동의 협정과 공동의 실천을 모색할 수 있고, 또한 모색할 것이다. 만약 어떤 노동해방 정치조직이 분파성에 물들지 않고, 대의와 운동이 요구한다면 언제든지 공동실천을 전개할 수 있을 정도의 계급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 정치적 수준의 고양에 따른 자연스런 분화를 ‘분열’로 해석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물론 제3의 길도 가능할 것이다. 현장정치조직이 그대로 남아서 공동의 정치적 실천의 그릇으로 존재하면서도, 각각의 성원들이 자신이 희망하는 노동해방 정치조직에 속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현장정치조직이 다른 노동해방 그룹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존중할 것이고, 그들과의 공동의 현장실천을 다양하게 모색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노동해방연대를 축출하는 것이다’는 식의 볼멘소리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성공을 기대할 것이다. 어떤 길이 현실화될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현장정치조직 자신의 발전과 그들의 내부 논의를 통해서 그들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들은 훌륭하게 잘 결정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노동해방연대가 현장정치조직을 인위적으로 분열시키고, 건강한 활동가들을 (그 내용적 의미에서) ‘축출’할 염려는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노정협≫ 동지들이 노동해방 투사로 도약할 수 있고, 당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현장의 선진노동자들의 잠재력, 그리고 그들의 최선진 부위의 조직의 잠재력에 대해 어느 정도 불신하고 있다고 본다. 반면 우리는 그것을 신뢰하고 적극 고무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노정협≫ 동지들이 현장 활동가조직에 대해 대중조직의 연장으로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본다. 아무리 반동적이고 한계가 많더라도 노동조합이란 대중적 기구에 대해 기권하지 않고 적극 개입해야 하듯이, 현장 활동가조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조직과 노동조합의 차이

물론 노동해방 조직에 비교한다면 현장 활동가조직(가령 현장조직)은 어느 정도 대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대중이 꾸리고 있는 노동조합에 비교한다면 현장조직은 대중조직이 아니라 활동가조직이다. 게다가 현장조직이 포괄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숫자는 사업장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대공장 조합원들의 2~4%에 지나지 않는다. 이 수치는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서유럽에서 당 혹은 정치조직에 소속된 현장 활동가들의 비율보다도 훨씬 낮다. 한마디로 현장조직은 현장노동자들의 선진부대라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 노동조합원들과 같은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대중조직과 활동가조직을 자의적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현재로는 비당적, 비정치적 영역에 남겨져 있는 현장 활동가조직의 한계를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한계로 간주하고, 그것에 영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힘주어 강조한다.
  다행히도 우리가 [현장정치활동]이란 글을 통해 대화하려고 했던 동지들은 통상적인 현장조직의 수준을 뛰어넘어 정치적으로 도약하고자 했다. 우리는 이런 새로운 발걸음들이 점차 태동하고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것을 환영하며, 이 발걸음이 통상적인 현장조직 수준으로 퇴보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우리의 능력 부족 때문에, 혹은 그들의 발걸음이 현재 대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퇴행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퇴보함으로써 그러한 시도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주장한다 : “그들의 시도는 옳았으며, 그들의 뒤를 이어 더 많은 현장 활동가들이 도약하여 결국 언젠가 성공을 거둘 것이다! 우리는 그 길에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립성 문제

≪노정협≫의 [강화]와 우리 글 [현장정치활동] 사이의 핵심적 차이는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립성 문제’에 있다. 이것의 연장선에는 “노동해방 정치세력과 노동대중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추상적으로 본다면, [강화]는 노동해방 정치세력의 독자적인 조직과 정치활동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체적 실천 항목으로 들어가면 우리와 근본적 차이점을 갖고 있다. [강화]의 입장은 각각의 현장에서 노동해방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공장세포가 대중 앞에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강화]에 따르면 “공장세포는 보통 3~5인으로 꾸려지는데, 이 공장세포는 노동대중 앞에 그 자체로 단일한 조직으로 대외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노조, 현장조직, 문화패, 율동패, 노래패, 친목모임, 등산모임 등 다양한 현장 내 조직에 깊게 파고들어 사업”한다. 한마디로 공장세포는 자신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비공개 조직이며, 그럼에도 대중과의 관계가 이뤄지는 것은 이 공장세포가 “노조, 현장조직, 문화패, 율동패, 노래패, 친목모임, 등산모임” 등 다양한 대중조직 속에서 대중과 접촉하고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노동해방 조직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전적으로 ‘대중조직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 영향력’이다. 직접적 영향력은 오직 선진노동자들에 대해 ‘정치신문’을 이용해 행사하는 영향력으로 국한된다.
  이 부분에서 우선 ≪노정협≫과 노동해방연대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우리는 공장세포(공장위원회 혹은 현장위원회)는 만일 정치활동의 여건이 조금이라도 허락하는 경우라면 현장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의 공개성이란 획일적이지 않다. 현장 동지들의 정치활동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을 만큼의 현장 내 세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우리는 선전물만이 아니라 현장 활동가까지 공개되는 방식으로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그런 세력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못한 현장이라면 선전물은 대중 앞에 공개하지만, 현장 활동가들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노동해방 조직이 대중조직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 영향력 행사에만 자신의 정치활동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 즉 직접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활동에 착수하고 대중과의 직접적 관계를 모색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노동조합(반동적 노동조합도 포함한다)이나 문화패, 율동패, 노래패, 등산모임 등등의 대중조직, 심지어는 (물론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지만) 현장조직과 같은 활동가조직 속의 활동을 통한 대중적 영향력 행사를 전혀 배제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병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점은, ≪노정신≫은 대중과 전위가 직접 관계를 맺는 것, 대중 앞에 전위가 공공연하게 정치적, 조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반대하는 반면, 노동해방연대는 찬성(더 나아가서 ‘의무’로 간주)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 대중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노동해방운동의 독립성’을 수호하는 데서 관건적 측면 중 하나이고, 변혁의 시기에 노동조합주의 혹은 현장조직운동의 볼모가 되지 않고 변혁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뒤에서 별도로 언급하겠지만 이것은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조합운동에 제대로 개입하기 위해서라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상 시기에 기본 ‘대중’조직은 물론 노동조합이다. 그것은 일상 시기에는 대중투쟁의 고리가 거의 전적으로 개량투쟁의 영역에서 열리기에 불가피하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조합의 역할은 일상 시기가 질풍노도의 변혁의 시기로 전화하고, 개량이 아닌 혁명이 일정에 오르며 투쟁이 정치투쟁으로까지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점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시기에는 대중조직의 중심이 노동조합에서 소비에트 유형의 혁명적 대중조직으로 이동하며, 대중적 전투의 지도부가 노동조합 지도자들에서 노동해방 조직으로 이동한다. 개량투쟁에 적합하게 조직된 노동조합 기구들이 그 시기의 혁명적 과제들을 담당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불가피하게 대부분의 노조 지도자들은 약점을 드러내고, 대중 앞에 폭로된다. 이 시기에 노동해방 조직은 대중의 진정한 지도부로 자신을 끌어올려야 하지, 대부분의 노조 지도자들이 혁명적 과제들을 회피하여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다고 단순히 비판하는 사람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것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 조건은 일상 시기부터 체계적으로 건설해야 한다)은 노동해방 조직이 노동조합의 대중과 직접적인 연결을 확보하고 있으며, 혁명적 지도력을 대중적으로 꾸준히 행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노동조합의 개량적, 중도주의적 지도자들의 다수가 명백히 한계를 드러내는 그 시점에 대중의 발걸음을 노동해방 투쟁으로 제대로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은 노동해방 조직이 현장 대중 앞에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노동해방 현장신문’을 통해 우선 구체화되어야 한다. 노동해방 현장신문은 혁명적 정치를 대중적 언어와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해야 하며, 혁명 시기에 대중이 노조관료와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통제를 뚫고 계급적 단결을 이룩하며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 구체적 지도력은 현장에서 발생하는 제반 사안들을 매개로 수행되는데, 일상 시기의 특징을 반영해서 여러 개량투쟁의 측면들을 당연히 포함한다.
  다음으로 어느 정도라도 조건이 열리면, 노동해방 조직을 대표하는 현장위원회는 자신의 조직을 대중 앞에 공공연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조합원 대중이 현장위원회를 ‘독자적인 현장 활동가조직’으로 분명히 인식하게 해야 하며, 나아가서 그들이 단지 노동조합 활동가가 아니라 노동해방 투사들임을 정확히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해방 조직은 여러 대중조직 속에 흩어져 있는 개별 인자로서만이 아니라, 또한 단순히 전투적이고 건강한 노동조합 투사로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로서 대중과 관계를 꾸준히 형성해나갈 수 있다.
  이러한 독자적인 대중정치활동은 다양한 대중조직을 매개로 하는 활동, 가령 노동조합 활동의 성과들을 유실시키지 않고 혁명적으로 흡수하기 위한 필수적 장치이기도 하다. 만약 어떤 노동해방 투사가 단지 노동조합 투사로서만 대중 활동을 수행한다면 그의 성과들은 주로 노동조합 활동가로서의 성과로만 남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노동해방 투사가 단지 현장조직의 성원으로서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의 성과들은 주로 현장조직의 성과로만 남게 된다. 반면 그가 독자적인 정치활동가로서 대중 앞에 각인되어 있다면, 심지어 그가 노동조합의 간부로서,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현장조직 성원으로서 수행하는 활동조차도 정치활동의 성과로서, 노동해방 정치조직의 성과로까지 축적될 수 있다. 이것은 이후 변혁의 시기가 다가올 때, 대중 앞에 노동해방 정치조직이 지도자로 설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대단히 사활적인 문제이다.
  만약 그와 같은 독자적인 대중정치활동이 없다면 변혁 시기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다수가 불가피하게 드러낼 약점과 동요, 개량성의 물결과 함께 노동해방 투사들도 떠밀려버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중은 그를 노동조합기구의 일부로, 현장조직의 일부로 간주하기에 노동조합기구와 비정치적 현장조직과 함께 싸잡아서 비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경우에도,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같은 기구들 뒤에 숨어서만 대중과 관계를 맺었던 노동해방 조직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리를 상실해버림으로써 변혁을 주도하기는커녕 아무런 대중적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조직으로 추락해버릴 것이 분명하다.

영국 SWP의 경험

이것은 단지 변혁 시기만이 아니라 일상 시기에도 현장투쟁의 파고가 높아지는 중요한 국면에서 반복해서 드러난다. 이 점에서 영국 SWP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영국 SWP는 노동조합 투쟁의 파고가 높아지고 이것이 노동조합관료제를 뒤흔들었던 고양기에 형성되었던 직장위원회 운동에 적극 개입했다. 그러나 영국 SWP는 현장위원회와 현장신문을 통해 평조합원들에게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직장위원회 운동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위원회 운동 뒤로 숨어버렸다. 그랬기에 평조합원들은 영국 SWP 멤버들을 알지 못했고 단지 그들을 직장위원회의 전투적 멤버로만 단순히 인식했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의 테두리를 결코 넘어서지 못했던 직장위원회 운동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와 겨루는 방향으로 전진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했다. 직장위원회 운동의 대부분의 인자들은 이 시기에 좌절하거나 타락해버렸고, 기껏해야 노동조합 좌파관료로 남겨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붕괴된 것은 단지 직장위원회 운동만이 아니었다. 직장위원회의 일부로만 자신을 대중 앞에 드러냈던 영국 SWP의 현장 멤버들의 영향력도 함께 붕괴해버렸다. 평조합원 대중은 그들과 직장위원회 운동의 지도자들을 결코 구분할 수 없었고, 결국 직장위원회 운동의 붕괴와 함께 영국 SWP의 현장에 대한 영향력도 함께 소멸해버렸다. 개량적 노동조합운동의 파국 속에서 평조합원 대중이 혁명적 지도자들을 향해 넘어옴으로써 미래의 전진을 위한 기반이 열리는 대신 모든 것이 다 붕괴해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영국 SWP가 보유하고 있는 현장 투사들의 다수가 유실되어버렸다. 독자적인 대중정치활동을 전개하지 못한 채 직장위원회 운동에 추수했던 멤버들은 직장위원회 운동이 몰락하자 패기와 자신감을 잃고 다수가 노동운동을 정리해버렸다. 또한 직장위원회 운동의 전성기에 영국 SWP가 획득했던 현장 투사들의 압도적 다수는 SWP의 현장위원회 활동과 현장신문 등의 독자적 정치활동 속에서 단련되지 못했기에 노동해방 투사로 확고히 도약하지 못한 채 직장위원회 운동의 몰락과 함께 바로 시들어버렸다. 그들은 좌파 노조관료가 되든지 아니면 우파 관료로 전향하거나 아예 노동운동을 정리해버렸다. 영국 SWP가 현장에 기반을 둔 유의미한 노동해방 정치조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는 그렇게 하여 현장기반을 잃어버리는 최악의 시기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 이후 영국 SWP는 학생이나 지식인, 화이트칼라에 기반을 둔 조직으로 급격히 퇴행했고, 이것은 정치적 우경화로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운명은 세계 트로츠키주의 운동 대부분을 덮친 비극이었다. 이와는 다른 정책(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 사수)을 대중적으로 구사했던 극소수 그룹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현장 트로츠키주의 혁명그룹들이 그런 방식으로 소멸해가거나 독립적 현장기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선전주의 소그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호 ≪노동해방≫에 실린 [사회주의노동자당, 노조관료, 노동자계급] 글이 담고 있는, 제4인터내셔널의 구심이었던 미국사회주의노동자당의 몰락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노정협≫의 이른바 ‘프랙션’ 전술이 갖는 위험성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에 대한 경시는 이른바 ‘프랙션 임무’에서는 극단에 달하게 된다. [강화]에서 노정협은 심지어 개량주의 정당 속에 들어가서 건강한 인자들에 영향력을 미치는 ‘프랙션 활동’을 일종의 활동노선으로까지 자랑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이 전술은  노동해방 세력이 개량주의 노동자당 속에 들어가 독자적 분파로 일시적으로 활동하는 ‘일시적 입당전술’을 뛰어넘어, 소위 ‘프랙션 임무’라는 이름으로 항시적인 활동노선으로까지 격상되어 제출되고 있다. 이것은 “일시적 입당전술”보다 독자성을 더 훼손하는 황당한 노선이다. 이것은 타협의 경계선을 완전히 뛰어넘는 배신적 타협이다. 왜냐하면 이 전술은 개량주의 정당 내에서 정치적, 조직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하는 공개적 분파 활동을 배제한 채, 자신을 감춘 채 게다가 개별적 방식으로 은밀하게 수행하는 활동으로서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을 뿌리까지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프랙션 활동이란 만일 노동해방주의자라는 것이 확인되면 바로 제명당하는 반동적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기구 내에서 혹은 군대조직 같은 곳에서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건강한 인자를 획득한다는 명분으로 개량주의 조직 속에 들어가서 프랙션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을 혼동하는 것이고, 노동해방 정치조직의 독자성을 본질적으로 훼손시키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발상은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여타 정치조직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자신의 활동을 (대중 속의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건강한 인자의 획득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대중조직 내 활동의 테두리 안으로 감추어두려는 심리를 반영한다. 또한 비당적, 비정치적 현장 활동가조직들 속에서 활동하는 현장 활동가들 앞에 “노동해방 정치조직이 진정으로 현장 활동가들이 가야 할 길이고, 이를 통해서만 진정 현장대중을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기를 두려워하는 소심한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개량주의 정당 속의 활동이 ‘조직적 입당전술과 그 내에서의 분파활동 전술’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거부되어온 이유는 [강화]가 언급하고 있는 그러한 프랙션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대중에게 비춰지는 모습은 다름 아닌 개량주의 정당의 활동가라는 점에 있다. 하나의 예를 들자. 어떤 노동해방 투사가 [강화]의 충고에 따라 프랙션 활동을 위해 민주노동당에 가입해서 활동을 한다고 치자. 또한 이 투사는 마찬가지로 [강화]의 충고에 따라 현장에서는 노동해방 공장세포의 성원임을 드러내지 않고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 문화패 등의 대중조직에서 활동을 한다고 치자. 이렇게 되면 대중조직에서의 최상의 활동 성과들은 전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성과로 돌아가고 만다. 왜냐하면 대중, 심지어 현장 활동가들까지도 그를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중 차원에서 그는 객관적으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기여한 것이지 노동해방 조직의 일원으로서 기여한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그가 소기의 성과(한 두 명의 건강한 인자 획득)를 달성하고 탈당하더라도, 대중은 그를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무당파 활동가로 인식하지 결코 노동해방 조직의 성원으로서 인식할 수 없다.
  현장조직에 비유하여 이 문제에 접근해보자. 만약 어떤 현장조직 성원이 이른바 프랙션 임무라는 명목으로 건강한 인자를 획득하기 위해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타 현장조직에 가입한다고 치자. 이 경우 가입을 위해서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현장조직과는 무관하고 그 성원이 아닌 것처럼 위장해야 할 것이다. 그의 대중조직 속 활동이 건강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의 모든 활동 성과들은 타 현장조직의 위신과 권위를 높이는 데 활용되지 결코 자신이 진정으로 지지하는 현장조직의 위신과 권위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별 인자 한두 명을 획득하는 데서는 이익을 얻었을지 몰라도, 조직의 위신과 권위,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서는 큰 손실을 범한 것이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현장조직의 성원들도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강화]의 발상은 노동해방 ‘조직’의 대중적 영향력과 장기적 성과들을 가볍게 여기고, 모든 것을 몇 명의 인자들을 획득하는 것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 단기적 시야,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것을 개인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 차원으로 격하시켜 보고 있는 노정협의 시야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부르주아 중간계급의 관점일 수는 있지만, 집단성과 조직성을 핵심으로 하는 노동자계급의 관점이 될 수는 없다. 대중과 전위 사이의 관계는 물론 개별적 수준에서 형성되는 부분을 포함하기는 한다. 그러나 대중과 전위 사이의 관계의 핵심은 ‘노동해방 조직’이 대중에게 누리는 권위와 영향력을 본령으로 한다. 그렇기에 몇 명의 투사들이 경찰에 잡혀가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 조직의 권위와 영향력이 대중적으로 살아 있다면 노동해방 조직은 그리 어렵지 않게 대중적 영향력을 재건할 수 있으며 또한 소수의 힘이더라도 강력한 대중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떤 조직이 오랜 활동과 실천, 정치활동을 통해 쟁취한 대중적 성과는 결코 쉽게 유실되지 않는 법이다. 단, 이것은 개별적 성과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조직적 성과여야 한다.  
  조직적 성과와 조직의 대중적 권위를 경시하고, 모든 것을 몇 명의 인자들을 획득하는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강화]의 발상은 타 현장조직 속에서 활동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공개적으로 노동해방 조직(노동해방 현장위원회)의 일원임을 밝히는 것을 포기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만다. 타 현장조직에서 가입을 거부할 것이라는 것이다. 노동해방연대의 입장에서는, 만약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그 현장조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독자적인 정치활동, 노동해방 현장위원회의 활동을 가로막는 현장조직이라면 우리의 독자적인 활동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현장조직 참여를 포기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노동해방연대가 비당적, 비정치적 현장조직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단기적 성과(몇 명의 인자 획득)보다는 노동해방 조직이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획득하는 대중적 영향력, 그리고 이 영향력으로부터 (더디고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획득하는 인자들의 가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나아가서 이것은 노동해방 조직의 독자성을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하지 않고 최대치로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가 승인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이것이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법칙은 아니다. 때로는 불가피한 예외, 타협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량주의 정당이나 현장조직 속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노정협≫이 수행하는 타협과는 완전히 달라야만 한다. 우리는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 속의 활동에 한정해서만, 그리고 우리의 공개적인 정치활동이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축출이나 해고의 빌미로 사용될 것이 분명한 대단히 불리한 세력관계 하에 한정해서만 예외를 인정한다. 다행히도 미조직 사업장이나 현장기반이 극히 엷은 한국노총 사업장에서만 그러한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 민주노총 소속의 대부분의 민주노조들에서는 만약 우리의 대중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면 공개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이 대부분 열려 있다. 공개적 정치활동의 공간이 아직 열리지 않은 곳에서일지라도 우리의 기본노선은 그대로 유효하다. 이 경우 우리의 인자들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역량이 닿는 한 현장신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적으로 발행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현장신문에 관한 부분은 이후 우리 소식지에서 그 의의와 내용에 대해 체계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조만간 하나씩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가 제기한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 문제는 [강화]가 제기하고 있는 코민테른의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침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강화]는 ‘전위는 형식적으로는 비정치적이고 유연하며 상대적으로 폭넓고 매우 강력한 노동자대중의 조직을 매개로 대중과 결합해야 한다’는 코민테른의 방침을 제시한다. 당연히 우리는 이 점을 승인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형식적으로는 비정치적이고 유연하며 상대적으로 폭넓고 매우 강력한 노동자대중의 조직”이란 바로 노동조합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대중조직 속에서 활동하면서 대중과 결합해나가지 않는 노동해방 투사들은 존재할 수 없고, 또한 존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열렬하게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대중적 활동이 노동해방 정치활동과 조직 활동의 독자성을 침해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논점이다. 비정치적이고 비당적인 대중조직 속의 활동이 필수적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중 속에서 ‘노동해방 현장위원회’의 독자적인 선전 선동과 조직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후자의 작업이 없다면, 전자의 모든 활동은 비당적 기구에 노동해방 조직이 사실상 해소되어버리는 것, 즉 독자성이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후자의 작업이 충족될 때만 비정치적, 비당적 대중조직 속의 활동이 비로소 노동해방적 활동의 필수적이고도 유의미한 일부로서 온전하게 자리 매김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을 수호하는 문제는 사실상 변혁의 시기에 대중을 지도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개량주의 정당, 조합주의 지도자들, 비정치적 생디칼리스트 조직의 수중에 노동대중을 내맡기려 하는가, 즉 정말이지 진지하게 변혁을 준비하는 세력인가 아닌가와 직결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다. 변혁의 시기가 다가오면 올수록 노동해방 투사조직을 제외한 모든 개량주의, 중도주의, 비혁명적 지도자들의 동요와 무책임성은 몇 십 배 이상 증폭된다. 그리고 바로 이들의 형편없는 지도 때문에, 그리고 개량주의적 본성 때문에 노동대중은 위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적들의 곤봉에 머리가 깨지고 반동적 자본주의의 위기의 볼모가 되어 신음하게 된다. 이 시기에 변혁을 절대 지도할 수 없는 그들을 향해 “대중을 배신했다”고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에 머무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혁명적 노동해방 조직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되 대중을 책임질 수 없는 무기력한 세력으로 입증되리라! 지도할 수 없는 자들에게 ‘지도를 잘못했다!’고 외치는 것, 노동해방 변혁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 않은 자들에게 ‘그런 목적을 향해 대중을 이끌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 이것은 최악의 무기력이며,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전개된 노동자 혁명의 경험들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진지한 혁명적 노동해방 조직의 임무는 그 시기에 대중 앞에 “개량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이 아니라 노동해방주의자들이 대안이고, 노동해방으로 확고히 전진해야 한다”고 나서는 것이며, ‘실질적’인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대중과의 결합력, 그리고 대중에 미치는 노동해방 조직의 혁명적 영향력,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을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일상적 시기부터 끈질기게 확대하고, 정말이지 사활적인 요소로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 개량주의 정당 속의 프랙션 작업을 찬미하지 않고, 대중 앞에 자신의 정치와 조직을 최대한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초기에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독자적인 세력으로 자신을 활동가들 앞에 우뚝 세워내며, 대중조직들 속의 모든 작업을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과 긴밀히 연결시켜 비당적, 비정치적 영역에서 구원하여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성격으로까지 고양시키고자 분투하는 노동해방 운동만이 변혁의 시기에 자기 임무를 다할 수 있다.

쇠퇴기 자본주의와 노동해방운동의 독자성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 문제는 쇠퇴기 자본주의가 미치는 압력 하에서는 더욱 사활적인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대단히 중요한 측면이다. 쇠퇴기의 자본주의는 정당, 정치세력들에게만 개량주의로 남아 있을 것이냐 혁명적 정치로 전진할 것이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에게까지 양자선택의 문제를 제기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전반적 관료화 경향, 노동조합운동의 쇠퇴경향을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해 해부하며, 그로부터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에 노동해방 투사답게 개입하기 위해서는 이 양자선택의 문제를 정확히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서 쇠퇴기 자본주의의 바로 이러한 압력들이 노동해방 정치활동이 독자성을 지킬 필요성을 몇 배 이상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쇠퇴기 자본주의가 미치는 영향력은 모든 측면에서 뚜렷하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볼 때, 극소수의 노동자층만이 약간이라도 개량을 획득할 수 있거나 그간 획득한 권리들을 어느 정도라도 보호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대단히 불완전하며, 일시적이다. 위기의 파도가 조금만 높아지더라도 그들조차 해고와 임금삭감 등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머지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층은 지속적인 불안정성과 권리 하락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쇠퇴기 자본주의라는 동일한 힘은 개량주의 운동으로는 노동자의 실제적인 요구들 중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도록, 오히려 끊임없이 자본의 2중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도록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또한 이 동일한 힘은 어쩔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단결과 투쟁으로 솟구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퍼부어지는 무차별한 탄압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것은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갖는 형편없는 지도력이 비정규직 운동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도록 강요하고 있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조금이라도 개량의 여지가 있는 곳에서는 관제 노동조합의 지도자들에 비해 다른 면모를 형식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량의 여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그들과 관제 노동조합 지도자들 사이의 차이란 거의 발견하기 어렵다. 단, 만일 관료화가 아직 초기 단계에만 머물러 있고,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력이 어느 정도 살아 있다면 이 아래로부터의 통제력과 압력에 의해서 그들은 약간의 투쟁적인 모습을 강요받을 따름이다.
  이러한 쇠퇴기 자본주의 상황에서는 개량적 성격을 벗어던지지 않는 노동조합은 몰락과 관료화 경향을 저지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혁명적 영향력이 대중적으로 넓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에 미치는 노동해방 투사들의 영향력이 체계적이고 직접적으로 확장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조직마저도 노동자계급이 단련되는 기구로 자리 매김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는 상승기 자본주의 시절의 노동조합과 쇠퇴기 자본주의 시기의 노동조합 사이의 차이를 변증법적으로 고찰해야만 제대로 해명될 수 있다.

상승기와 쇠퇴기의 자본주의, 그리고 노동조합의 운명

자본주의가 상승하고 그래서 이윤의 자그마한 일부라도 노동자들에게 분배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질 수 있을 때에는 개량적 조직들까지도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노동자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비록 개량을 목적으로 하고 개량주의적 지도자들에 의해 지도되었을지라도 노동조합운동이 보여줄 수 있었던 활력은 바로 이 시기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쇠퇴기의 자본주의에 이르자 상황은 급변했다. 핵심 독점 분야의 숙련 기술직 상층 노동자층에 기반하고 있는 극소수의 노동귀족적 노동조합을 제외하면, 나머지 압도적 다수의 노동조합들은 더 이상 확보할 수 있는 개량을 갖지 못했다. 반동화되어 더 이상 생산력 발전에 순응할 수 없었던 낡아버린 자본주의 체제는 개량은 고사하고 이미 주어진 개량조차 거두어들여야만 했다. 이것은 노동조합에 즉각 영향력을 미쳤다. 노동조합은 본시 개량의 획득을 목적으로 해서 탄생한 기구였다. 그런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객관적 토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자 첨예한 대립이 시작되었고, 모순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만일 노동조합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개량을 진정으로 쟁취하고자 한다면, 노동조합은 거의 목숨을 건 계급투쟁을 각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혁명적 전망으로 전진해야만 했다.
  그런데 만일 노동조합이 이런 목숨을 건 도약을 거부하고 개량적 영역에 남아 있고자 한다면, 노동조합 앞에는 두 가지 운명밖에 남지 않게 된다. 하나는 개량의 쟁취를 포기하고 자본과 정부의 요구에 순응하는 관제 노동조합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투적 개량주의에 입각해 투쟁하지만, 쇠퇴기 자본주의의 야만적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이다. 후자의 운명은 결국 다음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 “관제 노동조합으로 전락할 것이냐 아니면 혁명적 노동조합으로 전진할 것이냐?”
  이런 상황이 보편화되면, 혁명의 방향으로 전진하기를 거부하는 개량적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불가피하게 관료화 경향을 드러낸다. 이것은 두 종류의 토대 위에서 자라난다. 하나는 더 이상 개량을 획득함으로써 조합원들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면서 대중으로부터 자립화되고 대중 위에 군림하는 관료로 전락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이 더 이상 절실한 생존권적 요구들, 절박한 개량들을 확보해줄 수 없음을 느끼고 실망한 현장대중이 노동조합에 대한 애착과 통제력을 포기하고 수동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번식하는 관료화 경향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운동 수준에 갇혀 있는 현장 활동가조직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상승기의 노동조합운동에서는 어느 정도 건강한 활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정치적, 비당적 현장 활동가들의 조직들까지도 쇠퇴기 노동조합운동의 거센 퇴행의 물결 속에서 퇴보하면서 몰락해간다. 이 조직들은 그나마 노동조합 집행부 등의 노동조합기구들로부터 자유로운 평조합원 전투조직으로 남아 있는 경우에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고, 노동조합기구들에 편입되는 순간 쇠퇴기 자본주의의 압력의 볼모가 되어 관료화 경향에 감염되고 만다. 그들이 갖고 있는 노선과 정치로서는 퇴행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그들 앞에도 ‘혁명적 노동해방주의로 전진할 것이냐 아니면 개량적, 관료적 노동조합주의로 확실히 퇴행할 것이냐’라는 양자택일의 상황이 등장한다.
  1914년 이래 약간의 기복을 거치면서도 경향적으로 관철되고 있고 더욱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쇠퇴 경향은 노동조합 앞에 다른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상승기 자본주의에 적용되었던 일반적 노동조합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형식논리학적 추상성에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은 노동해방 투쟁의 학교가 되어야 하고, 노동조합은 대중적 기구가 되어야 하며, 노동조합 속에서 노동해방 투사들이 적극 활동해야 한다는 일반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활동의 구체적 측면들,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의 비중 등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 변화를 변증법적으로 포착하고, 우리의 실천을 날카롭게 가다듬어야만 변화에 대응하면서 그와 같은 일반적 노동조합론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다.
  계속 심화되면서 격렬한 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쇠퇴기 자본주의는 혁명적 지도자들만이 방대한 노동자계급의 실제적 요구를 향해 운동을 밀어갈 수 있음을 모든 곳에서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통상적인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심지어 노동조합운동 수준에서라도 일관된 지도자로 자신을 드러낼 수 없고, 오히려 관료적 지도자들로 빠르게 변신한다. 반면 노동조합이 대중의 요구를 받아 안고 과감하게 전진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도력 행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쇠퇴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조합이 자리 잡은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통상적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관료화 경향은 의심할 바 없이 분명하다. 반대로 이 나라들에서 터져 나오는 유의미한 노동조합 투쟁들의 상당 부분은 혁명적 노동해방 투사들의 대중적 지도력과 결부되어 있다.
  이 사실들은 혁명적 지도자들과 결합되어 전개되는 단호한 계급투쟁만이 탈출구를 열어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결국 쇠퇴기의 세계자본주의는 자본가계급이 전면적으로 동원하는 힘에 맞선 노동자의 혁명적이고도 계급적인 힘을 체계적으로 동원하여 대치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문한다. 혁명적인 운동을 중핵으로 하는 단호한 대중적 계급투쟁만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이 상승기 자본주의 시절에 비해 몇 십 배 이상 중요하고 사활적인 문제로 등장한다. 노동조합의 관료화 경향을 저지하고 혁명적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도 노동조합운동과 독립적인 노동해방운동을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건설해야 하고, 이 운동을 대중과 긴밀히 연결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독자성을 토대로 해서, 노동조합운동에 아래로부터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쇠퇴기 자본주의의 수렁 속으로 노동조합이 빨려 들어가지 않게 할 수 있는 객관적 보증물이다. 오직 이것만이 가장 선진적인 노동조합 투사들이 몰락하고 관료적 지도자로 변질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나아가서 오직 이것만이 노동조합운동 속에서 실천하는 노동해방 투사들이 좌파 노동조합관료나 전투적 조합주의 활동가로 퇴화하지 않도록 보증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노동조합운동, 그리고 노동해방투사의 노동조합 전술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 단계를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라고 정의했다. 동일한 규정을 트로츠키는 쇠퇴기의 자본주의 단계라고 표현했다. 이 시기는 1914년에 도래했는데, 자신의 등장을 제1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강점으로 신고했다. 그 이래 이 규정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약 20년간 등장했던 세계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 국면, 그리고 세계 노동자혁명의 시기는 사라졌지만, ‘쇠퇴기 자본주의’, ‘제국주의’라는 일반 규정은 그대로 유효하다. 아니 그 이래 자본주의의 반동성은 더욱 심화되었고, 쇠퇴기 자본주의의 성격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것은 언젠가 과거보다 훨씬 더 첨예한 전반적 위기 국면으로 연결될 것이고, 그 시기에 세계 노동자혁명은 훨씬 더 격렬하게 더 강력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만약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조합의 운명이 그와 같은 것이라면 왜 1914년으로부터 엄청난 시간이 흐른 1987년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폭발적으로 떠올랐고, 관료제를 타도하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그토록 강렬하게 확대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자본주의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상승기의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본류는 하강의 물결을 이루고 있지만, 자그마한 지류 중 한두 개는 일시적으로 상승의 물결을 보여주는 경우를 자연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똑같은 것이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세계자본주의는 쇠퇴기 단계에 확고히 접어들었지만, 몇몇 신흥공업국 자본주의는 상승기 자본주의 단계를 통과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은 충분히 가능하다. 단, 이런 예외적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고, 또한 쇠퇴기 자본주의라는 본류의 하강 물결이 지속적으로 빨라지기 때문에 그 일시적 시기는 갈수록 짧아진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의 과잉 금융자본의 배설구 중 하나였고, 이것은 한국자본주의의 급속한 상승 국면을 지탱한 결정적 토대였다. 이 시기에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속도는 눈부셨을 뿐만 아니라, 그 성장은 금융적 부분이 아니라 주로 생산적 부분에서 이뤄진 견실한 성장이었다. 이것은 개량의 여지를 어느 정도 확대시켰다. 노동대중의 고용은 이 기간 동안 상당히 안정적이었는데, 이미 성숙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보편화된 높은 실업률은 한국에서는 남의 나라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농촌에서 폭발적으로 창출되어 도시로 몰려드는 구직자들을 대부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한국자본주의의 성장기의 위장은 거대했다. 단, 개량은 노동자의 과감한 투쟁 없이는 손에 쥐어질 수 없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진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 투자한 세계 금융자본에게 높은 이자를 제공해야만 했기에 한국자본주의에게는 개량의 여지가 과거 상승기의 서구자본주의처럼 클 수 없었던 점, 다시 말해 쇠퇴기의 세계자본주의의 물결이 미치는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국자본주의의 처지를 반영했다. 개량의 여지는 80년대 중반 이래 조성되었던 3저 호황에 힘입은 성장의 절정기에 어느 정도 증폭되었다. 이것을 뚫고 폭발한 것이 87년 민주노조운동의 등장이었다. 결국 87년 민주노조운동은 한국자본주의의 상승 국면의 정점을 반영했다.
  이것은 민주노조들에게 충분한 활력을 제공했다. 당시의 민주노조들은 서구에서 상승기에 등장했던 노동조합들과 마찬가지로 개량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상승기 자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약진했다. 대중은 투쟁하면 개량을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고, 실제로 민주노조들은 상당한 개량을 획득할 수 있었다. 군사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권리를 개선하고자 하는 열망을 노동조합을 통해 어느 정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자들 스스로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수용했다. 충분히 조합원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상승기 자본주의의 최정점은 곧 내리막의 시작, 즉 쇠퇴기 자본주의 물결의 시작을 예고했다. 이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뒤, 중반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개량의 여지가 급격하게 축소된 한국자본주의는 노동조합에 대항한 전면전을 개시했다. 민주노조들 앞에는 “관료적인 관제 노동조합으로 점차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혁명적 노동조합으로 전진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던져졌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까지도 지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준비된 영향력을 보유한 혁명적 노동해방운동은 현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상승기 자본주의 시절에 형성된 민주노조 전통을 방어하고자 했던 전투적 조합주의자들이 반격을 도모했지만 그것으로는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수 없었다. 민주노조들은 관료화 경향을 저지할 수 없었고, 다수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관료적 지도자들로 전향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이 더 이상 절실한 요구들을 획득할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고 있음을 직감한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수동화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2000년대에 이르러 더욱 가속화되면서 서구에서 먼저 전개되었던 상황들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이상의 물질적 운동을 변증법적으로 고찰할 때만 민주노조운동의 쇠퇴와 관료화 경향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고, 진지한 대응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분석법을 배제한 채 모든 것을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인적 변절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87년이여 다시 돌아오라!”를 외치는 전투적 조합주의의 관점으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진지한 반격을 도모하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양자택일의 상황 앞에 노동해방 투사들의 노동조합 정책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불행하게도 쇠퇴기 자본주의가 가하는 거대한 압력으로부터 노동조합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조합은 혁명적 노동조합으로 전진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제 조건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전제 조건은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대중적 지도력을 혁명적 노동해방 투사들이 거머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혁명적 노동조합으로의 전진을 가능케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조건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몇몇 현장에 포진한 자그마한 노동해방 투사들만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노동해방운동은 그러한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당분간 갖지도 못할 것이다. 오랜 활동을 통해 단련되어 있고, 대중 앞에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현장에 수천의 단련된 투사들을 보유하고 있고 격주마다 수십만 부의 현장신문을 현장대중에게 배포할 뿐만 아니라 5~20명 단위(대공장의 경우는 이런 단위들이 몇 개 이상 조직되어 있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보다 몇 배 이상 많은 지지 협력자망을 거느리고 있는 수백 개의 현장위원회를 갖고 있는 프랑스의 노동해방 동지들도 그런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힘을 아직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역량이 작고 정치활동의 전통도 부재하며 현장기반이 너무나 취약한 한국의 노동해방 세력이 쇠퇴기 자본주의의 압력으로부터 노동조합운동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장래에 노동해방운동이 충분한 역량을 갖추게 된다면 그런 가능성 - 노동조합의 혁명적 전진과 이를 통해 달성되는 노동조합운동의 전면적인 부활 - 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노동조합기구의 장악이라는 과제도 일정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장담할 수 없으며, 혁명 시기에 노동조합이 어느 정도 역할을 수행하고 어느 정도 비중을 갖게 될지를 예언하는 것은 노동해방 투사들의 역할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동조합의 관료화 경향에 발맞춰서 노동조합 전술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우선, 노동조합 상층기구 장악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조합원들의 전투성의 고양과 노동조합이 일시적으로라도 전투기구로 작동하는 경우, 또한 조합원들이 아래로부터 노동해방 투사들을 확고히 지지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철저하게 평조합원 대중 속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평조합원들 속에서의 아래로부터의 활동과 함께 노동해방운동의 대중적 실천을 중심에 놓는 것이다.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다양한 현장 활동가조직들로부터 노동해방 조직의 독자성을 수호하고, 이 독자적인 대중적 활동을 토대로 해서 노동조합과 여러 대중적 기구들, 심지어는 현장조직과 같은 활동가기구들 속에서의 활동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만 조합주의 지도자들의 관료화와 배신에 신음하는 대중에게 새로운 지도자들을 보여줄 수 있으며, 노동조합관료제의 통제와 억압에 맞서서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투쟁의지를 작더라도 현실화시킬 수 있다. 노동조합기구들이 일시적으로라도 전투 공간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그와 같은 실천들을 통해서 조합원대중이 아래로부터 전개하는 투쟁들이 노동조합에 충분한 압력을 미치는 경우로 제한될 것이다.
  비정규직 운동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조들은 쇠퇴기 자본주의가 가하는 압력 하에서는 두 종류의 선택만이 당분간 가능할 것이다. 이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하나는 과감한 전투 속에서 붕괴하지만, 다시 일어나 전투를 지속하는 순환 과정에서 작동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아예 궤멸되어 소멸하거나 관제 노동조합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노동해방 투사들의 역할은 후자의 길로부터 이탈시켜 전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에도 안정적인 노동조합운동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바로 그렇기에 노동해방운동의 견고한 영향력과 독자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정규직 투사들을 노동해방 투사 조직망과 긴밀히 연결시키고, 이들이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현장 노동대중과 함께 하는 일련의 오랜 실천을 통해서만 안정적인 비정규직 운동의 거점을 조직할 수 있다. 통상적인 노동조합 수준에서의 조직화와 활동은 노동조합 자체의 불안정성 때문에 비정규직 운동의 연속성 자체를 오히려 위협할 것이고, 관제 노동조합으로의 전락 경향을 무기력하게 쳐다보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노동조합의 양자택일 문제는 소수 대기업의 상층 노동조합보다는 오히려 다수 하층 노동자들에게 더 철저하게 관철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쇠퇴기 자본주의가 가하는 압력이 바로 그들에게 더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가령 영국의 경우 전투적 노동조합운동들은 하층 노동자들 속에서는 거의 안정적인 형식을 가질 수 없었다. 개량의 여지가 급격히 축소되자 자본과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하면서 전투적 노동조합들을 공격했고 와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운동의 형식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주로 상층 노동자들이 조직된 노동조합들, 특히 화이트칼라 노동조합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 소수의 노동자들에게는 쇠퇴기 자본주의가 아주 사소한 정도라도 개량을 제공할 수 있었고, 또한 개량의 제공을 통한 노동자 포섭이 영국 대자본에게는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필수적이었다는 점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바로 그랬기에 영국에서는 안정적인 노동조합기구들 내에서의 영향력에 주로 주목했던 그룹들은 노동귀족적 영향력에 포섭되어 개량주의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혁명적 그룹들은 노동조합의 안정적 형식이 존재하느냐와 무관하게 압도적 다수의 하층 노동자들, 생산직 노동자들에 기반한 현장 활동에 매진하는 것을 노선으로 채택했고, 그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사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노동조합의 형식적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노동해방 조직이 현장에서 전개하는 대중정치활동”을 사활적인 문제로 제기했다. 이 원칙은 영국과 흡사한 한국노동운동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비정규직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해방 투사들은 자기 운동의 기초를 노동조합운동에 절대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노동해방운동의 독자성과 독립적인 대중 활동을 전진 배치하고, 이것의 토대 위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배합해야 한다. 이것만이 노동조합의 일시적 부침, 그리고 결코 쉽게 노동조합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연속성과 전진도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의 성장 정도에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의 안정적 기초 확보 또한 기본적으로 좌우될 것이다. 노동해방운동이 현장에서 수립한 안정적 활동가망과 대중적인 현장 활동에 토대를 두고, 이 토대 위에서 확장되고 뻗어져나가는 노동조합 실천만이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 진실로 쟁취하고 보호할 수 있는 길이다. 다른 어디에서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운동 속에서 노동해방운동의 대중적인 독자적 실천이 더 사활적인 것이다. 물론 특정 상황에서는 그리고 명확한 전제 조건(아래로부터의 조합원들의 확고한 지지, 그리고 노동조합이 전투기구로 작동한다는 점)을 덧붙여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상층기구 속으로 들어가고, 심지어는 장악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쇠퇴기 자본주의가 가하는 거대한 압력을 지금 우리가 거스를 수 없다는 점, 즉 그러한 상황은 (당분간은) 일시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결론

이상의 활동노선을 견지할 때만 우리는 노동조합운동에 기권하지 않으면서도 쇠퇴기 자본주의의 압력으로부터 노동운동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쇠퇴기 자본주의의 거센 퇴행의 물줄기, 그리고 이 물줄기에 휩쓸려 들어가는 노동조합기구들의 운명에 종속되지 않은 채, 노동해방운동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 정체성을 사수 발전시키면서도 그 힘에 조응하는 만큼 노동조합운동을 혁명적이고도 단호하게 투쟁적인 길로, 노동자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길로 점차 그러나 확고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런 길을 따라 전진할 때만 가능해진다고 우리는 믿는다. 현장조직운동으로 표현되었던 현장 활동가들의 운동 또한 바로 그와 같은 노선에 입각할 때만 사멸하지 않고 올바르게 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핵심은 일반 노선임과 동시에 쇠퇴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더욱 철저하게 창조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노동해방 정치활동의 독자성’을 실천적으로 승인하는 것이고, 목숨처럼 소중한 원칙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현장 활동가들, 노동자계급을 구원할 수 있는 동아줄은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이 동아줄을 회피하면서 비당적, 비정치적 기구들 뒤에 숨는 것은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노정협≫의 글에 대한 비판적이고 신랄한 접근을 통해 힘주어 강조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우리는 ≪노정협≫ 동지들을 넘어서서, 오히려 전국의 노동해방 투사들과 단호한 현장 활동가들에게 호소하고자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글을 굳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목적에 부응하는 글이 되었기를 희망한다. 이후 우리는 논쟁적 방식보다는 우리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해설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실천의 구체적 항목들을 정확하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노선을 다루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울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동해방 투사들의 현재의 작은 역량보다 더 결정적인 어려움은 우리 한국노동운동 속에 자리 잡은 비정치적, 비당적 경향이다. 그만큼 결정적인 어려움은 한국의 노동해방운동이 독자성을 견지하고 정치적, 당파적 활동을 전개한 역사적 전통이 존재하지 않거나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노동해방의 길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쇠퇴기 자본주의의 반동적 압력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방대한 노동대중의 절실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해방 투사들의 실천을 더욱 확대해야 하고, 노선을 더욱 정확히 집행해야 한다.
  어떠한 압력 속에서도 수십 년을 내다보고, 노동해방 변혁의 시기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대담한 노동해방 투사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그 길을 가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대단히 어렵고 무수한 압력과 맞닥뜨릴 것이지만, 그 길 말고는 노동해방 투사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는 다른 길은 없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가 실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노선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우리의 실패를 딛고서 더 단호하고 더 대담하며 젊은 노동해방 투사들이 이 노선을 언젠가 현실화시킬 것이다. 그때서야 온갖 조합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이며 중도주의적인 변종들과는 확실히 다른 진실한 노동해방 경향이 한국에서 탄생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들이 한국에서 노동해방 혁명정당의 건설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 빛나는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단 하나 분명한 것은 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실로 유의미하고 연속적인 혁명적 조직은 단 하나도 탄생할 수 없다는 점이며, 그 길을 회피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노동해방 조직으로 유지할 생각이 우리에게는 조금도 없다는 점이다.

노동해방연대(구 미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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